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 ~ 1584]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이고,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성혼,
송익필,
김장생 등과 함께 기호 지역이 기반인 서인(西人)의 종주로 추앙된다.
신사임당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9차례나 여러 과거에 장원하여 ‘9도 장원공’이라 불렸으며, 대사간 과 호조 판서, 이조 판서, 병조 판서 등을 지냈다.
또 실천을 중요시한 그의 학문 경향은 나라일을 보는 데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10만 대군의 양성과 세법을 개선하기 위한 대동법의 실시 등을 주장했으나 생전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 뒤 임진왜란 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그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에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