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인 《배비장타령》을 소설화한 한글 소설.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으로, 판소리 사설이 기록화되면서 소설로 정착된 것이어서 작품 여러 곳에서 판소리 사설의 흔적과 삽입 가요를 발견할 수 있다.

1916년에 발간된 구활자본은 배비장이 애랑에게 속아 망신을 당한 후 정의현감에 오르는 것으로 끝맺었으며, 1950년에 필사본을 대본으로 한 주석본에는 배비장이 동헌에 모인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에 끝이 난다.

작품의 내용은, 제주 목사로 부임하는 김경 일행을 따라 배선달이 비장으로서 제주도로 따라 가게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자를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부인과 어머니 앞에서 하였던 배비장은 목사 일행이 매일같이 술과 여자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을 비웃으며 부인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쓴다. 하루는 전임 제주 목사 정비장이 제주를 떠나면서 그곳의 기생 애랑과 이별할 때 창고에 있던 자기 짐을 모두 다 내주고, 게다가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애랑에게 주면서 끝내 이까지 바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여자를 멀리하겠다던 부인과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던 배비장은 자기만은 애랑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방자와 내기를 걸게 된다. 배비장이 목사 일행과 봄놀이를 가게 된 어느 날, 수풀 속 시냇가에서 온갖 교태로 배비장을 유혹하는 애랑을 만나게 되고, 이에 마음이 흔들려 일행보다 뒤쳐져서 애랑이 차려 주는 음식상까지 받아 먹게 된다. 그 후 배비장은 상사병이 나고 급기야 방자를 사이에 두어 애랑과 은밀히 만날 약속을 하게 된다. 배비장은 방자가 마련해 준 개가죽 옷을 입고 개구멍으로 들어가 애랑을 만나게 되는데, 한참 애랑과 놀아나고 있을 때 애랑의 남편 행세를 하면서 방자가 등장한다. 이에 배비장은 당황하여 일단 자루 속으로 숨었다가, 방자가 술을 사러 간다고 나간 사이에 나무 궤짝에 몸을 숨기게 된다. 방자 는 나무 궤짝에 불을 지르겠다느니, 궤짝을 톱으로 켜는 흉내를 냄으로써 궤짝 속의 배비장을 한껏 겁 준다. 배비장이 숨어 있는 나무 궤짝은 결국 동헌으로 운반되고, 바닷속에 던져진 줄로 착각한 배비장은 알몸으로 헤엄치듯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 앞에 공개됨으로써 온갖 망신을 다 당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당시의 지배층인 양반들의 위선적이고 호색적인 생활을 폭로하고 풍자하는 작품으로 여기서는 방자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에 실려 있는 발치 설화와, 이원명의 《동야휘집》에 실려 있는 미궤 설화가 전체적인 줄거리의 근간이 되었다.

사랑하는 기생과 이별하면서 이를 뽑아 주는 소년의 이야기인 발치 설화와, 기생의 계교에 빠져 알몸으로 뒤주에 갇힌 채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한다는 내용의 미궤 설화가 수용된 것이다.

이 작품은 양반 사회 의 모습을 풍자함에 있어서 절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골계 문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설화에서 판소리 작품으로, 판소리에서 다시 소설로 정착하면서 그 발전 과정을 살펴 보는 데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