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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고재완의 지식창고】 2018.04.05. 23:31 (2018.04.05. 23:31)

효종대왕릉(寧陵) (2017. 12. 27.)

 
경기도 여주에서 영릉하면 헷갈립니다. 영릉하면 세종대왕릉(英陵)인지 효종대왕릉(寧陵)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요. 거리상 약 700 m이지만 세종대왕 영릉과 효종대왕 영릉 사잇길을 "왕의 숲길(숙종, 영조, 정조가 걸은 길)"로 걸을만합니다.(
경기도 여주에서 영릉하면 헷갈립니다. 영릉하면 세종대왕릉(英陵)인지 효종대왕릉(寧陵)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요. 거리상 약 700 m이지만 세종대왕 영릉과 효종대왕 영릉 사잇길을 "왕의 숲길(숙종, 영조, 정조가 걸은 길)"로 걸을만합니다.(왕복 40분 소요)
 
효종대왕릉도 세종대왕릉처럼 봉분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영릉의 복원, 정비 공사가 진행 중(~2019. 12월)이라 무료입장이며 세종대왕릉부터 보시고 효종대왕릉으로 다녀 나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최근 개관하고 무료인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서 두 임금의 치적 등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 병자호란(1636년,인조14) 11개 조약
① 조선은 청에 대해 신하의 예를 행할 것.
② 명나라에서 받은 고명책인(誥命冊印)을 바치고 명과의 교호(交好)를 끊으며 조선이 사용하는 명의 연호를 버릴 것.
③ 조선왕의 장자(소현세자)와 차자(봉림대군,효종) 그리고 대신의 아들을 볼모로 청에 보낼 것.
④ 청이 명을 정벌할 때 조선은 기일을 어기지 말고 원군(군사)을 파견할 것.
⑤ 가도(椵島, 椴島라는 설도 있음.)를 공취할 때 조선은 배 50척을 보낼 것.
⑥ 성절(聖節)·상삭(上朔)·동지(冬至)·중궁천추(中宮千秋)·태자천추·경(慶)·조(弔) 사신의 파견은 명의 구례(舊例)를 따를 것.
⑦ 압록강을 건너간 뒤 피로인(포로) 중에서 도망자는 전송할 것.
⑧ 내외제신과 혼인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할 것.
⑨ 조선은 신구(新舊) 성원(城垣, 성곽)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 것.
⑩ 올량합인(兀良合人, 여진족)은 마땅히 쇄환(돌려보냄)할 것.
⑪ 조선은 기묘년(1639)부터 세폐(공물)를 보낼 것
 
▼ 영릉(寧陵) 안내판
 
효종(1619~1659,41세)은 조선의 고단한 역사를 살았던 임금으로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이었던 효종은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가서 8년을 살았지요. 귀국 후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자 제17대 왕이 되어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해 화폐개혁을 하는 등 전후 개혁과 안정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대표적인 외교정책은 북벌정책인데 효종이 재위 10년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북벌의 의지도 꺾이고 말았네요.
 
 
▼ 재실(齋室, 능의 부속 건물)
 
 
 
▼ 재실 내 300년 된 회양목
 
 
 
▼ 우물
 
▼ 효종대왕릉 홍살문
 
▼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에서 물길이 지나가는 금천교(禁川橋)
 
▼ 단청 공사 중인 정자각(丁字閣)
 
▼ 옛 사진(정자각에서 봉분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 향어로(香御路)
 
▼ 비각 내 표석
 
 
조선국 효종대왕 영릉
기해년(효종10, 1659) 5월 4일 갑자일에 효종 선문 장무 신성 현인 대왕이 승하하여 그해 10월 29일 병진일에 양주 건원릉의 오른쪽 근처 능선에 장사지냈다가, 계축년(현종14, 1673) 10월 7일 계묘일에 여주(驪州) 영릉(英陵)의 동쪽 홍제동 자좌오향(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방향) 능선으로 이장하였다.
 
이듬해인 갑인년(1674) 2월 24일 무오일에 인선왕후 장씨가 승하하여 그해 6월 4일 무술일에 효종대왕의 능 아래에 부장하였다.
 
▼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왕은 위, 왕후는 아래에 위치한 봉분)
 
▼ 인선왕후릉(仁宣王后陵)
 
 
▼ 곡장(曲墻)이 없고 난간석과 석물(석호石虎, 석양石羊)이 있다.
 
▼ 효종대왕릉
 
 

 
▣영릉(寧陵) 개요
☞ 1659년 왕릉(동구릉) , 1673년 왕릉 여주로 천릉, 1674년 왕후릉 조성
☞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쌍릉입니다. 원래 효종의 능은 건원릉 서쪽 산줄기(현재 구리 동구릉 내 영조, 원릉 자리)에 병풍석을 갖춘 왕릉으로 조성되었으나 1673년 현종 때 석물에 틈이 생겨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여주의 영릉(英陵) 곁으로 옮겼지요. 그 다음 해 인선왕후의 능이 동원(同原)에 택정되어 왕릉 앞에 왕비릉을 써서 앞뒤로 나란히 동원이강릉을 이루었습니다.
왕릉과 왕후릉의 상설 제도는 같으며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풍석이 세조 이후 사라졌다가 한동안 다시 쓰였는데, 이 능에서 또다시 폐지되었습니다. 난간석을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글씨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고 있네요.
 
▼ 팜플릿
 
 
 
 
▼ 무료입장
 
★찾아가기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출처: 민족문화대백과,국립문화재연구소, 네이버지도,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
• 활동 지역 : 강서구(江西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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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