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북도 경주시 황남동(皇南洞)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1916년 일본 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등이 최초로 발굴했으며, 이 때 철검(鐵劍)이 나왔기 때문에 검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황남동 100 호분(號墳)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크기는 최대 지름 44.5m, 높이 9.7m에 이르는 대형 원형봉 토분으로 내향 경사(內向傾斜) 수법으로 축조되었다. 고분의 중심부에서 지반을 깊이 약 70㎝ 정도 파고 여기에 1.2m 두께로 냇돌을 깔아 시상면(屍床面)을 지면보다 높게 설치하였는데, 주체부 위의 돌무지의 규모는 높이 3.7m, 남북 14.5m이며, 그 위에 15~18㎝ 두께로 진흙이 덮여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철투겁창 2점, 숫돌 1점, 굽달린 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 1점 외에 후세에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토기 몇 점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은 외형적으로 볼 때, 시상면을 지상화하였다는 점에서는 서봉총(瑞鳳塚)· 금관총· 천마총 등의 대형분과 거의 비슷하고, 내부 구조에 있어서도 내향 경사 쌓기로 된 점 등이 황남 대총(皇南大塚) 등 고신라 대형 고분의 수법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이들 대형 고분에서 예외 없이 금제 허리띠· 띠드리개〔腰佩〕 등의 화려한 유물이 나오는 반면, 여기에서는 유물 출토량이 매우 적다. 또한,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유물 이 함께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19년조(435)의 기록에 역대의 능원을 고쳐 쌓았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마립간 시대에 신라 왕들이 대형화했던 선왕 묘의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