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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오연행록 (戊午燕行錄) ◈

◇ 권6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서유문
1
쵸칠일
2
관의 머므다 져관(䝴咨官)윤민중이녜부의 나아가 샹을 타니져관과역(譯學)고신은 각 은 삼십 냥이오 죵인(從人)도  타 거시 잇다 더라
3
샹통(上通事)윤갑종이주(主客司)지위(知委) 인여 도로 뫼셔 가 표문(表文)을 바다오고 회문(回咨文)도 녜부로셔 다 오니라 일은 길을 날지라군관·역관이 캉의셔 장을 검속(檢束) 다 캉 밧긔셔 짐을 이며 그 즁 비단짐은 여러번 동히고 방망이로 두리 소 관 안 진동여 사의 분분이  거동이 놀난 사람의 모양이라 극히 우읍고 흥졍 되틀이 방방이 메이여 회계니 역관들이 이날은 다 밥을 못먹고 슐이나 싀훤 실과 먹다 니 그 초조히 구 형샹이  보난 더라
4
녜부샹셔긔균(紀呁)이 임의녜부샹셔로 이션지 여러  되엿지라 이 드러온 젹마다 일이 이시면녜부의 샹관이 되고로 갓 신의 왕복아니라역관즁 친 사이  여러히니 사 뉴관(留館) 의 자보면 슐을 주어 슈쟉이 은근고  반시 교위 베플고 보내 반시 문의 나지라역관의 무리도  이치 졉니 이러므로 아국 사이 칭찬 쟤 만터니 이번 드러온 후건량관(乾糧官)이  가볼 고여 오긔샹셰글시 잘 기로 허(自許) 하지라 만일 그대 (字) 구고  대인의 쳥 배라 면 반시 깃거 허락리라 거 드드여니역(李譯)으로 여금 내 으로 글시 쳥라 대 몬져 졍(情)을 표미 방해롭지 아니타 여 시젼지(詩箋紙)과 두 권과 붓 십 병(炳)과 먹 뎡(丁)과 션(扇子) 칠 병 쳥심환 오환과 광졔환 이십환과 졔즁단으로이역을 쥬어 뎐니 과연 죠히 너겨 허락고니역의게 내 벼과 나흘 셔히 뭇고  오 삼대인(大人)이 시(詩) 하냐 뭇더라 니 이날  질 의뎡현(鄭子玄)이 드러와 고긔샹셰그 손로 여금 보내거시 잇더라 고 드리거 바다
5
보니 곳 대(大字)  조희 두 쟝이니  쟝은 슈복강녕(壽福康寧) 네  고  댱은 숑무쥭포(松茂竹苞) 네  시며  네 쟝 조희의도 장마다  글식 거 보내여시니 이도  슈복강녕 네라 조희 아국 문쵸(雙紋綃)   비단 문이오 글 획마다 신션(神仙)과 믈샹(物象)이 긔이 곳과 이샹 플을 그려시니 곱고 빗나미 젼의 보지 못뎐 배라 대개 피인(彼人)의 벽우희  브친 배 이번  보내 글 만흐니이역이 가실 예긔샹셰나 시 하냐 무로미 곳 이 글  쥬고져 므미러라  후쥬(厚州)먹 두 갑과 보이다고(甫夷茶膏) 두 갑과 공쥬젼다(孔州煎茶) 사 봉(封)과 월린향(月印香) 네 갑을 쥬어 긔 긔록여 보내엿지라
6
긔샹셔의 손 관문 밧긔 슈 머무고뎡역(鄭譯)을 블너 뎐(傳)고 인여 즉시 도라갓다 니뎡역의 뎐 배 이더라
7
긔샹세임의 그 손 보내엿지라 어이 나 보고 친히 뎐치 아니코 밧그로 도라 가리오 혹뎡역이 야흐로 나기 당여 총총지라 결을 여 대졉지 못고 소견이 낙(冷落) 고로 밧그로 갓가 시부더라
8
붓슬 드러 말을 대신면역관들이 됴히 아니 너기 의 이시니 대개 이치 면 시러금 져의 입 빌거시 업 고로 이곳의 글  션 신을 고져 아니니 그 졍태  통분더라
9
내 준 바로 져희 답 바의 비길진 갓 간 거시 박고 온 거시 후  아니라 드여 약과  궤와 별노 근 담대 셋과 향초 열 근과 시젼지 삼십 쟝과 벌[별]장지(別壯紙)  권과 쳥심환 열 환과 광졔환 삼십 환과 졔즁단 삼십 환과 계강환 샤당환 각 이십 환을 봉여 긔 초고 긋 두어 쥴 글을 젹어 오 져즈음긔니역(李譯)이 나아가 신여 흠앙(欽仰) 을 배펏지라 위롱[용](威容)을 독용(瀆冗)하 숑측(悚仄)미 날노 깁더니 어졔 슈필(手筆)을 드리워  긔록여 쥬시믈 어드니 밧드러 심획(心劃)을 구경 엇지 공벽(拱壁)을 어덧  이리오 가져 폐방(弊邦)의 도리가 기리 보로 일로리로다 믈며 여러 가지 기친 배  진실노 졍이 전전믈 감샤노라 밤이 도라오 존톄(尊體) 더윽 진즁(珍重)리로다 야흐로 나기 님(臨)지라 문병(門屛)의 나아가 하직을 고치 못니 머리 쳠망(瞻望) 원인(遠人)의 각이 진실노 졀도다 두어 가지 토산(土産)은 져기 졍셩을 표니 믈니치지 아니믈 라노라 기 운태(雲泰)로 여금  날 갓다가 뎐라 여러 쟝 가셔(家書) 고 밤든 후 가[자]니라
 
10
쵸팔일
11
젼봉·역관됴뎡규와샹군관·샤관박도흡[흠]을 션[](先來)로 뎡여 장계(狀啓) 맛겨 이날 새벽의 몬져 보내니 션 쥬야로 창황이 녀가니 극히 어려온 소임이라
12
젼의샹군관나와부군관나와역관나흘 뎡여 셰 사이 가더니 부군관니득연이니시관으로 더브러 별션[](別先來)로 임의 갓지라 이번은 다만 샹군관을 보내라 이에 하직을 고니 만리의 동 배라 비록  날 나나 이  창연여 져즘음긔니시관을 보낼 의 그 셥셥미  이에 비치 못 배라 소임이 즁고 길이 더윽 급니 엇지 갓고 공(公私)의 경경(耿耿)여 닛지 못너라
13
쟝계역관이 몸의 지니고 가 법이라 편지봉(片紙封)을 됴뎡규 맛기니라져관윤민종의 일과 밋슈역김윤셰한 몬져 나니 만리 이역(異域)의 밧긔 고국 사을 맛낫다가 오날 사러금 젼후 하 나니 감연(欿然) 심회 측냥리오슈역은 노병(老病) 지라 밧바 가 이 더옥 념녀로옵더라
14
이날 이 울 아문(衙門)을 즉시 여니 관 근쳐의 잇 샹괴(商賈) 캉의 어즈러이 드러와 문편와 반등(半燈)·초·교의(交椅)·긔명(器皿)을 다 자 가니 날이 느져 나노라 분요(紛擾)면 일흘가 념녜러라 이  관즁의셔 오히려 잠을 지 못여시 여러 되놈이 관의 득여 들네며 요란이 구니 다시 잠을 일오기 어려운지라 대개 이 곳 샹고들이 이 관의 드던 날부터 여러 사의게 은근 졍을 일오고 구기 젼의 졔 스로 여러 가지 일용의 긴 바 빌려 일로  즁의 긴(緊)믈 자 시러금 머믈 요구다가 이졔 니러 이 뒤[해] 임의 진고 도라 갈 긔약이 님박니  젼혀 쟝터와 튼지라 팔을 져허 도라 보지 아니 미 괴이치 아니 일릴러라 날이 은 후의운태긔샹셔집의 녀와 고긔샹셔 새벽의 궐의 드러가고 한 사이 슈표(手標) 여 쥬더라 니 관개란 말은 집을 맛타 본단 말이니 한어로 권라 며 아국 쳥직이와 가지라 슈표 보니 보낸 바 낫낫치 긔록고 그 아긔균이 쥬 것 삼가 맛노라 여시니 하인으로 관원의 일홈을  보내미 극히 괴이더라
15
아밥을 장 일 먹고 삼신이 쟝 나려  샹고의 짐을 오히려 시러내지 아니지라 샹고의 짐이 비록 신의 아른 톄 아닐 배라도 이 짐으로 여 문(柵門)의 니러 무단이 여러 날을 묵으니 대개 신이 문을 날 의 짐이 못 면 문을 지나지 못지라 이번은 이젼의 비여 십일을 더 묵어시 나 날 오히려 이 치 지쳬니역관의 거동과 샹고의 만미 극히 무거(無據)지라샹샹고의 두목을 잡아 드려 결곤(決棍)고부역뎡현의 마두 의 녀 신여 슈죄(數罪)고 시말(巳時末)이 된 후 비로소 길흘 례로 날 일군관 ·역관들이 의복이 경쾌고 가믈 깃거여 강을 건너 드러오던 의 슈셜던 일과 결연(決然)이 다나 각방 쇄마구인(刷馬驅人)과 쥬방 하인은 러진 젼립이 얼골을 덥헛고 삭기 로 허리 동혀시며 더러운 옷시 현슌결(懸鶉百結)엿더라
16
드러올 의 진실노 흉악지라 이졔 니히 반  부억 이의 이셔 옷 닙은  긔거 니 의복의 피폐미 엇지 이러치 아니리오 그러나 흔 믈의 몸도 아니 겻지라 더러온  얼골의 덥히이여 의연 망낭(魍魎)의 거동을 일워시니 이국의 이소(貽笑)믈 면키 어려오나 이   일 업 일이라
17
관을 븨오고 나올  역관이 오 뉴관 십일의 사의 과 이 관 직흰 놈의게 쳔금샹덕(千金賞德)이 되더니 이번은 열흘을 더 묵어시니 대단 샹덕을 친다 며 힁이 나 날 밤은 날이 도록 관 안 사이 지져괴며 을 니고 기와 더져 이 소의 을 일우지 못다 지라긔샹셔의난양속록(灤陽續錄)의 니  한림이 여호의게 홀니여 고려관을 지날 관 안흐로셔 여러 사이 나오 그 즁  노인이 여호 지져 믈니쳐 오 네 엇지 귀인(貴人)의게 감히 범리오 니 여희 한님을 노코 지라 그 한림이 황연(怳然)히 라 도라 갓다  말을 보앗더니 이졔 보 대개 귀믈(鬼物)이 관 안의 이시믈 가히 짐작너라
18
이에 슝문 문앏흘 븍향여 다가 동으로 것거 드러오던 길노 조차조양문(朝陽門)옹셩(甕城)을 지나 (垓字) 리 넘으 일산(日傘)을 벗고 군[뢰](軍牢ㅣ) 납팔을 부러 길을 인도니 오십 일을 갓치인 모양치 지다가 싀훤 의 길이 요원(遼遠)믈 니 듯며 이 머리 들고 굽을 혜오며 길게 울어 고져 니 심도다 믈셩이 고토(故土) 각미로다동악묘문(牌門)을 못 밋쳐 경승가(景勝街)란 문의 다라 상여(喪輿) 위의(威儀) 길흘 막아시 홀난지라 마뒤(馬頭ㅣ) 무로니샹(宰相)의 상(行喪)이라 더라
19
알 븕은 긔 셰워 길을 인도니 모양과 대건쳥문의셔 보던 모양과 다미 업고 그 뒤 십여  군악(軍樂)을 좌우로 항녈을 졍졔(整齊)이 버려시니 각 긔치 두어 과 은금(銀金) 부월(斧鉞) 튼 거시며 쵸엽션(蕉葉扇) 튼 거시 틈틈 쥴을 난화 셧고 나발이며 평쇼(太平簫)며 방향(方響)이며 증과 븍이 갓갓이 이시 풍뉴 아니 며 장 뒤 상여 셔시 민 거시며 크기 경산셔 보던 바와 가지로 다만 누른 비치 아니오 긔구와 의장(儀仗)이 극 찬란니 피국(彼國)의 샹하 분의(分義)  호지 아닌 거시 다 이런 (類ㅣ)러라 상여 뒤 인 고 대포(大布) 샹복을 닙은 쟤 안시니 인  우아 다 희게 민 거시러라
20
이젼은 상인이 상여 알셔 가 거 보앗더니 이 교(轎子) 시니 먼리 가기예 그러가 시부며 흰 교 뒤 인교 태평차(太平車) 라 셧거시 슈십 승이라 겨집이 만흐 다 알플 리오지 아니 여시니 졈은 계집은 연지와 분을 평일치 다려 별  눈과 도튼 단슌(丹脣)의 요괴(妖怪)로온 인물이 만흐며 그 즁  겨집은 소복을 초고 챠의 안자 담대 믈고 눈믈을 흘니니 소견(所見)이 우읍더라
21
이날 일긔 온화고 길 버들이 츈의(春意) 먹으믄 니 역(行役)이 지리(支離)믈 너라
22
거리마다 사마다 광쥬리의 무우 담아 가지고 사 먹으라  혹 겁질을 벗기고 네 의 내여 먹기 게 여 파더라
23
팔니교의 다니 리 너븨 다 슈 셔 가게고 그 길 십 보 니 극히 웅장고 두 편 돌난간이 극히 졍졔더라
24
믈은통쥬로셔븍경으로 조운(漕運) 길이니 믈이 장 너고 리 아  니게 엿지라 일홈을 영통교라 더라
25
올 이 믈 샹뉴로 지나기 보지 못고 갈 통쥬로 쟉노(作路)기예 이리로 지나니라 다리 남편의 돌을 셰오고 크게 다   오 조션대박쳐(漕船大泊處)라 여시니 조운  크게 닷 곳이란 말이오 다리 븍편의 큰 비 잇고 누른 기와집을 지어시니 나아가 보지 못여시나
26
이  다리 노흔 말과 조운  일을 긔록다 더라
27
일역관의 말을 드니 도라올 의 예 미면 큰  만히 본다 고  졔도 대강 니 큰   우희 다 널노 집을 그라시 간간이 막아 방쳐로 미고 두 편의 창을 미고 방 밋  널을 라 아 웃층을 그라시니 아층은 극히 깁흔지라 닥리로 오로리게 여시며 방이 엿아홉 간이 되고 그 안히 아국  간슈(間數)만고  길 팔구 쟝이 된다 며 남방의셔 오  리의 비단 긔(旗) 자 혹 븍을 울니니 이 아국과 고  안 겨집이 보암 쟤 만타니 이치 드럿더니 밋 니 좌우로 둘너보아도   보지 못너라
28
낫이 지난 후 크게 바람이 니러나 지라 을 밧비 몰아통쥬다라 셔문을 드니 셩문 현판은 지[신]경좌보(神京左輔)라 여시며 길 남편은 창고 집을 슈 보나 년여시니 길편으로 문을 내여시 다 봉(封)고 인(印)을 쳐시며 큰 문을 아문(衙門)치 세오고 총군제(總軍儲) 세  다라시니 남방 조운 이라통쥬와븍경으로 드리고 반은 예 두엇다 더라
29
창괴 몃  간인 쥴 아지 못고 집 졔도 아국 창(創社)와 대강 더라
30
셩 여 보 가다가  큰 다리 건너니 다리 아 믈소 심히 장고 믈을 다 돌노 고 그 우 층층 집과 겹겹 다락이 좌우로 셔로 빗최니  승관(勝觀)이러라
31
여 보 가십뤼(十字樓ㅣ)잇고  져기 지나 길의 아문(衙門)이 이시니 니분부(理事分府) 네 자 현판고 문알 흰 양피옷 닙은 사이 이셔 좌우 도라 보아 우리 구경니 관인인가 시부 무 벼인 쥴 모며 지쥬(知州) 종실(宗室)이니 황뎨 슉부 항녈이라 더라
32
셩문 안흐로브터 하쳐(下處)지 길 좌우로 구경 사이 뭇거 세은 며 문마다 다엿 겨집이 다토와 보되 져믄 겨집도 몸을 초지 아니고 션명(鮮明) 의복이며 찬란 단장이 보 배오 인가와 시(市肆ㅣ) 극히 번셩여 사로 른 창과 그림 그린 벽이 극 샤려(奢麗)더라
33
이젼 이 이곳의셔 무(鸚鵡) 만히 보더라 되  못 보니 무 남방새라 본초(本草)의 여시 무 죵 여러히니 록무 무 홍무 오 뮈 이시 다 부으리와 발이 븕다 여시 일 이곳의 무 본역관이 오 무 크기 리 만 리 길고 부으리 져고 등은 초록빗치오 가은 검고 발과 부으리  검으니 이 녹(綠鸚) 종가 시부 발과 부으리 검으니 혹 니 슈 변여 브으리 븕고 암은 검은 빗치 변치 아다 며 사을 보고 커라 니 손이 온단 말이오 로 차라 니 차 가져오란 말이라
34
말을 려면 반시 브으리로 져 안 해 물고 놀다가 말을  심히 갓바구 형상이 이시며 그 해 쇠로 그라시 모양이 동 치 고 좌우편의 물을 담아 두어시니 뮈 녹두 즐기지라 뮈 두 그 이의 안자 좌우로 물을 마시며 녹두  조으니 그 되 심히 공교다 더라
35
됴양문으로부터통쥬셔문 안으로 드러 동문지 길희 박셕을 라시며 슈와 이 메이여시니 그 번셩기 대강심양트 셩지(城池)심양의셔 져기 젹고 번화기 혹 니심양셔 낫다더라
36
니가(李哥)의 집의 슉소니븍경셔통쥬셩 안이 오십 니라 하더라
 
