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전 음악과 대중 음악을 통틀어 이르는 말. 넓은 의미로는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의 음악, 유럽으로부터 이주해 온 북아메리카의 앵글로색슨계 민족과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라틴계 민족의 고전 음악, 스피리추얼· 재즈 등을 포함한다.
미국의 고전 음악
미국 고전 음악의 역사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즉, 1620~1820년의 유럽 음악을 옮겨 온 시대, 1821~1919년의 고전주의 음악의 이상을 추구하던 시대, 1920년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새로운 고전 음악 시대이다.
17세기에 최초로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많은 음악을 함께 가지고 들어왔다. 18세기 전반에는 신앙 부흥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때 찬송가가 대중화되었으며, 그에 따라 음악 학교가 생겨나게 되었다. 음악 학교는 음악 연주· 작곡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다.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학교는 1784년에 프랑스 파리에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19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의 음악 학교를 본뜬 것이 미국과 유럽에 생겨나게 되었다.
미국의 음악 학교에서는 반직업적인 작곡가를 길러 냈는데, 대표적인 사람으로 W. 빌링스를 들 수 있다. 남부 식민지에서는 1735년에 발라드 오페라 《플로라》가 공연되었다. 발라드 오페라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유행한 서민적인 음악극으로 오페라 형식을 빌렸으며, 곡은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나 아리아를 사용하였다. 또 남부 식민지 에서는 유럽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이 점점 늘어났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1842년에 미국 최초의 교향악단인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이 생겨났다. 이것은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교향악단 의 위치에 있으며, 밝고 화려한 음빛깔과 풍부한 음량, 일사 분란한 완벽한 협주가 자랑거리이다.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은 1928년에 이르러서야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말러(1860~1911), 러시아 태생으로서 러시아 혁명 후 미국에 망명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1882~1971), 이탈리아의 지휘자 토스카니니(1867~1957), 폴란드 태생의 미국의 지휘자 로진스키(1894~1958), 그리스 태생의 지휘자로서 미국에 귀화한 미트로폴로스(1896~1960), 미국의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번스타인(1918~1990), 프랑스 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불레즈(1925~)와 같은 역사적인 대가들이 상임 지휘자를 지냈다.
1881년에는 H.L. 히긴슨이 보스턴 교향악단을 창설하였다. 이 교향악단에서는 G. 헨셸, 헝가리 태생의 독일의 지휘자인 A. 니키슈(1855~1922), C. 무크, 프랑스의 지휘자인 Q. 몽퇴(1875~1964) 등이 상임 지휘자를 지냈으며, 그 뒤를 이은 러시아 태생의 미국의 지휘자 S. 쿠세비츠키(1874~1951), 20세기 프랑스 의 대표적인 지휘자 C. 뮌슈(1891~1968)와 같은 명지휘자들에 의하여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발전하였다.
한편, 미국 고전 음악의 교육 기관으로는 1865년에 오벌린 음악원이 설립되고, 1867년에 뉴잉글랜드 음악원이 설립되었다. 이러한 음악 학교가 탄생함으로써 다음 시대의 음악 발전에 큰 터전이 되었다.
19세기 미국 고전 음악의 작곡 분야는 유럽의 음악을 모방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L.M. 고트쇼크는 미국 음악사상 최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그러나 작곡가로서 그가 남긴 작품은 소품에 불과하다. 그 후 소박한 선율을 토대로 한 민속풍 노래에 뛰어났던 S.C. 포스터(1826~1864)는 미국 최초의 국민적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가사를 직접 썼으며, 흑인 방언도 썼다. 1948년에는 《오, 수재너》를 출판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또 포스터는 미국 남부에서 19세기 중기부터 20세기 초기에 유행한 대중적인 쇼인 민스트럴 쇼와 손잡고 작사와 작곡 활동을 하였다. 그가 남긴 200여 가곡 가운데에는 《아름다운 꿈》 《올드 블랙 조》 《고향 사람들》 《플로리다주의 노래》 《켄터키 옛집》 《켄터키주의 노래》 《금발의 제니》 등이 있다.
19세기 중엽에는 유럽의 국민악파의 자극을 받아 미국의 국민성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국민악파는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에 걸쳐, 주로 유럽 음악의 주류를 이루지 못하였던 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난 국민주의 음악 이다. 특히 동유럽· 북유럽과 러시아 등 음악이 많이 발달하지 못한 지역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는데, 작품에는 전통적인 작곡법을 지키면서도 그 속에 교묘히 민족 음악 고유의 선율과 리듬을 곁들이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함으로써 애국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많다. 19세기 말에는 A.W. 푸트, G.W. 채드윅, H.W. 파커 등이 독일 낭만주의를 따랐다.
