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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 (Russia文學) (ENCY011052)
요 약 : 러시아에 문자가 나타나기 이전부터만들어진 구비 문학에서 소련 붕괴 이후 현대 문학에 이르는러시아의 문학.
분 류 :
지식 : 어학 > 문학 [21232 자]
     

러시아에 문자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만들어진 구비 문학에서 소련 붕괴 이후 현대 문학에 이르는 러시아의 문학.

러시아의 문학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그 성격이 변해 왔다. 이를 시기에 따라 나누면, 러시아가 나라를 세운 이후부터 키예프 공국의 번영, 기타 여러 공국들의 활동, 몽고군과 타타르족의 침입에 이어 모스크바 공국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을 고대 및 중세 문학으로 분류하며, 러시아 문학이 서구 여러 나라의 영향 속에서 발전한 시기를 근대 문학 시기로 본다. 근대 문학 시기는, 다시 1917년 발생한 10월 혁명을 기준으로 17세기 말부터 1917년까지의 혁명 이전 문학과 1917년 이후부터 소련 붕괴에 이르는 혁명 이후 문학으로 나뉜다.

고대 및 중세 문학

동슬라브 최초의 국가로 기록되는 키예프 공국의 건국으로부터 표트르 대제가 왕위에 오르기 이전인 17세기 중엽까지의 문학을 이른다.

이 시기에는 동슬라브의 첫 번째 국가인 키예프 공국이 가장 먼저 세력을 얻어 주변의 도시들과 다른 민족들을 정복해 돈·드네프르·드네스트르·네만·서드비나·상볼가 등의 강을 경계로 하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한다. 이후 키예프 공국의 세력이 위세를 잃자 각 도시들은 각각의 공국으로 나누어져 그 도시가 세워지게 된 배경을 바탕삼아 번성한다. 갈리치아와 볼리니아 지방은 키예프와는 다른 민족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주로 농업을 기반으로 경제를 이끌어 나갔으며, 노브고로트· 리투아니아·블라디미르 공국 등은 몽고군이 침입할 때까지 각 지방을 차지하고 번성해 나갔다. 몽고족의 본격적인 침입은 1223년 갈리치아 ·볼리니아 군대 등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이 침입한 몽고군에 패배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시 이 지역은 여러 공국으로 뿔뿔이 흩어진 채 서로 대립하는 상태였는데, 몽고군은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교 상인들의 도움을 얻어 승승장구한다. 몽고군의 침입으로 시베리아의 터키계 원주민과 핀족·사모에드족· 몽고족 사이에 혼혈이 이루어져 타타르족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이 때문에 몽고군의 침입을 타타르인의 침입이라 하기도 한다. 몽골군의 침입은 러시아 최초의 공국 이전부터 발전 되어 온 문학의 흐름을 끊어 놓는 사건이었으며, 이후 모스크바 공국이 주변을 장악할 때까지 러시아 문학은 암흑기를 맞이한다. 고대 러시아 지역에는 문자로 기록한 문학 작품이 있기 훨씬 전부터 민간에서 입을 통해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구비 문학이 전해진다. 이들 구비 문학들은 고도로 발달한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표현과 비유는 이후의 기록 문학의 수준을 능가하는 것이었으며, 형식이나 예술적 가치에 있어서도 뛰어난 시적 문학성을 보여 준다. 영웅 서사시를 비롯하여 제사 의식에서 부르던 노래· 전설·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한 노래· 속담· 격언 등 종류도 다양한 구비 문학은 당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영웅 서사시 '빌리나'는 10세기경부터 키예프·노브고로트 공국과 갈리치아 지방에서 주로 지어졌는데, 뛰어난 리듬 감각과 절묘한 각운, 풍부한 비유 등으로 세계 서사시 가운데서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의 문자는 크리스트교와 함께 등장하였다. 988년 키예프 공국의 대공 블라디미르 1세는 그리스 정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문학을 통해 크리스트교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에 등장한 문학을, 특히 '키예프 시기 문학'이라 한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니 만큼 이 당시의 기록 문학은 성서를 번역하거나 종교와 관련된 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11~12세기의 문학도 대개 종교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1056~1057년에 만들어진 《오스트로미르 복음서》는 그리스어에서 번역한 것인데, 《아프라코스》 복음서를 필사한 것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 된 《신약 성서》이다. 《아프라코스》 복음서에는 교회 의식인 전례에서 낭독할 복음의 내용이 요일별로 배열되어 있다. 이 밖에도 1144년에는 4복음서 필사본으로는 가장 오래 되었다고 알려진 《갈리치아 복음서》가 나왔다.

