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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봉은사(奉恩寺)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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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奉恩寺)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종 사찰이며,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
▣ 지식지도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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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참여콘텐츠
◈ 인기순 (1 ~ 4 위)
2023.12.30
세한도 소장 일본인, 손재형 전달 후 자택 미공습 받아 전소
【문화】 추사의 세한도-1 후지츠카 지카시(1879~1948) 교수는 1939년 환갑을 기념하여 애착이 깊은 〈세한도〉 100부 인영본(印影本)을 제작하고 자필로 글을 작성해 지인들에게 전했다. 후지츠카 교수는 이듬해인 1940년에 경성제국대를 정년퇴직하고 일본에 건너간다.
2021.03.08
봄날의 봉은사(奉恩寺)
【여행】 휴일 서울 강남구의 봉은사에 가보니 불교 신자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계셔서 놀랐다. 수도산 봉은사(修道山 奉恩寺)라고 쓴 편액의 일주문(용마루는 황금칠)을 지나면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는 진여문(眞如門)이다. 바로 보이는 법왕루, 선불당, 대웅전, 지장전, 영산전 등 전각들과 23m 미륵대불을 둘러보았다.
2021.07.23
연꽃 피는 곳(서울·수도권)
【여행】 연(蓮)은 흙탕물에서 자라면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더러움 속에서 물들지 않고 청정함으로 피어난다는 부처의 상징이며 군자의 풍모를 지녔다 하여 선비들이 사랑한 꽃으로 알려져있다.
 
◈ 등록순
2023.12.30
세한도 소장 일본인, 손재형 전달 후 자택 미공습 받아 전소
【문화】 추사의 세한도-1 후지츠카 지카시(1879~1948) 교수는 1939년 환갑을 기념하여 애착이 깊은 〈세한도〉 100부 인영본(印影本)을 제작하고 자필로 글을 작성해 지인들에게 전했다. 후지츠카 교수는 이듬해인 1940년에 경성제국대를 정년퇴직하고 일본에 건너간다.
2021.07.23
연꽃 피는 곳(서울·수도권)
【여행】 연(蓮)은 흙탕물에서 자라면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더러움 속에서 물들지 않고 청정함으로 피어난다는 부처의 상징이며 군자의 풍모를 지녔다 하여 선비들이 사랑한 꽃으로 알려져있다.
2021.03.08
봄날의 봉은사(奉恩寺)
【여행】 휴일 서울 강남구의 봉은사에 가보니 불교 신자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계셔서 놀랐다. 수도산 봉은사(修道山 奉恩寺)라고 쓴 편액의 일주문(용마루는 황금칠)을 지나면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는 진여문(眞如門)이다. 바로 보이는 법왕루, 선불당, 대웅전, 지장전, 영산전 등 전각들과 23m 미륵대불을 둘러보았다.
 
▣ 참조 카달로그
◈ 참조 키워드
봉선사 (3) 백과 795년 (2) 백과 건봉사 (2) 백과 고운사 (2) 백과 기림사 (2) 백과 대흥사 (2) 백과 마곡사 (2) 백과 백양사 (2) 백과 범어사 (2) 백과 법주사 (2) 백과 법흥사 (2) 백과 석왕사 (2) 백과 송광사 (2) 백과 용주사 (2) 백과 월정사 (2) 백과 전등사 (2) 백과 조계사 (2) 백과 통도사 (2) 백과 해인사 (2) 백과 화엄사 (2) 백과
▣ 백과사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종 사찰이며,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

조선불교의 중흥도량

봉은사(奉恩寺)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암(見性庵)이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국사는 영축산에 은거했던 고승으로 원성왕에 의해서 국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견성암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들어 견성암은 수도산 아래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이름도 봉은사로 고쳐 부르고 당시 불교중흥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성종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기행과 폭정을 일삼다가 이복동생이었던 진성대군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이다.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특별히 봉은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중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붕어하자 다음 왕위에 오른 사람이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다.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이후 8년 동안 문정왕후가 섭정을 하게 되는데, 8년의 섭정이 끝난 후에도 한 동안 문정왕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 기간 동안 문정왕후는 폐지된 승과고시를 부활해서 봉은사에서 승려를 뽑는 승과고시를 치르게 한다. 또한, 당대 고승인 보우대사를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는 한편 봉은사를 선종 수사찰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후 승과고시를 통해 배출된 서산, 사명, 벽암 등의 고승들이 연이어 이곳 봉은사의 주지를 역임하면서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봉은사를 중심으로 조선불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판전(版殿) 글씨와 문예부흥기 봉은사

문정왕후의 철권통치가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자 봉은사 위상이 급격히 쇠락하게 된다. 하지만 서울 도성에서 한강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대찰 봉은사는 조선후기 문예부흥기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다산 정약용추사 김정희다. 특히 추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며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에 동참했다. 추사의 글씨 가운데 최고이자 최후의 명작으로 꼽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이 글씨는 현재까지도 봉은사 판전에 부착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봉은사는 경기 남부의 서울을 비롯한 광주, 고양, 양주, 시흥, 수원, 여주, 이천, 양평, 파주 등 8개 군 78개 말사를 관할하는 본사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1912년 봉은사 주지로 취임했던 청호 학밀(晴湖 學密) 스님은 역사상 최악의 홍수로 기록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봉은사의 사재(寺財)를 털어 인근 주민 708명을 구함으로써 불교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1964년에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수련도량이 되어 대학생불자 조직의 효시가 되었으며, 1972년에는 대장경을 한글로 옮기는 동국역경원이 봉은사에 설치됨으로써 역경사업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소장 문화재

보물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 (보물 제3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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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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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