현대 음악의 선구자라고 할 만한 C.E. 아이브스(1874~1954)는 서로 다른 두 조를 같이 사용하여 작곡하는 복조, 무조(無調)의 전위적 수법을 시도하였다. 그는 대담한 불협화음의 실험 으로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보다 이전에 이미 과감한 수법을 사용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진취성이 나타난다. 말러는 아이브스의 작품을 유럽에서 연주할 것을 희망하였으며, 쇤베르크는 그의 수법에 경의를 표하였다. 아이브스는 제2차 세계 대전 후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았으며, ' 미국 음악 의 참된 혁명가'로 불렸다. 그의 작품은 4곡의 교향곡과 실내악 곡, 피아노 곡, 114곡의 가곡 등 많이 있지만,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피아노 소나타 《콩코드》를 들 수 있다.
아이브스의 뒤를 잇는 전위 음악가로는 새로운 대위법을 도입한 C. 러글스, 팔을 굽혀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도 하고 주먹으로 두드리기도 하는 톤 클러스터라는 기법을 만들어 낸 H.D. 카웰, 새로운 악기를 만든 H. 퍼치, 도안 악보의 창시자이며 ' 우연성의 음악'으로 현대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J. 케이지 등이 있다.
관현악 모음곡인 《유모차 안에서의 모험》으로 명성을 날린 J.A. 카펜터(1876~1915)는 관현악에 최초로 재즈 리듬을 도입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발레곡 《미친 고양이》 《마천루》 등이 있다. A. 코플랜드 (1900~1990)는 미국 민요 또는 재즈의 수법을 클래식하게 도입하였다. 그의 작품은 웅대하면서도 간결하며, 대표적인 작품으로 교향곡 제3번과 발레곡 《빌리 더 키드》 《애팔래치아의 봄》 등이 있고, 그 밖에 오페라곡, 피아노 협주곡 등이 있다.
G. 거슈윈(1898~1937)은 1924년에 피아노 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하여 재즈와 고전 음악을 결부시킨 교향악적 재즈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F 장조, 관현악곡 《파리의 아메리카인》, 오페라 《포기와 베스》 등이 있다.
E. 카터, R. 세션스, M. 배빗 등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성공을 거둔 음악가들이다.
미국의 대중 음악
정통 음악이라고 불리는 고전 음악과 구별되는 대중 음악 이란, 상업성을 목표로 하여 대중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음악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대중 음악이 만들어진 것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미국인들에게 독립 정신을 불어넣기 위하여 그들의 귀에 익은 영국의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또한, 순수한 미국인에 의하여 군가가 작곡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미국의 대중 음악이 영국 음악의 모방에서 벗어나는 단계의 한 면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독립 전쟁 이후 공업이 발달한 북부와 노예를 이용한 농업이 주요 산업인 남부 사이에 노예 제도 문제를 주로 한 대립이 격화되어 남부가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독립 이후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의 대중 음악은 초기의 대중 음악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곡에 미국의 가사를 붙인 것이었는데, 초기의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에서 벗어나 감상적인 발라드로 바뀌었다. 이러한 발라드풍의 노래는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중 음악의 주류를 이루면서, 미국의 대중 음악은 대중 속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의 대중 음악에서 최초로 성공한 음악가로는 1827년에 《더 민스트럴스 리턴 프롬 더 워》라는 발라드 곡을 작곡한 J.H. 휴머트를 들 수 있다. 남북 전쟁 이 일어나자 미국의 대중 음악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 때의 대표적인 곡은 북부의 군가인 《공화국 찬가》와 남부의 국가와 같았던 《딕시》이다. 《딕시》는 1859년에 D.D. 에미트가 지은 것인데, 지금도 미국인들 사이에서 애창되고 있다.
남북 전쟁이 끝난 후 대중 음악은 큰 사업으로 발전 하기 시작하여 신인 음악가들이 등장하였으며, 곳곳에 음악 극장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 시대에 미국의 대중 음악 은 뮤지컬 코미디 형식으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미국 고유의 새로운 대중 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남부에서는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한 래그타임 또는 블루스라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발생하였다. 래그타임은 19세기 말에 흑인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 발생하였는데, 재즈 형성의 한 요소가 된 피아노 연주 스타일로 당김음 을 살린 리듬이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래그타임 피아노의 아버지'라고 불린 S. 조플린(1868~1917)은 1899년에 피아노를 위한 고전적 래그타임인 《단풍나무 잎 래그》를 출판함으로써 명성을 얻고, 계속하여 히트 곡을 냈다. 그 후 지그 행진곡이나 케이크 워크라는 댄스 스텝 등에서 리듬이 만들어졌다.
