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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신립(申砬)
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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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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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 (申砬)
[1546 ~ 1592] 조선 시대의 무장.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임진왜란 첫 해에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펼치고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 지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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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 (申砬) 고니시 유키나가 이일 김여물 탄금대 전투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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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 백과 김여물 (5) 백과 탄금대 전투 (3) 백과 고니시 유키나가 (2) 백과 인조 반정 (2) 백과 정철 (2)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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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6~1592 조선 시대의 무장.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선조 즉위년인 1567년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도총부도사·경력(經歷)을 지내고 진주 판관이 되었다.
 
온성 부사로 있던 1583년에 여진인(女眞人) 추장 이탕개를 주동 인물로 하여 여진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때 신립은 첨사(僉使) 신상절(申尙節) 등과 함께 여진군을 격퇴하고, 그들을 두만강 너머까지 추격하여 그 소굴을 소탕하였다. 개선 후 이 공로로 함경 북도 병마 절도사에 올랐다.
 
1587년 왜구가 흥양에 침입하자 우방 어사가 되어, 군사를 인솔하고 왜구를 토벌하러 나섰다. 그러나 이미 왜구가 철수하였기 때문에, 돌아오던 중 양가의 처녀를 첩으로 삼았다는 3사(司)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함경 남도 병마 절도사에 다시 등용되었지만, 졸병을 참살하였다는 죄 때문에 중추부 동지사의 한직으로 전임되었다. 1590년 평안도 병마 절도사에 보직되고, 이듬해 한성부 판윤을 거치었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은 이일과 함께 변비(邊備)를 순시하는 등 요충지인 영남 지방의 방비에 힘을 기울였으나, 4월 17일 경상 좌수사 박홍으로부터 왜군 침공의 급보가 전하여지자, 군무(軍務)를 총괄하기 위하여 국왕의 특사로 삼도 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 임명되어 왜군과 대결하였다.
 
순변사 이일이 4월 24일 상주에서 가토에게 패하여 충주로 물러나자, 왜군은 조령과 죽령 등지에서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충주까지 진격하였다. 이 때 종사관(從事官)인 김여물)이 새재〔鳥嶺〕의 지세를 이용하여 방어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신립은 이를 듣지 않고, 충주 달천(達川)을 등지고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치고, 휘하에 8,000여 기(騎)를 이끌고 북상하여 오는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대군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힘이 미치지 못하여 패배하자, 김여물과 함께 탄금대에서 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신립은 임금에게 마지막 올리는 글을 탄금대에서 썼다고 한다.
 
신립의 배수진에 대해서는 후일 전략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 명나라 장군 이여송도 조령의 험한 지세를 이용하지 않고 후퇴하여, 무모한 배수진을 친 행동을 탄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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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