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 ~ 1612] 조선 중기 의병. 자는 사원(士元)이고 호는 영포(穎圃)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조부는 동래부사(東萊府使) 노사종(盧嗣宗)이고 부친은 참봉(參奉) 노언병(盧彦明)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함평성(咸平城)으로 들어갔는데, 함평현감(咸平縣監)
이극성(李克誠)이 수천의 의병을 이끌고 영남으로 떠나면서 그의 충정을 인정하여 수성장(守城將)을 맡겼다. 무기와 군량을 모으고 성을 지키던 중, 관군과 의병들이
팔량치(八良峙)에서 군량이 끊겨 매우 위급한 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아들 노흥원(盧興遠)‧노명원(盧命遠)‧노치원(盧致遠)과 집안의 종 수십 명을 팔량치로 보내 군량을 운반하고 그들과 합세하게 하여 여러 차례 승전을 거두었다.
이후 병란으로 불탄
함평향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도유사(都有司)를 맡아 향교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공으로 병조판서 겸 오위도총부도총관(兵曹判書兼五衛都摠府都摠管)에 증직(贈職)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