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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한양도성(漢陽都城)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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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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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漢陽都城)
(사적 제10호) 조선 시대의 한양을 둘러싼 도성(都城)이다. 좁은 의미로는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 안의 공간을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는 줄여서 한성(漢城)으로 불렸으며, 사적으로서의 명칭은 지정 당시 서울성곽으로 정하였다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한양도성 (漢陽都城) 조선 시대의 한양을 둘러싼 도성(都城) 사적으로서의 명칭은 지정 당시 서울성곽으로 정하였다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1396년 태조에 의해 축조되었고, 세종, 숙종, 순조 시기에 보수 공사를 거쳤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한 구간이 훼손 1974년 박정희 정권의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2013년 현재 총길이 18,627m 중 약 70% 구간이 남아 있다.
◈ 지식지도
한양도성 (漢陽都城) 양녕 대군 광희문 돈의문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소의문 창의문 혜화문
▣ 시민참여콘텐츠
(총 11 개) [모두보기]
◈ 인기순 (1 ~ 4 위)
2024.04.09
「탕춘대성」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지정
【문화】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수도성곽인 한양도성, 대피성인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인 「탕춘대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보존정책과】
2020.06.23
북악 스카이 웨이(정릉~세검정) 걷다.
【여행】 성북구 정릉과 사직공원을 연결하는 드라이브 코스인 북악 스카이웨이는 자동차 전용 도로였다가 노무현 대통령 때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물론 군부대 지역이 있어 제한적이지만 정릉의 하늘 한마당에서 하늘 전망대를 거쳐 북악 팔각정을 지나 세검정쪽으로 내려왔다. 찻길 옆이지만 한번 걸어볼 만한 코스다.
2016.03.11
한양도성(광희문~ 숭례문 ) 3편 (2016. 3. 11)
【여행】 한양도성 길 중에서 오늘은 3번째로 ① 남산 팔각정, ② 전통 무예시범, ③시간상 올라가지 못한 N 서울타워, ④ 국사당 터, ⑤ 남산 봉수대, ⑥ 사랑의 자물쇠 그리고 ⑦ 케이블 카에 대한 자료다.
2015.05.26
한양도성에서 무엇을 배울까? 창의문~ 돈의문 터 (2015.5.26)
【여행】 한양도성 탐방기중 말바위에서 창의문까지는 이미 포스팅했고, 오늘은 창의문에서 돈의문(서대문)터 까지 포스팅합니다.
◈ 등록순
2024.04.09
「탕춘대성」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지정
【문화】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수도성곽인 한양도성, 대피성인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인 「탕춘대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보존정책과】
2020.06.23
북악 스카이 웨이(정릉~세검정) 걷다.
【여행】 성북구 정릉과 사직공원을 연결하는 드라이브 코스인 북악 스카이웨이는 자동차 전용 도로였다가 노무현 대통령 때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물론 군부대 지역이 있어 제한적이지만 정릉의 하늘 한마당에서 하늘 전망대를 거쳐 북악 팔각정을 지나 세검정쪽으로 내려왔다. 찻길 옆이지만 한번 걸어볼 만한 코스다.
2020.02.19
【문화】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1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되어 있는 「한양도성」과 「대곡천 암각화군」의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 선정을 위한 국내 심의를 위해 세계유산분과 문화재위원회를 개최했으나, 두 건 모두 신청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보류’하였다.【세계유산팀】
2018.10.06
한양도성 (와룡공원~ 창의문) 풍경
【여행】 연휴에 흥선대원군이 살던 서울 운현궁(雲峴宮)과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昌德宮)을 보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마을 버스 2번을 타고 와룡공원(성균관대 후문)정거장에 도착해 한양도성 백악구간 말바위 안내소로 향했다. 백악구간은 혜화문에서 창의문까지 구간이지만 성벽길에서 길상사(吉祥寺),숙정문(肅靖門), 잠실 롯데 타워, 남산 타워, 백악마루(백악산 정상), 인왕산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숙정문루와 창의문루(彰義門樓)는 개방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개방 금지다. 윤동주 문학관과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보고 통인시장에서 기름 떡복이와 체부동의 토속촌 삼계탕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으며 포스팅한다.
2017.04.14
한양도성 순성(巡城)
【--】 따뜻한 봄볕에 한양도성(서울 성곽)을 순성(巡城) 하면서 꽃향기를 맡고 역사를 느끼며 건강도 지키면 어떨까요?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의 수도인 한양(漢陽)은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京城)으로 이름을 바뀌었다가 현재는 서울이지요. 한양도성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헐고 철거, 파괴되어 도시화되면서 없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동대문 주변, 남대문 주변, 특히 돈의문(서대문)은 없어졌습니다.
2016.03.12
한양도성(광희문~ 숭례문) 마지막 편 (2016. 3. 12)
【여행】 한양도성길의 남산 정상에서 하산길이다. 잠두봉(蠶頭峰. 멀리서 산을 보면 누에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 옛 분수 터 주변(조선신궁 터)의 한양도성 발굴 및 복원 현장, 안중근 의사(義士) 기념관, 백범 김구 동상, 이시영 동상을 지나 국보 제1호인 숭례문에서 끝냈다.
2016.03.11
한양도성(광희문~ 숭례문 ) 3편 (2016. 3. 11)
【여행】 한양도성 길 중에서 오늘은 3번째로 ① 남산 팔각정, ② 전통 무예시범, ③시간상 올라가지 못한 N 서울타워, ④ 국사당 터, ⑤ 남산 봉수대, ⑥ 사랑의 자물쇠 그리고 ⑦ 케이블 카에 대한 자료다.
2016.03.10
한양도성(광희문~ 숭례문) 2편 (2016. 3. 10)
【여행】 한양도성 길을 걷다보면 남산(목멱산)은 인왕산(仁王山)과 백악산(북악산)보다 낮지만 국립극장쪽에서 올라오는 계단 길은 급경사라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숭례문쪽에서 시작하여 남산정상으로 오르면 조금 수월할 것같아 권한다. 광희문에서 성곽마루 팔각정에 이어 오늘은 남산정상 구간까지 포스팅한다.
2016.03.09
한양도성 (광희문~ 숭례문) 1편 (2016. 3. 9)
【여행】 서울 한양도성 길은 약 18.6km다. 남산 구간(광희문 ~ 숭례문, 약 5.4km)만 미처 못 걸었는데 지난 주말에 마무리하고 포스팅한다.
2015.05.28
한양도성에 무엇이 있을까? 돈의문터~정동 ~ 숭례문 (2015.5.28)
【여행】 서울에 50년 이상 살면 서울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깊이 알지 못하며, 특히 한양도성에 대해서 그렇다. 그래서 작가와 함께 하는 한양도성을 알고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2회차에 걸쳐 한양도성 탐방 중 1회차로, 정독도서관에서 숭례문까지 걸었지만 오늘 포스팅은 1회차 마지막 구간 돈의문터에서 숭례문까지다.
2015.05.26
한양도성에서 무엇을 배울까? 창의문~ 돈의문 터 (2015.5.26)
【여행】 한양도성 탐방기중 말바위에서 창의문까지는 이미 포스팅했고, 오늘은 창의문에서 돈의문(서대문)터 까지 포스팅합니다.
 
