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상(領相)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도망시(悼亡詩)
조선 후기 영의정을 역임한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18세인 1737년에 직장(直長) 오필운(吳弼運)의 딸 15세 동복(同福) 오 씨(吳氏, 1723~1751)와 혼인을 했다. 채제공과 부인 오 씨(吳氏)는 금슬이 너무 좋아 이웃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다.
【문화】영상(領相)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도망시(悼亡詩)
조선 후기 영의정을 역임한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18세인 1737년에 직장(直長) 오필운(吳弼運)의 딸 15세 동복(同福) 오 씨(吳氏, 1723~1751)와 혼인을 했다. 채제공과 부인 오 씨(吳氏)는 금슬이 너무 좋아 이웃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다.
[1720 ~ 1799] 조선 시대의 문신. 호는 번암(樊巖)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753년에 호서 암행 어사가 되었다. 1758년(영조 34년)에 도승지로서 《열성지장》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 뒤에 형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지냈다.
1780년에 홍국영의 세도 정권이 무너진 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임금을 도왔다. 1793년에 영의정에 올라 재상으로 있는 동안, 카톨릭교에 대해 온건 정책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