그리스도교 교리와 관련된 번역서 이외에 연대기·성자전·로맨스 등 세속적인 문학 작품도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12세기에 꽃을 피운 연대기 창작은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을 수준 있는 문학 작품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112년경 키예프의 수도원 수사인 네스토르가 쓴 것으로 알려진 《연대기》(또는 《지난 세월의 이야기》)가 있다. 누가 쓴 것인지 밝혀지지 않은 《이고리 원정기》(1185~1187 ?)는 1185년 노브고로트-세베르스키의 이고리 공이 볼가강 과 돈강 유역을 차지하고 활동하는 폴로베츠족과 싸우다 결국 지고 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는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고리 원정기》는 명실 상부하게 키예프 시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밖에도 각종 설교문이 많이 쓰여졌고, 번역되어 들어온 비잔틴 양식의 성자전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키예프 시기 특유의 성자전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문학적인 발전도 12세기 초 키예프의 세력이 약해지자 함께 고개를 숙이고, 몽고족의 침입이 있은 후로는 이른바 지방문학의 시대가 시작된다. 몽고족의 침입이 가능하였던 이유도 통일 이전의 고대 러시아 지역이 많은 공국들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었기 때문인데, 이들 공국 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아 문학적으로도 다르게 성장해 온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작품들에는 공통적으로 침략자들에 대한 울분과 저항 정신이 그려졌으며, 대표적인 작품에 《바투 칸[汗]의 랴잔 함락 이야기》 《갈리치아 볼리니아 연대기》 《마마이의 패주》 등이 있다. 특히, 지방 문학이 활발하게 창작되어 갈리치아·볼리니아·노브고로트에서 쓰여진 작품이 잘 알려져 있다.

2세기 반에 걸친 암흑기가 끝난 1480년 마침내 러시아의 각 공국은 몽고족의 치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16~17세기의 모스크바 시대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문학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이후 러시아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은 모스크바 대공국이었는데, 이들이 실제로 러시아 전체를 통일한 것은 흔히 '뇌제(雷帝)'라고 불리는 이반 4세(재위 1533~1584) 때이다. 모스크바 대공국 은 15세기 초 왕권이 안정되자, 영토 확장과 주위 공국들을 정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대제 이반 3세(재위 1462~1505)를 비롯해 그 뒤를 이은 아들 바실리 3세(재위 1505~1533)와 대공비 옐레나에 이르는 기간 동안 모스크바 대공국은 군주 정치를 강화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 뒤로는 뇌제 이반 4세가 실권을 장악하기까지 혼란기를 겪는다. 뇌제 이반 4세는 러시아 통일의 기초 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왕으로서, 나중에는 폭군으로 변해 잘못된 정치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 시기 모스크바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쇠퇴하게 되며, 이후 2차례에 걸친 '가짜 드미트리' 사건과 폴란드의 침략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1613년 미하일 로마노프가 새로운 차르로 선출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문학은 그 역사적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뇌제 이반 4세가 이제까지 온갖 권력을 행사하던 대귀족 계층을 멀리하고 새로운 귀족 계층을 키우자, 대귀족과 이반 뇌제 사이에 불거지기 시작한 갈등, 농노제의 시행으로 자영농이 농노로 전락하는 등 농민들의 어려움, 폴란드의 침략으로 대표되는 외세의 위협 등이 모두 이 시기 문학 작품 속에 그려졌다. 한편, 모스크바 대공국 의 정치적·종교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문학 작품들도 이 시기에 쓰여졌는데, 대표적인 작품에는 《성자전 집성》(1552) 《대공 계보집》(1563) 등이 있다. 《성자전 집성》은 다방면에 걸친 내용을 담은 백과 사전적 저술이며, 《대공 계보집》은 고대 러시아 지역에 있던 공국의 대공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일생을 담고 있다. 이반 뇌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출간된 《가정훈》은 사회 전체적인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그 때 당시 사회적으로 요구되던 규범에 관해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며, 이 밖에 이반 뇌제와 쿠르브스키공(公)이 주고받은 편지글도 전해지는데, 이는 러시아 최초의 사회적·정치적인 평론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인정된다. 이 밖에도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이 시기에 인쇄술이 처음 들어와 1564년에 러시아 최초의 인쇄본인 《사도 행전》이 인쇄되어 나왔다는 사실이다. 모스크바 대공국 시기에는 이러한 종교적이고 격식을 갖춘 문학 이외에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의 문학도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1584년 이반 뇌제의 죽음 이후 사회가 혼란에 빠져 들면서 대귀족과 농민들의 투쟁 이 거세어졌고, 그 과정에서 평민 신분의 작가들이 등장해 세속적이고 사실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러시아 내부에서 일어난 세속 문학은 유럽으로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세속 문학과 만나 한층 더 발전한다.

세속 문학은 이제까지 주로 발표되었던 종교적이고 엄숙한 문학과는 전혀 다르게 익살스럽고 유쾌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작품으로는 《프롤 스코베예프 이야기》《카르프 수툴로프 이야기》가 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는 혼란기에는 교회도 어지러워져 개혁파와 비개혁파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아바쿰 페트로비치 주교의 《자전》(1672~1675)은 이러한 교회의 분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뛰어난 구어체 문장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표현해 문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근대 문학

러시아의 사회적·정치적·제도적 개혁을 이룬 표트르 1세(재위 1682~1725) 통치 시기부터 예카테리나 여제(재위 1762~1796)에 이르는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말까지의 문학이 러시아 문학의 근대에 해당한다.

