[? ~ 1786] 조선 후기의 문신. 누이가
영조의 계비(繼妃)로 들어감을 계기로 20여 세에 벼슬에 올라 궁중에 출입하기 시작하였다.
1762년(영조 38년)에
김상로·
홍계희 등과 함께 왕세자(
사도세자)를 무고하게 죽게 하고, 이듬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수찬이 되었다.
1767년에 강원도 관찰사 ·좌승지를 지내는 동안
정후겸과 함께 왕세손(후의 정조)의 외할아버지인
홍봉한을 모함함으로써 시파(時派)· 벽파(僻派)가 갈리자,
벽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러나 영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처사를 후회하면서 벽파들을 의심하게 되고, 또 1776년에 왕세손(정조)이 즉위하자 드디어 흑산도에 유배, 1779년에 위리 안치(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되었다. 뒤에 나주로 옮겨졌다가 그 곳에서 병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