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 ~ 1939] 조선 말기의 정치가. 호는 현현거사(玄玄居士)이다. 13세 때 철종의 딸
영혜 옹주와 결혼하여 금릉위(錦陵尉)가 되었다.
김옥균,
홍영식 등과
개화당을 조직하고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돌아와
김홍집 내각의 내무 대신으로 있으면서 자주적 개혁을 꾀하였으나 반역 음모 사건으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907년에 다시 돌아와
이완용 내각의 궁내부 대신에 임명되었다가 대신 암살 음모 사건으로 제주도에서 1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다.
1910년 이후 일제가 회유 정책으로 준 후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뒤에 중추원 고문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