▣ 참조 카달로그
◈ 참조 키워드
중구 (4) 백과 한양도성길 (4) 종로구 (3) 백과 돈의문 (2) 백과 숙정문 (2) 백과 창의문 (2) 백과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2)
▣ 백과사전
조선의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부터 서울을 둘러싸 쌓은 성벽. 사적 제10호. 둘레 약 17㎞, 면적 59만 6,812㎡. 1396년(태조 5) 약 11만 8,000명이 공사에 참여해서 쌓았다.
 
조선을 건국한 후 태조는 1395년(태조 4) 9월 도성 축조 도감을 설치하고 정도전으로 하여금 성벽을 쌓을 곳을 돌아보게 했다. 이에 정도전은 백악산· 낙산· 목멱산· 인왕산에 직접 올라 이 산들의 능선을 연결하는 5만 9,500자의 성곽 부지를 결정했으며, 실제 공사는 그 이듬해인 1396년(태조 5) 1월 시작되어 49일 만에 완성되었다.
 
우선 전체 길이를 600자씩 나누어 각 구간마다 《천자문》의 글자 하나씩으로 이름을 정했더니 모두 97자가 쓰였다. 첫 글자인 천(天)자는 백악산 동쪽의 첫 구간에 쓰였으며, 맨 끝자인 조(弔)자는 낙산· 목멱산 · 인왕산을 거쳐 다시 처음의 백악산으로 돌아가 그 서쪽에 쓰였다.
 
600자씩인 공사 구간은 다시 100자씩 6개 구역으로 나뉘어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각각의 구역에 책임자들을 임명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튼튼한 성벽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때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해 각자가 맡은 구역의 성벽에 관직·고향·이름 등을 새겨 넣도록 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일부 성벽들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 성벽을 쌓을 때는 돌로 쌓는 석성과 흙으로 쌓는 토성으로 구분해 쌓았는데, 주로 산지에는 석성을 쌓고 평지에는 토성을 쌓았다. 이 당시 석성을 쌓는 데 쓰인 돌들은 거의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이용했지만 벽면은 수직을 이루었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석성의 총 길이가 1만 9,200자, 토성의 총 길이는 4만 3,000자였다. 서로 다른 두 형태의 이 성곽들은 각기 다른 높이로 쌓아졌는데, 석성은 대체로 15자 정도의 높이였으며, 토성은 25자 높이로 쌓았다. 물길이 나 있는 곳에는 물길을 가로질러 홍예를 쌓고 좌우에는 돌로 된 성곽을 쌓았다.
 
같은 해에 토성 을 석성으로 바꾸는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4 대문과 4소문을 만들었다. 동쪽에 흥인지문(동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남대문), 북쪽에 숙청문이 4 대문으로 지어졌으며, 사소문으로는 북동쪽에 홍화문, 남동쪽에 광희문, 북서쪽에 창의문, 남서쪽에 소덕문이 지어졌다. 이 가운데 흥인지문 에만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담장인 옹성을 쌓았고, 숙청문에는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암문).
 
세종 때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1422년(세종 4)에 토성 부분을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태조 때와는 다르게 직사각형으로 잘 다듬어진 돌을 사용했다. 1451년(문종 1)에도 수리가 이루어졌으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곳이 무너지는 등 피해를 입었고, 1616년(광해군 8)에 그 일부를 수리했다.
 
1704년(숙종 30) 이후 약 5년 동안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이 때 고쳐 쌓은 성곽들에는 정사면체의 잘 다듬어진 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전 태조 때나 세종 때 쌓은 것들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1743년(영조 19)에도 일부분에 대한 보수를 했고, 1869년(고종 6)에는 동대문을 수리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고의로 성곽과 성문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서울 성곽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삼청동·성북동·장충동 일대뿐이고 8곳의 성문도 숭례문· 흥인지문 등 4곳만이 남아 있다.
 
사적으로서의 명칭은 지정 당시 서울성곽으로 정하였다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자격이 부여되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으나, 2017년 3월 등재 불가 통보를 밟으면서 불발되었다.
 

4대문과 4소문

4대문은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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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