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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朴趾源) (ENCY015581)
요 약 : [1737 ~ 1805] 조선 정조 때의 문인, 학자. 그는 그의 저서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문물 제도와 생활 풍습을 소개하고, 조선의 뒤떨어진 문물 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또 벼슬아치와 양반들의 생활을 폭로, 풍자한 소설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을 지어 세태를 비평하기도 하였다.
분 류 :
인물 : 인물 > 한국 [853 자]
     

[1737 ~ 1805] 조선 정조 때의 문인, 학자. 호는 연암(燕巖)이다.

16세 때 처음으로 처삼촌에게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20대에는 뛰어난 글재주를 보이기 시작했다.

1768년 서울의 백탑(白塔:지금의 파고다 공원) 부근으로 이사했다. 주변에 이덕무(李德懋)·이서구(李書九)·서상수(徐常修)·유금(柳琴)·유득공(柳得恭) 등도 모여 살았고, 박제가(朴齊家)·이희경(李喜慶) 등도 그의 집에 자주 출입했다. 당시 그를 중심으로 한 '연암 그룹'이 형성되어 많은 신진기예의 청년 인재들이 그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고, 새로운 문풍(文風)·학풍(學風)을 이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북학파실학(北學派實學)이었다.

문학에서는 당시 이덕무·유득공·이서구·박제가가 4대시가(四大詩家)로 일컬어졌는데 모두 박지원의 제자들이었으며, 이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얼 출신이었다.

1780년에 친족 형 박명원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함께 청나라의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그 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열하일기》로 엮었다.

그는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문물 제도와 생활 풍습을 소개하고, 조선의 뒤떨어진 문물 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또 벼슬아치와 양반들의 생활을 폭로, 풍자한 소설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을 지어 세태를 비평하기도 하였다.

50세에 처음으로 벼슬길에 올라 몇몇 관직을 거쳤고, 늘그막에 《과농소초》라는 농업 연구서를 지어 정조에게 바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이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으며, 세상을 떠난 뒤에 정경대부라는 벼슬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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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朴趾源)
최종수정일 :   2017-01-02 작성자 :   X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