37
초구일
38
 도든 후 발여 븍으로 것거십루의 다르니 문의 삼층으로 현판여시 장 웃층의 텬도쇄약(千都鎖鑰) 네  고 가온대 층은 텬민신[시]쳥(天民視聽) 네  고 아층은 던 바 긔록지 못니라
39
십루 지나 져기 다가 길 외편의  문이 이시니 문의  오 열하츙번뎨일하(日下街藩第日州ㅣ)라 엿더라
40
븍문을 나니 길 두 편의 푸 집이 슈 보 년엿고 가온대 큰 돌다리이시 그 놉희 가히  통너라
41
푸 밧근 다 믈이라 동편의 긴 나모 다리 잇고 다리 건너 인개 이시니 라보 그림더라
42
푸 진 큰 믈이 이시니  결션(結船)고 그 우 바 고 다리 그라시니 거매 니기 평지치 지라 드러올 의 지나던 바와 더라
43
언덕 우 목을 무슈히 하시 큰 것과 져근 것과 굽은 것과 곳은 것 뉴뉴(類類)히 하시니 졍 갑시 잇가 십브더라
44
 반 니 여 믈이 이시니 첫믈의셔 더으고  로 다리 그랏더라
45
이  아 긔운이 창창(蒼蒼)고 고기 잡 사이 그믈을 들고 다리 우 셔시니 그 형샹이 그림 속 보 것 고 슈의 남글 싯고 셩즁으로 드러가 쟤 년쇽엿고  롱의 과 거유 나귀예 시러 가 쟤 이시니 아 져 미쳐 가 거동이러가[더라]
46
믈을 건넌 후 다 무근 밧  히라 인개(人家ㅣ) 없고 길의 초가 푸 두어시 잇고 십여 리 니 임의 골을 켠 밧치 졈졈 만코 길 남나 슙희 큰 집이 이시니 졀인가 십부더라
47
그 겻  마을이 이시 긔명을 샹가촌(上家村)이라 고 삼 리 가 촌낙이 이시니 긔명을 뉴강장(柳家庄)이라 니 이 곳은 다 드러올 젹 지난 곳이 아니라 졈의 니러 즁화(中火)고  삼십 니 여삼하현(三河縣)의 다라 셩 안의 드러나기[가](羅哥)의 집의 슉소니 셩쳡(城堞)이 퇴폐고 쵼개  황낙(荒落)더라
 
48
초십일
49
[텬]명(天命)의 발여 간졍(白磵店)의 니니샹부향화암의 드러 구경지라 내  드러가니 남편으로 졍문이 이시 졔 샤려(奢麗)고 문 두 편 담을 다 분홍칠 여시니 극히 곱더라
50
졍문은 닷고 셔편 겻문으로 니지라 담 밋트로 길게 집을 짓고 녀승이 이시 옷 졔도 예 호녀(胡女)와 다미 업나 너른 며 머리 고 승모(僧帽) 더라
51
이 동편의 쟈근 문이 잇거 드러가니 집이 겹겹이오 금벽이 못 투엿더라
52
졍문이 두 겹이오 문 안희 두 편이 잇고 텬 뒤희 놉흔 다락이 이시니 뎐이 다 간의 가온대 부쳐 안치고 좌우의 협실(挾室)이 이시 그 가온대 다른 거시 없고 오직 교위와 동(童子) 노하시니 그 졔되 졍묘더라
53
압뒤 뎐(殿)과 다락 세 의 두 편으로 솔 나식 심거시니 남기 크기 아이나  그 겁질이 희고 반반기 예 나모와 다고 잣고 나모 형샹이 곳으니 진짓 아다운 남기라 혹 니 일홈이 남경간숑(南京白幹松)이라 니 치형이 오만슈(萬壽寺)의 보던 바와 가지라 더라
54
솔 겻 각각  비 이시니만력(萬曆) 임·갑인냥년의 즁슈고 세온 비러라 다락 동편의 벽으로 닥리 그라 오게 여시 그 노픠 슈십 층이오 너븨 겨유  사이 용납너라
55
븍편으로   집이 이시 극히 졍쇄(精灑)니 이 녀승이 잇 집이라 캉 우희 담을 고 편의 금침을 노핫더라
56
삼신이 다 이 캉의 올나 안나 녜 녀승이 만타  뵈 일이 업니 다 깁히 슘은가 시브더라
57
다만 늙은  녀승이 손을 졉 몬져 차 권고 각 다식(茶食)과 엿과뇽안빙당(龍眼氷糖)을 상의 라 나오거 각각 조희와 환약을 쥬어 답니라
58
혹 니로 동편 벽 우희 벽으로 근 탑이 이시니 대명이 망 후슝졍황뎨의 황(皇妹) 승이 되엿다가 죽으 골을 촌 곳이라 며 혹 니 강희황 뎨누의 츌가여 이 졀의 이시 강희부터 황뎨 샹샹 왕더라 며 태샹황뎨  반산(盤山)을 닐 졔 양 녁님(歷臨)더라 며 이 졀의 이젼  승이 이시  아릿다이 고은지라 태샹황뎨 녁님여실 졔 됴히 너겨 손을 잡고 친압(親狎) 의 잇더니 이후로부터 그 승이 비단으로 손목을 봉고 무단이 얼골을 다리며 다른 승의게 교만을 부리지라 년젼의  신이 이 졀의 들 그 승이 교의(交椅) 노코 만 여 안자  은근 을 일웟더니 신이  무 말을 무니 승이 교의예 려 니러 답여 웃 얼굴이 가히 우흴  지라 신이 그 너모 핍근(逼近)믈 됴히 너기지 아니여 인여 소 놉혀 지니 승이 크게 븟그려 두 이 븕으며  대로(大怒)여 아미 긔고 별 튼 눈을 부릅고 시(侍者) 도라보아 오 고려 대인(大人)을 저 무 두리요 바 아 내라 하여 쟝 큰 욕을 볼지라역관이 공손이 닐러 왈 우리 대인이 다만 남녜 유별미니 앗가 소 놉히미 므 다른 의 이시리오 승이 오 내 므 더러오미 잇관대 사을 당면(當面)여 이러시 븟그럽게 뇨 하고 욕셜이 쟝 만흔지라 인여 별픔(別品) 부와 됴희 만히 쥬 밧지 아니코 다 신의 알 더져 오 이 더러온 거 어이 바드리오 니 여러 역관이 신이 그 을 돌게 엿다 니 그  형샹이 극히 우슈울 더라
59
슈년 후 아국 사이 다시 니러 그 승이 임의 환속여 간 곳이 업더라
60
방균졈(方均店)의 니러 즁화(中火)고 즉시 발여 오리교(五里橋)의 다니 길셔 져기 드러가  묘당이 이시니 혹 니양귀비의 당이오안록산의 소(塑像)이  잇다 니 듯기 심히 아니은지라  혹 니 묘당의 비 보니오리교노흔 일을 긔록고 겨집의 소이 이시니 믈신령을 위가 시부다 니 이 말이 올흔가 시부더라
61
계쥬(薊州)니러 셔문 밧됴가(趙哥)의 집의 슉소니부 바로 셩안의독낙(獨樂寺)댱뉵블(丈六佛)을 구경다  나  산증(疝症)이 이셔 함 가지 못니라
 
62
오 좌챠(坐車) 안희셔  시를 어드니 그 시예 오
 
63
경셰연산(經歲燕山客) [주: 지낸 연산 손이]
64
호연일(浩然此日行) [주:호연이 이 날 도다]
65
셜화쇼이진(雪花消已盡) [주:눈 임의 아 진엿도다]
66
츈초졈간(春草漸看生) [주:봄풀이 졈졈 나 거 보리로다]
67
거거료양로(去去遼陽路) [주:가고 가 뇨양길이오]
68
요요한슈졍[셩](遙遙漢水城) [주:멀고 먼 한슈졍[셩]이로다]
69
의희젼야몽(依俙前夜夢) [주:의희 젼날 이]
70
초위련군셩(稍慰戀君誠) [주:져기 님군 각 졍셩을 위로도다]
 
71
내 드러올 젹은 도강(渡江) 이후로 조금도 흥왕[황](興況)이 업지라  곳 구경이 업며  귀 글을 일오 아녓더니 무이 뉴관(留館)고 도라가기 당여 임의 슈삼 일 셩도를 지나니 의 못 상연(爽然)여 이치 글을 긔록여치형을 뵈니치형이  운(次韻)여 오
 
72
잠하승명직(暫下承明直) [주:잠간 승명의 번들몰 하직고]
73
편연만리(翩然萬里行) [주:편연히 만리 엿도다]
74
풍능진어(風稜眞御使) [주:풍능은 진짓 어오]
75
유아일셔셩(儒雅一書生) [주:유아  일이로다]
76
슈료페(使事輸遼幣) [주:신의 일은뇨나라의 폐을 시려 갓고]
77
귀졍묘낙셩(歸程杳洛城) [주:도라가 길흔낙양셩이 묘연도다]
78
[수]방담야몽(殊方談夜夢) [주:다[수]방의 밤 을 말여시니]
79
인샹역유셩(因想亦唯誠) [주:인야 각미  오직 졍셩이로다]
 
80
내  졀귀예 오
 
81
원유비소지(遠遊非素志) [주:먼리 늘 본 이 아니라]
82
위시진신분(爲是盡臣分) [주:이 신의 분의 다믈 위도다]
83
욕도심즁(欲道心中事) [주:옴 가온대 일을 일우고져 니]
84
단괴쇽운(短詞愧俗韻) [주:쟈른 글이 쇽된 운의 븟그럽도다]
 
85
치형과니광직려 운라 니라
 
86
역관과 하인이 독낙의 가 안질약을 만히 산다 니 졀 즁이 일노 니 보아 가 음여다 더라 그 약이 셰말(細末) 약이로 뇽뇌(龍腦) 긔운이 만터라 첫날통쥬드러 갈  역관이 고 안질약이 이 곳 매 배러니 밋 사기 구 져마다 다니로 임의 고려사의게 다 팔고 업다 니 이의쥬샹괴(商賈) 그 니(利)랄 오지 고져 여  일이라 그 소위 통분(痛憤)타 더니 여긔  매 이시나 그  만치 아니타 더라
 
