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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3.18. 12:23 (2018.03.18. 12:23)

〈혼불〉 배경이 된 이웅재 고가를 아십니까

 
혼신의 힘을 다해 원고를 썼던 최명희 작가의 〈혼불〉 전시관을 가다
▲ 이웅재 고가 모습으로 왼쪽에 공루가 보인다. ⓒ 오문수
 
며칠 전 <혼불>의 배경이 된 이웅재 고가를 방문했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456-1에 있는 이웅재 고가의 건립 시기는 1500년대로 춘성정 이담손이 마을에 입향해 지었다. <혼불문학관>을 안내해주기 위해 나선 임실군 문화해설사 강명자씨와 대화를 나눴다.
 
"강 선생님, 진짜 혼불을 본적이 있어요?"
"아니요. 어른들한테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요즈음 젊은이들은 혼불을 본 사람이 없을 거예요. 내 어린 시절 무더운 여름날 밤에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우며 가족들과 얘기할 때면 밤하늘에 다리미 같이 생긴 혼불이 동네를 몇 바퀴 돌다 산으로 사라져요. 그걸 본 아이들은 무서워 '엄마야!'를 외치며 방안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썼어요. 혼불이 나가면 사흘 안에 반드시 사람이 죽어나갔습니다. 어른들 얘기에 의하면 혼불이 떨어진 지점이 명당이라고 들었어요."
 
"아하! 그래요. 최명희씨의 <혼불>속에는 옛 풍속을 그대로 묘사한 내용이 많아요. <혼불>을 이해하려면 이웅재 고가를 반드시 알아야 해요. 집안구조며 돌담 하나하나까지도 그대로 묘사했으니까요."
 
<혼불>의 배경이 된 이웅재 고가
 
▲ 이웅재 고가 정문에 있는 솟을대문 모습. 입구 앞에는 하마석 두개가 세워져 있어 세도가였음을 알 수 있다 ⓒ 오문수
 
▲ 솟을대문 현판에 씌어진 효자 현판 모습 ⓒ 오문수
 
그의 안내로 이웅재 고가를 방문했다. 정문 양쪽에 하마석이 놓여있어 위세가 대단한 집안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솟을대문 현판에는 '유명조선효자증통정대부사조참의이부위자려(有明朝鮮孝子贈通政大夫史曹參議李父胃之閭)'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고가는 나지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안채·사랑채·안행랑채·대문채·사당으로 구성돼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몸채에 동서 양측으로 날개를 달아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몸채는 각각 2칸의 안방과 대청이 이어지며 대청 동측에 건넌방 대신에 도장을 설치했다.
 
500년 넘은 한옥이 그대로 보전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동행했던 강명자씨한테 물어보니 "안대청 상량 기록으로 보아 1909년에 전체적인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답했다.
 
강명자씨는 "효령대군의 증손자로 전주이씨 입향조"라고 설명하며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보면 이웅재 고가의 집안 구조뿐만 아니라 돌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그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문을 들어서자 지상에서 1.5m 떨어진 높이에 나무판자로 만든 공루가 있었다. 강명자씨가 공루에 대해 설명해줬다.
 
"냉장 시설이 없는 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부패돼 냄새가 나니까 시원한 공루에 시신을 모셨다가 장례를 치렀어요. 더군다나 양반집은 5일장을 지냈잖아요"
 
안행랑채는 방아실, 안변소, 광, 책방으로 구성됐으나 근래에 외양간을 마련했다. 안방으로 들어가는 왼쪽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신 감실이 있어 전통을 중히 여긴 집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루안채와 안행랑채가 엇비스듬히 만나는 곳에 중문이 있다. 이 중문을 나서면 사당을 바라보며 사랑채 뒤로 나오게 돼 있다. 강명자씨가 사당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일반인들은 4대까지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5대손이 나오면 산에 모시고 시제를 지냅니다. 그런데 이웅재 고가는 왕가라고 해서 바깥에 나가 시제를 지내지 않고 집안에 모셨어요."
 
 
▲ 이웅재 고가에 있는 사당 모습. 일반인들은 4대까지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다 5대손이 나오면 산에 모셔 시제를 지내지만 왕가라고 해서 집안에 사당을 지어 집안에서 모셨다 ⓒ 오문수
 
▲ 이웅재 고가에서 사당으로 나가는 문위에 슬레이트 지붕이 설치되어 있다. 옛 고가를 체험하기 위해 온 학생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 오문수
 
남자들은 정문으로 출입하고 여자들은 사당쪽 뒷문으로 출입했다고 하니 남녀차별이 심한 옛 풍속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사당채로 건너가는 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해에도 몇만 명이 방문하고 학생들의 체험학습 현장이기도 한 고가에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있는 모습을 본 학생들이 뭐라고 할까?
 
임실문화원에서 제공한 <임실항일운동사>를 보면 이웅재 일가는 세도가였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신망도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 임실독립운동을 주도해 16명이 투옥과 징역형을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속 문화를 생생하게 그린 <혼불>
 
▲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기리기 위해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에 설치한 혼불문학관 모습 ⓒ 오문수
 
▲ 아픈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혼불>을 완성한 최명희 작가 모습 ⓒ 오문수
 
이웅재 고가를 방문한 후 곧바로 혼불문학관으로 갔다. 이웅재 고가와 2km 쯤 떨어진 혼불문학관은 최명희 작가가 혼신을 다해 쓴 소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소설 <혼불>은 1930년대 전라도 남원땅 양반가문의 몰락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는 며느리 3대와 잡초 같은 삶을 이어가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다. 문학관 외벽에는 <혼불>속에 나오는 당시의 세시풍속과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을 찍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 혼불문학관 벽에 전시된 옛 풍속사진 모습 ⓒ 오문수
 
 
▲ 혼불문학관에 설치된 디오라마로 '흡월정' 모습이다. 문중의 대를 이어가기 위한 청암부인의 집념이 효원의 흡월정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재현했다. 흡월정을 통해 조상들의 아들선호 사상과 달을 신봉해 그 기운을 받아 생명을 잉태하려는 샤마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 오문수
 
전시실에 들어서면 복도 양쪽으로 디오라마가 이어진다. 강모와 강실이가 복사꽃 아래서 소꿉놀이하는 장면, 강모와 효원의 혼례식, 액막이 연 날리는 모습, 춘복이 달맞이 장면, 청호저수지가 말라 바닥을 드러내는 모습 등 소설 속의 주요 장면들을 인형과 모형들로 꾸며 놓아 민속 공부도 된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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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