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남도 동북부 울산만에 자리한 시. 면적 1,493㎢, 동쪽은 동해와 접해 있고, 서쪽은 경상 북도 청도군과 경상 남도 밀양시·양산시, 남쪽은
부산 광역시 기장군, 북쪽은
경상 북도 경주시와 접해 있다. 울산 광역 시청은 남구 신정동에 자리해 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중화학 공업 도시로 유명하다.
자연
경상계(慶尙系) 지층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제3계 지층 이 부분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동쪽에 위치해 있는 높이 300m 미만의 완만한 경사면과 골짜기로 된 구릉 지역을 빼면 전체적으로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문복산· 가지산·능동산·신불산 등이 남북으로 자리해 있고, 남쪽에는 정족산· 문수산이, 북쪽에는 천마산·마석산이 각각 동서로 자리해 있다. 이와 같은 산지 사이를 끼고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태화강·회야강과 함께, 남쪽으로 흘러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양산천이 모여 하안 평야를 만들고 있다.
기후는 겨울의 계절풍을 막아 주는 서북부 지역의 산지와 따뜻한 해류의 영향을 받아 따뜻하고 바람결이 부드러운 편이다. 1월 평균 기온은 3.5℃이며, 8월 평균 기온은 24.5℃ 연평균 기온은 12.6℃이다. 연 강수량은 1,155㎜로 많다.
식물 군락(群落)은 낙엽 활엽수림대의 남쪽 부분에 해당하는 종이 널리 퍼져 있다.
연혁
이 지역은 원래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어로 생활을 한 사람들이 사용한 석기, 빗살무늬 토기 등의 유물들이 장현동과 남외동에서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 의 유적은 시내 전역에 널리 퍼져 있다.
삼한 시대 진한 에서는 이 지방을 굴아벌촌이라 불렀으며, 삼국 시대에는 신라의 중심지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 태조 때에는 이 고을 사람 박윤웅이 태조를 도와 고려를 일으킨 공이 크다 하여, 임관군의 영현인 우풍현을 하곡현에 합쳐 흥려부로 승격(또는 흥례부) 되었다. 그러나 991년(성종 10) 공화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울주로 이름을 바꿔 불러 지울주사(知蔚州事)를 두었다. 1018년(현종 9) 방어사를 두고 언양· 동래·기장현을 이 고을의 관할 아래 두어 속현으로 삼았다.
1397년(태조 6)에 이 곳을 지키는 군대인 진(鎭)이 설치되어 절제사가 지주사를 겸임하였다. 1413년(태종 13) 진을 없애고 울산군 으로 이름을 바꾸고 1599년(선조 32)에 울산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895년에 지방 관제 개정에 따라 울산군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에 언양군을 울산군에 합쳤다가, 1931년에 부내면과 내현면·범서면의 일부를 편입하여 울산면으로 통합하여 읍으로 승격하였다.
다시 1962년 울산읍에 방어진읍·하상면·대현면과 농소면·범서면·청량면의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울산시로 개편 승격하였다. 이에 따라 시와 군이 분리되었고, 1991년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1월 울산시와 울산군이 합쳐 도시와 농촌의 통합시가 되었다. 1997년 울산시는 울산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산업· 교통
1962년 시로 승격할 당시 이 토지 이용면을 보면, 전체 면적 중 논과 밭이 38%이고, 임야가 52.8%로 이 부분이 모두 85%를 넘었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새로운 시가지 개발과 공업 기지 형성에 쓰여져 지금은 논·밭과 임야의 비율이 각각 20%, 45.4%로 줄었다. 인구는 1962년 8만 5,082명에서 1987년 59만 401명으로 25년 사이에 약 7배 증가를 보였다. 특히 여자보다 남자가, 유년층보다 24~29세의 노동 연령층이 많아 제조업 등에서 일하는 인구 비율이 아주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공업 입지 조건이 유리한 울산 광역시가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특정 공업 지구 등이 조성되면서,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많은 노동 인구가 모여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유 공장· 비료 공장이 건설되고, 1968년에는 자동차 공장 석유 화학 공업 단지가 세워졌으며, 1973년에는 조선소 가 건립되었다. 그로 인해 국내 제1의 공업 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울산 공업 단지는 포항에서 울산~부산 간에 이르는 남동 임해 공업 지대의 핵심이자 중화학 공업 의 중심지가 되었다. 공업 시설과 함께 항만 시설도 제1 부두에서 제4 부두까지 있으며, 수심 7~12m이고, 안벽의 길이 1,177m 규모로 5,000t급에서 2만t급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다. 그 밖에 정유 공장 전용 부두와 현대 조선 전용 부두, 그리고 울산항 등이 있어 수출입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방어진과 장생포를 중심으로 연안 어업 과 원양 어업을 비롯하여 수산 가공 수출업이 발달하였다. 급격히 성장한 까닭으로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문화· 교육 시설이 부족한 편이다. 특히, 기타 상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부산·대구·서울 지역에 높이 의존하고 있다.
1970년 울산 고속 도로가 건설되었고, 대구·포항 ·부산 등지로 통하는 국도가 있다.