87
십일일
88
 돗기 젼의 발여계쥬(薊州)셔문을 드니 현판의 셔공신경(西供新京) 네 더라
89
여  야 길 븍편의  졀이 이시니 이 곳독낙라샹(上使ㅣ)임의 몬져 드러갓거 내  구경니 밧 문은 벽으로 하 무지게 형샹 톄로 야 으고 좌우의 작은 문으로 사이 츌입더라
90
밧문을 드러  큰 문이 이시니 두 편 익낭(翼廊)의 각각 신댱(神將)을 셰워시니 킈 세 길의 지나며 쥬머괴 부고 눈을 브릅 칠 듯니 무심이 문을 향다가 홀연 도라보고 놀나믈 면치 못니 젼신의 갑옷 닙고 을 부루거더 늠연(凜然) 풍신(風神)이 움기 더라
91
문안 삼층집이 이시니 현판의 관음지각(觀音之閣)이라 고 아 태 두 시니 글시 님쟈의 일홈이라 아지 못게라 이니태(李太白)의 슈젹(手蹟)인지 혹 다른 즁이 이셔 일홈을태이라 엿지 몰을러라 뎐 안 년화보좌(蓮華寶座) 베풀고 관음샹을 세워시 그 놉기 뉵칠댱(丈)은 되니 왼손은 방을 들고 올흔손은 드러 가의 히고 념쥬 가져시 손가락이 큰 사의 독만 니 그 형셰 웅장믈 일노 알지라 금신(金身)의 비단 가사(袈裟) 닙은 거동이로 (彩色)이 져기 투 엿더라
92
뎐 셔편 벽의 다리 우아의 둘이 이시 아 다리 스므니믄 층을 니 븍으로 향야 올으게 고 웃다리 열아믄 층은 나 남으로 향야 올으게 엿더라
93
두 다리 다 올으니 그 우흔 다 널을 고 가온 틔워 부쳐의 몸이 그 우희 소삿지라 둘너 난간을 야 사이 도라가며 부쳐 보게 엿더라
94
부쳐의 엇게 난간 둘은 닷코 머리 집말 다하시 머리 면의 블샹 열 둘이 이시니 얼골이 다 큰 부쳐의 모양이오 쳘망을 리와시니 관을  더라
95
아셔 우러러 볼 젹은 그 놉흔 쥴은 모너니 예 올나 보 엇게 이샹이 두 길이나 니 혹 닐오 뉵십칠 쳑이라 더라
96
누(樓) 남븍의 다 창을 내여시 븍은 구지 닷고 남은 여러 두어시며 창 밧긔 난간이 이셔 비기게 여시니 셩즁을 다 구버볼지라 셩즁 인개 됴밀치 못니 뵌 곳이 거의 삼분지일이 될 더라
97
남편으로 셩안  놉흔 탑이 이셔 누와 졍이 샹여시니 졀을 위야 셰운가 시부며 이   비로소 돗지라 셩 남기 날 빗 어여 츈의화열(春意和悅)니 경이  반갑더라
98
셩 븍편 뫼공동산(崆峒山)이니 녯날 황뎨헌원시(軒轅氏)광셩(廣成子)의게 도(道) 뮷던 곳이라 뫼 기의  묘당이 이시니옥황묘(玉皇廟)라 고 셔편 뫼어산(魚山)과오룡산(五龍山)이니오룡산우   묘당이 이시니 이 셩모낭낭(聖母娘嫏)의 라 고 셔븍편으로 뵈반산(盤山)이라 길셔 뫼 우희 졀이 표묘(縹緲)히 뵈니 졀 일홈은운쥬(雲州寺ㅣ)라반산은 녜로브터 명산이라 일니 여 긔이 경(景)이 이시니봉과등운봉과션셕녕(仙石嶺)과낭갑셕(狼甲石)/과투한교(投閑橋)와능각셕(稜角石)과홍요지[홍용지(紅龍池)]라명젹원굉도(袁宏道)의반산긔(盤山記)이시니 봉만(峰巒)의 긔특홈을 짐쟉 나아가 보지 못니 명산을 보기 (數) 잇단 말이 허언이 아닌가 시브더라
99
난간 안희 다 벽을 고 회로 닉여 발나시니 위치 아니나 잠간 셔 먼  라보니 긔운이 현란야 오 머므지 못고 도로 려 븍편으로 도라가니 관음샹 세운 뒤흐로 벽을 치고 온갓 불샹을 그라 벽 우 가득여시니 다 긔 이셔 극히 공교더라
100
븍으로   집이 이시니 간을 막아 삼간을 글려시니 가온 간은 열곱 부쳐 다 코키리와 와 사슴을  형상을 그라 세오고 동편간은관뎨상(關帝像)이오 셔편 간은 븍벽 밋 와탑(瓦塔)을 노코 댱(堂)을 반은 드리오고 그 우 부쳐 나히 누어시니 그 길의 길 반이 되고 슈(繡) 노흔 벼개랄 베여시니  손은 니마의 언 두 눈을 구지 아 깁히 든 형샹이 소상(塑像)인 쥴 지 못고 코 고으 소 나 니 보기의 송연(悚然)여 갓가히 가기 심히 슬흔지라 도라셔 나오 누은 거시 닐날 야 거름이 연 니 도로혀 우읍더라
101
혹 닐오 이니의 야 자 소상이라 니 현판의 태 두 로 인야 그 뎐(傳) 말이라 미간의 호광(豪光)이  니 이 곳 셕가모니블의 소상이러라
102
관음각알십왕뎐이 잇고 셤 우 두 비 이시니 왼편 비만력 십 년의 즁슈고 셰운 비니 그 글시의 여시 이 졀은 아모 졔 지은 쥴을 모로고 일 흥화(興和)년간의 즁슈여시니 뉵칠 년이 되엿다 고  여시 관음대샹(觀音大師像)은 로 그라 세은 거시 아니라 본 큰 남기 이시 인여 삭여 근 거시라 여시니 더욱 긔이더라
103
올흔편 비강희(康熙) 을미(乙未)의 셰은 비니 글은샹셔(尙書)왕흥(王興)의 지은 글이라 글의 여시 내신년의 이 셩을 직희엿더니 그 후의  이 흘 지나니 풍경은 다르지 아니호 인민이 녜 아니오 묘뫼(廟墓) 오히려 이시 셩곽이 믄허졋도다 여시니흥(興)은대명(大明)사으로쳥(淸)의셔 벼 사이라 그 말이 못 슬프니 보 개연(蓋然)고 말이 긔휘(忌諱)의 범(犯) 비의 낫타나게 삭여 잇지 뎐니  가히 아지 못너라
104
구경을  발야 가더니  길 북편의관뎨묘(關帝廟)여러 묘당이 년쇽고 뤼 길흘 막아 두어 곳이 이시니 다 녜거신가 시브더라
105
동문을 지나 십여 리 야 밧 두 셕인(石人)을 셰워시니 나흔 크고 나흔 젹으니 큰거안녹산(安祿山)이오 젹은 거 녹산의 아경셔(慶緖)라 인이 지나 쟤 돌노 그 얼골을 쳐 눈이 지고 코 여져시니 보기의 심히 더럽고 무셥더라
106
계쥬(薊州) 녯날어양현(漁陽縣)이니녹산이 반던 곳이라 이러므로 그 형샹을 셰워 만셰(萬歲)의 그 더러오믈 뎐케  의가 시브더라
107
졍교(彩亭橋)의 다라 을 아 메올 다리 아 봄믈이 흔덕여 문(文彩) 일오고 다리 겻 새로 집을 지어시 단쳥(丹靑)을 아니코 살문 안 여러 비 잇 지라 치형이 보고 오  비예 여시 이 다리금나라(學士)양희의 세은 배니졍은양희의 별호요 그 믈 일홈은남[난]슈하(灤水河)라 엿더라
108
비 집 뒤흐로 드러가 구경고 나와 닐오  묘당의 쥬벽(主壁)야 세 소상(塑像)을 안치고 좌우로  여러 소상을 안쳐 직흰 사려 무니 쥬벽 소상은텬황시(天皇氏)·디황시(地皇氏)·인황시(人皇氏)라  가온 소상은 이 도쳐시니복희신(伏羲氏ㄴ)가 시브더라 더라
109
오리 지나 동남간으로 라보니 강물믈 들의 벗쳐시 길의셔 오 리 동안이라어양(漁陽)린 믈인가 너기 올  보디못한 바라 괴이 여기며 십여 리를 지나되 믈구븨 감초의지 아니코 졈졈 널너 왼 들의 멀거야 바다 야 뵈니 비로소 의심야 하인려 무니 혹 믈이라 며 혹 물이 아니라  그 빗치 슈리(數里) 밧긔 잇다가 그 곳의 다로면 그 빗치 올마 그 알 잇고 녑흐로 지난 바 보면 업니 그졔야 졍 믈이 아니오 계문연슌(薊門煙樹) 쥴 알너라
110
이  날이 진사시(辰巳時) 되여시니 빗과 들빗치 셔로 쏘이여 된 거신가 시브 길 우희  그러치 아니니 그 일을 종시 아지 못너라
111
이 날 지나 곳이 즌흙이 믈의 져 간신이 나오니역관이 니 이번은 날이 굿지 아니코  눈 녹인 물건너 이젼의 비면 태평이라 더라
112
봉산졈의 즁화(中火)고 나니 길의 밧 가 쟤 만흐니 이 곳의 쇼 만흐 쇼로 장기 메온 거 극히 젹고 혹 나귀로 메오며 도 메워 임의로 흙을 닐우고 밧 가 법이 아국과 별노 다지 아니나 밧 간 후의 나귀나  큰 둥근 돌을 라 으러 덩이 흙을 여 고로게 며 왕의 등의 짐진 사을 보지 못너라
113
그 즈음은 계집이 거름을 등의 져 밧흐로 내여 망망 큰 들의 닐우지 아닌 곳이 업고 거름을 내여 노흐 쥴이 방졍(方正)야 먼리 라보 츼지(歭池) 거시 업고 바독을 버린 니 농의 브즈런 쥴을 가히 알너라
114
이 날노브터 년야 연슈 보니계문을 지나 나산 별산졈 이 극히 녕농니 대개 들의 즌 곳은 긔운이 흔덕여긔특호믈 지으 은(銀) 바다와 옥(玉) 치 눈의 황흘야 언덕이 은영고 초목이 움겨 녜로브터심양(瀋陽)지 날마다 뵈이니 내 본 바 별산졈(鱉山店)이 더욱 긔특더라
115
온젼현븍[부]가의 집의 슉소다
 
116
십이일
117
새벽의 날이나 풍셜이 대작(大作)야 한위(寒威) 늠연(凜然)지라옥젼현(玉田縣)의셔 로 믁고져 니 대개 슐 위 짐이 뒤 쳐지고 길이  심히 줄어 슈일 의 밋지 못지라 이러므로 믁을 의논이 잇더니 구일치 못야 풍셜을 므쓰고 발야 삼십오 리 지나류하(沙流河)의 즁화(中火)니 이 드러올  쥬인 곳이 아니러라통쥬(通(州)·계쥬(薊州)이후 다 젼의 드럿던 집이라 예 올 예 부방(副房)과 가지로 드럿더니 오은 반일(半日)을 셜즁(雪中)의 구치(驅馳)야 젹이 편히 고져 야 로 햐쳐(下處) 졍니 쥬인은니가(李哥)라 더라
118
식후의 즉시 나니 눈이 젹이 개이나 칩기 심고연계보(軟鷄堡)이후로 길이 즌지라 큰길노 도라 고려포 마을 이로 가니 인개 조밀고 희(戲子) 집이  이시니 태평옥츄(太平玉秋) 네  더라
119
[환]향하(還鄕河)의 니니 더옥 즐어 나아갈 길이 업고풍윤셩(豊潤城)밧기  쇼(沼)이 되얏지라 슐위 운동키 어려오니 반향(半晑)을 허비야 하쳐의 드니  올 졔 드럿던 집이러라
120
캉 압문을 분합(分閤)을 그라 가온대 문으로 왕더니 홀연 굿지 닷고 녑문을 여 손을 인도야 드리고 가온대 문은 프 글로  오대풍윤현인봉 곳이라 엿더라
121
쥬인을 블너 그 연고 무니 답왈 이젼의 이 캉의화신(和珅)이 드럿더니 일로 봉엿다 니화신(和珅)이 지난 곳이 텬하의 몃 만인 쥴을 모니 엇지 낫낫치 인봉(印封)리오 혹화신(和珅)이 푸 베퍼 돈을 거두던 곳인가 시브더라
 
