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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고회 (竹林高會) (ENCY040375)
요 약 : 고려 무신정권 때 이인로(李仁老)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문인들의 모임으로 고려 후기 청담(淸談)을 일삼던 7선비를 이르는 말.
분 류 :
지식 : [923 자]
     

중국 위(魏)나라 정시연간(正始年間)에 완적(阮籍)·혜강(嵇康) 등이 구성한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견하여, 강좌 7현(江左七賢) 또는 해좌칠현(海左七賢)이라고도 한다. ‘죽림고회’라는 명칭은 최자(崔滋)의 ≪보한집≫ 발문에 보인다.

정중부(鄭仲夫)의 무인정권이 수립된 이후 문인을 숙청하는 분위기 속에서 문인들은 산림(山林)에 은거하거나 불교에 의탁하는 자가 많았다. 이중 서로 의를 맺어 망년지우(忘年之友)를 삼고 시와 술을 즐긴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임춘(林椿)·조통(趙通)·황보항(皇甫抗)·함순(咸淳)·이담지(李湛之)를 중국 진(晋)나라 때의 죽림7현(竹林七賢)에 빗대어 강좌7현이라 불렀다.

이인로는 한림원(翰林院)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고원(誥院)으로 옮겨 14년 동안 있으면서 날마다 임춘·오세재 등과 어울렸는데, 세인들이 그들의 모임을 ‘죽림고회’라 하였다고 한다.

≪보한집≫ 발문과 ≪고려사≫이인로전으로 보아, 죽림고회는 이인로가 1180년(명종 10)에 급제하고 계양(桂陽) 서기(書記)로 나갔다가 들어와 직사관(直史館) 일을 맡아 한림원에 있을 때 존재하였던 듯하다.

이규보(李奎報)의 <칠현설 七賢說>에 보면, 이들은 서로 만나 술 마시고 시 지으며 호탕하게 즐겨서 세인의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는데, 무신정권 하에서의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오세재가 죽은 뒤 이담지가 이규보에게 가입을 권하자, 이규보는 거절하면서 “칠현 가운데 핵심이 될 인물이 누군지 모르겠구나(未識七賢內 誰爲鑽核人).”라고 읊어 좌중이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고려사≫이규보전에도 실려 있다.

이들 중에서 이인로·오세재 같은 자는 뒤에 무인정권에서 벼슬살이도 했다.

◆ 일반 항목 ◆
백과 참조
(참조 : 죽림7현)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죽림고회 (竹林高會)
최종수정일 :   2017-01-02 작성자 :   XPI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