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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신라(新羅)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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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新羅)
우리 나라 고대 왕국 중의 하나. 고구려, 백제 와 더불어 삼국 시대를 이루었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신라 (新羅) 우리 나라 고대 왕국 중의 하나. 삼국 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 지식지도
신라 (新羅) 구양순체 나·당 연합군 박혁거세 신화 왕희지체 백제 고구려 고려 후삼국 651년 656년 김생 김인문 박혁거세 요극일 문명 왕후 문무왕 태종 무열왕 홍관 남해 차차웅 삼국사기 지봉유설 필원잡기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 참조 원문/전문
고구려와 신라의 건국연대에 대하여 한국역사 신채호 (16) 남사 열전(69) 남사 열전 69 동양역사 이연수(李延壽) (186) 북사 열전(82) 북사 권94 열전 82 동양역사 이연수(李延壽) (256) 수서 열전(46) 수서 열전 46 동양역사 위징(魏徵) (159) 신당서 열전(148) 신당서 권220 열전 제145 동이 동양역사 구양수(歐陽脩) (441) 신오대사 부록(3) 신오대사 권74 사이부록 제3 동양역사 구양수(歐陽脩) (28)
▣ 시민참여콘텐츠
◈ 인기순 (1 ~ 4 위)
2019.10.02
【문화】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고래, 사슴, 멧돼지 등 여러 동물과 사냥하거나 배를 탄 사람 등 다양한 그림이 가득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와 최신 실감형 디지털 콘텐츠인 프로젝션 맵핑 기법을 접목하여 암각화에 새겨진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일면을 보다 알기 쉽고 흥미롭게 관람객들에게 제공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표현들을 현재 기술로 복원하여 보다 사실적으로 역사의 현장을 탐험할 수 있다. 【학예연구과】
2019.09.20
【인문】 신라사백제사 상호교류를 위한 제3회 공동 학술포럼 개최 한강 유역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관산성 전투의 의미를 찾아 【문화유산과】
2023.11.28
고려·조선시대 기록 속 ‘신라 문화유산’ 알아보기
【문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는 올해 네 차례 기획된「시민들과 마주 앉아 나누는 신라 이야기, 대담신라(對談新羅)」의 마지막 일정을 장식하는 ‘고려·조선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신라 고적’을 오는 12월 6일 오후 6시 30분, 신라월성연구센터(숭문대)에서 시민들과 함께한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20.05.28
경주 적석목곽묘「쪽샘vs탑동, 적석목곽묘 전성시대」개최
【문화】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과 함께 경주 쪽샘유적과 탑동유적에서 조사된 신라 적석목곽묘 조사 성과를 종합한 ‘쪽샘 vs 탑동 : 적석목곽묘 전성시대’ 특별전을 5월 30일일부터 12월 30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 전시실에서 개최한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등록순
2023.11.28
고려·조선시대 기록 속 ‘신라 문화유산’ 알아보기
【문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는 올해 네 차례 기획된「시민들과 마주 앉아 나누는 신라 이야기, 대담신라(對談新羅)」의 마지막 일정을 장식하는 ‘고려·조선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신라 고적’을 오는 12월 6일 오후 6시 30분, 신라월성연구센터(숭문대)에서 시민들과 함께한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20.05.28
경주 적석목곽묘「쪽샘vs탑동, 적석목곽묘 전성시대」개최