122
십삼일
123
이 날은 눈이 이고 못 쳥명나 어졔 일이 다 곤핍(困乏)여 로 고져 며  슈뤼 짐을 달을 업지라 마지 못여풍윤셔 믁으니 죵일토록 다만 을 일우니라 져녁의치형(致亨)이 와 뎐 식후희 셩밧 푸의 나가니 부 푸의 만흐 부 됴희 다 아국 됴희오 부마다 다 그림과 글시 이시니 기즁 보암 거시  만터라 며 겻 글 닑 소 나거 자 드러가니 그 쥬인이 마자 글 닑 캉으로 가 안기 쳥니 캉 밧긔  긴 캉이 이셔 다 아 다 교의의 안져 다 경셔(經書) 닑으며 안 캉의  이좌뎐(左傳)을 닑다가 손을 보고 교의예 려셔니 모양이 극히 온슌더라
124
쥬인의 셩명을 무니 셩은곡(谷)이요일홈은연홍[흥](延興)이오 악복(岳福)이오 별호녕(孟寧)이라 슈(秀才)로 두 번 거인(擧人)이 되고 회시(會試) 못고 다만 거인이라 칭더라
125
의 셩명은 오회우(吳會友)오 나히 십칠 셰라 손이 드러온 후 글 닑기 그치거 닑으라 고 드니 닑 소와 귀졀  거 아국과 다로미 업나 음이 만히 다로고 토 아니 다니 소만 드려셔 므 글 닑 쥴을 모너라
126
곡(谷生)려 아 로치 법을 무니 어린 아 첫 번 로치 므어 닑히뇨 답왈 믄져셔(四書) 쥬니라 거  무 뉵칠 셰 어린 아 엇지셔 쥬리오 각건 글 쳐 음을 쳐 례와 졀믁(節目)이 이실 하더라
127
길셔 보 혹가셩(百家姓)이란 이 이시니 이 믄져 닑히냐 아국의 아희 치 법은 믄져 쳔(千字) 치고 버거쇼을 쳐 여금 글 알게 고 버거 음을 알게 고 버거 을 알게 고 례로 발마 졈점 나오게 니 이 곳은 이와 다냐곡이 답 왈가셩은 곳동홍션(冬烘先生)의 아희 치 법이오 바른 길은 아니라 우리도 쳔와쇼을 쳐 글 호 경계 알게 고 귀졀을 흴 쥴 알면 예셔 쥬어 바른 길을 셰오 고로 믄져셔 친다 말이니라  무동홍션은 엇던 사이뇨곡이 우어 오 슐막의셔 글 치믈 니즌미라 셔로 필믁(筆墨)을 드러 슈작 오(吳生)은 별노 참예치 아니나 글을 그치고 아니 닑지라 오 손이 니로 공부의 방해로올지라 닑 니 닑고 말 니 말미 방해롭지 아니리로다곡이 오 글 소 자 니러시니 진짓 니른바 글로 벗을 모흐미라 의게 영화로올지라 므 방해로오미 이시리오 대개오의 일홈이 모들 회(會) 벗 웃(友ㅅ)  고로 니른 말이라  무러 오풍윤(豊潤)셔 사란지 몃 나 되뇨곡이 답왈 셩(姓)을 어드므로브터 지금 니로럿노라 거 조션(祖先) 관직(官職)을 무니 답왈명(明)젹은 벼이 지 아니코 본됴(本朝)의 별노 벼이 업노라  무 본됴의곡은[응]태(谷應泰)란 사이 이시니 아냐곡이 답 왈 죄(祖ㅣ)로라 거  무로 집의명긔본말(明史記事本末)을 두엇냐곡이 젼연(靦然) 빗치 잇다가냥구(良久)의 답 왈 오 죄 이 (冊)의 좌죄(坐罪)야 화(禍)의 밋츤 고로 판(冊版)을 허러 셰샹의 치 아니니라 니 대개 이 의쳥나라일을 긔휘(忌諱)치 아니지라 집 죵의 고변(告變) 배 되여강희(康熙) 이십구 년의 나히 칠십의 좌죄야 죽으니곡은[응]태의 별호임창이라 슌치(順治) 의 과거야 벼이졀강 졔(浙江提學)의 니로니라  무 비록 판을 허러시나 그 좌죄 귀졀이 무 일이뇨곡이 내 니지 아니코 오 엇지 아 그  일을 향인(向人)야 베플며  셰치 못여라 더라
128
곡이 슬 무러 오 일홈이 므어실라 뇨 답왈졀풍건(折風巾)이라 며 혹곡용닙(曲容笠)이라 고 뷔(士夫ㅣ) 연거(燕居) 예 총관(驄冠)을 니뉸건(輪巾)이며복건(幞巾)이며졍관(程子冠)이며동파관(東坡冠)여러 명이 이셔 쓰고져  로 쓰니라곡이 오 그의 니마의 두른 배 아니 망건이냐 이명(大明)홍무(洪武) 초의신낙관도(道士)의 근 졔양(制樣)이니 극히 귀도다곡이 우문왈(又問曰) 귀국은 시(詩)부(賦)와 표(表策)으로 션 희고 별노 시쇽(時俗) 글이 업다 니 그러냐 답왈 시쇽 글은 국의 팔고문(八股文) 과졔(科題)와 튼 것 니로미냐곡왈 그러다 여 오 아국은 비록 별양(別樣) 시글이 업나 글졔   라 변니 엇지 시문(詩文)이라 아니 니로리오곡이 고개 그더기더라
129
대국 과거법(科擧法)을 무니곡왈 인신(寅申巳亥)년으로 수(秀才)와 공생(貢生)을 니 이를세시(歲時)라 하고 자오묘유(子午卯酉)년으로 거인(擧人)을 니 이향시(鄕試)라 고 진슐츅미(辰戌丑미)년으로회시(會試)·젼시(殿試) 니 올은회시 라 혹 나라 경 이시면 별노 과거 뵈야 가향시(家鄕詩)라 칭니라  무로가향시  즉시회시 냐곡이 오회시 로 아니코 거인을  두어 예회시 예 합야 니라  무로가향시의  배 언마나 뇨곡이 답 왈 예향시와 트니 텬하 십삼 (省)의 의 삼 인식 니라  무로 공(貢生)과 슈(秀才) 한 등이 잇냐 답왈 공은 벼이 업고 슈 관원을 볼 졔 빈(賓客)의 녜(禮) 니라 나삼(羅衫)을 닙고 작졍을 쓰니 슈 되면 비로소 사의게 졀을 아니 니라 평인이 슈라 일 이 거 일홈을 무릅 브 배라 니 이 아국 션 늙으면 원(生員)이라 일름과 더라
130
곡이  오 이  열 엿날 동과(童子科) 뵈니 이  젼례라 더라
131
 오 태샹황(太上皇) 후(死後)의 본현(本縣)의 아직 반포(頒布) 일이 업 귀국은 임의 칙(勅使) 갓다 니 그 례(禮待)미 디(內地)의 비기 더도다 거 우문왈 이 곳 사은 아직 복(服)을 아니 닙엇냐곡왈 됴령(朝令)의 반포 업고 다만 풍문(風聞)으로 복을 닙은 고로 아직 이십칠 일을 지 못다 니 대개계쥬(薊州)이후의 말(抹額)의 샹모 단 사이 바이 져그니곡의 말이 올흔가 시브더라
132
캉 벽 우  쟝 그림을 브쳐시 분(盆)의 두어 가지 화 심은 거시오 우희 구구쇼한도(九九消寒圖) 다것[섯]  시니 구구 구구 팔십 일을 니로미오 쇼한도 찬 거시 라지 그림이란 말이라 그림 의 무니곡이 오 이 고을의 일  미인(美人)이 이셔 동지날  가지 화 그리 치 므 여든  숑이라 벽 우 븟치고 날마다 단장 젹이면 연지(臙脂) 직어 화  숑의 직으니 여든  날이 지난 후 화 변여 홰 되니 본 미인의 공교(工巧) 각의 나미러니 혹 의방(擬倣)여 이 곳의 이 그림이 셩니라 이 경이[인](景人) 갓더니 한어로 슈작다가 도라왓다 더라
 
133
십일
134
평명(平明)의 발여 진졈(榛子店)의 니로러 즁화(中火)고칠가영(七家嶺)의 니로러 길의 셰오고 오 난셔편디경(灤州西便地境)일라 여시니열하(熱河)난하(灤河)라 일지라 대개난하믈이 븍으로 흘너열하의 니러 합슈고로열하 난하라 미러라 오날도 날이 쳥명나 바람이 심히 찬지라 일이 다 갑옷 닙으니라하역(沙河驛)의 니러 슉쇠  올  드럿던 집이러라
135
오 진졈의셔  집 문의 현판을 보니 무진(武進士) 셕  시니 길의셔 쳐음 보 배라 호반진(虎班進士) 일로미니 호반이 무 진 이시리오
 
136
십오일
137
평명(平明)의 발여 이십 니 지나야계타(野鷄坨)의 니로니 이 낫참의 드 곳이라 월참(越站)고 져기 다가 큰 길을 리고 동븍으로 여 삼 리 가  마을이 이시니 디명은젹봉포(赤鳳浦)라 삼 니 여챵관령(蒼關嶺)을 지나고 오 리 여뉴가장(劉家庄)을 지나고  리 여고가장(古哥庄)을 지나고 이 리 여왕가장을 지나고 팔 니 여이졔묘(夷齊廟)의 니로니 그 이 녀염이  산야(山野) 풍(風味) 이셔 길 슐막과 졀연(絶然)이 다고 지난 곳마다 구경 사이 마을을 기우려 다 모히더라
138
이졔 묘 셩안희 이시니 돌노  져근 셩이니 그 졔되 장 고박(古朴)고 무지게문 우희 져근 집을 셰워시며 문 현판의 현인구이(闡仁求義) 네  삭이고 고쥭셩(孤竹城) 세  삭엿더라
139
셩문을 둘너 디긔(地氣) 고 쥬회 너니 임의 각별 풍경이러라
140
여 보 여 묘당 녑희 졀이 잇거샹·부와  캉의 안니 쥬방(廚房)이 아밥을 나오 화[흰] 밥과 고리국이라 이 곳의 고리국을 먹으미 녯 일을 각 의라 이 곳의 업 고리 가져와 먹으니 어 브터 시작 쥴 모로나 근 믄득 젼례되여 마다 마른 고리 가져온다 더라
141
역관이 고 어  쥴은 각지 못 일 이 곳의 니로러 샹방(上房)은 고리국을 나아오부(副使) 건량 마뒤(乾糧馬頭) 닛고 가져오지 못 지라부크게 노여 마두 잡아 드러 짓고 결곤(決棍)니 마뒤 죄 닙고 믈너 이졔 묘 밧긔 안져 볼기 어로지며 통곡왈이·슉졔(伯夷叔齊)내게 모 원(怨讐)런고 임의 죽으랴 면 믄득 죽을지니슈양산(首陽山)고리 므 일 얏던고 쳔지하(千載之下)의 내게 해 기쳣도다 더라 니 밥을 므믈 지 못이라 니 식후의 묘당 밧긔 문(牌門)으로 조차 드러가니 문의 쳥졀묘(淸節廟) 셕  고 문 두 편의 큰 비(碑) 둘이 이시니 왼편은 츙신효(忠臣孝子) 네 이오 올흔편은 도금층셩(到今稱聖) 네 오  문의 년담의  편의 두 식 써 오 쳥풍(百代淸風)이라 여시며 문안희  즁문(中門)이 이시니 쳥풍가업[읍](淸風可挹) 네  고 좌우의  문이 이시니 왼편은 텬디강산(天地綱常) 네 오 올흔편은 고금범(古今師範) 네 라 압뒤 문과 좌우 문이 셔로 여 문 모양이 되얏더라
142
묘당 현판의 고지현인(古之賢人)   고 가온이·슉졔두 소샹(塑像)을 남향(南向)야 안쳐시니 얼골이 희고 슈염이 기러 두 소샹이 이샹이 트 다만 형이 젹고 아이 크더라
143
다 면류(冕旒) 드리오고 곤뇽포 닙어 엄연(儼然) 왕(王者)의 위의(威儀)라 이 다 도초[포](道袍) 초와 녜(再拜禮) 니라
 
144
소상 안친 뒤흐로 두 편 븍벽의 건륭황뎨[주:두 슈 시 이시니 그  슈의 와시]
 
145
허면니도시본댱(軒冕泥塗是本膓)[주:슈와 면류 즌흙으로 아이 니 본 댱쟤라]
146
긍용아조관샹(肯容雅操汚冠裳)[주:엇지 아담 지조의 관샹의 더러이믈 용납리오]
147
미령의구셔산호[](薇靈依舊西山下)[주:고리와 녕초 셔산 묏부리의 구엿고]
148
완라슈등부당(頑懦羞登夫子堂)[주:완악고 게으른 니 부의 집의 오기 븟그리로다]
149
지위심참죵이무(只爲心慚蹤異武)[주:다만 의 븟그리믄 최 무왕과 다로믈 위미오]
150
감쟝구실죄귀탕(敢將口實罪歸湯)[주:감히 구실을 가져 죄 탕의게 돌녀보리오]
151
긔분농우여포좌(豈分隴右與遼左)[주:엇지 농우와 포좌 분변리오]
152
텬하쳥풍진슈양(天下淸風盡首陽)[주:텬하의 쳥풍이 다슈양산이러라]
 
153
이 글 말 귀(句)  대개 이졔묘(夷齊廟) 며  을연(鬱然) 뫼 이시니 셰샹이 뎐여 오이·슉졔고리 던슈양산이라 니로나농우(隴右)라   슈양산이 잇고포좌(遼左)란  슈양산이 이시니 어 곳이 진짓은(殷)나라슈양산인 쥴을 몰을지라 그러나 굿여 이곳이라 져곳이라 분별치 말고 텬하의 깃친 쳥풍이 어 곳이슈양산이 아니리오  말이러라
154
 슈 그  귀예 와시
 
155
하송됴셕곤면(何事宋朝錫袞冕)[주:무 일송나라됴뎡의 곤면을 두엇고]
156
가지부시도이(可知夫子視塗泥)[주:가히 알지라 부 즌흙치 보리로라]
 
157
이 글귀 은이·졔(夷齊)의 본 이 나라흘 양고은나라흘 위여 인신(人臣)의 충졀을 직희엿거송나라의셔 면류(冕旒)와 곤의(袞衣)로 더어 왕(王者)의 위의 초니 이졔 더러이 너길지란 말이더라
158
묘당 서편의 (臺) 무으고 그 우희각(彩閣)을 셰워시니 놉희 두어 길의 지나고 졔작이 극히 졍공며 알프로쳥풍(淸風臺)세  삭엿더라
159
 알 측(側柏)과 고숑(古松)이 윽여 그윽 풍 진짓 은 바을 이 더라
160
묘당 뒤흐로 황뎨궁(行宮)이 이시니심양(瀋陽)왕의 슉소고 지나 곳이라 층층 누(樓)와 겹겹 집이 우아 셔로 두 층의 오리며 간간이 셔로 도라니게 여 간간이 와탑(臥榻)을 노코 이 막아시  사이 용납게 여시니 문 얼골과 삭이미 졍묘(精妙)고 긔졀(奇絶)여 이로 형용치 못너라
161
궁셔편으로 각(行閣)을 느고 그 우흐로 길흘 그라쳥풍로 니게 여시며쳥풍븍편으로 돌노 층계 하 놉기  우희 닷게 여 좌우로 통게 엿더라
162
궁알프로 슈십 간 월랑이 이시  졔작이 졍묘고 간마다 와탑으로 셜(排設)여시니 갓가히 뫼시죵관(從官)의 머므 곳인가 시브며궁뒤로 언덕을 의지여낭각(廊閣)을 셰오고 젼후로 난간을 베러시 졔되 긔묘고 간간이 그 모양이 다 나 셔로 이이여 집안으로 왕게 여시니 뒤편 난간의 의지면 난하(欄下) 믈이 난간을 둘너시 아로 슈십 쟝(丈)을 구버보고 난간 셰운 곳은 곳 셕벽 우히라 알셔 라보 극히 위태여 물이 쇼(沼)히 되어 흐로 쥴을 지 못고 바회 셔너히 믈의 셔시 인력으로 버린 더라
163
긔이 승경(勝景)이라 이윽이 회(徘徊)니 졔도의 샤치 비록이·졔(夷齊)의 본이 아니나 산슈의 족히 븍경진토(北京塵土)의 긔을 시 더라
164
구경을 다고 셩을 나난하(灤河)의 니러 로 건너니 븍편 언덕의  무으고 문을 셰워시 고쥭묘(孤竹廟)라 현판여시며 문안이 방 슈십 보 고 남향여 묘당이 이시니 고쥭군(孤竹君)의 소샹을 안쳐시 얼굴이 빗치 프고 슈미호(鬚眉晧白)여 못 긔 (生氣)잇더라
165
묘문을 다 좌우로 라보 졍신이 원여 도라가기 니너라
166
대개 산관(山海關)안밧히 다 너른 들이오 거믄 흙이라 여긔 니러 디긔(地氣) 명낭(明朗)여 홀연 별계(別界) 일워시니 먼 뫼 프른 빗 워 츌몰여 고으물 드리오며 일난하(灤下)물이 둘너 반월형(半月形)이 되엇지라 즁(行中) 칠누(七樓)의 안져실 졔 다만 강산의 승경을 어덧더니 다시 층의 긔특몰 어드니 강산은 극히 슈려(秀麗)고 누(樓臺) 극히 녕농여 두 긔특미  모히니 비록 공교 그림으로도 못 형용이 어려올지라 진실노 명승이라 일너라
167
나로 둘이 이시나 심히 져긔 믈을 다 번 왕여 삼(三行) 인(人馬ㅣ) 다 건너 날이 포시(哺時) 여 발니 풍(風砂) 크게 니러나 날이 도록 그치지 아니니라
 
