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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수집(屑穗集) ◈
◇ 천정배필(天丁配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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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2. ~7.
계용묵
1
설수집(屑穗集)
 
2
천정배필(天丁配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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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스무닷새던가, 구월 초닷새던가, 좌우간 오(五)자가 하나 달린 날짜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도시 아리숭해서 알 수가 없다. 오정 때는 기류계를 걷어간다고 꼭 그 안으로 써 놓으라는 반장의 지시였건만, 아내의 생일 날짜가 썩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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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생일 날짜는 언제나 이런 계출을 하게 될 적마다 말썽이었다. 왜 그리 자꾸만 잊히는지 들으면 듣는 그시뿐, 그 뒤로는 그저 까먹고 까먹고. 하여간 조상의 젯날과 가족들의 생일 날짜를 까먹는 데는 아마 내가 일등일 것이다. 가다가 아내가 부엌에서 송편을 빚거나 빈대떡이라도 부치는 기미가 보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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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또 무슨 날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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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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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 아니면 조상의 제사도 못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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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핀잔을 받게 되는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맏이놈의 생일 날만은 언제나 필요한 때면 거침없이 쑥 떠오르곤 했다. 그건 섣달 그믐날이라 아마 잊혀지려야 잊혀질 수 없는 특수한 날인 관계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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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랬건 내 나쁜 기억도 기억이려니와, 원 무슨 가족의 성명 삼자와 생년월일을 적어 넣어야 하는 계출이 그리 많은지 아내는 곁에 없고 생일 날짜는 생각 안 나고 해서 독촉을 받게 될 적엔 화가 동하는 때도 있었다. 이번엔 6. 25를 겪고 나서 동적부가 없어진 모양으로 응당 다시 기류계를 정비해야 되게는 되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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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아내의 생일을 떠오르는 날짜가 이전에 쓰던 그 날짜 같지가 않았다. 그러니 식량을 바꿔 온다고 옷가지를 가지고 시골로 간 아내라 쉬이 돌아올 건 아니고 그대로 앉아서 붓방아만 찧다가 에라, 그까짓 생일을 제대로 똑똑히 적어 넣어선 무슨 필요가 있을거냐, 편할 대로 내 생일과 같이 적어 넣자, 그러면 언제나 이러한 경우엔 아내가 곁에 없어도 될 게 아니냐, 생각을 하고 나니 바로 무슨 무거운 짐이나 졌다가 벗어 놓은 것처럼 몸이 가벼워진다. 김성천(金性天)이라고 쓴 자기의 이름 곁에 가지런히 이혜자(李惠子)라고 이름을 써 놓고 비워 놓았던 생년월일란에다 3월 15일이라고 적어 넣은 자기의 생년월일과 나란히 꼭같게 3월 15일이라고 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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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출을 해 놓고 보니 그건 참 그럴듯한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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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피난살이를 하며 돌아다니자니 기류계도 기류계려니와, 피난민증을 받는 데도, 또 자리를 뜨게 되면 뜰 때마다 퇴거계니 전출계니 또 무슨 배급이라 무어라 하여간 가족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어 바쳐야 하는 계출이 어떻게도 많았던 것인지, 그러면서도 나는 전과 같이 아내의 생년월일 때문에 조금도 머리를 쓰는 일 없이 이런 일을 대할 때마다 척척 그저 기록해 넣을 수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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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는 그게 여간한 불평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기의 생년월일을 잊곤 한다면 수첩에라도 기록해 두었다가 뒤져 보면 될 게 아니냐고 따지었으나, 그때는 미처 그런 생각도 못 했거니와 또 했댔자 모르는 생년월일을 어딘들 기입할 수 없었겠지만, 애당초 나는 수첩이란 가지지 않기로 한 사람이다. 수첩에 이것저것 기입해 두었던 비밀이 사람의 눈을 거치게 될 때 분하던 생각을 하면 수첩 생각만 하여도 끔찍했다. 일단 무슨 혐의만 받게 되어 경찰서에 들어서는 날이면 수첩은 공개되고야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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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내는 하필이면 왜 제 생일과 같이 자기의 생일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제 생일을 자기의 생일과 같이 집어넣는담 하고 볼 부은 소리도 하였으니 그까짓 건 마찬가지다. 만일 내가 내 생일을 모르고 아내의 생일만 알고 있더라면 그야 어련히 아내의 생일과 같이 내 생일을 집어넣었으리라고. 대체 문서상 생일이 정확하다는 게 무슨 필요성이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 날 났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으면 그만이지, 또 모르면 어때? 편리하게 사는 게 제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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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지에서 서울로 다시 수복이 되어 환도를 하니 무슨 수속이 또 많았다. 우선 해야 할 것이, 가호적을 해가지고 피난민증과 서울시민증을 바꿔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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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별치도 않은 이런 수속이 그리 용이하지도 않았다. 양식대로 다 옳게 쓴다고 했는데 무에 틀렸는지 동회를 거치기까지 한 게 구청에서는 퇴짜였다. 퇴짜를 맞고 나니 퇴짜를 맞는 그 자체부터가 불쾌도 하였지만, 그 퇴짜를 맞기까지 구청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맥살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은 서류를 다시 정비해 가지고 사람이나 좀 없을 때 가져다 낸다고 일찌감치 갖다 냈더니 서류를 한참 뒤적이며 들여다보던 계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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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자, 이거 여보세요. 생일이 또 틀리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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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접수구로 고개를 기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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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지도 가는 게 서분한데 생일마저 갈라고 그러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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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내외분의 생년월일이 꼭같아서 혹시 틀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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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염려 놓으슈, 딴 건 몰라두 우리 가족의 생일은 내가 더 잘 알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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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그러시겠지요. 참 천정배필이십니다. 동갑에 생일까지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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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간 생일만 틀리지 않았다면 딴 건 인제 틀린 건 없지요? 그럼 됐지 뭘요.”
【원문】천정배필(天丁配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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