표트르 대제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러시아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서유럽의 자유 분방한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였던 표트르 대제는 왕위에 오르자, 러시아를 그처럼 활기차고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표트르 대제 시대에 모스크바 공국러시아 제국으로 거듭났으며, 대제 자신은 스웨덴과의 강화 조약 체결 때 원로원으로부터 황제의 칭호를 받았고 대제라 불리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 여러 가지 제도를 고쳤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행정, 제도의 개혁이었다. 달라진 행정, 제도에서는 모든 공무원이 맡겨진 일을 해결하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채용되고 승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 개혁은 획기적인 것이었는데,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셈이었다. 이 외에도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사람들을 구분짓는 신분 제도를 더욱 확고히 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귀족들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하였고,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 온 농노들을 영주의 개인 재산처럼 만들어 결코 농노의 신분 에서 벗어날 수 없게끔 하였다.

이 밖에도 표트르 대제 는 영토를 북쪽으로 핀란드만과 발트해 연안까지, 남쪽으로 카스피해 연안까지 넓히는 공을 세웠다. 1725년 표트르 대제의 죽음으로 러시아는 혼란에 빠진다. 1762년 예카테리나 여제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러시아는 왕위 계승 문제와 권력 다툼에 휘말린다.

독일 군주의 딸로서 표트르 3세의 아내가 된 예카테리나는 남편을 밀어 내고 왕위에 올랐다. 예카테리나 여제 역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넓혔으며, 이에 따라 농노제도 폭넓게 실시되었다. 이러한 농노제의 확대는 그 일대 농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가난과 지나친 노동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킨다. 1773~1774년 카자크인 예멜리얀 푸가초프가 앞장서 일으킨 이 반란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나, 결국 정부군의 진압 활동에 의해 수그러들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표트르 대제가 실시한 정책들을 거의 그대로 시행하였으며, 법전의 개정 작업과 교육 개혁 등을 부분적으로 실시해, 러시아 국민들의 수준을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근대화 가 이루어지던 시기에 러시아 문학은 고전주의와 감상주의 의 시대를 맞았다. 이러한 문학적인 변화의 물결은 정치적·사회적으로 진행된 급속한 근대화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적지 않다. 러시아에 기록 문학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문자로 쓰인 교회 슬라브어를 버리고 일반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 사용해 온 러시아어로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를 위해 새로운 알파벳을 만들었다. 특수한 교육을 받지 않고도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언어로 작품을 쓰게 되자, 문학은 귀족이나 성직자들만의 것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것이 되었으니, 이것도 근대화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처음 등장한 문학은 고전주의 문학이다. 러시아의 고전주의는 서구 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으며, 반대로 러시아 문학의 서구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렇게 서구의 양식 을 받아들인 러시아 문학은, 그 후로 계속 서구 문학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 나가게 된다.

러시아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안티오흐 드미트리예비치 칸테미르·바실리 키릴로비치 트레디아코프스키,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로모노소프·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수마로코프 등을 들 수 있다. 칸테미르는 연애시와 풍자시로 유명한데, 러시아 풍자 문학의 시조로 존경을 받기도 한다.

트레디아코프스키는 러시아어 학자이자 러시아 최초의 연애 문학 작품 번역자로서 '3 문체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3 문체론'에서 러시아어를 고문체·중문체·저문체로 나누고 각 문체마다 그에 어울리는 문학 분야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였다.

1747년 러시아 최초의 비극인 《호레프》를 쓴 수마로코프는 연애시·전원시 등 여러 분야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여러 편의 비극과 희극 작품을 남겼는데, 특기할 만한 일은 그의 희비극 작품들이 모두 귀족들에게 도덕성을 길러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로모노소프는 시인인 동시에 문학자였는데, 그는 러시아어의 우수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문학 작품 창작에 사용되는 러시아어의 틀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 밖에도 서사시 《로시야다》(1799) 《부활한 블라디미르》(1785)를 쓴 미하일 마트베예비치 헤라스코프가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 절대적인 권력자가 없어 혼란을 거듭하던 러시아 제국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등장으로 정치적·제도적 전성기를 맞았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발전하게 된다. 작가들은 점차 러시아 사람들의 실생활을 관찰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문학 속에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서구 문학 이 들어옴에 따라 많은 번역서와 모방 작품들이 출간되어 온 이제까지와는 달리, 러시아 특유의 주제를 찾는 일이 작가들 사이에서 활기를 띤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준 사건은 가난한 농노들이 지배 계층에 대해 반기를 들고 일어난 푸가초프의 반란이었다. 숨죽이고 살던 농노 들이 일제히 일어나 자신들의 어려움을 호소한 푸가초프의 반란으로 사람들은 귀족이 아닌 서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이로써 쉽고 현실적인 주제의 문학 작품이 등장하자 일반 사람들도 문학을 가까이 대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일반 사람들은 독자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문학 활동에 활발히 참여한다. 이 밖에 전제 군주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작품도 등장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트레디아코프스키의 《틸레마히다》와 수마로코프의 비극 작품들이 있다.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데르자빈을 들 수 있으며, 극작가로는 데니스 이바노비치 폰비진이 활동하였고,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노비코프는 풍자 잡지 발행인으로 유명하였다.

