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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7.12.11. 11:52 (2017.12.11. 11:52)

원각사비. 보물 제3호 (2016. 6. 1)

 
탑골공원에는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보물 3호인 원각사비가 있다. 정문인 삼일문에서 보면 오른쪽 방향에 원각사 비가 있다.
탑골공원에는 국보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보물 3호인 원각사비가 있다. 정문인 삼일문에서 보면 오른쪽 방향에 원각사 비가 있다. 원각사는 탑골공원(구 파고다공원) 자리에 있던 절로서,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조계종 본사로 세웠는데, 조계종이 없어지자 관서(官署)로 사용하였다.
 
세조가 간경도감에서 『원각경(圓覺經)』을 번역하고, 양주 회암사(檜巖寺) 사리탑에서 사리를 나누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다시 원각사를 짓고 마당에 13층 사리탑을 세웠다. 원각사비는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비석으로 보물 제3호이며 전체 높이 4.9m, 비신 너비 1.3m. 1471년(성종 2) 세웠다.
 
비문은 유명한 문장가와 서예가가 맡았는데 앞 비문은 김수온(金守溫,永同출신, 1409~1481)·성임(成任, 1421∼1484), 뒷면의 추기(追記)는 서거정(徐居正, 1420~1488)·정난종(鄭蘭宗, 1433∼1489)이 각각 짓고 썼다. 대리석의 비는 마멸이 심하여 전혀 알아볼 수 없는데, 다행히 비문의 내용이『속동문선(續東文選, 1518년:중종 13, 신용개(申用漑)·김전(金詮)·남곤(南袞)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시문집)』에 실려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이수(螭首, 비석의 머릿돌)와 비신(몸돌)은 큰 돌로 보주(寶珠, 연꽃 봉오리 모양의 장식)를 받든 형상의 쌍룡(雙龍)을 조각하였다. 이수 아래쪽에 ‘大圓覺寺之碑(대원각사지비)’라고 강희맹(姜希孟, 1424년 ~ 1483년)의 글씨로 새겼다.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화강암)은 둔중한 몸체로 머리는 목을 표현하지 않고 앞으로 나와 있다. 이 돌거북은 일반적인 육각형 귀갑문(龜甲文,거북등 무늬라고도 하며 거북의 등 모양으로 여섯 모 꼴이 가로 세로로 잇달아 있는 무늬)) 대신에 사다리꼴 평행 세선을 새겼으며 등 중앙에는 연잎 모양의 비좌(碑座, 碑身을 꽂아 세우기 위하여 홈을 판 자리)와 물고기 비늘을 조각한 꼬리와 다리가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당비(唐碑)의 형식을 따른 복고적인 석비로, 조각이 번잡하고 사실적인 표현에서 미숙하나 조선시대의 독특한 조각 형태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 보호각을 세우기 전의 사진
 
 
 
▼ 원각사비 보호각
 
▼ 머릿돌인 이수와 비신은 대리석으로 한 몸처럼 만들었고 거북은 화강암이다.
 
▼ 이수는 쌍룡 조각으로 비신과 한 몸이며 이수 아래쪽에는 강희맹(姜希孟)의 글씨로‘大圓覺寺之碑(대원각사지비)’라 새겼다.
 
 
 
▼ 이수 옆면
 
▼ 거북 뒤의 물고기 비늘을 조각한 꼬리와 다리가 특이하다.
 
▼『속동문선(續東文選)』은 1518년 신용개(申用漑)·김전(金詮)·남곤(南袞)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시문집이다.
 
 
 
원각사비 관련 사진 모음
 
▼ 1880년대 말 대원각사비 삽화
비숍은 1883년부터 1887년 사이에 조선을 4번 방문했으며, 1898년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을 펴냈고, 1904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1904년
 
▼ 1910년
 
▼ 일제 강점기
 
▼ 1933년
 
▼ 1950년대
 
 
★ 탑골공원 찾아가기 :연중무휴, 09~18시 개방
서울 종로구 종로1.2.3.4가동
 
출처: 민족문화대백과,문화재청,네이버지식검색,구글사진, 서울 포스트,조선고적도보
• 활동 지역 : 강서구(江西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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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