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9월에 결성된 청년 운동 단체의 하나. 상하이 임시 정부의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을 중심으로 뭉친 청년단이 1945년 12월 국내로 돌아와, 당시의 모든 청년 운동 단체를 통합하여 대동 단결을 이룩한다는 명분으로 이 단체를 결성하였다.
광복 후 광복군을 이끌고 국내에 진주하려다 연합군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지청천은, 국내에 있던 오광선에게 지령하여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광복군 국내 지대를 조직하게 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청년 단체의 조직에 착수하였다. 이 때 통합에 호응한 단체는 32개로서, 같은 해 8월 서울 충무로에 있는 광청 회관에서 각 단체 대표자들이 서로 만나서 대동 청년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준비 위원회 임원으로는 위원장 지청천, 부위원장 이선근 등이 었고, 서울 운현궁에 임시 사무소를 두고 결성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각 단체의 해산을 전제로 하였으므로, 참가 단체들은 통합파와 통합 반대파로 나뉘어 심각한 갈등을 겪어야 하였다.
결성된 대동 청년단 은
지청천의 개인적인 인기와 더불어 막강한 조직을 갖추고, 반공 및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승만 노선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이승만은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또 하나의 통합 청년 운동 단체인
대한 청년단을 조직하게 되었다. 이에 대동 청년단도 대통령의 명령에 의하여
대한 청년당으로 통합,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