폰비진의 작품으로는 《여우와 훈계》(1762) 《여단장》(1783) 《미성년》(1783)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한편, 문학이 일반에게 친숙해지자 미하일 드미트리예비치 출코프와 같은 낮은 계층 출신의 작가가 등장해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다.

러시아 고전주의는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에 크게 꽃피었으나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점차 외면당하기 시작하였고, 그 자리를 감상주의가 대신 차지한다.

감상주의는 엄숙하고 딱딱한 고전주의에 반대해 개인의 감정과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학 흐름으로서,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프랑스 혁명은 러시아에 시민 중심의 자유 사상을 퍼뜨렸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곧 문학에 변화를 가져온다.

감상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가브릴라 로마노비치 데르자빈,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라디시체프,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카람진이 있다. 특히, 카람진은 알렉산드르 1세 시대의 작가로서 감상주의를 주도해 나갔던 인물인데, 그는 이해하기 쉬운 러시아어를 작품에 사용하였으며, 작품의 줄거리도 황제나 그 주변의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카람진 문학의 주제는 1792년 발표된 《가련한 리자》에 잘 드러나는데,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우아한 문장을 사용해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이 밖에도 데르자빈은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시를 지었는데, 《폭포》 《공작》 《즈반카의 생활》 등을 대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19세기 문학

19세기부터 러시아의 전제 왕권이 무너지기까지 약 1세기 동안 러시아는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전쟁을 벌여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농노 제도를 없애 농노를 해방시키고, 지방에 자치적인 의회 제도를 만드는 등 근대화를 이룩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뒤떨어진 농업 정책 때문에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으며, 능력 없는 관리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정치를 혼란에 빠뜨렸고, 황제도 강력한 전제 정치를 계속해 러시아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러시아의 19세기는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풍요로운 국민 생활을 꿈꾸었던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1825)도 패배를 모르던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자, 이에 맞서 군대 를 일으켰다. 혹독한 기후와 군수 물자의 부족 등으로 나폴레옹 군대가 원정에 실패하자, 러시아는 이른바 세계적인 군사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왕이 전쟁에 여념이 없는 사이에도 러시아 내에서는 오랫동안 문젯거리가 되어 온 농노 제도가 더욱 굳건히 유지되면서, 낮은 계층 국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렵게 되어 갔다.

알렉산드르 1세의 뒤를 이른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는 개혁 세력에 대한 경계가 지나쳐, 매우 강압적인 전제 정치를 고수한다. 나라 안의 어려운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주변 여러 나라들을 항복시키며 영토를 넓혀 가던 러시아는 크림 전쟁에서 지게 되자,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니콜라이 1세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2세(재위 1855~1881)는 드디어 농노제를 없애고 농노를 해방시켰으며, 지방에 시민이 뽑는 의회 제도를 실시하는 등 러시아의 뒤떨어진 제도를 고쳐 나갔다. 그러나 그도 군사· 공업 등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 때문에 농업의 현대화는 이루지 못하였고, 농민들은 여전히 가난하였다. 알렉산드르 3세(재위 1881~1894) 때 러시아는 다시 강력한 전제 정치 속에 억압당하지만, 이러한 억압 속에서도 개혁의 의지 는 크게 자라나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많은 국민들이 정치 에 관심을 가지고 개혁을 꿈꾼다.

19세기 러시아는 소수 선택받은 계층을 제외한 국민 전체의 교육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교육 수준도 크게 뒤떨어진 상태였지만, 문학에 있어서는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다.

19세기 초 러시아의 문학은 유럽에서 흘러들어온 낭만주의로 시작된다. 작가 주코프스키바튜슈코프는 서구의 낭만주의를 러시아에 선보였으며, 이로부터 진실한 사랑과 우정·환상·영원한 진리 등을 주제로 하는 낭만주의 문학이 활발하게 쓰여졌다. 번역되어 소개된 유럽 여러 나라의 낭만주의 문학도 러시아 낭만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산파 노릇을 하였던 유명한 시인 바실리 주코프스키는 스스로도 뛰어난 낭만주의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는데, 그는 훗날 푸슈킨의 문학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주코프스키가 즐겨 다룬 주제는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사랑과 이별의 슬픔 등이다. 이 밖에도 시인인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바튜슈코프가 낭만주의 시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도 낭만주의 작가들로 한몫을 하였다.

릴레프·큐헬리베케르·오도예프스키 등 이른바 데카브리스트는 교육의 혜택을 받은 지식인 젊은이들로서, 러시아 개혁의 필요성을 깊이 느껴 알렉산드르 1세가 다스리던 시기에 반란을 꾀하였던 사람들이다.

한편, 시간이 지나자 낭만주의사실주의로 옮겨 간다. 농민과 도시 하급 노동자들의 가난, 강압적인 전제 정치,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한 나라 전체의 혼란 등에 시달리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는 낭만주의 문학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실주의 문학의 싹을 틔운다. 현실 속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숨김없이 드러내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구하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권력자들에게 알리는 도구로서 문학의 책임감이 커진 것이다. 이로써 노예와 같은 처지에서 핍박받는 농노들의 비참한 생활이 문학에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 도시 하층민들의 어려움도 문학의 커다란 주제로 나서게 되었다.

