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리고 우활(迂闊)할사 이 내 위에 더니 없다
5
바람부는 아침과 비내리는 저녁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8
내 생이 이러하다 하여 장부 뜻을 바꿀런가
10
옳게 살고자 하나 날이 갈수록 어긋나는구나
11
가을에도 부족한데 봄이라고 여유가 있겠으며
14
굶주리고 헐벗음이 내 몸을 괴롭힌들 일편단심을 잊을는가
15
의에 분발하여 내 몸을 잊고, 죽어야 말겠노라고 마음 먹어
17
전쟁 오년에 감히 죽고말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18
주검을 밟고 피를 건너 몇 백 전을 치루었던가?
19
내 한 몸이 겨를이 있어 집안을 돌보겠는가?
20
늙은 종은 하인과 주인의 분수를 잊었는데
21
내게 봄이 왔다고 일러줄 걸 어떻게 기대하겠나?
22
농사 일은 마땅히 머슴에게 물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물을 건가?
23
몸소 농사 짓는 것이 네 분수인 줄을 알겠노라
24
잡초가 난 들에서 밭을 갈던 늙은이와, 밭둑 위에서 밭 갈던 늙은이를
25
천하다 할 사람은 없지만 아무리 갈고자 한들 어느 소로 갈 것인가?
27
서쪽 언덕 높은 논에 잠깐 지나가는 비에
28
길 위에 흘러내리는 근원없는 물을 반쯤만 대어두고
29
소 한번 빌려주마하고 탐탁찮게 하는 말씀
30
친절하다 여긴 집에 달도 없는 황혼에 허둥지둥 달려 가서
32
큰 기침 '에헴' 소리를 오래도록 한 뒤에
33
"어와 그 뉘신고?" 묻는 말에, "염치없는 저올시다." 대답하니
34
"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그 어찌 와 계신고? 하기에,
36
소 없은 가난한 집에 걱정이 많아 왔습니다." 하니
37
"거저로나 값을 치거나 빌려줄 만도 하지만
39
목 붉은 수꿩을 구슬같은 기름에 구어내고
40
갓 익은 삼해주(三亥酒)를 취하도록 권하거든
42
내일로 빌려주마 하고 큰 언약을 하였거든
43
약속을 어겨 미안하니 말씀드리기 어렵구려." 라 한다.
45
헌 갓을 눌러 쓰고 축 없는 짚신에, 맥없이 물러나니
46
풍채(風採) 적은 모습에 개만 짖을 뿐이로다
47
작고 누추한 집에 들어간들 잠이 와서 누었으랴
50
아침이 마칠 때가지 슬퍼하며 먼 들을 바라보니
51
즐기는 농부의 노래소리도 흥이 없어 들려오누나
52
세상 인심 모르는 한숨은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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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엉긴 묵은 밭도 쉽게 갈 듯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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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갈이도 거의 끝나간다. 팽개쳐 던져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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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벗삼아 살겠다는 꿈을 꾼 지도 오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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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일이 거리낌이 되어, 슬프게도 잊었도다
59
저 냇가를 보건대 푸은 대나무가 많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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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꽃 깊은 곳에 명월청풍(明月淸風) 벗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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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없은 풍월강산(風月江山)에서 절로절로 늙으리라.
64
다툴 이 없는 것은 다만 이 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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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狀)한 이 몸에 무슨 갸륵한 뜻 있으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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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 않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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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빈천(貧賤) 슬퍼 여겨 손을 저어 쫗은들 물러갈 리 있겠으며,
70
남의 부귀(富貴) 부럽게 여겨 손을 쳐서 부른 들 나올건가?
71
인간 어느 일이 목숨 밖에서 생겨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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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여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 하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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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의 물도 만족하게히 여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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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뜻이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는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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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太平天下)에 충효(忠孝)를 일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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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에 화목하고, 벗끼리 신의있음을 그르다 할 사람 누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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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나머지 일이야 타고난 대로 살아가려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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