168
오날  두 슈 시 어드니  시 오
 
169
만고강산만고명(萬古江山萬古明)[주:만고 강산이 만고의 아시니]
170
이공쳥졀옥[유]슈경(二公淸節有誰傾)[주:두 공의 쳥졀을 뉘 더으리 이시리오]
171
은텬일월금유셕(殷天日月今猶昔)[주:은나라 하 일월이 이졔도 예와 트니]
172
쟝죠일방고쥭셩(長照一方孤竹城)[주:기리 일방 고쥭셩을 비최도다]
 
173
 시 와시
 
174
지시당년우븍평(地是當年右北平)[주:히 당년 우븍평이라]
175
칠하여월요봉셩(漆河如月繚鳳城)[주:칠해  트여봉셩을 둘넛더라]
176
[귀]연이묘단쳥고(蘬然二廟丹靑古)[주:규연 두 당의 단쳥이 녜로와시니]
177
면샹유풍블진쳥(緬想遺風不盡淸)[주:먼리 각 기친 바람이 아 다지 아니 하엿도다]
 
178
이십 니 여쳥뇽하(靑龍河)의 다니 다리 노하 왕 통게 고영평부(永平府)셩 밋트로 져근  두어시 엿더라
179
남문 밧긔 햐쳐(下處)니시가(施哥)의 집이러라
 
180
십뉵일
181
평명(平明)의 발여영평부셔문으로 조차 드러가니 촌락이 황락고 셩텹이 경퇴(傾頹)여풍뉸(豊潤)의셔 바히 못더라
182
슈 보 여 길의 두 뤼 이셔 여시니 셔 온 표오 동은 온 조황(朝凰)이라 그 안 문묘(文廟) 이시니 문묘 곳듓(周ㅅ)나라태공망 녀상(太公望呂尙)을 위 묘당이라샹(上使) 바로 지나고부(副使) 가지로 드러가니 밧 문은 영셩[석]문(欞石門)이라 고 그 문 안히 곳 묘당이라
183
현판(懸板)의 뉸문윤무(允文允武) 네  시니건륭(乾隆)어필(御筆)이러라
184
쥬벽(主壁)여 신위(神位) 안쳐시 션셩태신위(先聖太師神位)라 고 동셔로 향(配享)이 이시니 동은오마(吳司馬)쇼[손]공(孫公)이오한무후(漢武候)졔갈량(諸葛亮)이오당진공(唐晉公)도(裴度)오한조후(漢條候)쥬아부(周亞夫)오송무혜왕(宋武惠王)조빈(曹彬)이오당위공(唐衛公)니졍(李靖)이오연챵국(燕昌國)군[공]악의(公樂毅)오 셔한류후(漢留侯)댱냥(張良)이오당분양왕(唐汾陽王)곽의(郭子儀)오송무목왕(宋武穆王)악비(岳飛)오졔마(齊司馬)젼양져(田穰苴)오월샹태우[대부](越上大夫)법녜[범여](范蠡)오한회음후(漢淮陰侯)한신(韓信)이오졔즁보(齊仲父)관즁(管仲)이오명셩의(明誠意伯)뉴긔(劉基)라 그 향 위 셰 분별치 아니 여시니 고이더라
185
뎐(殿臺)의 틧글이 옥고 위의 가리온 거시 업셔시니 오 향화(香火) 폐가 시부더라
186
좌우로 각 오뉵간 월랑이 잇고  녁 명쟝을 향여시니 동편은 마흔 두 위의한원후(漢元勳)등위(鄧禹)읏듬이 되고 셔 마흔  위의송복야(宋僕야(?))단도졔(壇道濟)니 대개 문묘 의여 챵셜여시나 위판이 혹 너머지고 집이 퇴락여 보기 심히 셜만(褻慢)더라
187
문묘 셔편의  큰각(彩閣)이 이시니 현판의경승셔원(景承書院)이라 엿더라
188
종문으로 나올 길 븍편의 층뉘(層樓ㅣ)십루(十字樓)튼 졔되 이시니 명원누(明遠樓) 셰  현판엿더라
189
음보(背陰堡)의 니로러셩가(成哥)의 집의 즁화(中火)니 문 밧그로 드러 슈십 보    집이 이시 집 우흘 흙으로 바로고 집 아 층계 무어 집 우흘 오로게 고 밋오로  칠판 간 집을 셰오 분칠 벽이며 아로삭인 창이 곳 슐막 집의 쳐음 보 배라 창을 의지여 동남을 라보 두로 뫼히 둘니여 아국 춍[풍]슈(風水)와 트니 사으로 여금 눈이 열니이더라
190
알 산 일홈은츄을산(秋乙山)이라 니 슈목이 업 봉만(峰巒)이 장 슈려더라
191
벽 우희 여러 슈(首) 글이 이시니 기즁 일즉 귀(句)도  잇더라
192
무량[령]현(撫寧縣)을 지날 길의 증 부친 사이 년쇽 왕니부향(士夫鄕)이라 니로기 기이치 아니터라뉴관(楡關)의 니러 햐쳐의 드니 여러 문과 겹겹 담이 극히 유슈(幽邃)더라
193
쥬인이 그 아을 다리고 드러와 보니 나히 뉵십오요 그 아은 이십여 셰 되엿더라
194
셩을 모[무]니한가(韓哥)라 고 소업(所業)으로 무니 이젼의 관공을 힘 더니 이졔 렷노라 며 그 아이 로 나아와 은근 의 잇더라
195
내 안즌 캉 알 화쵹시(華燭詩)  슈 진홍 비단의  벽의 부쳣거 뉘 신방(新房)이냐 무니한(韓生)이 니 아이 이월의 안해 마잣다 며 고은 댱(欌)이며 (彩色) 궤(櫃)며 교□(의)와 탁 다 빗나니 쳐가의 어든 배라 며 져믄 부녜 문의 비겨 구경고 븟그리지 아니니 혹 지분(脂粉)이 냥쟈고 의샹이 화려 더라
196
한려 식구 무니 남녀 오십 여 인이오 캉이 열 여시라 더라
 
197
십칠일
198
뉴관셔 발여고령의 니니 두 사이 을 타고 알 죄인을 셰워 가 쇠슬노 목을 야 으고 쇠슬 듈을 뒤흐로 느려  사이 잡고 둘식 압뒤흐로 셰워 합여 여 이러라
199
 슈리 지나  관원이 태평챠(太平車) 시 민 거시 빗나고 두   사이 알 인도니 다 동개 시며 뒤 로 쟤 다엿   쟤  슈 나히 로 겨집을 와시니 마뒤(馬頭ㅣ) 죵쟈려 무론즉심양관원이븍경드러간다 더라
200
봉황졈(鳳凰店)의 니러 즁화(中火)고 흥화졈(興化店)의 니러 슉소니 쥬인은왕가(王哥)라 캉 밧 벽의 태원졈샤(太原店舍)라 시니태원 사의 졍여 드 곳인지왕개(王哥ㅣ)태원사인지 모너라
201
인이 만이 드러 캉 알 슈십 필 을 먹이 다 곳비 지 아니코 셰워시니 셔로 갈든 아니나 마다 큰 방울을 라 흔득이 소 죵야(終夜) 그치지 아니니 이 을 잘 일우지 못너라
 
202
십팔일
203
샹(私商)  놈이 몬져 니러 니 슈 짐이 일 맛당이 관(關)의 밋리니 (使行)이 만일의  날 이곳의 무그면 긔 관을 지리라 하니 대개 슈 짐이 라 관을 나기 극히 어려호미라 길희셔 믁으나 문(柵門)셔 믁으나 믁기 가지라 완완(緩緩)이 여 져희 밋게 미  해롭지 아니타 여 즁 의논이 다 이러니 드여 홍화졈(紅花店)의셔 믁으니라 샹 햐쳐(下處)  집 문 우희 셰진라 현판여시니 진의 셩은(史)오 일홈은양긔(陽基)라 그 문 안희  두어 문이 이시니 흑[혹] 난쳡션(蘭臺疊船)이라 고 혹 셩문븍궐(城門北闕)이라 시니 의 혜오 녯날 환(仕宦)던 집인가  미쳐 뭇지 못엿더니 그 쥬인 일흠은븍노란 쟤  쳐소의 왓거 내 무로 진니 그게 엇지되뇨 답왈 야야(爺爺)라 니 아비란 말이라 내  무 어 진며 문장이 놉흐리로다븍뇌답왈 야얘 글을 여 진 일름 아니라 이곳의 진  법이 잇기로 노라 거 그 셔믈 므니 답왈녜부(禮部)의셔 식년마다 진  리 파 것시 이시니 갑시 일만 냥이라 이  사기 다토 고로 엇기 어렵다 니 이 젼의 듯지 못던 배라 그 법이 괴이  아니라 식이 그 아븨 진 산 배라 여 은휘(隱諱)치 아니니  괴이 일이라 식이 아비 위여 은휘미 군의 니른 배나 그 샤곡(邪曲)지 이니믈 가히 알너라
204
이곳은 산관지쳑이라 나[다]른 군현과 다로다 나 사이 다 말이의 샹모 혀 복(服) 닙은 모양이 어 무니 태샹황의 유죠 금월 초십일 비로소 반포 고로 월 초뉵일이 이십칠일이 된다 지라역관이 혹 이곳 사려 닐너 오 아국의 나간칙(勅使ㅣ)졍월 념간(念間)의 예 지낫실 거시니 어이 태샹황 상보 몰나시리오 니 답왈 어이 업리오마 이곳은 나라 즁 히라 됴셔(詔書) 반포기 젼은 이 복을 닙지 못다 더라 니 풍윤(豊潤)튼 고을과 다른가 시브더라
205
오후의 삼 신이망졍(望海亭)을 보고져 여 나아갈 슈삼 니 다가 동남으로 여 밧 이길노 가다가  마을 알[압]흘 지나니 집 졔되 장 졍하고 문을 의지여 구경 겨집의 의복이 극히 샤려(奢麗)고 노파의 예 분과 연지 지 아닌 거시 업니  풍쇽을 볼너라
206
망졍의 니니 홍화졈의셔 십오 리라 댱셩(長城) 동편으로  로 셩을 막고 문을 내여시니 문을 드러 여 보 가 슈십층 셤을 오니 니 댱셩이 진(盡) 곳이라(渤海) 님여 두층 집을 셰오고 현판의증[징]루(澄海樓)라 여시니망졍은 녯 일홈인가 시브더라
207
아층 두 편 벽의 돌을 셰오고 글을 삭여시니건륭황뎨심양의 거동여실 예 녁님(歷臨)여 신하로 더브러 년귀(聯句) 거시니 나흔양국치와동고로 더브로 지은 배오 나흔우민즁과양국치로 더브로 지은 거시라 어졔  귀예 쥬 라 오 셰샹이 니 쟝명이 바다의 드러가기 십 니 된다 니 거즛말이라 대개 바다 드러 가기 니(里) 남즉다 엿더라
 
208
누 알 슈십여 보 지나  비 셰오고 태샹황의 어졔 두슈 시 이시니  시 오
 
209
아유일쟉슈(我有一勺水) [주:내  잔 믈이 이시니]
210
샤위동창명(使爲東滄溟) [주:두어 동창 바다흘 삼앗도다]
211
무금역무고(無今亦無古) [주:이졔도 업며  녜도 업며]
212
블감역블영(不減亦不盈) [주:감도 아니코  도 아니도다]
213
납셜난위(臘雪難爲白) [주:납령 눈이 희다 기 어렵고]
214
츄민차공쳥(秋旻差共靑) [주:가을 하이 겨유 가지로 푸로럿도다]
215
쳔귀여납(百川歸如□) [주:일 내히 여랍의 도라 가시니]
216
습감유심령(習坎唯心寧) [주:습감이 오직 이 령도다]
217
감쇼교룡치(堪笑祖龍癡) [주:교룡의 어리믈 견여 우읍도다]
218
편셕구봉영(片石求蓬瀛) [주:돌을 쳐 봉 영쥬 구도다]
219
하릉님쳔예(何能臨天倪) [주:엇지 능히 하  님여]
220
여이공탁쳥(與爾共濯淸) [주:널노 더브러 가지로 은  고]
 
