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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庚戌國恥)
1910년 8월 29일에 일본이 이른바 경술 국치 조약(한일합방조약)을 강압적으로 맺게 하여 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빼앗은 일.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도 한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경술국치 (庚戌國恥) 1910년 8월 29일에 일본이 이른바 경술 국치 조약(한일합병조약)을 강압 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빼앗은 일. 한일합방이라고도 한다. 1904년에는 한·일 의정서를 약정 1905년에는 을사조약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계기로 정미 7 조약 - 통감의 권한을 강화 1909년 10월에 침략의 원흉인 이토오 히로부미 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하자 일본의 침략 정책 가속화 송병준이 이끄는 친일 단체 일진회를 앞잡이로 내세워 한일 합방 공작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하였다. 1910년에 3대 통감 데라우치와 총리 대신 이완용 등과 합방 공작 8월 29일에 합방 조약을 공포. 조선은 개국 519년 만에 나라를 빼앗김
◈ 지식지도
경술국치 (庚戌國恥) 한·일 의정서 8월 29일 차관 정치 친일파 을사 5적 정미7적 경술국적 대한 제국 1910년 1904년 1905년 1907년 1909년 1916년 1876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송병준 안중근 이완용 이토 히로부미 김옥균 민영환 박제순 안명근 이상설 이용구 이위종 이윤용 이준 한규설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 이재극 이호준 이항구 하야시 곤스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진회 조선 총독부 통감부 진보회 강화도 조약 을사늑약 한·일 신협약 헤이그 특사 사건 갑신정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 러·일 전쟁 만국 평화 회의 아관 파천 운요호 사건 하얼빈 의거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경술국치조약 (한일합병조약) 국제법(근대이전) 국제법(근대이전) (23)
◈ 참조 원문/전문
절명시 絶命詩 한시 황현 (黃玹) (102) 경술국치조약 (한일합병조약) 국제법(근대이전) 이완용 / 테라우치 (23) 오호부 嗚呼賦 근/현대 시 김택영(金澤榮) (12) 국치일의 회고 근/현대 수필 여운형 (7)
▣ 시민참여콘텐츠
◈ 인기순 (1 ~ 4 위)
2019.08.19
경술국치 결정 장소
【여행】 1910년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 한다. 대한 제국(순종 황제)이 없어지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는 날이다. 대한 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御前會議)는 창덕궁 흥복헌(대조전에 붙은 건물)에서 1910년 8월 22일 13시에 열려 한일 강제 병합 조약을 결정하고, 그날 16시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은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한일 강제병합 조약을 체결했다. 그달 29일 순종황제는 인정전에서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여(讓與)한다는 조칙을 내렸고 이로써 통감부에서 총독부(조선 총독부 관보 1호에 게재)로 넘어갔다. 1917년 화재로 재건한 흥복헌을 보고 싶으나 들어갈 수 없다.
2019.08.27
경상남도, 8월 29일 경술국치일 조기 게양 당부
【사회】 경상남도(도지사 김경수)가 나라를 잃은 역사적 아픔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도내 관공서, 공공기관, 민간기업, 단체, 주민 등을 대상으로 경술국치일인 오는 8월 29일 조기를 게양해줄 것을 당부했다. 【인사과 - 김민욱 (055-211-3518)】
2019.08.29
【정치】 ‘독립운동선열합동추모대전’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 대단히 감사하다. 국치일 109주년에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김원웅 광복회장님과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님을 비롯해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드린다.
2019.08.29
【사회】 광복회 충북도지부(지부장 장기영)가 8월 29일 오전 11시 청주 삼일공원 항일독립운동기념탑 광장에서 광복회원과 기관단체장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9회 경술국치일 상기행사’를 가졌다.【공보관 (220-2064)】
◈ 등록순
2019.08.29
【사회】 경상남도(도지사 김경수)가 29일 오전 11시 보훈회관에서 광복회원과 도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9주년 경술국치일 상기행사’를 개최했다.【자치행정과 - 박지영 (055-211-3893)】
2019.08.29
【사회】 경북도, 경술국치 109주년 추념행사 개최 【사회복지과】
2019.08.29
【사회】 충남도는 29일 경술국치일을 맞아 도 본청과 직속기관, 사업소의 국기게양대에 조기를 게양했다고 밝혔다.【자치행정국 운영지원과 - 천미희 (041-635-3513)】
2019.08.29
【사회】 광복회 충북도지부(지부장 장기영)가 8월 29일 오전 11시 청주 삼일공원 항일독립운동기념탑 광장에서 광복회원과 기관단체장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09회 경술국치일 상기행사’를 가졌다.【공보관 (220-2064)】
2019.08.29
【정치】 (경술국치 관련)【대변인실】
2019.08.29
【정치】 ‘독립운동선열합동추모대전’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 대단히 감사하다. 국치일 109주년에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김원웅 광복회장님과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님을 비롯해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드린다.
2019.08.27
경상남도, 8월 29일 경술국치일 조기 게양 당부
【사회】 경상남도(도지사 김경수)가 나라를 잃은 역사적 아픔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도내 관공서, 공공기관, 민간기업, 단체, 주민 등을 대상으로 경술국치일인 오는 8월 29일 조기를 게양해줄 것을 당부했다. 【인사과 - 김민욱 (055-211-3518)】
2019.08.19
경술국치 결정 장소
【여행】 1910년 8월 29일을 경술국치일이라 한다. 대한 제국(순종 황제)이 없어지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는 날이다. 대한 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御前會議)는 창덕궁 흥복헌(대조전에 붙은 건물)에서 1910년 8월 22일 13시에 열려 한일 강제 병합 조약을 결정하고, 그날 16시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은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한일 강제병합 조약을 체결했다. 그달 29일 순종황제는 인정전에서 대한제국을 일본에 양여(讓與)한다는 조칙을 내렸고 이로써 통감부에서 총독부(조선 총독부 관보 1호에 게재)로 넘어갔다. 1917년 화재로 재건한 흥복헌을 보고 싶으나 들어갈 수 없다.
2015.08.26
【--】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지만 경술국치 10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의 한일 강제 병합 조약문을 포스팅한다. 사실 8월 22일 체결하고 조선의 반항을 우려하여 8월 29일에 총독부 관보에 게재하였다.
 
