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3 ~ 1419] 고려 말, 조선 초기의 학자.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며,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조선 건국 뒤에는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고향인 선산에 숨어 살면서 후진 양성에만 힘썼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가 지극하며 세상의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를 본받고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줄을 이었으며,
김숙자(金叔滋)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이 학맥을 이었다.
문집에 《
야은집》 《야은속집(冶隱續集)》,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이 있다.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