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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7.12.12. 10:09 (2017.12.12. 10:06)

북촌 인촌 김성수 고택 (2016. 6. 9)

 
서울 북촌(종로구 계동)에는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 65세) 선생이 살았던 고택이 있습니다. 개방을 하지 않아 안을 볼 수 없으며 오직 안내판이 있을 뿐입니다.
서울 북촌(종로구 계동)에는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1891~1955, 65세) 선생이 살았던 고택이 있습니다. 개방을 하지 않아 안을 볼 수 없으며 오직 안내판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대동세무고 안으로 들어가 담너머 안을 보려 했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유재산이므로 공개를 하고 안하고는 소유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생 교육과 언론에 종사하셨던 인촌 김성수선생을 볼때 고택을 개방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겟습니다.
 
▶ 인촌 고택 안내판
 
①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② 지정번호 : 11-1-9
③ 주소 : 종로구 계동 132번지 (3호선 안국역 대동상고 방향 1km)
④ 대지 :1,256㎡, 건물 : 347㎡
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에서 관리
⑥ 교육자이며 경제인이며 언론인으로서 민족교육과 민족자본 육성 및 언론을 통한 민족게몽운동에 주력하였던 인촌(仁村)이 거주하던 집이다.
 
이집은 1918년 김사용에게서 인수하여으며 2.8 독립선언준비, 3.1운동의 초기 준비 단계 등에 항일 독립 투사들이 모인 밀회의 장소였으며,
 
또한 중앙고보, 보성전문, 동아일보 설립을 구상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배후지원 및 민족 교육, 민족 문화 보급을 위하여 노력하였던 뜻깊은 장소이다.
 
 

 
▼ 굳게 닫힌 문
 
▼ 인촌 선생 고거
 
▼ 고택 안내판
 
▼ 대동세무고에서 본 고택
 
 
▼ 집안 풍경 -채널 A에서 캡쳐-
 
▼ 계동 집안의 "인촌 김성수 상"
 
▼ 과천 막계동 국립현대 미술관 입구의 "인촌 김성수 선생상"으로 종로구 계동 고택 동상과 유사하다.
 
 
▼ 계동집에 적힌 공선 사후(공은 먼저, 사는 나중에 하라)
 
 
 
▶ 친일 반만족 행위 여부는 대법원 재판 진행중
 
2016년 1월 고등법원에서 1937년 7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인촌 명의로 징병이나 학병 동원을 독려하는 내용의 말이나 기사들이 게재된 것에 대해서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仁村 김성수 선생의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하여 대법원 재판이 진행중이다.
 
 
▼ 인촌 김성수 (1891~1955)
 
전라북도 고창 출신. 본관은 울산(蔚山). 호는 인촌(仁村). 호남의 거부였던 경중(暻中)의 넷째 아들로, 3세에 큰 아버지인 기중(棋中)의 양자가 되었다. 1914년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1915년 중앙학교(中央學校)를 인수, 경성직뉴주식회사(京城織紐株式會社, 경성방직) 경영과 1920년『동아일보』창간 등 일제식민지기 교육계·언론계·재계에서 활동했다. 정부수립 후 1951년 2대 부통령에 취임하기도 했다.
 
 
☞ 인촌 선생의 묘소는 원래 고려대학내에 있다가 1987년 경기도 남양주로 이장했다.
 
 
★ 서울 계동 인촌 고택 찾아가기
인촌고택(서울 종로구 가회동)
 
출처: 인촌 기념회, 두산백과,유튜브 ,고대신문,네이버지도
• 활동 지역 : 강서구(江西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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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