221
이 글은 쳣 번 녁님여 지은 배오  일슈 시 비 뒤 삭여시니 두 번 녁님여 지은 배니 그 시의 와시
 
222
십심등고루(十層登高樓)[주:열 층이나 놉흔 누에 올나]
223
부부거명(復此俯巨溟)[주:다시 이 큰 바다의 구르렷도다]
224
한셔환동하(佷暑幻冬夏)[주:차고 더은 거 겨을과 녀름을 변엿고]
225
일월욕휴영(日月浴虧盈)[주:일월은 이즈러지나 지나 목욕도다]
226
계뇨[디]일션금(界地一線金)[주:논  디경여  쥴 금빗치오]
227
졔텬공쳥(際天色共靑)[주:하의 지음여 가지로 프로럿도다]
228
최거졀류(最巨斯絶類)[주:장 크 이뉴에 근쳐지며]
229
슈신고영평(守信故永平)[주:신을 직흰 고로 기리 평안도다]
230
졔감이치확(蹄涔易致涸)[주:굽의 믈이 기 워시니]
231
두자하영(注玆限河盈)[주:이 부어 하슈 기 엿도다]
232
경위셩쇼(涇渭誠小哉)[주:경슈 위슈 진실노 져근지라]
233
동분탁여쳥(同分濁如淸)[주:가지로 흐리며 오믈 난홧도다]
 
234
두슈 시  어필이라 글과 글시 가히 큰 슈단이라 일너라
 
235
비집셔 븍편으로 두 비  이시니  비 텬개회악(天開海嶽) 녜  고  비 일쟉지다(一勺之多) 녜  시니월 사뉴연은 졔노라 고 텬계 뉵년 계하의 운동 지하 동황 응예 쥴을 셰우노라 엿더라
236
징루압과 빗집 뒤흐로  셩텹(城堞)을 가로 둘너 막고 가온대 굼글 내여 문 치 글고 사이 이리로 조차 밧그로 나가게 엿시니 그 문을 드러가  슈십 층 셤을 노하 오게 엿시나 즁의 모 믈니여 여시니 발을 히면 모 믈허져 오기 극히 어렵더라
237
예 오 젼후좌우 각 십 보 되고 면으로 녀텹(女堞)을 하시 바닥의 흙 굼기 녀졋거 구버보니 거머여 밋 보지 못지라 이 바다 돌을 며요고 셩 우흐로 셩을 고 셩 우흐로 셕쥬 셰워 박셕을 앗가 시브 머믈기 극히 위더라
238
남으로 녀텹을 의지여 밧글 보니 바다 속으로 셩이 드러가 십여 보 나가시 너븨 다 간이 될지라 혹 닐오대명위국공셔달(徐達)이 예 직희여실 예 쇠 노겨 바다 븟고 그 우 셩을 다 니 쇠 노겨 브은 쥴을 알기리 업나 셩 두편으로 집 튼 돌이 무슈히 혀시니 그 인력을 짐쟉지라  혀오명됴의 새로 창업 즈음을 당여 므 일노 돌을 모하 바다흘 메워 진나라녯 자최 아시리오셔달이 다시 회 칠여 터진 곳을 기워  즁슈엿던가 모너라
239
바다 믈이 셩 부으리 너흐러 돌의 마조쳐 믈결이 으니 일의 뇌졍이 진동 며 이날  바람이 큰지라 흰 물결이 번득하여 하의 흔 고 셔븍으로 묘연 봉만(峯巒)이 겹겹으로 셔시니 진실노 긔장(奇壯) 구경이오 동으로 라보 바다 가온대 홀연 암셕이 셧 모양이라 혹 니 갈셕(碣石)이라 니 풍낭이 흉용여 셔히 보지 못너라
240
징루녑흐로산관치 셩 우흐로 니게 여시 길 너븨 삼간 남고 밧그로 녀텹을 둘넛고 안편을 막힌 거시 업니 언덕 우희 셧 모양 더라
241
징루알 셔편 담 이로 길흘 내여 셩 밧그로 나가게 여시 돌노 층계 무어시니 그  슈 층이 될지라 이리로 조차 셩 밧긔 니러 바다  져기 안져시니 텬디의 긔믈을 구경며진황의 광도(狂圖) 개연(慨然)더라
242
셩 밋흐로 조차 여 보  바다흘 님여 큰 졀이 이시니 졍문의칙건영우(勅建靈佑祠ㅣ)라 고 묘당의 단쳥과 장염이 극히 빗나고 가온대 금칠 소샹(塑像)을 안쳐시 곤의 면류(袞衣冕旒)에 손의 홀(笏)을 드럿고 알 금 셰워시니 칙봉동인뇽왕(勅封東海人龍王)이라 엿더라
243
묘당 뒤흐로 두 층 누 셰워시니 웃층은 블경을 촌 곳이라 예 올나 동으로 라보니 누관창일(樓觀滄海日)이오 문졀강됴(門對浙江潮)라 니너라
244
도로 바다 흘 조차 올 언덕의 개흙이 젹고 믈빗치 으니 이 바다  됴셕(潮汐水ㅣ) 이시 셩치 아닌가 시브며 녯 사의 시의 단 말을 비로소 아니라 햐쳐(下處)의 도라오니  임의 졋더라
 
245
십구일
246
홍화졈의셔 됴반(朝飯)고 발여산관의 니니 관장이 여러 관원과 버러 안져 졈검 거시 드러올 와  모양이오 두 관원이 슈 녑 니러역관김명규로 여금 신의 가진 바 쳥심환을 어더지라다 거 두 환식 화 쥬니라 여러 집 관문을 나오 들의 눈이 허여 고 셔븍풍이 심이 오니 관문 안이 지쳑이 풍긔 도이 다니 괴이더라
247
길 노푼 언덕의  비 이시니 비 우희 먹으로  오됴션국별션(別先來) 졍월 십일일 진시의 지나다 고  그 겻됴션국션 이월 십삼일 지나다 엿더라
248
한(汗)의 쟝(將臺)의 니러부로 가지로 오니 면이 각 슈십 보 되고 놉히 십여 쟝이라 밧그로셔 보 면의 드러갈 곳을 모 너니 밋 쟝의 니 남편으로 져근 무지게 문을 내여시니  사이 겨유 용납지라 셩 밋흐로 슈십 굼글 그라 사이 몸을 감초게 여시니 셩 안희셔 우러러 보 그 형상이 가마 뒤쳐 노흔 모양이오 네모흐로 세 층을 노하 오게 여시니 각 십여 층이오 셩 우 밧그로 다 엿텹(女堞)을 두고 이이 돌노 굼글 어시니 긔치(旗幟) 박앗던 곳이라 면으로 라보니 남은 큰 바다히 하의 다하 이업고 셔흔 담이 둘너 먹쥴을 친듯 고 븍으로 군산(群山)이 둘너시 기즁 노픈 곳은 각산 잇 곳이라 며 동은뇨동들이 이업시 뵈니 이곳의 뵈이 배 텬하장관이라 일지라 바다와 댱셩(長城)과 뇨야(遼野)와 군산이  곳의 모이여 셔로 웅장믈 토니 다른 곳의 엇지 못 배러라 이 혹 니오삼계(吳三桂)흔 배라  고로 혹 오왕셩이라 니며 혹 오영셩이라 일다 고 혹 니한(汗)이 군 거려 댱셩 아 니러 로 밤 이 하  뉵만 군 감초엿다 니 셔히 모너라
249
오삼계셩을 허러 쳥병을 드린 곳이 더옥 분명이 뵈이니 그 일을 샹샹 의 쳐연믈 지 못 거시오 관문 안 슈리의셕화(石河)란 히 곳오삼계니셩(李自成)을 파던 곳이라 명(明史)의 긔록여시오삼계영원(寧遠)으로셔 관의 드러온지 열사흘만의 경(京師ㅣ) 함몰고 황뎨와 황휘 다 죽으시믈 듯고 드여 삼군이 거상(居喪) 닙고 거(擧哀) 후의쳥의 군 비러 도젹을 칠 원군의 격셔(檄書) 뎐니니셩이 듯고 크게 놀나삼계의 아비양(襄)을 헙박여삼계의게 편지여 브게 고 녯 쟝슈강죵으로 여금  향복기 전고 태 평안믈 니니삼계답지 아니코 그 아비게 글을 올녀 오 아비 츙신이 되지 못여시니삼계엇지 능히 효 되리오 아비로 더브러 영결(永訣)믈 쳥컨 오날브터 리라 이 편지 가니셩이 더옥 두려더라
250
삼계츙의로 쟝(壯士) 경동(警動)여 오 내 블츙블효니 내 므 로 텬디의 셧시리오 고 스로 멱을 지고져 니 그 아 다 오 쟝군이 어이 이에 니뇨 우리 맛당이 죽기로 싸호리라 여 이에 경셩 외(京城內外) 다오삼계의 격셔로 부치되 민(士民)으로 언약여 거상 닙고 원슈 갑흐리라 니 도셩 셩이 다 일시의 흰 두건을 만니 지으니라셩이 뉵만 병을 거려 동으로 향 태와 영왕과 오왕(吳王)을 리고 오니 도젹의 낸 군 블과 슈만이라 니 바의 헷소의 위협여 항복을 바드나 일 큰 도젹을 격지 아녓다가 이에 니러 변방 군 셰믈 듯고 한심여 아니리 없더라
251
셩이 승(勝敗)  번 홈의 결단 쥴 알고 여러 영을 년여  나오니삼계날낸 거 다여 흘 나히 을 당치 아니리 업지라 도젹을 슈쳔을 죽이되 도젹이  용을 며 쳡쳡이 나아들고셩은 태 고 놉흔 언덕의 올나 을 셰오고 홈을 보더니 도젹이 면으로삼계의 군 에우삼계의 군 동셔로 치돌(馳突)니 도젹이 흣터졋다가 다시 합더라
252
쳥병이 이의삼계의 올흔편으로 에워 내니 향 바의 피미(披靡)여 당치 못지라셩은 을 쳐 라나니 모든 도젹이 크게 흣터져 스로 아 죽 쟤 슈만이라 모든 군 길을 화 라 그 대장 다 죽이고 무슈히 그 치즁(輜重)을 어드며븍경지 좃차가 여러 번 파니셩이오양을 죽여 머리 놉히 예 라 셩 우 셰오고양의 가쇽 삼십팔구 다 죽이고 궁궐을 블지르고산셔로 라나다 엿더라
253
시강원일긔의  그젹 일을 셔히 긔록여시되 갑신년 월의 구왕이 군 거려 셔 범셰 라 시니 녯 댱셩을 지나몽고디방으로 가더니심양셔 난지 닐헷만의  곳의 다니구왕이 군 머므르고 나아가지 아니거 셰역관으로 여금 탐지라 시니 니산관의 총병(摠兵)  사이 유격장군(遊擊將軍)  사을 보내여 니산셔의 유격이 황셩(皇城)을 범여 젼월의 황셩이 임의 함몰니 황뎨 (自縊)시고 황후와 비빙이 다 블의 타 죽은지라 나라 일이 이에 니니 임의  일이 업고 젹봉(敵鋒)이 동을 치니 여러 군현이 와 항 오직산관이 홀노 나마시 병녁(兵力)이 단약(單弱)여 형셰 져당(抵當)커[키] 어려온지라 드니 대왕이 임의 군 내엿다 니 만일 이 미쳐와 구완즉 관문을 여러 마지니 대왕이  번 관의 든즉븍경을 날을 긔약여 뎡지라 원컨대 니 군 나오라 니구왕이 허실을 알녀여 그 쳐뎨(妻弟)로 여금 즁원(中原) 항복 쟝슈  사으로 더브러산관으로 보내고 그 항복 쟝슈 건륭[진중]의 머무러 두엇다  군긔 심히 비밀여 셰히 몰나 더니 져녁 의 아역이 와구왕의 말을 뎐여 오 일 맛당이 도(拜朝)여 갈 거시니 셰의 일마도 능히 갈 쟈  게 라 엿더라
254
닷만의연산역의 가 머므러시라 더니오삼계 쟝관을구왕의게 보여 니 젹병이 임의 박두여시니 원컨 군 촉여 나아와 구완라구왕이 즉 나 녀가며세 촉여 로라 니 샹해 창황여 일이 미쳐 밥을 다 못먹고 새도록 려사하보셩밧긔 다라구왕이 군 머므러 잠간 쉬니셰 밧두듥의 안져 밤을 새오시고 이튼날 이에 다시 여 관문 십오리 동문의 가 머므니 일야간 이 니 니라
255
쳥병이 갑옷살 닙고 밤즁의 진을 옴기니 텰마 소 이시토록 들니고산 우셔 방포(放砲) 소 밤이 깁도록 그치지 아니터라 이튼날 평명(平明)의 쳥병이 나아가 관문 오리 밧긔 가니 이날은 월 이십일일이라 관문 안희 내와 틋글이 옥고 총소 크게 나더니 이윽고오삼계졔쟝 십원과 갑졸 슈 긔 거리고 셩의 나와 마니구왕이 진즁(陣中)의셔 례(拜禮) 밧고 군 인여 셩 밋 나아가 긔 려 안니 쳥인 한인이 조 왕 더니 이윽고 쳥병 좌우진(左右陣)의 일시의 려 관문을 들 흰 긔 셩 우희 셰오니구왕이 미조차 드러가더라
256
그의오삼계니셩이 일변 졉젼고 나왓지라 두 편 진이 셩 셔편 슈리 동안 묘당 알셔 호니 텰환(鐵丸)이 어즈러이 셩문의 박이지라셰 셩 밋 나믈밧 이의 밤을 의지여 안져시니구왕잇 와 엿 집 이라구왕이셰 쳥거셰 가보시니 좌 미쳐 졍치 못여셔구왕이 즉시 니러 을 며 오셰 나 라 호 곳으로 오라셰 마지 못여 와가 갑쥬(甲冑) 초시고 시셕(矢石)을 무릅쓰고 셔겨시니 총소 우 고 살이 비오시 박혓더라
257
쳥병이 세 번 쥬라(朱喇) 블고 세 번 납함고 일시의 적진을 춍돌 살을 서너 번 고 칼빗치 번드기더라
258
이 풍셰(風勢) 대작(大作)지라 일즉 누른 틋글이 졈졈 머러가니 비로소 젹병이 패여 닷 쥴을 알녀라 식경(食頃)은 여 젼댱(戰場)이 븨여지고 힌 죽엄이 셔 벼여 너른 들의 녓더라
259
도젹이 라나 거 셩 동편 바다 조차가 죽이니 믈의 져 죽 쟤 아모 만인 쥴을 몰을너라
260
초경의구왕이 도라와 젼쟝 근쳐의 진을 치니셰도  와 진 밧긔 와 쥬무시니라 이튼날구왕이 셥졍왕(攝政王)을 일고 군즁의 녕야 셩을 침노치 못게 니오삼계일즉 머리 고 슈만 긔 거려 쳥병과 가지로 일시의 셔흐로븍경의 니니니셩이 셔 궁궐을 블 지고 궁녀와 보화 노략여 가지고 남으로 라낫더라
261
븍경사이 니 산관 홈의 긔병 십만과 보병 이십만이 나맛더니 홈을  후 다만 뉵쳔여 긔 나맛더라
262
 역관최후원(崔厚源)이쇼현셰 뫼와심양의 잇다가셰 의 밋쳐 가 그 홈굿 보고 뎐 말의니셩은셕하(石河)남편의 진을 치고 쳥병은 각산(覺山寺) 아 진을 쳐시구왕이 졍긔 일만을 셰 운(運)의 화  운을 몬져 드려 보여 총돌니 젹진이 두 편으로 갈나지며 쳥병이  사도 지 아니코 가온로 쳐 지고   운은 드려 보여 춍돌   사도 살 혀 지 아니터라 그졔야 셋쟷 진을 드려보니 그 믄[몬]져 보 두 운이 젹진 뒤흐로 일시의 두쳐 젼후 협녁니 잠간 이의 도젹의 죽엄이 들 녓더라 니 이 두 말이 명(明史)로 더브러 샹냑(詳略)이 다나 대개 가지라 일노 보면 그 형셰 가히 각지라오삼계쳥의 항복지 삼십 년 후의운남(雲南)셔 군 니혀 슈년 이의 여 셩을 엇고 군형지 니니 텬하 호걸이 향응여븍경이 진동니 파쥭지셰(破竹之勢)러라삼계죽으 군대쳥의   되니라 뎐 말의삼계운남의 이셔 쟝 졉을 잘고 양 슐을 먹으 희(戲子) 노롬을 베퍼악무목(岳武穆)의 일을 시기고 보다가 크게 울고 인여 오 텬해 니러시 되여시니 나 마 사이 아니라 말을 츠며 울고 울기 다 다시 슐을 먹더라 니 그 들 가히 볼지라 쳥병을 마드린 것과 그 아비 죽으 라 죽지 못고운남셔 니러나 스로 혹미 사의 의 지 못나 내  호걸의 사이라 니너라
263
쟝(將臺)의셔 팔 니 여 강녀묘의 니르니 부 맛당이 니르신가 여 내  드러가니 부 바로 슉소의 향엿더라
264
묘당(廟堂) 디형이 평디의 올연(兀然)히 놉흔 바회 삼기고 묘당을 그 우희 지어시니 먼리 라보  안계(眼界) 활연(豁然)더라
265
묘당 알 비예 대강여시진(秦)나라의동관(東關)히 위지라칠낭이란 사이뇨동의 라 셩을 더니 오 도라가지 못엿거 그 안 셩은허시(許氏)오 일홈은강(孟姜)이니 이곳의  니러 지아비 죽은 쥴을 알고 그 골을 어더 등의 지고 바다 지다 며  니로 바다 셰 셕인(石人)이 이시 나흔 셔고 나흔 누어시니 션 거 곳 졍녀(貞女)요  그 무덤이 잇다 고  비의 여시허강의 지아비범낭이라 여시니 어 말이 올흔 쥴을 모너러라 여시니 묘 안의 녀의 소샹이 곳강이라 탁의 거러 안 형샹이라 머리의 반포(半布) 튼 비단으로 두건을 그라 시며 몸의 능(白綾) 옷 닙엇고  손은 무릅흘 집흔 거동이오 얼골이 옥 트 눈을 드러 먼 라보며 입을 비져셔 울고져  모양이라 사으로 여금 연(慘然)게 엿더라
266
알 두 동 뫼셔시니 좌편 동 손의 우산(雨傘)을 가지고 우편 동 각(角帶) 드러시 아국(我國) 졔도와 흡니 이 다 졍녀의 식인가 시브더라
267
우산은 먼길을 오 거동이오 각범낭의 샹시 던 거 가지고 오 거동을 샹 거시러라
 