블루스는 역시 19세기 말에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세속적인 민속 음악으로, 인종 차별과 극도의 생활고로 겪으면서 야기되는 고뇌와 절망감을 기타를 치면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블루스 역시 재즈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서, 미국의 대중 음악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원시적인 컨트리 블루스에서 도시적인 어번 블루스에 이르기까지 가곡으로 발전하였다. 최근에는 음악의 형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의 대중 음악은 라디오와 녹음기, 그리고 영상과 함께 음성· 음악이 나오는 토키 영화가 발명됨으로써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대중 음악은 상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뮤지컬 작곡가인 R. 로저스 (1902~1979)는 작사자인 L. 하트와 버라이어티 쇼의 대본을 써서 호평을 받았으며, 뮤지컬 대본 작사자이며 작곡가인 O. 해머스타인 2세(1895~1960)와 함께 《오클라호마》 《남태평양》 《사운드 오브 뮤직》 《회전 목마》 등 많은 뮤지컬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의 대중 음악은 로큰롤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 음악은 미국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유행을 일으켰다.
로큰롤은 흑인의 리듬 앤드 블루스와 함께 백인의 컨트리 음악의 요소가 가미된 열광적인 재즈 곡이다. 한편, 대중 매체인 텔레비전이 등장함으로써 대중 음악은 더욱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스피리추얼
스피리추얼은 종교적 성격을 띤 미국의 민중 노래로서, 복수형으로 스피리추얼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단선율로 된 것과 합창으로 된 것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화이트 스피리추얼, 가스펠송, 니그로 스피리추얼로 나누어진다.
화이트 스피리추얼은 영국에서 불리던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음악에서 발전한 것이다. 19세기에는 매우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하지만 정식 찬송가가 생기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몇 개의 곡집에 실려 있는 것만 겨우 알려져 있다.
가스펠, 즉 복음 찬송가 는 가장 새로운 것으로, 1930년대의 대공황 시대부터 널리 보급되었다. 교회의 예배 의식에 따른 영가로, 특히 흑인 영가를 말한다. 새로 작사·작곡되었으며 화성, 즉 높낮이가 서로 다른 여러 음이 동시에 울리면서 생기는 화음의 연결도 있고 반주 악기도 따른다. 흑인 대중 음악인 리듬 앤드 블루스와 같은 스타일로 부르며, 현재 주일 학교 등에서 불린다. 가스펠의 대표적인 가수로는 M. 잭슨(1911~1972)을 들 수 있다. 풍부한 성량과 두터운 신앙심을 가지고 세계 각지에서 명성을 얻은 잭슨은, 목사의 딸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1950년에는 카네기홀 에 출연하였다.
니그로 스피리추얼로 미국의 종교적 성격을 띤 흑인들의 노래로, 애수 띤 선율과 독특한 스타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재즈
재즈는 1910년을 전후하여 미국 남부 흑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독특한 음악 양식의 대중적인 춤곡이다. 흑인 노예들이 부르던 노동요나 영가 또는 더 거슬러 올라가서 아프리카 토인과 흑인들의 민속 음악이 재즈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적인 것은 20세기 초엽에 미국의 루이지애나 주에 있는 항구 도시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음악에서 생겨났다.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크리올의 문화 가운데 흑인의 관악대가 연주하는 딕시 앙상블이 생겨났으며, 그것이 1910년대에 시카고에서 파생되어 재즈라는 음악 이 탄생한 것이다. 안어울림음과 경쾌한 리듬의 재즈는 그 후 대중용으로 상업화되면서 1930년대에 뉴욕에서 P. 휘트먼에 의하여, 많은 악기가 사용되며 예술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심포닉 재즈가 발생하였다. 또 미국의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밴드 마스터인 B. 굿먼(1909~1986)이 스윙 재즈를 완성하여 감상 음악으로서의 재즈를 지향하였다. 스윙이라는 말은 원래 듣고 있는 동안 몸이 저절로 흔들리는 듯한 재즈의 리듬감을 형용한 말이었으나, 1935년에 베니 굿먼 악단의 스윙 뮤직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후 재즈 자체를 의미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1950년대에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뉴욕의 하드 밥, 펑키 재즈가 발생하였다. 펑키 재즈는 흑인의 모던 재즈로, '펑키'라는 말은 '흑인 특유의 체취'라는 의미이다. 백인의 재즈 연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필링과 선율, 감각이 특징이다. 재즈는 록이 한창 유행하던 때에 쇠퇴하였다. 록 또한 1950년대에 미국에서 발생한 음악 양식으로, 리듬을 강조한 블루스 음악으로서 흑인적인 대중 음악인 리듬 앤드 블루스와,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 음악인 컨트리 앤드 웨스턴이 융합된 음악이다. 1954년에 빌 헤일리 앤드 히트 코밋이 흑인의 리듬 앤드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록 어라운드 더 클록》 등을 발표하여 로큰롤 의 선구자가 되었다. 1956년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에 의하여 록은 전세계로 퍼졌다. 그 뒤 록의 중심지는 영국으로 옮겨졌다.
최근에는 재즈·록·보컬 등과 같은 음악이 뒤섞여 화합함으로써 탄생한 퓨전 재즈가 유행하고 있다. 이 음악은 1970년대에 백인 재즈 음악가들이 시작한 새로운 감각의 무드 음악 으로, 전기· 전자 장치를 한 악기를 사용하여 새로운 음색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