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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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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스쳐간…     【바람처럼의 지식창고】 2018.06.13. 09:24 (2018.06.13. 09:24)

전두성의 해병 이야기(6)

 
만고강산(萬古江山) 해병 탱자의 계절로 접어들다.
(근무중대 전자장비 정비교육)
 
* 근무(勤務)중대의 영문표기는 service company로, 본부의 전투지원(보급 및 정비)을 주 임무로 하는 직할중대이다.
'근무중대 해병이 기압 들면 전봇대에 꽃이 핀다. 근무중대에서는 강아지도 건빵을 물고다닌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현란한 꽃 부대이다.
하지만, 해병은 어느 곳에서도 해병이다.
 
 
교육생 막사는 소대 텐트였다.
관물대가 없으니 정리에 신경 쓸 일이 없었고, 총기를 지급하지 않아 병기 수입할 일도 없다.
야전침대가 조금 불편했으나 바닥에서 그냥 생활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치 야영 생활하는듯한 분위기가 내겐 무척 익숙하고 좋았다. (입대 전부터 alpinist로 활동하여 camping은 전문가 수준)
 
내 위로는 입창(영창 생활) 때문에 제대 누락한 47기, 말년 병장 54기, 그리고 57(?), 59기가 있었고
20(??)여 명의 교육생 중 나는 최고 일병으로 서열 5위, No-5였다. 상병은 없었다. (당시 교육생이 몇 명이었는지 기억이 희미함)
 
급조한 교육으로 실무부대에서 진행하였기에 교육 군기는 느슨했다.
하긴 근무 중대 자체가 기압 빠진 끗발 부대인데 교육생 군기 잡는다고 공연히 얽혀 갈등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제대 누락하여 신경 곤두선 47기만 문제였을 뿐 세상에 편한 군 생활이었다.
 
낮 과업이 교육이었으나 통신정비실 소속 교관들은 정비 업무가 바쁜 터라
교육에 그다지 열의가 없고 시간 때우기에 급급했다.
 
주말에는 식수 인원(급식 인원)을 줄이기 위해 외박을 보내주었다.
절반가량의 교육생을 교대로 내보냈는데,
고향이 먼 지방이었던 59기 선임이 외박을 포기하고 자신의 외박증을 내게 주는 바람에 난 거의 매주 외박을 나갈 수 있었다.
단, 격주는 59기 선임의 명찰과 병장 계급장을 달고 다녀야 했다.
 
한 번은 외박 중에 집 동네에서 싸움이 붙었다. 상대는 육군 대위였는데 그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경례를 하지 않고 쳐다보는 태도가 불량했다나…, 공연히 지나가는 나를 불러세워 화를 자초한 것이다.
오대 장성 중의 수장인 해병 병장을 일개 육군 대위가 감히 검문을 하다니,
 
잠시 멱살을 잡고 실랑이 중에 동네 어른이 말리는 바람에 주먹다짐까지 가진 않았다.
6개 내무실을 전전하며 노가다와 선임들의 린치 신공으로 단련받은 해병이다.
 
악다구니만 남은 내게 시비를 걸다니 싶었는데 상대가 정체를 밝힌다. 수경사(수도경비사령부) 헌병중대장이었다.
선임 이름의 외박증만 아니었어도 먼저 한 방 날렸을거다.
아쉬웠지만, 말리는 어른도 있고 동네 사람이라 대충 정리하고 헤어졌다.
 
가끔 명동, 종로에 가면 해병 헌병들이 술집 안까지 순찰을 돌곤 하였고
몇 번 마주쳤지만, 이젠 그동안 쌓인 내공의 이빨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와있었다.
 
단지 문제는 교육대 내무실의 까탈스런 47기 선임이었는데
어느 날 공연히 트집 잡아 린치를 가하는 것을 기합받던 중에 들이받고 도망쳐 몇 시간을 숨어버렸다.
영창을 경험하고 제대까지 누락되었던 47기 선임은 그 사건이 불안했던지 그 뒤로 히스테리를 멈췄고 교육 기간에 전역하였다.
 
내 이름(斗聖) 한자를 멋대로 해석한 54기 말년 선임은 나를 별대가리(頭星)라 놀리며 좋은 술친구가 되어주었고,
사람 좋은 59기는 외박까지 양보하는 분이었으니 밑으로 후임들만 잘 다독거리면 문젯거리가 될 일이 없었다.
 
후임들도 포항 1해병사단을 포함하여 6개 부대 3개 병과를 옮겨 다닌데다,
꼴통 교육대 출신에 81mm 탄약수까지 경험한 캐리어를 확인하고서는 알아서 기었고,
47기 선임과 푸닥거리를 하고 난 뒤부터는 더욱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교육 수료 때까지 난 군대 생활 중 가장 편안한 몇 주를 보낼 수 있었다.
 
교육이 끝나고 원대 복귀하자 포병 1대대 통신반 내무실은
많았던 고참들이 전역하고 어느 정도 정리되어 한결 생활할만한 내무실로 바뀌어 있었다.
 
국방부 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월을 그려주었다.
나 또한 산전수전 다 겪고 해병을 꽤 뚫어보는, 포스가 넘치는 상병이 되어있었다.
【작성】 전두성의 산과 삶의 자취
• 활동 지역 : 강북구(江北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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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