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초기의 도읍지. 현재의
인천 광역시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학동(文鶴洞)·학익동(鶴翼洞)·주안동(朱安洞) 일대에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5,000~6,000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백제 시조 온조(溫祚)의 형인 비류(沸流)가 현재의 인천에 정착하여 미추홀(彌鄒忽)이라고 하였는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삼국사기》 《백제본기》 등의 기록에 의하면 " 주몽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가서 온조는 하남의 땅을 택하고 비류는 미추홀에 가서 살았다."고 하여 역사적인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인천 최초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삼국 시대 초기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세력이 만나는 지역이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