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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가락지(-)
가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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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지 (-)
여자의 손가락에 장식용으로 끼는 두 짝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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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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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손가락에 장식용으로 끼는 두 짝의 고리. 지환(指環)이라고도 한다. 안은 판판하고 겉은 통통하게 만든 고리로서, 한 짝으로 된 것은 ' 반지'라고 한다. 반지는 결혼을 하였거나 하지 않았거나 가리지 않고 아무나 끼지만, 가락지는 결혼한 여자가 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일로 볼 때 가락지는 유교를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에, 결혼을 사람이 일생에서 겪게 되는 중요한 일의 하나로 여기는 가운데 이성지합(二姓之合), 곧 두 성(姓)의 합과 부부일신(夫婦一身), 곧 부부는 한몸임을 상징하는 표지로서 생겨난 것으로 생각된다. 가락지는 한 짝의 고리인 반지를 두 짝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재료나 만드는 기교면에서는 반지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조선 시대의 가락지 재료로는 은이나 백동이 많이 쓰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 금이 귀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에 대한 공물 등으로 인하여 금의 사용을 금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기타의 가락지 재료로는 구리·옥· 비취· 호박· 마노·밀화(蜜花)· 산호·진주 등이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계절에 따라 여러 종류의 가락지를 달리 끼었다. 즉, 궁중이나 사대부 집안에서는 겨울에는 금가락지, 여름에는 자마노 가락지, 봄· 가을에는 칠보 가락지를 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가락지는 모양은 오히려 단순하였다. 재료에 따라 겉을 아무런 꾸밈새가 없는 민패로 만들기도 하고, 아니면 박쥐 무늬나 '壽(수)'자를 새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단순함이 조선 시대 가락지의 특징이었는데, 그것이 오늘날에 전해지면서 재료도 모양도 다양하게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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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