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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7.12.26. 12:11 (2017.12.26. 12:11)

3년의 사랑, 60년간 이별 (2017. 8. 16)

 
서울 성북구 길상사를 휴일 둘러보았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길상사(吉祥寺)란 이름을 남기고 간 길상화(吉祥華, 故 김영한)에 대하여 포스팅합니다.
서울 성북구 길상사를 휴일 둘러보았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길상사(吉祥寺)란 이름을 남기고 간 길상화(吉祥華, 故 김영한)에 대하여 포스팅합니다. 사찰 안에 시주자 김영한(1916~ 1999, 자야:子夜는 백석 시인이 불러준 이름, 길상화는 법명)의 사당과 공덕비가 세워져 있어 방문객의 눈길을 받고 있지요. 시주자가 사랑했던 사람이 바로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 1912~1996, 북한에서 사망) 시인입니다. 3년의 뜨거운 사랑과 60년의 이별이지만, 시주자는 1,000억 원이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백석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사랑하며 그의 시를 좋아했던 여인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못다 한 얘기 나누세요!
 
▼ 길상화의 사당(祀堂)과 공덕비
 
▼ 안내문
 
 
▼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 백석 시집 "사슴" (1936년 100부 한정판, 33편의 시 수록)
 

 
▶ 김영한 (金英韓, 진향:眞香, 자야: 子夜, 길상화: 吉祥華, 1919~1999)
 
ⓐ 1916년 서울 관철동 출생.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
 
ⓑ 1932년 가정형편으로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됨(진향)
 
▼ 20살의 진향(장발 화백 그림)
 
ⓒ 1935년 일본 유학 중 학업포기하고 귀국(유학을 도와준 조선어학회원인 신윤국 선생이 구속되자 면회하러 감)
 
ⓓ 1936년 요릿집 함흥관에서 천재 시인이자 멋쟁이 백석을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함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백석-
 
▼백석 사진(1937년 함흥 영생고보 시절)
 
ⓔ 22살의 어여쁜 기생과 26살의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선생이자 시인인 백석의 만남이었다. 이때 백석 시인이 지어준 아호(雅號)가 자야(子夜)였다. 지금 연인들이 "자기야"하는 것처럼.
 
ⓕ 백석이 기생과 사는 것이 못마땅한 백석 부모가 강제 결혼시키나, 백석은 첫날밤 도망쳐 자야에게 돌아와 청진동 집에서 3년간 알콩달콩 동거.
 
▼청진동 살던 옛집 : 1984년 12월
 
ⓖ 1939년 백석의 결혼문제로 부자지간(父子之間)에 갈등이 생기자, 연인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만주 장춘으로 같이 가자는 백석 제의를 거부해 헤어짐.
 
ⓗ 해방 후 남과 북이 갈리고 6.25로 백석과 영영 이별
 
ⓘ그렇다면 백석과 결별한 후 남한에 남은 진향, 즉 김영한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김영한은 1951년 성북구 지금의 길상사가 있는 땅을 구입합니다. 원래 이곳은 일제시대 백인기의 별장으로 건물 3채가 들어서 있었으며 해방후에는 청암장으로 불렸습니다. 김영한은 당시로서는 거금 650만원을 주고 청암장을 인수한 뒤 요정으로 탈바꿈시켰지요. 이곳은 1970년대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성장
 
ⓙ 1953년 중앙대 영어 영문학과 졸업
 
ⓚ 1995년 "내 사랑 백석" 에세이 발간 : 표지는 정현웅 화가 작품
 
이것이 청년시인이고, 잡지 여성 편집자 미스터 백석의 프로필이다.미스터 백석은 바로 내 오른 쪽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을 오리기도 하고 와리쓰게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밤낮 미스터 백석의 심각한 프로필만 보게 된다.미스터 백석의 프로필은 조상(彫像)과 같이 아름답다.미스터 백석은 서반어 사람같기도하고 필리핀사람도 같다.미스터 백석도 필리핀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미스터 백석에게 서반어 투우사의 옷을 입히면 꼭 어울릴 것이라 생각한다. -현웅-
 
ⓛ ☞ 1991년 백석 시인의 팔순날 아침 자야의 사랑 편지
 
그리운 당신이여
당신의 팔순 날 생신날 아침입니다.
덧없는 세월은 쉽게 흘러 흘러, 바로 이날이 어느 덧 당신의 여든이 다가 왔군요.
 
우리 생애에 있어서 이별의 세월은 두 사람의 삶을 몽땅 묻어버린 공간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분망한 초침은 멈추지 않아 덧없이 세월은 흘러갔습니다.
 
당신은 약관 26세. 내는 22세. 애련했던 우리들의 청춘은 이제 뜨거운 눈물에 젖어 폭폭한 한숨에 싸여 있습니다. 지난 날 도저히 피하지 못할 비정한 사랑의 술래잡기만 줄곳 이어집니다.
 
함흥에서 서울까지의 그 머나먼 천리 길을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도망꾼의 나그네 길은 길고도 고달프고, 또 슬프고 외롭기만 했습니다. 당신은 이런 저를 주소도, 지도도 한 장없이 끝없이 뒤쫓기만 하던 정열의 술래였지요?
 
그대 손을 떠나면 곧 망가져버리는 이 가련한 철부지를 호랑나비같이 용기내어 찾어와 저를 온통 사랑의 둥지에 가두어 놓던 당신! 우리 두사람은 정다운 원앙새 한쌍이 되었고 당신은 저를 사랑으로 길들이고 정열로 다스렸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고와해하고 행복해하던 당신이셨습니다.
 
뜻하지 않은 이별이 찾아와 우리는 어이없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별로 말미암아 겪게 된 그 애절한 그리움을 곰삭이면서 저는 춘풍추우, 서글픈 세월만을 약으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당신을 기다리며 저는 끌려오듯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벌써 당신의 팔순, 저도 백발이라니! 이것이 세상의 무상함이란 것인가요?
 
ⓜ 법정스님의 "무소유" 글을 읽고 시주한 대원각이 1997년 길상사로 탈바꿈함. 길상사란 명칭은 사랑했던 시인 백석이 일본 유학시절 하숙집 주소가 길상사(吉祥寺) 1875번지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고, 순천 송광사의 옛 이름이기도 함.
 
ⓝ 1999년 2억원을 내서 사랑하던 시인 백석을 위한 백석 문학상(白石 文學賞)을 만듬.
 
☞ KAIST에 김영한 글로벌 리더 장학기금 출연
 
ⓞ 말년의 김영한 보살
 
백석(白石)은 북에 있지만 자야(子夜)는 잊지 아니하여 "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이네요!
 
 
출처: 내사랑 백석, 길상사 홈페이지. 구글, 네이버, 백석평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길상사 찾아가기
한성대역 6번출구에서 성북 마을 버스 02번 타고 길상사 하차
• 활동 지역 : 강서구(江西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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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