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역대 왕의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역사책. 태조(太祖)-철종(哲宗)에 이르는 25대 472년(1392-1863) 17만 2천여 일의 역사를 년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있는 방대한 양의 역사서로 국보 제 151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세계 여러 왕조실록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을 망라하고 있으며, 매우 진실성과 신빙성이 높아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가 없는 귀중한 역사기록이다.
태종 때에 《
태조실록》을 편찬한 이래 왕이 세상을 떠나면 곧 그 왕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실록은 춘추관에서 편찬하였는데, 그 자료가 되는 것은 춘추관 시정기와 승정원 일기 및 각 관청의 기록과 사관 (史官 : 역사를 기록하는 관원)의 사초(史草) 등이다.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기 시작한 것은 태조가 태종 8년(1408)에 죽자, 이듬해 8월에 태종이 하륜(河崙)에게 태조실록(太祖實錄)의 편찬을 명하여 실록청 (實錄廳)을 설치 하륜(河崙). 정이오(鄭以吾). 변계량(卞季良)등을 중심으로 편찬 작업이 시작되어 태종 13년(1413) 최초로 탄생하게 된다. 이어 정종실록(定宗實錄)과 태종실록(太宗實錄)은 세종 5년(1423) 11월부터 편찬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초기의 태조·정종·태종의 3대 실록은 처음 각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창덕궁(昌德宮)내의 춘추관(春秋館), 1부는 고려시대부터 실록을 보관했던 충주사고(忠州史庫)에 간직했다. 세종 27년(1445)에 다시 2부를 등사하여 전주(全州)와 성주(星州)에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여 1부씩 분장하였다. 세종실록 이후는 각 왕의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활자로 인쇄하여 춘추관·충주·전주·성주의 네 사고에 보관하였다.
그런데 중종(中宗) 33년(1538) 성주 사고의 화재로 실록이 모두 불에 탄다. 또한 임진왜란(1592년)으로 춘추관, 충주, 성주사고의 실록들이 모두 불에 타서 소실되고 전주사고본만이 남게 되었다. 이 전주사고본(태조∼명종까지의 13대 실록)은 전주유생인 안의(安義)· 손홍록(孫弘錄) 등이 정읍의 내장산으로 옮겨 병화를 면한 것이며, 그것을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 7월에 정부가 인계 받아 해주(海州)로 운반했다가, 선조 29년(1596)에 강화도(江華島), 다시 선조 32년(1599)에 묘향산(妙香山)으로 이장 보관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선조 36년(1603) 7월부터 선조 38년(1606) 3월까지 13대 실록을 다시 3부씩 출판하고, 최종 교정본과 병화를 면한 전주사고의 원본 실록을 합쳐 5부를 만들었다. 이들 실록은 다시 춘추관을 비롯하여 강화도의 마니산(摩利山), 경북의 태백산(太白山), 평북 영변의 묘향산(妙香山), 강원도의 오대산(五臺山)에 각각 1부씩 보관시켰다.
즉 춘추관·태백산·묘향산에는 선조대에 출판된 신인본, 마니산에는 원본인 전주사고의 실록, 오대산에는 교정본을 보관시켰다. 광해군 9년(1617)에 편찬된 선조실록(宣祖實錄)도 이와 같이 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으로 춘추관에 소장되었던 실록은 소실되었다.
인조(仁祖) 6년(1628) 후금(後金)의 위협 때문에 강화의 마리산(摩利山)에 새로 사고를 설치 묘향산의 전주본을 이관하였다가 불이나 현종(顯宗) 1년(1660) 강화 남쪽 정족산(鼎足山)에 다시 이관했다. 또한 인조 11년(1633)에는 후금(後金)과의 관계가 악화됨으로 인해 묘향산사고를 적상산(赤裳山)으로 이전하였다. 한편 마니산 실록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나 현종(顯宗) 때 다시 보수하였다.
마니산 사고는 숙종 4년(1678)에 강화도의 정족산에 신설한 사고로 이전되었다.
인조 이후의 실록은 4부를 인쇄하여, 정족산(鼎足山)·태백산(太白山)·적상산(赤裳山)· 오대산(五臺山)의 사고에 간직하고 조선조 말기까지 보관하여 왔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규장각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이관되어 종친부 건물에 보관되었다. 적상산본은 창덕궁 장서각에 보관되었다. 오대산본은 동경제국대학으로 이전되었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소실되었고, 이 가운데 27책이 서울대 도서관에 이전 보관되어 있다.
조선총독부에 이관되었던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1929년 규장각도서와 함께 경성 제국대 도서관에 이관되어 보관되었다. 적상산본은 1946년의 도난사건과 6.25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실록은 마니산에서 옮겨 온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이다.
목록
왕대 명칭 (권수/책수) 편찬 연대
1 태조실록 (15/3) 1413(태종 13)
2 정종실록 (6/1) 1426(세종 8)
(공정왕실록)
3 태종실록 (36/16) 1431(세종 13)
4 세종실록 (163/67) 1454(단종 2)
5 문종실록 (12/6) 1455(세조 1)
6 단종실록 (14/6) 1469(예종 1)
(노산군일기)
7 세조실록 (49/18) 1471(성종 2)
8 예종실록 (8/3) 1472(성종 3)
9 성종실록 (297/47) 1499(연산군 5)
10 연산군일기(63/17) 1509(중종 4)
11 중종실록 (105/53) 1550(명종 5)
12 인종실록 (2/2) 1550(명종 5)
13 명종실록 (34/21) 1571(선조 4)
14 선조실록 (221/116) 1616(광해군 8)
14 선조수정실록 (42/8) 1657(효종 8)
15 광해군일기 태백산본 187/64 1633(인조 11)
정족산본 187/39 1653(효종 4)
16 인조실록 (50/50) 1653(효종 4)
17 효종실록 (21/22) 1661(현종 2)
18 현종실록 (22/23) 1677(숙종 3)
18 현종개수실록 (28/29) 1683(숙종 9)
19 숙종실록 (65/73) 1728(영조 4)
20 경종실록 (15/7) 1732(영조 8)
20 경종개수실록 (5/3) 1781(정조 5)
21 영조실록 (127/83) 1781(정조 5)
22 정조실록 (54/56) 1805(순조 5)
23 순조실록 (34/36) 1838(헌종 4)
24 헌종실록 (16/9) 1851(철종 2)
25 철종실록 (15/9) 1865(고종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