268
묘당의 쳥풍경[정]졀(淸風貞節)을 현판여시며 좌우 기동의 각각  귀 글을 삭여시니 와시
 
269
진황안만리댱셩츅원(秦皇安在哉萬里長城築怨) [주:진황이 어 잇뇨 만니댱셩이 원□(망)□(으)□(로) 핫고]
270
강녀미망야텬년편셕류졍(姜女未亡也千年片石留情) [주:강녜 죽지 아녓도다 쳔년의 조각들이 고든 졍을 머므럿도다]
 
271
겻송승샹(丞相)문텬샹(文天祥)의 굴[글]시라 더라
 
272
소샹 녑흐로   비 이시니 만력(萬曆) 년간의 세온 배오  글을 삭여시니  귀예 압녹경쥬통쇽국(鴨綠輕舟通屬國)이라 여시니 압녹강의 가야온 로 외국을 통단 말이오 글졔 쇼도호과관을 내노라 여시니 아국의 신을 갓다가 지은 배라 묘당 벽의 뎨오친왕(第五親王) 십삼친왕(十三親王)의 글을 삭여시니  여러 과의 글을 만히 시나 다 일 거시 업고 김(金) 승지(承旨) 조슌(祖淳)의  졀귀  거시 이시니 그 시의 오
 
273
구슈황원강녀(枯樹荒原姜女祠) [주:모론 나모와 거츤 언덕의 걍녀에]
274
쳐풍잔일만령긔(凄風殘日滿靈旗) [주:쳐쳐 바람과 쇠잔 날의 령 긔 가득도다]
275
금슈억젼고(今生須憶前生苦) [주:긍의 맛당이 젼의 괴로오믈 각지라]
276
막견인간유별니((莫遣人間有別離) [주:인간의 니별이 잇게 말지로다]
 
277
글 아 동쇼인(海東小行人) 김조슌이라 더라
278
묘당 뒤희 져근 졀이 이시니 세 금샹을 안쳐시니 나흔 부쳐오 둘은 쇽인의 샹이라 누 위지 모너라
279
블뎐 뒤 큰 바회 이시 가온대로 길이 잇고 두 이 사의 발자곡이 돌 흔젹이 완연니 이 졍녜 지아비 라노라 오리던 발자곡이라 고 동편으로 망부셕(望夫石) 세  고 겻 원 후(太原白輝) 셔노라 여시며 건륭황뎨 칠언 뉼시 삭이고 쥬홍을 메워시니
 
280
[그] 시의 오
 
281
[쳐]풍쥭슈후샤양(凄風竹樹吼斜陽)[주:쳐쳐 바람의 대와 남기 샤양의 부로지져시니]
282
샹작비셩됴졔랑(尙作悲聲弔七娘)[주:오히려 슬픈 소 지어 졔랑을 소기도다]
283
쳔고무심과졀의(千古無心誇節義)[주:쳔고의 졀의 랑코져 이 업고]
284
일신유위강샹(一身有死爲綱常)[주:일신이 죽기 두믄 강샹을 위미로다]
285
유디칭강녀(由來此地稱姜女)[주:말아마 오 이 의 걍녀 일랏고]
286
진도당년곡긔량(盡道當年哭杞梁)[주:다 니 당년의 긔량의 우럿다 놋다]
287
민이호□□□□
288
와뎐시쳐야하방(訛傳是處也何妨)[주:이곳은 그 뎐여신들 무 방해로리오]
 
289
이시 밧긔  두 시 별노 삭여 바회 파고 너헛더라
 
290
망부셕 븍편으로  바회 쳐[셔](大書)로 되고 진의졍(振衣亭) 셰  삭여시며 돌의 기동을 심것던 굼기 여러히니 슈십년 젼의 황뎨 졍 지엇더니 즉시 믄허졋다 하더라
291
묘당을 둘너 벽으로 담을 하시며 븍으로 라보 여러 뫼히 년쇽여  셔리이고 뫼 기을 댱셩이 둘너시니  긔졀(奇絶) 구경이러라
292
알프로  묘당이 잇고 네 부쳐 안쳐시니 혹 픔의 어린아희 안아시며 혹 사의 눈을 드러시니 보기의 괴이더라
293
의 여러 비 이시 이로 보지 못너라
294
이 날 십 뉵니 여 팔리보(八里堡)최가(崔哥)의 집의 슉소니라
 
295
이십일
296
도지의 날샹부강녀 묘로 간다 기의 참(站)의셔 져기 지졍여 몬져 압셔 가기 기리다가 여 대송영구(大松嶺口)의 니러통관셔영뵈(徐永保ㅣ)회령개시(會寧開市)로브터 도라오다가 녕송통관(領送通官)으로 더브러 슈의 려 이윽이 말지라 도로 소문을 무니됴션의 별노 들니 일이 업더라 고칙 이  초 칠일의쥬(義州) 갓다 며 션(先來) 십뉵일송산보(松山堡)셔 맛낫노라 더라
297
즁젼셔(中前所)의 즁화(中火)고  여 십여 리 가다가 길의 두   사을 만나니 나흔 동개 고 알 셔시며 나흔 누른 보의  거 지고 며 금증(金鏳子) 부친 사이 장 뒤 셔시니  오뉵 인이 다 을 고 로지라 야흐로심양의 니러 유교(遺敎) 반포라 간다 더라
298
양슈하(兩水河)의 니러황가(黃哥)의 집의셔 슉소다 이날 바람이 크게 니[나]고 기 극히 간신더라
 
299
이십일일
300
평명(平明)의 양수하의셔 나 즁후소(中後所)의 니러 즁화니 이젼 드럿던 집이라 식후의 삼 신이관뎨묘의 니러 드러 례니 소샹은 아국 남묘(南廟)와 고 알 여러 신쟝이 뫼셔시 다 위풍이 늠늠고 어득한 집안의 셔리  창검(槍劍)이 버러시니 이 슉연더라
301
졀  젹마다 즁이 녑셔 죵고(鐘鼓) 쳐 졀 슈로 치더라
302
샹방(上房)이 올 의 이곳의 긔도다 고건량관(乾糧官)니시관(李時寬)을 으쳐 보졔(報謝祭) 지다 본 령험(靈驗)이 잇다 니 묘당이러라
303
동관역(東關驛)의 슉소하니  올  드럿던 집이라 겨집 세 사이 담으로 조차 보며 아국 사과 므 말을 고져 니 곳역승(驛丞)마원의 가권(家眷)이라 늙은 녀인은역승의 안오 져믄 두 녀인은 나흔 며리오 나흔 이라  얼골이 단묘(端妙)지라뉴양청(柳良淸)이 됴히 너겨 변변치 못 한어로 무 말을 무니 가리러라
 
304
이십이일
305
평명의 발여 대풍진애(大風塵埃) 즁 기 최란(最難)이라 슈의 문을 구지 닷고 여사하소(沙河所)의 즁화하고 다시 나 풍셰 더옥 웅장여 모 니며 틋글이 가마 니 알 셧던 하인이 잇다감 간 곳을 모너라
306
이치 삼십 니 여영원의 니러 슉소니 쥬인의 셩은창가(昌哥)라 연노(沿路)의 쳐음 듯 셩이라 지나 마을마다 방을  브쳐시니 대강여시 남방 교비(敎匪) 오히려 다 토멸치 못고  도젹이 간간 작폐(作弊)니 문을 일 고 슈샹 사을 긔찰(譏察)라 엿더라
307
밤 든 후 바람이 져기 니라
 
308
이십삼일
309
일영원셩즁으로 말아마  남문으로 조차 드러가니 문의 연후[휘](延暉) 두  삭엿더라
310
삼십 보 지나됴대락(祖大樂)과됴대슈(祖大壽)루(牌樓) 이시니 이 두 쟝슈원슝환(袁崇煥)이 죽은 후의 셩을 직흰 쟤라 이 루 아국 졍문과 튼 문이니대명의 두 쟝슈의 공렬(功烈)을 표미라 이 뤼 슈십 보 이의 여 길을 막아 세오고 문을 내여 사 왕게 여시니 길기 다엿 길의 지나고 네 기동을 셰워 두 편 담을 막아 돌노 벽쳐로 글고 운믈(雲物)과 화초(花草) 삭혀 못 귀신의 조환 듯니 기동과 셕가 쳠하와 츈예 다 옥 튼 돌이오 가지 나모 드리지 아니엿더라
311
문(牌門) 안팟흐로 와 범을  식 녀시 다 머리 도혀 왼편으로 향 거동이 긔이고 웅장고 동 며 글 삭인 거시  졍묘여 보암 니 장 웃층은 옥음(玉音) 두  삭여시니 황뎨 명믈 니미오 그 둘 층은 안흐로 확쳥지렬(廓淸之烈) 녜  삭이고 밧그로 츙졍담긔(忠貞膽智) 네  삭여시며 셋 층은 안밧그로다 셰원융쇼부(四世元戎少傅) 여  삭이고 장 아 층은 가좌(加資)와 셩명(姓名)을 삭여시니 곳됴진(祖鎭)과됴인(祖仁)과됴승훈(祖承訓)과됴대슈 며됴대락의 루 웃층의  옥음 두 오 둘 층은 안흐로 등단쥰녈(登壇駿烈) 네  삭이고 밧그로 원훈[융]초셕(元戎初錫) 네  삭여시며 아 층은 곳 가좌 셩명을  삭여시니됴진됴인됴승됴대락 니대슈와대락이 촌 죵형뎨러라
 
312
대락의 루 두 기동 안밧그로 다 글을 삭여시니 밧긔 글은 와시
 
313
환규흥가국의간셩지즁(桓赳興歌國依干城之重) [주:환 노 일워시니 나라 간셩 치 즁 일을 의지하고]
314
륜셕춍됴륭니졍지문(絲綸錫寵朝隆彛鼎之褒) [주:륜이 공금을 쥬어시니 됴뎡의 니졍의 기리믈 놉혓도다]
 
