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아버지는 풍은 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으로, 예조 판서(禮曹判書)·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거쳐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올랐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어머니는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으로 목사를 지낸 송시연(宋時淵)의 딸이다.
신정 왕후(神貞王后)는 1819년(순조 19) 12세에
효명 세자(孝明世子)와 혼인하고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1827년
헌종을 낳았다. 1827년부터 왕명으로 효명 세자가 대리청정하면서 조만영을 비롯한 풍양 조씨 일족이 대거 진출하여 안동 김씨 세력과 대립하고 그들을 견제하였다. 그러나 1830년 대리청정 중 효명 세자가 사망한 후, 1834년 헌종이 왕위에 오르고 죽은 남편이 익종으로 추봉되자 왕대비가 되었다.
1849년(헌종 15) 헌종이 23세의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죽고 순조의 비
순원 왕후(純元王后)에 의해
철종이 왕위에 올랐다. 1857년(철종 8)
순원 왕후가 사망하자 대왕대비가 되었으며, 1863년 철종이 재위 13년 만에 후사 없이 죽자 왕실의 권한은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가 쥐게 되었다.
신정 왕후는 이전부터 흥선군
이하응(李昰應) 및 조카인
조성하(趙成夏)와 손을 잡고 있었으므로 흥선군의 둘째 아들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또한 고종을 아들로 삼아 철종이 아니라 익종의 뒤를 잇게 하고, 자신이 1866년(고종 3)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다.
신정 왕후는 산수가 수려한 도봉산에 별장을 지었는데, 이후 흥선 대원군도 그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며 국정을 보았다고 한다. 현재의 도봉구 도봉동 401번지에 있는 광륜사가 바로 신정 왕후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신정 왕후는 1890년(고종 27) 경복궁 흥복전(興福殿)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