【문화】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과 함께 경주 쪽샘유적과 탑동유적에서 조사된 신라 적석목곽묘 조사 성과를 종합한 ‘쪽샘 vs 탑동 : 적석목곽묘 전성시대’ 특별전을 5월 30일일부터 12월 30일까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 전시실에서 개최한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9.12.18
신라와 고구려 교류를 밝힐 수 있는 금제귀걸이 출토
【문화】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재)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에서 발굴조사 중인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진입도로구간의 포항 흥해읍 대련리 유적에서 금제굵은고리귀걸이(금제태환이식, 金製太環耳飾) 1쌍을 비롯하여 금제가는고리귀걸이(금제세환이식, 金製細環耳飾) 2쌍, 은제팔찌 1쌍 등의 장신구류와 다수의 토기가 출토되었다.【발굴제도과】
2019.10.07
【문화】   상설 체험프로그램은 어린이박물관에서 언제나 이용할 수 있으며, 초등 단체 대상 교육프로그램은 국립경주박물관 누리집( http://gyeongju.museum.go.kr)의 ‘교육·행사-교육프로그램’에서 참여 신청 할 수 있다. (※세부 내용 참고) 【교육문화교류과】
2019.10.02
【문화】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고래, 사슴, 멧돼지 등 여러 동물과 사냥하거나 배를 탄 사람 등 다양한 그림이 가득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와 최신 실감형 디지털 콘텐츠인 프로젝션 맵핑 기법을 접목하여 암각화에 새겨진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일면을 보다 알기 쉽고 흥미롭게 관람객들에게 제공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표현들을 현재 기술로 복원하여 보다 사실적으로 역사의 현장을 탐험할 수 있다. 【학예연구과】
2019.09.20
【인문】 신라사백제사 상호교류를 위한 제3회 공동 학술포럼 개최 한강 유역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관산성 전투의 의미를 찾아 【문화유산과】
▣ 참조 카달로그
◈ 주요 언급 키워드
대한 민국 (10) 백과 남북국 시대 (4) 백과 후삼국 (4) 백과 삼국 시대 (3) 백과 국립 경주 박물관 (2) 백과 대한민국 문화재청 (2) 백과
◈ 참조 키워드
고구려 (17) 백과 백제 (15) 백과 고려 (8) 백과 발해 (8) 백과 후백제 (8) 백과 소성왕 (7) 백과 견훤 (6) 백과 궁예 (6) 백과 민애왕 (6) 백과 원성왕 (6) 백과 장보고 (6) 백과 태종 무열왕 (6) 백과 흥덕왕 (6) 백과 김충공 (5) 백과 헌덕왕 (5) 백과 후고구려 (5) 백과 경문왕 (4) 백과 김유신 (4) 백과 김인문 (4) 백과 문무왕 (4) 백과 신무왕 (4) 백과 애장왕 (4) 백과 (4) 백과 지증왕 (4) 백과 진흥왕 (4) 백과 토욕혼 (4) 백과 혜충태자 (4) 백과 희강왕 (4) 백과 거란 (3) 백과 경덕왕 (3) 백과 경애왕 (3) 백과 고려 태조 (3) 백과 내물왕 (3) 백과 눌지왕 (3) 백과 대가야 (3) 백과 돌궐 (3) 백과 법흥왕 (3) 백과 삼국 시대 (3) 선덕왕 (3) 백과 설인귀 (3) 백과 소정방 (3) 백과 소지왕 (3) 백과 신덕왕 (3) 백과 실성왕 (3) 백과 자비왕 (3) 백과 진평왕 (3) 백과 헌강왕 (3) 백과 혜공왕 (3) 백과 후삼국 (3) 백과 800년 (2) 백과 897년 (2) 백과 912년 (2) 백과 917년 (2) 백과 918년 (2) 백과 가야 (2) 백과 경명왕 (2) 백과 고령 가야 (2) 백과 금관 가야 (2) 백과 기림이사금 (2) 백과 김대렴 (2) 김범문 (2) 백과 김주원 (2) 백과 김지정 (2) 김헌창 (2) 백과 나·당 연합군 (2) 백과 나제 동맹 (2) 백과 (2) 백과 대야성 (2) 백과 동명성왕 (2) 백과 말갈 (2) 백과 문명 왕후 (2) 백과 문무왕 비문 (2) 문성왕 (2) 백과 미추왕 (2) 백과 박혁거세 (2) 백과 변한 (2) 백과 선덕 여왕 (2) 백과 성덕왕 (2) 백과 성산 가야 (2) 백과 신문왕 (2) 백과 아라 가야 (2) 백과 양길 (2) 백과 위구르족 (2) 백과 유례왕 (2) 백과 이세적 (2) 정강왕 (2) 백과 조분왕 (2) 백과 진덕 여왕 (2) 백과 진성여왕 (2) 백과 진지왕 (2) 백과 처용무 (2) 백과 첨해왕 (2) 백과 태조,고려 (2) 토번 (2) 백과 헌안왕 (2) 백과 황룡사지 (2) 백과 효공왕 (2) 백과 효성왕 (2) 백과 효소왕 (2) 백과 흉노족 (2) 백과
▣ 백과사전
우리 나라 고대 왕국 중의 하나. 고구려, 백제 와 더불어 삼국 시대를 이루었다.
 
