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8~1593 조선 선조 때의 문신, 학자.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이황의 제자로, 선조 23년(1590년)에 통신 부사로서 정사
황윤길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동인(東人)의 입장에서 일본의 침략의 우려가 없다고 보고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잘못 보고한 책임으로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유성룡의 도움으로 화를 면하였다.
그 후 죽산, 함양 등지에서
김면,
정인홍,
곽재우 등과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지키다가 병으로 죽었다.
1664년(현종 5) 신도비가 세워졌고, 안동의
호계서원(虎溪書院)·
사빈서원(泗濱書院), 영양의
영산서원(英山書院), 의성의
빙계서원(氷溪書院), 하동의
영계서원(永溪書院), 청송의
송학서원(松鶴書院), 나주의
경현서원(景賢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