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 독립 운동가. 호는 국사(菊史)이며, 이름을 하영(夏英)이라고도 부른다. 서울에서 태어나 18세 때 만주로 가서 감리교 신학 전문 학교를 졸업하고, 원산 감리 교회 목사, 원산 광성 소학교 부교장 등을 역임했다. 1919년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고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 후 감옥에서 풀려나 신앙 부흥 운동을 하며, 신간회 간부와 중앙 기독교 청년회 간사 등을 지냈다. 8·15 광복 후 조선 민족당 당수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50년에 서울 종로구에서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