사실주의의 선구자로는 이반 안드로예비치 크릴로프그리보예도프를 들 수 있다. 특히, 크릴로프는 푸슈킨이 등장하기 전까지 러시아 문학사상 가치가 높은 우화 작품을 여러 편 발표하였으며, 그리보예도프는 극작가로 활동하였다.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꽃피운 사람으로는 단연 푸슈킨고골리를 들 수 있다. 푸슈킨은 19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실주의 문학 작품을 여러 편 발표하면서, 그의 뒤를 이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간과 사회 각 방면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두루 다루었으며, 시 창작에 있어서의 기교도 뛰어났다.

푸슈킨의 초기 작품으로는 《예브게니 오네긴》(1823~1831)이 있으며, 옛날 이야기에서 소재를 구한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1820) 《폴타바》 《청동 의 기사》,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 산문 《벨킨 이야기》 《대위의 딸》 등과 수많은 서정시를 남겼다. 미하일 레르몬토프 는 푸슈킨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낭만주의 시인으로서 100여 편의 서정시 외에 서사시· 소설 등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서사시 《므치리》(1840) 《악마》(1829)와 소설 《현대의 영웅》(1840)을 들 수 있다.

푸슈킨과 레르몬토프 이후에는 산문 창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시기 산문 작가로는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자고스킨,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베스투제프, 니콜라이 고골리 등이 있다.

푸슈킨에 이어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완성한 작가 고골리의 문학은 사회 악을 뿌리뽑고 희망찬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바람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그는 자신의 글을 읽은 러시아 국민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랐다.

고골리는 뛰어난 풍자와 유머 감각을 동원해 《검찰관》 《죽은 넋》(1842) 《외투》(1842) 등 수많은 걸작을 발표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하급 관리의 모습을 그린 《외투》는 이후 발표되는 문학 작품들에 큰 영향을 미쳐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죄와 벌》(1866)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79~1880) 《악령》(1871~1872) 등 걸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고골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이다. 혁명을 꿈꾸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혁명에 실패하고 체포 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추방되는 등,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은 후 뒤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극적인 줄거리와 인간 감정에 대한 세심한 묘사, 혁명에 가담한 교육받은 지식인으로서 갖추고 있는 정신의 깊이를 무기로, 사실주의 문학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은 농촌의 농민과 도시의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 당시 유행하던 문학적인 주제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같은 주제를 그린 작품으로 그리고로비치의 《마을》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연대별로 살펴보면, 1840년대는 개화기라고 할 수 있다. 1840년대는 이전 어느 왕에 못지 않게 억압적인 전제 정치를 행한 니콜라이 1세 시대로서, 특히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주의 문학이 이루어 낸 성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농노 제도를 없앨 것을 요구해, 결국 1861년 농노 해방 을 이루어 낸다.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도스토예프스키 · 톨스토이 등 1840년대에 등장한 위대한 작가들도 러시아 농민의 처참한 생활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을 발표하는데, 이는 1840년대 문학의 커다란 흐름이었다.

한편, 슬라브파와 서구파로 패가 나뉜 지식인들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도 이 시기였다. 과거를 동경한 슬라브파는 모스크바 시대를 모범으로 삼아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 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였고, 서구 근대화를 추구한 서구파는 적극적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러시아 제국을 부강하게 만들자는 주장을 하였다.

문학 비평에 있어서는 벨린스키가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는 푸슈킨· 레르몬토프· 고골리 의 작품들이 러시아 문학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연구해 사실주의 문학 이론을 세웠으며, 새로운 작가를 길러 내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벨린스키 외에 게르첸도 철학과 정치 평론 분야에서 업적을 세운다. 그는 문학 작품도 발표하였는데, 대표작으로 소설 《누구의 죄인가》(1847) 《과거와 사상》(1852~1868)이 있다. 1850년대는 1840년대의 큰 흐름이 계속 이어진 때이다.

이 시기는 톨스토이투르게네프의 등장으로 더욱 빛이 났는데, 톨스토이의 처녀작 《유년 시대》는 소년 특유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톨스토이는 이후 《전쟁과 평화》(1865~1869) 《안나 카레리나》(1875~1877) 《부활》(1899) 등 대작을 발표한다.

1850년대의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농노제에 반대하는 줄거리의 《사냥꾼의 수기》(1852)로 실력을 인정받은 후, 계속해서 《루진》 《전야》 《아버지와 아들》 《연기》(1867) 《처녀지》(1877) 등의 걸작을 발표하지만,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이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개혁을 꾀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따돌림을 당하였다.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는 그의 대표작 《오블로모프》(1859)에서 게으른 주인공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러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뿌리깊은 단점을 냉정하게 이야기하였다.

