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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 (趙高) (ENCY032448)
요 약 : [? ~ 기원전 207] 중국의 통일 제국 진(秦)나라의 환관. 전국 시대 조왕의 먼 친척으로, 환관이 되어 진나라의 시황제를 섬겼다.
분 류 :
인물 : 인물 > 외국 [2585 자]
     

[? ~ 기원전 207] 중국의 통일 제국 진(秦)나라의 환관. 전국 시대 조왕의 먼 친척으로, 환관이 되어 진나라의 시황제를 섬겼다.
 
중거부령이었던 조고는 순행 중이었던 시황제를 모시고 회계에 이르러 있었다. 이 순행에는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胡奚)와 승상 이사(李斯)가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순행길에 나선 뒤 중병에 걸린 시황제는 자기 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조고를 불러 조서를 만들어 맏아들 부소(扶蘇)에게 보내도록 하였다. 장군 몽념(蒙恬)에게 군권을 넘겨 주고 속히 함양으로 와 자기의 장례를 지내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태자 부소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아버지 시황제의 분서 갱유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폈다. 그 뒤 아버지인 시황제의 노여움을 사, 몽념 장군과 함께 변두리인 상군 지방으로 내쫓겨 있었다. '분서 갱유'란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에 오른 뒤 승상 이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중앙 집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다.
 
시황제는 통일한 중국을 보다 강력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비판적인 사상을 없애고 유학자들의 정치적 비평을 금하기 위하여 의학서와 같은 실용적인 책들을 제외한 모든 서적을 불살라 버렸다. 이 때 불살라지는 것을 피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실용적인 책들 외에 황실 도서관에 있던 책들이었다. 이 책들로 하여 진시황이 끼친 중국 고대의 문화적 손실을 다소나마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런 뒤에도 항의와 비판이 그치지 않자 시황제는 다음 해에는 비판적인 유생들을 구덩이에 생매장하여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분서갱유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조서를 다 만들 때까지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209년 미처 사절이 떠나기도 전에 순행지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조고에게는 진시황의 조서와 옥새가 있었고, 진시황이 죽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사와 호해를 비롯하여 5, 6명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승상 이사는 분서갱유 사건으로 태자 부소와는 거의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는 태자 부소에 비하여 어리석고 욕심이 많았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신조처럼 말하곤 하던 사람이었다. 조서의 내용과는 달리 호해를 2세 황제로 삼는다면, 나라 일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재빠르게 계산한 조고는 승상 이사, 호해와 함께 조서를 거짓으로 꾸몄다.
 
거짓 조서의 내용은, 진시황 이 호해를 태자로 삼았으며, 불효한 부소에게는 칼 한 자루를 내리니 그 칼로 자결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음모가 속에 호해가 시황제의 뒤를 이어 진나라 2세 황제가 되었고, 조고는 낭중령이 되었다. 그 뒤 진나라 조정의 일은 거의 모두 조고의 뜻대로 되어 갔다. 정권을 잡은 뒤 그는 어리석은 2세 황제를 교묘하게 부추겨 대장 몽념과 몽의를 처형하였으며, 방해가 되는 공자와 공녀 24명을 죽였다. 그리고 기원전 208년에는 2세 황제에게 참소하여 함께 모의하였던 승상 이사까지 처형하였다.
 
마침내 승상의 지위에 오른 조고 는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쥐게 되었다. 이제 조고에게는 황제의 자리마저 자기의 손 안에 있는 듯한 마음이었다. 반란을 일으켜 황제 자리에 오르고 싶었지만, 그는 조정 대신들이 반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저하였다. 그 때 대궐의 일은 조고의 마음 먹은 대로 되고 있었다. 2세 황제는 대궐을 지키며 호화로운 생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 그러다가 조고는 대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려 내기 위한 하나의 계략을 생각해 내었다.
 
어느 날 그는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와 황제에게 바치며, "폐하, 말을 바치오니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자 2세 황제는 껄껄 웃으며, "승상은 농담도 참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指鹿爲馬)'니!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이 사슴이 말로 보이오?" 하고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는 "그렇사옵니다." 하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아니옵니다." 하고 부정하는 사람도 적기는 하지만 있었다. 이 때 조고는 재빨리 부정하는 사람들을 가려 내어 기억하여 두었다. 그러고는 이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죄를 뒤집어씌워 모두 죽여 버렸다. 그 뒤로 진나라 궁중에서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조고가 마음대로 세력을 휘두를수록 나라는 더욱더 어지러워졌다. 중국 여기 저기에서 진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반란이 일어났다. 천하의 영웅들이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의 형세는 위태롭게 되었다. 그러자 조고는 기원전 207년 무능하고 어리석은 2세 황제를 살해하고 2세 황제의 아들 자영(子孀)을 3세 황제로 삼았다. 그러고는 곧 자영까지 처형하려 하였으나 사전에 음모가 드러나 암살당하였다. 그와 함께 그의 3족도 처벌되는 중벌을 받았다.
 
그러나 황제 자리에 오른 자영도 겨우 재위 46일 만에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온 유방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 쳐들어온 항우에게 사로잡혀 살해되었다.
 
진나라는 유방(劉邦)에게 항복함으로써 시황제의 중국 통일 후 3대 15년 만에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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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 (趙高)
최종수정일 :   2017-09-15 작성자 :   계몽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