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 ~ 1801] 조선 후기의 카톨릭교 순교자. 교명은 베드로이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최초의 영세자이다.
1783년에 동지사의 서장관이 된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에 가서 카톨릭교의 교리를 익히고, 이듬해에 그라몽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아 우리 나라 최초의 카톨릭교 영세자가 되었다.
1785년(정조 9년) 봄 명례동(明禮洞 : 명동) 김범우(金範禹)의 집에 처음으로 조선 천주교회를 세웠다.
이벽·
이가환 및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3형제와 함께 주일 미사와 강론을 행하면서 성서를 한글로 번역하여 천주교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는 1789년(정조 13년) 관직에 나가 평택 현감을 지내기도 했으나, 1791년(정조 15년) 천주교의 전국적 전파를 막으려는 조정의 탄압으로
신해박해가 일어나 관직을 빼앗겼다. 1795년 주문모 신부 입국 사건으로 충남 예산군에 유배되었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서대문 형장에서 사형되었다.
1868년 그의 뒤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순교하고, 1871년 증손까지 순교하여 4대에 걸친 순교자 집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