교육· 문화
국가 정책에 따라 상업· 공업 도시로 급성장하였기 때문에 다른 중소 도시에 비해 문화· 교육 시설이 부족한 편이다 1991년 현재 교육 기관으로는 초등 학교 45개, 중학교 24개, 고등 학교 17개, 울산 전문 대학· 울산 대학교가 있다. 1969년 지금의 울산 대학교가 울산 공과 대학으로 문을 열었고, 1973년 울산 대학교 병설 공업 전문 대학이 설립되었다.
조선 시대 교육 기관으로는 중구 교동에 울산 향교가 있다. 이 향교는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52년(효종 3)에 다시 지금의 위치에 세운 것이다. 이 밖에 1678년(숙종 9)에 중구 반구동에 세운 구강 서원(鷗江書院)이 있는데, 이 서원은 1694년에 임금이 사액한 사액 서원이 되었다.
1967년 처음 시작된 울산 공업 축제가 각종 문화 단체의 협력으로 계속되고 있다. 또한 1964년에 만들어진 울산 문화원이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행사를 여러 가지 주관하고 있으며, 향토 사적을 조사 정리하여 책 등으로 출간하고 있다. '울주·울산 향토 문화 연구회'라는 단체도 활동하고 있다. 문화 행사로는 1967년부터 실시되던 울산 공업 축제가 1991년부터 그 이름을 처용 문화제로 바꾸어 열리고 있다.
해마다 4월에 울산 문화원과 울산 광역시,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울산 지부 및 여러 단체들의 주관으로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처용놀이·쇠부리놀이· 처용무·다향제·처용제전·처용 가장 행렬 등을 비롯하여, 처용 미술제· 우산 국악제· 건강 체조 경연 대회· 한글 백일장 등 여러 가지 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또한 1981년부터 울산 예술제가 예총 울산 지부의 주최로 10~12월에 열리고 있다. 그 밖에 공공 도서관 2개소, 공공 체육 시설 5개소, 공연장 12개소· 한국 방송 공사(KBS)·울산 방송국· 문화 방송(MBC) 등의 문화 시설이 있다.
이 지역은 공업 도시로 바뀌기 전까지는 농어촌 지역이었기 때문에, 노동요가 많아 담바귀 타령 ·장타령·멸치후릿배 노래 등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오고 있다.
또한 헐수정과 무거동 전설·병영성 전설·처용암 전설 등의 설화가 전해 내려 오며, 지신 밟기· 달맞이 · 연날리기 등의 세시 풍속놀이와 마두희(馬頭戱)라 불리는 줄다리기 등의 민속 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1991년 현재 크리스트교 교회 203개소, 가톨릭 교회 8개소, 불교 사찰 54개소, 유교 교당 1개소 등의 종교 기관이 있다. 의료 기관으로는 종합 병원 3개소, 병원 6개소, 치과 의원 85개소, 부설 의원 8개소, 의원 197개소, 한의원 8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 기관 3개소 등이 있다.
유물· 유적· 관광
신라 시대부터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로 발달해 전쟁과 관련된 문화재가 특히 곳곳에 많다. 시내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물 1점과 천연 기념물 1점, 중요 민속 자료 1점이 있으며, 도 지정 문화재로 유형 문화재 2점과 기념물 3점이 있다. 그 밖에 문화재 자료 1점이 있다.
선사 시대 의 유물· 유적으로는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석기 등이 장현동·화봉동·신정동 등의 시내 곳곳에서 출토되었다.
신라 선덕 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태화사지가 불교 문화재로서 태화동에 있다. 이 근처에서 발견되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는 보물 제1441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학성 공원 안에 옮겨져 있다.
유교 문화재로는 경상 남도 유형 문화재 제199호인 울산 향교가 교동에 있다. 외항강 강구 황성동 해안에 처용암(경상 남도 기념물 제50호), 학산동에 울산 병영성(사적 제320호)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1597년 일본군이 쌓았다는 울산 학성 (사적 제9호)은 지금 학성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밖에도 성암동에 개운포 성지(경상 남도 기념물 제172호)가 있고, 신정동의 이휴정(경상 남도 문화재 자료 제11호)에는 태화루의 현판과 울산 이휴정 소장 출토 복식(중요 민속 자료 제37호)이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 건축물로는 북정동에 울산 동헌 및 내안(경상 남도 유형 문화재 제192호)이 있다.
그리고 교동의 동쪽 바다는 울산 극경(쇠고래) 회유 해면(천연 기념물 제126호)으로 이름 나 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공업 도시로 이름 나 있는 울산시는 국내외에서 유명한 산업 관광지이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빼어난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다. 울산만을 따라 펼쳐져 있는 엄청난 규모의 중화학 공업 단지와 일산 해수욕장·학성 공원·청용암 용굴 등이 주요 관광지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지난 날 우리 나라 고래잡이 지역의 본거지였던 장생포는 고래를 잡는 철에 고래의 해부 장면이 볼 만하였던 곳으로 유명하였지만, 지금은 고래를 잡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볼 수 없다.
교통이 편리하고 숙박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이 곳에는 1991년 연간 72만 1,953명의 관광객이 찾아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