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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日帝强占期) (ENCY029992)
요 약 : 우리 나라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 통치를 받던 시대. 일제가 우리의 주권을 빼앗아 간 1910년 8월 29일부터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한 1945년 8월 15일까지의 35년 간을 말한다.
분 류 :
지식 : 역사 > 역사일반 > 시대구분 [1504 자]
     

우리 나라가 일본에 의해 식민지 통치를 받던 시대. 일제가 우리의 주권을 빼앗아 간 1910년 8월 29일부터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한 1945년 8월 15일까지의 35년 간을 말한다.

일제는 이 기간 동안 우리 나라에 대하여 온갖 탄압과 경제적 수탈을 일삼았는데, 그것은 대개 다음의 세 시기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제1기

1910년 일제의 주권 침탈 이후부터 3·1 운동까지의 시기로, 일제는 군인 총독을 보내어 헌병 경찰 제도를 실시하면서 총칼로써 우리 민족을 다스렸다. 우리 민족은 모든 정치적 활동을 금지당하고, 집회, 결사의 자유도 빼앗겼다. 우리글로 된 신문의 발행도 금지당한 채 그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모조리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한편 경제적으로도 수탈을 강화하여 이른바 토지 소유 관계를 근대적으로 정리한다는 구실로 모든 토지를 등록하게 하면서, 까다로운 절차를 내세워 등록을 하지 않은 땅을 모두 총독부 소유로 해 버렸다. 그리하여 전국 토지의 약 40%가 총독부의 손으로 넘어가고, 땅을 잃은 우리 농민은 화전민이 되거나 먹을 것을 찾아 만주로 떠나야만 했다.

제2기

3·1 운동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역량을 본 일제는 무력만으로는 우리 민족을 지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른바 문화 정책 을 내세워 총독을 문관으로 바꾸어 헌병 경찰 제도를 버리고, 우리글 신문의 발행을 허가한다는 문화 정책을 썼다. 그러나 이는 우리 민족을 이간시키고 분열을 꾀하여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기 위한 속임수로, 광복 때까지 단 한 사람도 문관 총독이 임명된 적이 없었으며, 경찰의 수를 오히려 늘리기만 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이 때를 전후하여 일본의 식량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에 우리 나라를 식량 공급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폈다. 이른바 ‘산미 증식 계획’이라는 것을 실시하여, 증산 계획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쌀을 가져감으로써 우리 민족은 만주에서 들여온 잡곡이나 나무 껍질, 풀뿌리 따위로 끼니를 이어 가야만 하였다.

제3기

우리 나라를 식량 공급지로 삼아 공업 시설을 하지 않던 일제는 1930년대에 접어들어 대륙 침략에 눈을 돌리면서 우리 나라를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삼고자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시설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금속, 기계, 화학 공업을 일으키고, 교통, 통신 시설을 정비하는 한편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해 우리 자원을 마구 파내 갔다. 전쟁이 확대되자 일제는 우리 민족을 그들의 침략 정책 에 이용하고, 그들의 영원한 노예로 만들기 위해 우리말 우리글의 사용과 우리 역사의 교육을 금지하는가 하면 우리글로 된 모든 신문과 잡지를 폐간시키고, 이른바 ‘내선 일체’를 내세워 우리의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치게 하였다. 그러고도 물자와 인력이 달리자 우리 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다 공장과 전장에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독립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 일제가 연합군에 항복함으로써 감격스런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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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한 제국) < 일제 강점기 > 대한 민국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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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日帝强占期)
최종수정일 :   2016-04-27 작성자 :   계몽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