이 외에도 알렉세이 피셈스키는 지방 관리의 이야기인 《천(千)의 혼》(1858)을 발표하였으며, 미하일 살티코프는 《골로블료프 일가》(1876)에서 쓸모 없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렸다.

19세기에는 극문학 창작도 활발하였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1822~1824)은 러시아 최초의 희곡으로 기록되었으며,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오스트로프스키의 《파산》(1850) 《뇌우》(1860) 《가난은 죄가 아니다》도 희곡사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특히, 오스트로프스키는 러시아 국민극을 개척한 작가로 50여 편의 희곡 작품을 남겼다.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장편 소설들이 잇따라 발표되는 와중에 우수한 단편 소설들이 발표된다. 작가 프세볼로트 가르신은 《4일간》 《붉은 꽃》(1883) 등의 단편 소설을 썼다.

단편 소설 작가이면서 희곡 작가이기도 한 안톤 체호프는 20년이라는 창작 생활을 통해, 《대초원》(1888) 《지루한 이야기》(1889) 등 1,000여 편의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남겼으며, 희곡으로는 《갈매기》(1896) 《바냐 아저씨》(1897)를 비롯해 《세자매》(1901) 《벚꽃 동산》(1903~1904) 등 4대 희곡을 발표하였다.

20세기 초의 문학

1904~1905년에 일어난 러·일 전쟁에서 크게 패한 러시아는 이후 나라 안팎으로 어려움에 시달리다, 결국 니콜라이 2세(재위 1894~1917)를 마지막으로 전제 정치를 끝맺게 된다.

니콜라이 2세는 무너져 가는 왕국을 지키기 위해 의회를 여는 등 노력을 기울이지만, 오랜 역사의 전제 정치는 수그러질 줄 모르고 노동자· 농민 들의 불만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와 의회 상임 위원회의 요구로, 마침내 니콜라이 2세는 차르의 지위를 포기하고 스스로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가 되었다.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차르가 없어진 러시아에는 임시 정부가 들어서 시대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려 하였지만, 국민 생활 수준은 손댈 수 없을 만큼 무너져 있었고, 분노한 농민 · 노동자·병사 등의 요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노동자들의 가난과 절망을 함께하려 하였던 작가들의 노력이 이렇듯 허사로 돌아가자, 문학 창작은 점차 활기를 잃게 되었지만,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해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맞게 된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작가를 대표하는 막심 고리키는 초기 작품인 《체르카시》(1895)에서 부랑자들의 생활을 그렸으며, 《바다제비의 노래》 《포마고른제프》, 밑바닥 인생을 그린 희곡 《밑바닥에서》, 러시아 노동자들의 혁명 운동을 주제로 한 《어머니》 등을 썼다.

고리키 외에 치리코프·베레사예프·쿠프린 등이 비슷한 주제를 작품 속에서 다루었다.

1890년대에는 개인주의적인 사조도 발달하고 있었는데, 이는 19세기 말 상징주의 운동의 영향이 컸다. 러시아의 상징주의도 결국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서구 작품을 모방하는 수준이었으나, 1900년경부터는 순수한 러시아 상징주의로 자리잡아 10월 혁명 때까지 문학 작품 창작을 이끌었다.

상징주의의 등장으로 그간 뒤로 물러나 있던 시 작품 창작이 활발해졌다.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솔로비요프는 이러한 시의 부활을 이끌어 낸 작가로 유명하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블로크 ·표도르 솔로구프·안드레이 벨리는 대표적인 상징주의 시인들이다.

상징주의가 이 시기 문학계를 뒤덮자, 이에 대해 반기를 드는 작가들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시인 니콜라이 스테파노비치 구밀료프가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현실에 뿌리박은 사실적인 문학,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는 문학을 추구하였다. 이것이 상징주의에 대립되는 아크메이즘 시 운동이다.

20세기에는 문학을 얽어매는 갖가지 형식을 버리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이용해 창작을 하는 미래파도 출현한다. 미래파 시인으로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가 있다. 이러한 상징파·미래파 시인들 외에 10월 혁명 전까지 러시아 문학계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사람으로는 염세주의의 안드레예프, 냉소주의의 아흐츠이바세프·부닌, 사실주의 문학의 자이체프· 톨스토이 등이 있다.

10월 혁명 후부터 소련 붕괴까지의 문학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임시 정부가 들어선 이래 소련 연방이 해체되기까지 러시아 문학은 정치적인 흐름과 그 운명을 함께한다. 레닌에서 스탈린,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이 된 고르바초프 등 최고 권력을 쥔 사람들의 정책 결정에 따라 혹독한 감시의 암흑기와 약간의 자유가 허락되는 해빙기가 반복된다.

19세기 말 러시아 정치판에는 사회주의 건설을 희망하는 정치 세력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공업의 발달과 노동자 계급의 성장에 러시아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본 세력이 사회 민주당이다. 그들은 안으로 또다시 여러 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레닌의 볼셰비키가 그 중 하나이고, 멘셰비키 외에 다른 여러 집단이 참가하고 있었다.

