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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金尙喆) (ENCY005154)
요 약 : 1712~1791 조선 후기의 문신.
분 류 :
인물 : 인물 > 한국 [741 자]
     

1712~179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이고, 아버지는 판돈녕 부사 시혁(始爀)이다. 1733년 사마시를 거쳐, 1736년 문과에 급제, 지평·교리를 지냈다. 1757년에는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 대사간· 한성부 판윤이 되었다. 그 뒤로 이조 판서· 형조 판서· 병조 판서를 지냈으며,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1766년에는 우의정이 되었다.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그는 조선의 문물과 제도를 부문별로 모아 정리한 문헌의 필요성을 들어, 왕에게 이를 편찬할 수 있는 찬집청을 두도록 건의하였다. 그의 건의에 따라 찬집청이 설립되고, 찬집청에서는 1770년 조선의 문물을 정리한 저서인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명사(明史)에 실린 《강감합찬》에 조선 왕실의 계보가 잘못 적혀 있다는 대간의 상소가 있었다. 이 상소를 접한 그는 스스로 선계 변무사로 베이징〔北京〕에 가서 그 책을 개인 소장하는 것을 금하겠다는 청나라 황제의 약속을 받고 돌아와서는 《신묘중광록》을 편집 간행하였다. 1772년에 좌의정이 되었으며, 1775년 그의 나이 64세에 중앙 관직의 최고위인 영의정에 올랐다. 1781년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영중추 부사가 되었다. 1786년에는 아들 우진이 숙종이 소론 윤선거의 문집을 파기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소론 조태구·유봉휘를 옹호한 것이 죄가 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당하였다. 아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죄로 그 역시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죽은 뒤 정조에 의하여 복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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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金尙喆)
최종수정일 :   2001-12-31 작성자 :   계몽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