진한의 한 나라였던 경주 평야의 사로(斯盧)가 발전한 나라로서 삼국 중 가장 늦게 고대 왕국의 체제를 갖추었으나, 중국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문화와 우리의 토착 문화를 잘 융합시킴으로써 힘을 길러 삼국을 통일하였다. 통일 후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워 평화와 번영을 누리다가 8세기 후반부터 여러 가지 사회 제도의 모순이 드러나, 그것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지 못하고 10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고려에게 나라를 넘겨 줌으로써 신라 천 년의 영화는 끝이 났다.
 

건국과 발전

고조선 멸망 이후 경주 평야에서 일어난 사로는 초기에는 박, 석, 김씨의 세 부족이 연맹하여 지도자인 이사금을 선출하였으나, 이들이 주체가 되어 점차 사로 6촌이라는 6부족 연맹체를 이루고, 1세기경에는 기마 전투 기술을 도입하여 주변의 부족들을 통합하면서 큰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3세기 중엽까지는 그 규모가 아직 경주 평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4세기 말 내물왕 때에 이르러 김씨의 왕위 세습권을 확립하면서 고대 왕국의 기틀을 확립하고, 경상 북도 일대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고구려를 통해 중국과도 교섭하기에 이르렀다.
 
5세기에 접어들면서 고구려가 강력한 남하 정책을 추진하자 신라는 백제와 손을 잡고 이를 막았으며, 지증왕 때(6세기)에는 중국식 제도를 받아들여 나라 이름을 고치고 왕호도 고치는 한편, 지방 제도도 주, 군, 현으로 정비하였다. 지증왕을 이은 법흥왕 때에는 불교를 공인하여 국민 정신을 통일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영토 확장에도 힘을 기울여 금관 가야를 아울렀다.
 
이어 진흥왕 때는 신라의 최성기로서,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상류 지역을 빼앗은 후, 다시 백제를 쳐서 한강 하류 유역까지 차지함으로써 한강 유역을 완전히 세력권 안에 넣고, 대가야를 정벌하여 낙동강 유역을 차지했으며, 동북쪽으로는 함경도 일대까지 진출하여 영토 를 크게 넓혔다.
 
한편, 진흥왕은 안으로 화랑도를 개편하여 인재를 길러 한강 유역의 점령과 함께 뒷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6세기의 신라의 비약적인 발전은 고구려와 백제를 자극하여, 두 나라는 서로 결속하여 신라를 괴롭혔다.
 
7세기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의 침입에 시달리던 신라는 마침 중국을 통일한 수, 당과 손을 잡아 이에 대처하려 했는데, 진덕 여왕 때에는 마침내 대당 외교에 성공함으로써 나·당 연합군을 조직하고 다음의 무열왕 때에는 백제를 멸하였으며, 문무왕 때에는 고구려까지 멸하고 삼국 통일을 완수하였다.
 
통일 후 신라는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면서 귀족 중심의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으나, 8세기 후반에 와서 골품제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진골 귀족들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일어나 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흥덕왕이 죽은 뒤에는 왕위 다툼이 더욱 심해져 말기의 150여 년 동안에 20여 명의 왕이 바뀌는 혼란을 빚었다. 그 시기에 지방 호족 들이 자립하고, 해상 세력과 군진 세력도 스스로 중앙 정부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들을 중심으로 후백제, 후고구려 가 성립되면서 나라가 다시 나뉘어 후삼국 시대를 맞게 되었다.
 
신라는 날이 갈수록 국력이 약해져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자, 경순왕 때에 이르러 나라를 후고구려에서 자라 나온 고려에 넘겨 주고 항복하고 말았다(935년).
 

통치 제도

각 지방의 족장 세력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마련된 골품 제도를 바탕으로 관등 조직이 편성되고, 통일 후에는 넓혀진 영토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제도를 다시 정비하였다.
 

중앙 관제

통일 전에는 중앙에 이벌찬 이하 17 등급의 관리를 두고, 귀족 대표인 상대등이 나라일을 총괄하였다. 법흥왕 때에는 귀족 회의장인 상대등과 병부밖에 없었으나 진평왕 때에 위화부, 조부, 예부를 두었으며, 진덕 여왕 때에는 이방부를 새로 두고 집사부에 수상으로 중시(中侍)를 두어 국가 권력 을 강화하였다. 통일 후에는 집사부 시중( 중시가 바뀐 이름)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신문왕 때에 공장부를 새로 두어 12부를 이루면서 중국의 6전 조직과 비슷한 행정 실무의 분담이 이루어졌다.
 

지방 제도

통일 전에는 수도를 6부, 지방을 5주로 나누고, 그 아래에 주, 군, 현을 두어 주에는 군주, 군에는 태수, 현에는 현령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통일 후에는 기본적으로 지방에 9주를 두고, 지방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따로 5 소경 제도를 마련하여 그 장관을 사신이라 하였다. 또한 지방 호족들을 감시하기 위한 상수리 제도도 마련되었다.
 

군사 조직

통일 전에는 군사 관할 구역으로 정을 설치하여 중앙과 지방 5주에 각 1정씩을 두고, 따로 서당이라는 특수 부대를 전국 주요 지점에 배치하였으며, 수도 방어를 위해 위병과 사자대라는 특수 부대를 조직하였다. 통일 후에는 고구려, 백제, 말갈계의 군대까지 통합하여 9 서당이란 중추 부대를 편성하고, 지방 군관구의 성격을 가진 10정을 주요 지역 에 배치하였으며, 수도와 소경을 지키는 몇 개의 특수 부대를 두었다.
 

