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 ~ 1682]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호는 미수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50여 세가 되도록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여, 특히 예학에 일가를 이루었다. 1657년 관직에 들어가
1660년 예론으로
송시열과 맞서다가 벼슬에서 물러났다.
숙종이 즉위하자 대사헌이 되고, 1675년 이조 참판이 되어 덕·예·형·정(德禮刑政) 4조에 대한 상소를 하였다. 1677년에는 『경설』 『동사』 등을 지어 바쳤다.
그는 사상적으로
이황,
정구의 학통을 이어받아
이익에게 연결시킴으로써 기호 남인의 선구이며 남인 실학파의 기반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 밖의 저서로 《미수기언》 등이 있으며, 글씨는 특히 전서로 이름이 높고, 『
척주(삼척) 동해비』가 남아 있다.
그림과 문장에도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