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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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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7.11. 18:32 (2018.07.11. 18:32)

여수에서 열린 몽골 이주민들의 나담축제

 
"몽골에 살았을 땐 강인한 여성으로 살았는데"
▲ 8일, 여수 이순신공원에서 열린 나담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기념촬영했다. 나담축제는 몽골 혁명기념일에 열리는 전통축제로 몽골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다 ⓒ 오문수
 
8일 오후 1시, 여수시 웅천동 소재 이순신공원에서는 여수와 순천 광양에 사는 몽골 이주민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담축제가 열렸다.
 
여수에 시집온 최초의 몽골 여성인 델 게르마가 설명해준 나담축제는 매년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몽골혁명 기념일에 열린다. 몽골어로 '놀이' 혹은 '경기'를 의미하는 축제에는 씨름, 말타기, 활쏘기의 세 가지 경기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델 게르마가 여수에서 8회째 나담축제를 여는 이유를 설명했다.
 
▲ 8일(일), 여수인근에 사는 몽골인들이 웅천소재 이순신공원에서 제8회 나담축제를 벌였다. 여수에 시집온 몽골여성 1호인 델게르마(오른쪽 여성)와 남동생이 사회를 보고 있다. ⓒ 오문수
 
▲ 몽골출신 남성들이 씨름을 한 대신 여성들은 팔씨름을 하며 힘을 겨뤘다 ⓒ 오문수
 
"나담축제는 몽골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로 모든 몽골인들이 몽골로 돌아가 참가하고 싶어 하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맘껏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열었어요. 원래는 11일이지만 평일이라 직장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일요일로 앞당겼어요"
 
본부석에 몽골전통 음식인 '올버브'와 '쇼호르' 등을 준비해놓고 참석한 모든 남자들의 힘을 겨루는 '부흐'가 시작됐다. '부흐'는 몽골 전통씨름 경기로 한국 씨름처럼 상대방의 균형을 깨트려 넘어뜨리면 승리한다.
 
몽골씨름경기 규칙은 선수의 팔꿈치나 무릎이 닿으면 넘어진 것으로 판단한다. 상대 선수의 몸에서 잡을 수 있는 부분은 가슴에 매는 끈, 손목, 팔뚝, 등 뒤다. 잡는 부분에 대한 규칙 이외에 다른 기술 제한은 없다.
 
울란바토르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여수로 시집온 '히시게'의 설명에 의하면 "몽골씨름은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에 몇 시간 동안 계속되며 비가와도 계속한다"고 한다. 몽골씨름을 할 때는 조끼와 반바지를 입지만 이날 열린 씨름대회에서는 편의상 입고 온 그대로 시합에 나섰다.
 
▲ 여수에 사는 몽골인들이 나담축제를 하며 몽골의 '나담축제' 사진을 걸어 놓았다. 축제에는 씨름과 활쏘기, 말달리기의 세 가지 경주를 한다 ⓒ 오문수
 
▲ 여수 흥국사에서 공부하고 있는 몽골스님도 몽골씨름경기에 참여해 솜씨를 뽐냈다. 바야르 설명에 의하면 몽골스님들은 고승을 제외하고는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 오문수
 
▲ 여수 이순신공원에서 열린 몽골전통 '나담축제'에서 멋진씨름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몽골씨름 규칙은 팔꿈치와 무릎이 땅에 닿아야 하기 때문에 재경기를 벌였다 ⓒ 오문수
 
작년에도 우승했다는 선수가 넘어지기 직전 '들배지기'와 같은 자세로 상대방을 넘겼지만, 상대 선수의 팔꿈치나 무릎이 땅에 닿지 않았다며 재경기를 하기도 했다. 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팔씨름으로 힘자랑을 했다.
 
몽골 서부 바얀홍고르 인근의 돈드고비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16년째 살고 있는 바야르는 한국어가 유창하다. 바야르가 사진으로 보여준 돈드고비는 고비사막에 있는 오아시스 마을이었다. 12일 동안 몽골 알타이 답사단 일행들과 몽골 서부 지역을 돌아보며 보고 들은 몽골 역사를 이야기하자 몽골 역사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몽골인이면서도 몽골 역사를 잘 모르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 몽골전통 복장을 소개하는 바야르(맨 오른쪽). 바야르는 몽골서부 바얀홍고르 인근의 '돈드고비'에서 시집왔다고 한다. 그녀가 보여준 돈드고비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오아시스 인근 마을이었다. 어릴적에는 말타고, 산에 나무하러 가기도 하고,40킬로그램 물을 길러오기도 한 강인한 여성이었는데 거의 모든 것이 기계화된 한국에 시집와서 게을러진 것 같다며 웃었다. 맨 가운데 있는 소녀가 한국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난등에르덴이다. 부모따라 한국에 온지 3년밖에 안됐는데 공부를 잘해 학업우수상을 탔다고 한다 ⓒ 오문수
 
"1980년대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다닐 때 제1외국어로 러시아어를 배우면서 몽골 역사를 배워본 적이 없어요. 1990년대에 독립하면서부터 몽골 역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몽골에서 자랄 때에는 말도 타고 산에 가서 나무하며 물 40㎏을 길어오기도 한 강인한 여성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거의 모든 게 기계화되어있고 고장 나면 서비스센터를 부르더라고요. 자꾸 게을러지는 게 싫어요"
 
행사장에는 몽골 전통복장을 한 난등에르덴(초등 3년)이 있었다. 델게르마의 조카인 난등에르덴은 한국에 온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공부를 잘해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학업 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영어공부가 가장 어렵다"고 말한 난등에르덴은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델게르마 설명에 의하면 " 2015년 한국에 입국할 때 한국어를 특별하게 배운 적도 없지만 우리 아이들과 어울리며 3개월 만에 한국어를 터득했어요. 아이들의 언어습득능력에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난등에르덴에게 몽고와 한국의 좋은 점을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몽골이 좋은 점은 넓은 초원이 있어 좋아요. 한국이 좋은 점은 한국 사람들이 다 친절하고 산에 풀과 나무가 많은 점이에요. 부모님이 귀국하면 따라가겠지만 한국에서 공부해 대학까지 가고 싶어요"
 
델게르마가 결혼 과정을 얘기해주며 웃었다.
 
▲ 여수로 시집온 몽골여성 1호인 델게르마(오른쪽에서 4번째)는 한국생활 17년째로 온가족을 초청했다. 남편과 시부모님이 좋은 분들이라 잘해주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한다 ⓒ 오문수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남편을 만나 몽골 부모님한테 결혼하게 해달라고 조르자 부모님께서는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며 반대했어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엄마 자궁 수술을 받기 하루 전에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좋다'고 허락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부모님도 좋고 남편도 좋은 사람을 만나 너무 행복해요"
 
몽골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신익재 사장의 얘기에 의하면 "몽골 지식인들과 얘기해보면 몽골인들은 이웃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픈 과거 때문에 한국과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게 많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몽골인은 3만 5천 명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몽골 인구 중 가장 많아 몽골인들은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고 한다. 몽골 인구가 311만 명이니 몽골인 중 1%가 한국에 사는 셈이다. 민주주의에 눈뜬 몽골은 지금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인들 중에는 몽골인들이 가난하다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재한몽골인들은 한국과 몽골을 잇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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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