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이 즉위한 뒤 고려가 친원 정책으로 기울자, 명나라는 원나라가 다스리던 쌍성총관부 자리에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고해 왔다.
이에 분개한 고려에서는
최영을 중심으로 요동 정벌론이 일어나
이성계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게 하였는데, 처음부터 이에 반대하던 이성계는 압록강의 위화도에 이르러 진군을 멈추고 회군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최영과 우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스스로 회군을 단행하여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을 귀양보내어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이어 우왕을 내쫓고
창왕을 세우면서 신흥 사대부들이 세력을 얻어 조선을 여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