사회 제도

신라에는 특수한 사회 제도로서 골품 제도와 화백, 화랑도 등이 있었다. 일종의 신분 제도인 골품제는 신라인의 모든 생활을 제한하였으므로 말기에 그 모순이 드러남으로써 사회가 분열되었다. 그러나 귀족 회의였던 화백과 청소년 집단인 화랑도는 국가의 단결과 국민 정신의 함양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경제 생활

신라의 주산업은 농업이었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농업 에 많은 힘을 기울였고, 어업과 목축도 성하였다. 특히 통일 후에는 양잠과 직조, 금은 세공, 나전 칠기 등의 수공업이 발달하여 경주에는 통일 전의 동시 외에 서시와 남시가 설치되고, 견직물, 마직물, 금은 세공품 등은 중국 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토지는 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였으며, 통일 후에는 귀족이나 공신에게 식읍과 사전을 주고, 백성에게는 정전을 주어 생활이 안정되게 했다. 세금 제도는 통일 전에 대하여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 후에는 조(租), 용(庸), 조(調)의 세법을 받아들여 전세로 곡식이나 베를 받고, 나라의 토목 공사에 백성을 동원하였으며, 조(調)로써 매호마다 지방 특산물을 바치게 하였다.
 

문화

지리적으로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치인데다가 토착 문화의 성격도 강하여 발전이 늦었다. 그러나 삼국 시대 후기에는 뚜렷한 성격의 문화를 이룩하고, 통일 후에는 고구려, 백제 문화를 흡수한 위에 중국을 통해 국제 문화 조류를 받아들였다.
 

학문

일찍부터 한문을 사용하였으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서 우리말을 표기하려는 노력도 있었는데, 뒷날 설총은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이두로 발전시켰다. 한자의 보급은 학문을 발전시켰고, 이와 함께 자기 나라 역사를 기록하려는 의식도 싹트게 되어 545년(진흥왕 6년)에는 거칠부에 의해 《국사》가 편찬되었다. 통일 후에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유학을 중시하여 682년(신문왕 2년)에는 일종의 국립 대학 인 국학이 설치되고, 다시 독서 출신과라는 유학의 학문 성적으로써 관리를 채용하는 제도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유명한 학자로는 설총과 강수, 김대문, 최치원 등이 있었다.
 

종교

초기에는 조상신과 국가 수호신을 받들어 그에 대한 제사 를 국가적인 행사로 삼았으나, 나라가 발전하면서 국민 의 정신적 통일을 위한 새로운 종교가 필요하게 되어 불교 를 받아들였다.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4세기 초부터였으나, 공인되지 못하다가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되었다. 그 후 불교는 호국 종교로서 급속히 발전하였는데, 유명한 승려로는 원광, 자장, 원효, 의상, 혜초 등이 있다.
 

시가와 음악

시가는 일찍부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표기한 향가가 발달하였는데, 진성 여왕 때에는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 이 당시에 전해지던 향가를 모아 《삼대목》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음악은 옥보고가 거문고에 능하였고, 우륵은 가야금 을 전하고 그 곡을 지었으며, 백결 선생은 《방아타령》이라는 곡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교 음악인 범패가 전래되어 유행하였다.
 

미술

주로 귀족 생활에 쓰인 공예품과 불교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불상, 불탑, 범종 등이 대표적인데, 특색은 소박한 가운데 온화하고 섬세하며, 선의 아름다움과 조화, 균제의 미를 중시하였다는 점이다.
 
건축으로는 황룡사 9층탑과 분황사 탑, 그리고 대표적인 걸작품으로 불국사, 첨성대, 석굴암 등이 있는데, 황룡사 9층탑은 몽고 침입 때 불타버렸다.
 
그 밖의 석조 건물로는 감은사지 3층 석탑과 화엄사 4 사자 3층 석탑이 있다. 범종으로는 상원사의 동종과 성덕 대왕 신종이 유명하며, 조각으로는 통일 전의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이 뛰어나다. 또한 통일 후의 무열왕릉 비석의 대좌 와 괘릉 및 김유신 묘의 호석에 새겨진 12지신상도 훌륭하다.
 
공예품은 고분이나 절터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금관총, 천마총 등에서 발견된 금관과 허리띠, 목걸이, 금은 팔찌 및 여러 가지 구슬로 만든 장식품들이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다.
 
김인문, 김생, 요극일 등의 명필도 나왔는데, 김생은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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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 참조
우리나라의 역사(시대) 구분.(박혁거세)
 
삼국 : 고구려, 백제,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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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