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소동파의 작품. 필화 사건으로 죄를 얻어 황저우성에 유배되었던 소동파가 원풍 5년인 1082년의 가을인 7월과 겨울인 10월에 황저우성밖의 적벽에서 놀다가 지은 것이다. 7월에 지은 것을 《전(前) 적벽부》, 10월에 지은 것을 《후적벽부》라 한다.
《전적벽부》는 적벽에서 벌어졌던 삼국 시대의 고사를 생각하고 덧없는 인생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됨을 노래한 것으로 소식의 친필이 있다. 《후적벽부》는 10월 보름에 적벽에서 밤에 노니는 즐거움을 서술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인간 존재의 깊이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부란 운문의 하나인 문체의 명칭인데, 사물의 서술을 중심으로 한 한나라 때의 장려한 작품에서부터 육조·당나라 때의 형식적인 소형 작품으로 쇠퇴한 부의 장르를 생동하는 묘사로, 서정과 사상을 겸비한 문장으로 부활하여 완성시킨 작품이 이 《적벽부》이다.
삼국 시대의 옛 싸움터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의 대비, 자연 과 일체화하려는 소동파의 제물(齊物)의 철학이 결부되어, 유창하고 아름다운 표현과 함께 문학으로서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이 작품은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된 중국의 명문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