임시 정부가 민중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으로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는 등 러시아 의 상황은 갈수록 험악해진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잘 이용하였던 볼셰비키의 레닌은 임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정부 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

농민·도시 노동자· 군인 가릴 것 없이 당시 러시아 국민들의 경제적인 불만은 절정에 달해 있었고 폭동으로 번지기 직전이었는데, 실제로 공장 에서는 파업이 일어났고 농민들은 부잣집을 도둑질하는 등 행동으로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레닌은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로써 러시아는 짧은 임시 정부 기간을 거쳐 사회주의 소비에트 정부 시대로 들어갔다.

레닌은 사유 재산제 폐지· 토지 개혁 · 계급 특권 폐지· 은행 국유화 등 사회주의 정책을 세워 실시하였으나, 1918년 5월 내전이 일어나자 중단되었고, 소련에는 공산당 1당 독재가 들어서게 된다. 이 때부터 1921년까지의 전시 공산주의 시기 동안 러시아는 내전과 급속한 공산주의화 과정을 겪었으며, 그 가운데에서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어려워져 여기저기서 파업이 일어났다. 이에 레닌은 ' 신경제 정책'이라는 대책을 내놓는다. ' 신경제 정책'이란 전시 공산주의 기간 동안 실시하였던 급속한 공산주의화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이로써 화폐 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일부 공업도 개인이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10월 혁명으로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옛 러시아 제국에서 활동하던 많은 작가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였지만, 남아 있는 작가들은 계속해서 창작 활동을 했다. 걸작 서사시 《십이(十二)》(1918)를 발표한 불로크와 구밀료프가 그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같은 민족끼리 싸워야 하였던 내전의 참혹함은 문학에도 영향을 미쳐, 이사크 엠마누일로비치 바벨이 《기병대》(1926)를 썼으며,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파데예프는 《궤멸》(1927)을 발표한다. 이 밖에도 마린엔코프·에세닌· 마야코프스키·흘레브니코프· 파스테르나크 등도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

신경제 정책이 가져다 준 자유는 10월 혁명 후 강압적인 공산화 과정에서 활기를 잃어 가던 문학 부문에 새로운 활기를 몰고 왔다. 이 당시 작가들은 나름대로의 사상과 신념에 따라 여러 문학 단체들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은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고 권력을 잡는다. 스탈린은 강력한 공산주의화 정책을 다시 실시해, 신경제 정책 기간 중에 국민들에게 돌려주었던 일부 공업 부분을 다시 국가 소유로 빼앗았고, 농민들에게서는 땅을 빼앗은 후 집단 농장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밖에도 국민 생활의 모든 부분을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정책을 실시해, 예술과 학문도 공산당의 목적에 맞을 때만 인정하였다.

스탈린 통치 기간에 벌어진 제2차 세계 대전 은 소련을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었다. 극적으로 독일에게 승리한 소련은 승전국으로서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인정받았지만, 반복되는 전쟁 으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궁핍해져 갔다. 스탈린의 극단적인 공업화 정책은 생활 필수품의 생산을 마비시켰고, 집단 농장에서의 생산은 보잘것 없어 식량난이 그칠 줄 몰랐다.

이 시기에 뚜렷한 활동을 한 작가들로 '동반 작가'가 있다. 이들이 추구한 문학을 '동반자 문학'이라 하는데, 세라피온 형제를 비롯해 자먀틴·바벨리·필리냐크·레오노프·페딘·조시첸코 등이 참가해 활동하면서, 각 개인들의 운명과 감정을 중요하게 다룬 개성이 강한 작품을 내놓았다. 한편, 공산당의 요구에 맞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소설도 발전을 보았다.

이 무렵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소설로는 푸르마노프의 《차파에프》, 세라피모비치의 《철(鐵)의 흐름》, 페진의 《도시와 해》, 글라트코프의 《시멘트》 등이 있다.

스탈린 의 강력한 통제로 추진될 수 있었던 1928년의 제1차 5개년 계획 실시는 문학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국가 소유로 국가만이 경영할 수 있도록 한 공장, 모든 농토의 집단 농장화는 이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소재로 삼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탄생시킨다. 이 때의 작품으로는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1928~1940), 톨스토이의 《고뇌 속을 가다》(1920~1940) 등이 있다.

한편, 문학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무궁 무진함을 깨달은 공산당이 문학에 직접 통제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다. 공산당은 제각각 흩어져 있던 문학 단체들을 하나로 합쳐 1934년 '소련 작가 동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 아래서만 창작할 수 있음을 선포하였다. 이후 각각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노골화되었으며, 때마침 불어 닥친 대대적인 숙청의 회오리는 창작 활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국민의 생활을 궁지에 몰아넣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제2차 세계 대전 시기는 문학 분야로서는 오랜 가뭄 끝의 단비 와도 같은 기간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스탈린의 억압 정치가 조금 누그러졌고, 이는 작가들의 창작 욕구를 키워 주었다. 이로써 소련 문학계는 약하나마 창작의 분위기를 맞는다.

