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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7.12.26. 11:41 (2017.12.26. 11:41)

법정(法頂)과 길상사 (2017. 8. 11)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서울 성북구 길상사는 "무소유(1976년 발간)" 를 쓴 법정스님과 인연이 많습니다.
삼복중 말복입니다. 무더위도 점점 약해지겠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서울 성북구 길상사는 "무소유(1976년 발간)" 를 쓴 법정스님과 인연이 많습니다. 법정 스님(속명 박재철:朴在喆, 1932 ~ 2010)은 김영한(법명 길상화) 보살의 대원각 시주를 4차례나 거부했다가, 시주자의 진심을 받아들여 길상사가 탄생하였습니다.스님 개인이 아닌 조계종단이 대원각을 시주받고 법정은 회주(會主,상징적 관리자)가 되는 조건이며, 1997년 창건법회 때 법정은 시주자에게 염주와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습니다. 창건법회에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할 정도로 종교간의 화목을 꾀했던 법정은 2010년 3월 11일에 성북구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입적(入寂)하였으며 영정과 유품을 전시한 진영각(眞影閣)이 사찰 내 있습니다.
 
 

 
▼ ⑭ 진영각
 
 
 
 
▼ 사용하시던 '빠삐용 의자"사진
빠삐용(Papillon,프랑스어로 나비)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었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는 거야 - 법정 -
 
 
▼ 진영각 내 사진 촬영 금지로 홈페이지 사진을 올립니다.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고 당부한 법정스님의 뜻에 따라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
 
▼ 지금은 안 보이는 몇 년 전 있던 길상사 내 법정스님의 글귀들입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하나같이 인생은 짧다고 한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때
인생은 곧 끝나버린다는 것.
후딱 지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곧 끝나버린다는 말이다.
 
사람의 덕이란 어디서 오겠습니까?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선뜻 도울 때 덕이 자랍니다.
어디서 덕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을 기꺼이 도와줄 때
덕의 싹이 자랍니다.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빈 마음
그것은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에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 법정 스님 (比丘 法頂, 속명 박재철(朴在喆) / 1932~2010)
법정(수행을 잘하여 法의 頂수리에 서야한다) : 효봉스님이 지어준 법명
 
 
ⓐ 1932년 전남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상과 3년 중퇴하다.
 
ⓑ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삶과 죽음에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 1956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沙彌戒,十戒)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이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고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比丘戒,비구가 받아 지켜야 할 250가지의 계율)를 받았다.
 
ⓓ 1960년 운허 스님의 부름으로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며, 불교계 언론과 유력한 신문에서 죽비 같은 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 1973년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불교계 처음으로 민주화 운동(민주 수호 국민협의회)에 참여하다가, 1975년 10월 수행자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고자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무소유 사상을 설파한다. 1976년 "무소유" 책을 발간하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 정진하였다.
 
ⓕ 1993년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독립기념관, 창덕궁 부용정 연못의 연꽃이 모두 없어지는 기막힌 사실과 마주하며, 그 어이없는 심정을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하여 종교 편향정책을 지적하고, 우리들 마음에 맑고 향기로운 연꽃을 피우고자 순수 시민운동을 주창하였다.
 
ⓖ 1994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첫 대중 강연을 시작으로 뜻을 함께 하는 회원들을 이끌어 주셨으며,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길상화(故김영한) 보살이 7천여 평의 대원각을 시주하여 1997년 12월 14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길상사가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길바란다"고 창건 법회에서 말했다.
 
ⓗ 스님은 병상이 깊어진 뒤에도 침상에서 예불을 거르지 않았으며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씀을 남긴 뒤 단 하루도 잔 적이 없는 길상사에서 2010년 3월 11일(음력 1월 26일) 입적(세수 78세, 법랍 55세)했고 순천 송광사에서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수행자로서 마지막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스님은, 이 시대의 맑고 향기로운 연꽃이 되어 우리들 영혼을 맑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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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상사 홈페이지, 유튜브, 무소유,네이버, 구글
• 활동 지역 : 강서구(江西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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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