▣ 참조 카달로그
◈ 주요 언급 키워드
1910년 (3) 백과 경상 남도 (2) 백과
◈ 참조 키워드
을사늑약 (6) 백과 이완용 (6) 백과 송병준 (4) 백과 아관 파천 (4) 백과 이용구 (4) 백과 이토 히로부미 (4) 백과 고종,조선 (3) 순종 (3) 안중근 (3) 백과 흥선 대원군 (3) 백과 1910년 (2) 백과 1912년 (2) 백과 데라우치 (2) 러·일 전쟁 (2) 백과 박제순 (2) 백과 손병희 (2) 백과 우국충정 (2) 백과 을사 5적 (2) 백과 이범진 (2) 백과 이호준 (2) 백과 일진회 (2) 백과 조선 (2) 조선 고종 (2) 백과 진보회 (2) 백과 창덕궁 (2) 백과 홍병기 (2) 백과
▣ 백과사전
1910년 8월 29일에 일본이 이른바 경술 국치 조약(한일합병조약)을 강압적으로 맺게 하여 대한 제국의 통치권을 빼앗은 일. 한일합방이라고도 한다.
 
일본이 한반도에 침략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 것은 1876년에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맺은 데서 비롯되었다.
 
이후 일본이 청·일 전쟁, 러·일 전쟁에서 잇달아 승리하자 1904년에는 한·일 의정서를 억지로 약정하여 고문 정치로써 한반도를 자기네 세력권으로 확보하였다.
 
그리고 1905년에는 다시 을사조약을 맺어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두어 보호 정치로써 침략에 박차를 가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계기로 정미 7 조약을 맺게 하여 통감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사실상 식민지화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09년 10월에 침략의 원흉인 이토오 히로부미안중근 의사에게 암살당하자 일본의 침략 정책은 더욱 구체화하고 가속화해 갔다.
 
먼저 송병준이 이끄는 친일 단체 일진회를 앞잡이로 내세워 한일 합방 공작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는 1910년에 3대 통감 데라우치가 ‘합방 후의 대한 통치 방안’을 가지고 부임하여 총리 대신 이완용 등과 비밀리에 합방 공작을 서둘렀다.
 
그리하여 그 해 8월 22일에 형식적인 어전 회의를 거쳐 그 날로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인하고, 8월 29일에 합방 조약을 공포함으로써 조선은 개국 519년 만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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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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