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5 ~ 1503] 조선 초기의 문신.
1457년(세조 3년)에 문과에 급제, 성균관 직강과 응교 등을 지냈다. 이어 한성부 우윤· 대사헌· 형조 참판 등을 거쳐 1471년 좌리 동신 4등으로 광원군에 봉해지고, 1473년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때까지 가장 강한 세력을 잡고 있던 훈구파의 한 사람으로서 성종 이후 나타난 새로운 세력인 사림파와 늘 다투었다.
시문에 밝았던 그는 1498년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사림파의 우두머리인
김종직이 세조를 비난하여 지은 『
조의제문』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글을 실은
김일손 등을 죽여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죽은 뒤 익평(翼平)이란 시호가 내려졌으나, 후에 벼슬과 함께 도로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