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의 동쪽 담에 세운 문루.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처음으로 세웠던 궁궐인 경복궁에 딸린 문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홍예문(무지개문)을 낸 돌로 쌓은 기단 위에 단층으로 세운 2익공식 우진각 지붕의 건물이다.
우진각 지붕이란 네 귀퉁이의 추녀 마루가 동마루, 곧 기와로 쌓아 올린 지붕 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을 말한다.
겹처마에 지붕의 각 마루는 용마루의 양쪽에 진흙을 바른 양성을 하였으며, 취두·용두·잡상 등을 배열하고 아래 끝에 토수를 끼웠다. 취두는 치레로 쓰이는 기와의 한 가지로, 전각이나 문루 따위 큰 건물의 용마루나 지붕골의 끝에 얹는다. 매의 머리같이 쑥 불거지고 모가 난 두 뺨에 눈알과 깃 모양의 선과 점을 새겼다. 용두는 지붕 위에 얹는 용머리처럼 생긴 장식물이고, 잡상은 궁전이나 전각의 추녀·용마루 또는 박공 머리 위의 수키와 위에 덧얹는 여러 가지 짐승 형상이나 손오공 모양으로 만든 기와이다. 또 토수는 기와 의 한 가지로, 지붕 네 귀의 추녀 끝에 끼는 용머리 모양이나 거북 머리 모양으로 만든 장식이다.
문 안에 왕세자가 거처하던 춘궁이 있었으며, 왕의 종친과 상궁들만 드나들었다. 또한 대궐에 가지런히 늘어선 군대의 앞을 지나면서 검열하는 열병을 위한 비상의 첩종, 곧 군대를 모아 사열하기 위하여 대궐 안에서 치던 큰 종이 울리면, 왕을 직접 모시고 있던 시신들이 모여 명령을 기다리던 곳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타 버렸으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흥선 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경복궁과 함께 1865년(고종 2) 12월에 다시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