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 ~ 1921] 언론인, 애국 지사. 호는 위암(韋庵)이며, 경상 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894년에 진사가 되고, 1897년에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옮겨 가자 환궁을 요청하는 ‘
만인소’를 지었다.
1899년에 시사 총보의 주필로 언론계에 들어가 1901년에 황성 신문사 사장이 되었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시일야 방성 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사설을 써서 일본의 흉계를 폭로함으로써 신문은 정간당하고 옥에 갇혔다. 1906년에는
대한 자강회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을 벌이다가 일본의 압력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였다.
1909년에 귀국하여 경남 일보의 주필이 되어 언론 활동을 벌이다가, 폐간 처분을 받고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일생을 마쳤다.
저서에 《유고 연원》 《위암문고》 등이 있다.
1962년에 대한 민국 건국 공로 훈장 단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