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에 진주에서 벌어졌던 두 차례의 큰 싸움. 제1차 싸움은 1592년(선조 25년) 10월 5일에 일어난 싸움으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며, 진주성 대첩이라고도 한다.
약 3만의 왜군이 대나무 사다리 를 만들어 진주성을 공격하자, 진주 목사
김시민은 성을 타고 오르는 왜군에게 화약, 끓는 물, 돌 등을 퍼부어 6일간의 대접전 끝에 왜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달아났다.
이 싸움에는 의병 대장
곽재우의 응원의 힘이 컸다. 이 싸움의 승리는 적으로 하여금 다른 지역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제2차 싸움은
논개(論介)의 죽음으로써 잘 알려진 싸움이다. 제1차 싸움에 크게 패한 왜군은 이를 복수하려고 1593년 6월에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 등에 명하여 5만의 왜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다.
왜군은 귀갑차 등 특수한 병기로 물밀듯이 쳐들어와 치열한 공방전 끝에 거의 모든 장병이 전사하고, 진주성은 왜적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러자
김천일을 비롯한 수십 명의 의병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의로운
논개는 적장을 안고 남강에 빠져 죽었다.
이 싸움은 임진왜란 중 가장 치열했던 싸움으로 성 안에 있던 군인 과 백성 등 약 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