전쟁 중에는 애국심과 나치즘에 반대하는 전쟁 문학이 주로 발표되었는데, 시모노프·바실레프스카야·트바르도프스키 등 신인 작가들도 다수 등장하였다. 직접 전쟁에 참가하였던 파데예프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난 《젊은 근위대》(1945)를 발표하였으며, 에렌부르크 도 장편 소설 《파리 함락》을 비롯해 나치즘을 공격하는 글을 썼다. 그 밖에 바실레프스카야의 《무지개》, 고르바토프의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 시모노프의 《낮과 밤》 등은 이 무렵에 나온 대표적인 전쟁 소설이다. 전쟁 시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사코프스키의 서정시를 비롯하여 숄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 알렉산드르 트리포노비치 트바르도프스키의 《바실리 툐르킨》(1941~1945) 등이 있다.

스탈린이 죽은 후 스탈린과 그의 정책들을 비판하며 등장한 지도자는 공산당 제1 서기 출신의 니키타 흐루시초프였다. 흐루시초프는 동·서 간 냉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며, 극단적인 공업화 때문에 굶고 있는 국민들을 구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으나, 안팎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렸다.

스탈린 시대의 스탈린 개인 숭배가 엄청났던 만큼, 그가 죽은 후 흐루시초프의 주도 로 이루어진 격하 운동도 격렬하게 불붙었다.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대규모 시위로 스탈린 시대를 비판하였다. 한편, 스탈린을 부정하는 분위기를 이끌어 내어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하였던 흐루시초프는 예상하였던 것보다 훨씬 거칠게 행동하는 국민들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지위를 위협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흐루시초프가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난 후에는 브레주네프 정권이 들어섰다. 브레주네프 는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스탈린 시대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주었다. 다시금 집단 속의 개인을 강요하였으며, 정부의 의도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억압하였다. 외교적으로도 소련의 영향력이 강하였던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군대를 보내 간섭하는 등 강력하게 통제를 가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경제를 살리고자 미국 및 서유럽 나라들과는 화해를 원해 구체적인 외교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유리 안드로포프콘스탄틴 체르넨코의 시대에 소련 국민들은 더욱더 가난해졌다. 농업 생산이 좋지 않아 식량난은 더 심해졌고, 외국인, 특히 유대인 에 대한 차별 대우도 극에 달하였다.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오른 후에야 소련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페레스트로이카란 한마디로 개혁을 뜻하는데, 특히 경제 면과 제도 면에서의 개혁이 중시되었으며, 글라스노스트란 소련 사회의 개방화를 말한다.

고르바초프 정부는 개인 재산을 인정해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 동안 외국으로 추방당하거나 강제 수용소로 보내진 정치범들을 풀어 주었고 동유럽 위성 국가에 주둔해 있던 소련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으로도 뿌리깊은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할 수는 없었으며, 오히려 국민들의 자유를 향한 갈증만 더욱더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한 예로 소련 연방을 이루고 있는 여러 민족들이 각기 자주 독립을 외치고 나선 것이다.

각 공화국들의 잇따른 독립 선언과 독립 국가 연합 결성 등으로 마침내 소련 연방은 해체를 맞는다.

1953년 스탈린의 죽음은 문학 부문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소련 전체에 자유의 기운이 퍼져 스탈린 통치 기간 내내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없었던 작가들의 숨통을 틔웠다. 물론 이러한 자유의 분위기가 스탈린 죽음 이후의 소련에서 계속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문학은 이러한 정치적인 변화 속에서 함께 변화해 나갔다.

에렌부르크의 《해빙》은 스탈린이 죽고 자유의 물결이 충만하던 시기에 발표되었다. 《해빙》을 시작으로 소련에는 지금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잇따라 출간되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소련에서 출판이 금지되자 이탈리아 에서 출간되어,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뽑혀 화제가 되었다. 한편, 파스테르나크는 쏟아지는 비난과 압력에 밀려 수상 을 거절할 수밖에 없어 또 한번 화제에 올랐다.

파스테르나크 와 같은 운명에 처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이 시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솔제니친은 스탈린 이 통치하던 때 많은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에 끌려와 모진 고생을 하였던 일들을 자세하게 묘사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로 자신의 실력을 드러냈다.

솔제니친은 첫 작품에 대한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창작 활동을 하였는데, 《크레체토프역에서 생긴 일》(1963) 《암병동》(1968) 등을 잇따라 발표해, 이른바 반소 작가로 낙인 찍힌다. 그의 후기 소설들은 대부분 소련 안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고, 결정적으로 강제 노동 수용소의 내막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를 외국에서 출판함으로써, 1974년 국외로 추방당하였다.

스탈린 죽음 이후 새롭게 등장한 젊은 작가들도 파스테르나크 나 솔제니친과 비슷한 고난을 겪어야 하였다.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으로는 블리디미르 보이노비치의 《이반 촌킨 일등병의 삶과 기이한 모험》(1975), 게오르기 니콜라예비치 블라디모프의 《충실한 루슬란》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바실리 벨로프·표도르 아브라모프·발렌틴 라스푸틴 등의 농촌 작가들이 뚜렷한 활약을 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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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 (Russia文學)
최종수정일 :   2016-01-06 작성자 :   X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