315
안희 글은 화시
 
316
숑가여신경션우셰(松檟如新慶善培于四世)[주:술과 가족 남기 새로온 니 네 예 잘 향믈 경엿도다]
317
님랑유혁희연예우쳔츄(琳琅有赫熙永譽于千秋)[주:구이 빗나미 이시니 쳔츄의 기리믈 빗 거 깃거엿도다]
 
318
문란(門闌)이 됴란고 규뎨[례](閨閭ㅣ) 괴려여 일문지(一門之內)의 이튼 은뎐(恩典)이 쳔고의 광졀(曠絶) 셩(大姓)이라 고 몸이 로잡혀 나라흘 져리고 오랑 신복이 되믈 의 게 너겨시니 개와 돗도 그 남은 거 먹지 아니리니 엇지 앗갑지 아니리오 야흐로 구경 사이 무리지어  우리 구경 기즁 아다온 인믈이  만흔지라 역관이  사과 슈작다가 무러 오됴대(祖大壽ㅣ)훗손이 잇냐 그 사이 답왈 이곳은 업고 븍경의 의[이]시 벼이 놉지 못니라
319
 오 대슈의 아비 승훈이만력 임진의 쳔병(天兵)을 거려 아국을 위여왜 치던 사이러니 그 아대항복 쟝 되니 가히 통분도다 그 사이 악연(愕然)여 말이 업다가 다시 답여 오대비록 이곳의 사라시나 별노 일 거시 업니라 더라
320
루 녑흐로 져근 골이 잇지라  사의 슈의 짐을 가득 싯고 나올 을 쳐 우리 셧 녑흐로 호긔롭게 지나다가 슈 기우러져 너머시니 멍에예 메온 이  것구러지고 시른 거시 다 다시니 그 사이 무연여 짐을 거두 모양이 우읍더라
321
루 져기 지나  아문(衙門)이 이시되 문의 군민대덕(郡民大德) 네  시니 지부 잇 곳인가 시브더라
322
녀념(閭閻) 시(市肆ㅣ) 심히 번요(煩擾)고 당즁(當中)여십루(十字樓)이시니 예 지나 동문으로 나가니 문을 동영(東楹)이라 삭엿고 밧근 츙화(忠化)라 엿더라
323
셩이 장 완실(完實)고 밧그로 외셩디위 이시되 다 믄허지고 쇽의 회로 다 핫던 것만 나마시니 이 곳원슝환의 비각의 그림 그렷던 곳이오 동문과 셔로 여  뫼히 잇고 뫼 우 쟝 이시니 이곳한(汗)이 피 토던 곳이러라
324
연산역에 니러 즁화고고교보(高橋堡)의 니러됴가(趙哥)의 집의 슉쇼니라
 
325
이십일
326
길흘 날 드니 샹방(上房) 쳐(下處)의셔 쥬인이 방젼(房錢)을 토와 문을 다 길을 나지 못게 고 못 곤경이 만흔지라통관녕송관(領送官)이 알고 쥬인을 잡아내야 피편(皮鞭)으로 만이 친다 니 방젼은 다 햐쳐 군관이 당 배라 면(事面)의 그져 지나지 못 일이어 길의 슈 머므르고 햐쳐 군관을 잡아 드려 여러히 보 곳의셔 결곤(決棍)니 뭇 되놈들이 놀나고통관이  졔 무안여라 다 기로 그만 그치니라 십여 리  눈이 니더니송산보의셔 즁화고 나 눈이 크게 오고 바람이 녈여 모래 니이니 일이 다 한츅(寒縮)여 간신이대릉하(大陵河)의 니러조가의 집의 슉소니라
327
쳐음은 양졈의셔 즁화고십삼산(十三山)의 슉소려 엿더니 양졈은 올  샹방이 낙후던 곳이라 구긔(拘忌)여 머므지 아니려 기의 참(站)을 쥴여대릉하의 슉소다
 
328
이십오날
329
대릉하믈 니니 어름이 오히려 플니지 아냣더라
330
다리 조차 다가 즁간의 니러 다리 믄허져 업고 어이 터졋지라  되놈이 젼신을 가족을 고 믈속으로 왕여 일을 호위여 넘기고  쇠게 메온 슐위 나흘 령여 하인을 건너거 므니대릉하셩 안희셔 보낸 배라 더라
331
십삼산즁화고  슈십 니 여 거긔 동으로 조 오 쟤 이시니심양관션(官選)이라 며 알 젼(前陪)  이 동개 고 셔시니 이 참참이 령  참(站)식 호숑다 더라
332
신말(申末)의녀양역(閭陽驛)의 다라 삼 신 햐쳐 졍치 못엿지라 내  좌챠(坐車)의 리지 못고 햐쳐 고직(庫直)이 잡아드려 결곤더니 샹 겨유 햐쳐 졍고 부 야흐로  곳을 졍여시 쥬인이 뱡젼을 토되  개오 달나 니 피인의 돈  법이 일 예슌 닙흘  개외라 니  개오 아국 여든냥이 되지라 야흐로 그 다쇼 토아 문을 막고 드리지 아니거 부 오 져 놈은 진실노 무샹거니와 졀노 더브로 방젼을 토미 면의 조치 아니타 고 인여 알프로 나오다가 마을  니러 비로소 햐쳐 졍다 더라
333
나 샹방 햐쳐 녑집으로 졍니셔가(徐哥)의 집이러라
 
334
이십뉵일
335
일 샹 븍진묘(北鎭廟) 보고져 거 내  가지로 일즉 여 십여 리 지나 길이 걱기여 동븍으로 여 삼십여 리 지나 븍진묘의 니니  큰 언덕 우희 이시 밧긔 삼간 루 셰워시며 방 여 보의 다 벽(甓)을 아시며 루 웅장고 긔묘 삭임이영원루와 거의 나흘너라
336
루 알프로 오 층계 이십층이라 이의 올나 라보 큰 들이 동으로 기우려 가히 창명(滄溟)을 다고 의무져[려]산이 그 셔흐로 둘너시 차아(嵯峨)고 뇌락(磊落)여 하의 즈음여 소사나니 진짓 장관이라 큰 문의 븍진묘 세  크게 시며 뫼 세 겹이니 장 알 묘안이 다 븨혀 잇 거시 업고 븍벽의 울층[총]가긔(鬱葱佳氣) 네  고 가온대 묘당의 산신 소샹을 안쳐시 구 면류(冕旒)의 슈 노흔 곤의(袞衣)오 킈 두 길의 지나며 괴위 긔샹이 나아가 엄연더라
337
알 네 신인이 뫼셔 벼러시 둘은 문관의 복이며 둘은 쟝슈의 복이러라
338
감실(龕室) 우흐로 건시신군(乾始神君) 네  시니강희황뎨글시러라  뒤흐로 쳥기와 이은 집이 이시 두 신령이 갋 안져시니 나흔 가온대 묘당의 신샹이오 나흔 부인의 소샹이라의무려산(醫巫閭山)은 쥬관(周官) 직방시(職方氏)의 실렷고슌이긔쥬(冀州)동복을 화유(幽州ㅣ) 삼아시니 이 뫼 곳유쥬진산(鎭山)이오슌이 봉 바 열두 뫼의 기즁(其中) 나히라
339
당나라원(開元) 년간의 비로소 놉혀 븍진이라 고 그 산신을 봉여 광녕공(廣寧公)으로 삼앗더니금나라의 놉혀 왕을 삼고원나라덕(大德) 년간의 다시 진덕왕이라 일고대명초의 묘당을 셰워 녈조의 여러 번 즁슈고 졔 일워시니 곳 묘당이라 묘당 젼우좌우로 다 벽(甓)을 고 셕난을 둘너시 광녑[령]지현(廣寧知縣)이 월봉을 더러 년젼의 즁슈다 니 단쳥과 장염이 됴요여 눈의 븨싀이더라
340
셔편으로 큰 돌이 이시되 그 길희 두 길은 지라 병암(翠屛岩) 셰  삭이고  보텬셕(補天石) 세  삭여시며 젼면으로 굼글 고 다른 돌을 셰워시니 너븨 쥬쳑(周尺)으로 셕 자 될지라건륭황뎨 어졔 칠뉼  슈와 쥴글 셔너 쥴을 어필노 삭여시니 글 도만  극히 졍묘며 왼편으로 솔과 대 늘게 그려시니 그 획이 모긔 다리 더라
341
건륭 갑슐년의 이 묘당의 몸소 졔 묘 알 누운 솔이 이시 극히 창울지라 인여 시 일우고 그 그림을 그려시나 진실노 묘 졔되(制度ㅣ)러라 바회의 김(金鼐)와묘군딕(苗君稷)과진역(陳易)셰 사의 시 삭여시니김 아국 사이러라
342
그 겻   비 이시니 알프로 흘진유방 네  삭이고 뒤흐로 당경신(當敬愼) 셰  삭여시니 곳심젼(沈筌)의 글시라심은화젼 사이니강희글의 필법이 텬하의 뎨일이라 일던 사이러라
343
묘당 알프로 무슈 비 셔로 여시니원나라로브터 이지  셰운 거시니 이 볼 길 업고 그 즁건륭황뎨글을 삭인 비  무슈지라
 
344
 비의 네 슈 졀귀 이시니 오
 
345
묘셔치립운병(廟西峙立翠雲屛)[주:묘당 셔편의 운병이 이시니]
346
응변슈릉의형(凝□誰能擬色形)[주:보기 응연 뉘 능히 빗과 얼골을 비기리오]
347
일셕유여대방광(一石猶餘大方廣)[주: 돌이 오히려 대방의 너른 거시 남아시니]
348
보텬이출하경(補天二字出何經)[주:하을 깁단 두 글 어 글의 낫고]
 
349
우운병(右翠雲屛)
 
350
문도하산죡은륜(聞道河山足隱淪)[주:니거든 드니 하산의 슘니가 만흐니]
351
여긔[거]목셕계숑린(與居木石桂松隣)[주:나모와 돌노 더브러 거 계슈와 솔남글 니웃엿도다]
352
슈지장[잠]지낙긔쟈(誰知潛志樂飢者)[주:뉘 을 조고 쥬리믈 즐기던 쟤]
353
원시상신츅녹인(元是喪身逐鹿人)[주:본 이 몸을 려 사슴 좃던 사인 쥴 알니오]
 
354
우도[초]은곡(右招隱谷)
 
355
녈애슈락슈위렴(列崖垂落水爲簾)[주:버린 언덕이 드리워 러질 고 믈이 발을 친 니]
356
격단진분졍염(隔斷塵氛靜且恬)[주:틋글 긔운이 막아 흐 고요고  령한도다]
357
다유됴션인록구(多有朝鮮人錄句)[주:됴션사의 글귀 삭인 거시 만히 이시니]
358
긔쥬문화지금졈(箕疇文化至今霑)[주:긔의 글 로친 교홰 지금토록 버쳣도다]
 
359
우셩슈분(右盛水盆)
 
360
산당일이위경(山堂此日已爲亭)[주:산당이 이 날의 졍 그라시니]
361
안져령능벽쳥(眼抵平陵碧海淸)[주:눈 미 령능의 벽믈이 앗도다]
362
응시왕져셔쳐(應是瑤王儲書處)[주:응당이 왕의 을 핫던 곳이라]
363
지금슈츅모쳥(至今秀色蓄眸靑)[주:지금토록 여난 빗치 눈의 모히여 프르럿도다]
 
364
우광관졍(右廣觀亭)
 
365
이 네 슈 시 다 이곳 갓가이 잇 경치 픈 거시라 묘당 동편으로 큰 바회 이시니 그 우희 졍 셰웟던 자최 이시니 바회의 회션졍(會仙亭)이라 삭엿더라
366
그 아 두어  집이 이시니 곳 즁의 잇 곳이요 묘졍의 좌우로 두 층 뉘 이시니  편은 쇠븍을 고  편은 가족븍을 라시 놉히 반공의 소사난지라 올나 동남을 라보 큰 들이 다 안젼의 버러시니 바다 밧글 볼 듯 안력이 밋지 못너라
367
즁의 잇 캉의 안졋더니 다엿 되놈이 팔구 셰 동 리고 와시 그 아희 말기의 공쟉우(孔雀羽)와 나모 증(鏳子) 라시니 광녕지현의 아이라 묘당의 구경을 왓지라 부와 환약을 쥬어보내다 졀의셔 졈심고 븍으로 팔구 니  촌락이 소조하나 이즈음은 다 산즁이라 그윽 미  아답고 을 앍히 복셩화남기 여 이 곳이 여러히라 치 픠면 긔이너라
368
도화동(桃花洞)의 니니 골이 심슈(深邃)고 여러 봉만(峰巒)이 겹겹히 둘너고 암셕이 차아(嵯峨)여 병풍을 친듯 검극(劍戟)을 버렷 더라
369
뫼 밋셔 슈 려 거러 여 돌길이 쥰급여 십여 보 지나 도라보면 아 묘연더라
370
돌길이 혹 힌 곳은 인력으로 돌을 흔 형샹이 현연고 길 좌우로 돌무덕이  인력으로 모흔 곳이며 두간 동안식 마조 굼글 러 긧의 댱막(帳幕)을 베픈 곳이라 더라
371
이 혹 니 황뎨 이 길노 가실 의 뎐좌(殿坐)엿던 곳이라 반은 오 큰 굴이 이시니 너븨 십여 댱이오 깁희 네간은 니 그 안희 뉵칠 인이 안 고 놉희 두어 길은 니 명낭고 조여 졍신이 쇄락(灑落) 우러러 보 십여 댱 바회의 의지 곳이 이시니 사으로 여금 져투릴너라
372
븍편으로 길게 단을 무으고 부쳐 열나흘 안쳐시 굴에 우러러 텬면[연]유곡(天然幽谷) 네  고 아국 젼후 신이 이곳의 니 쟤라 졔명여시니 죵증조항됴하공 휫  잇더라
373
[셔]편으로 져근 암 잇고 암 안 바회 우희 두 졍 이시니 나흔 만션졍이라 현판엿더라
374
셕벽이 진고 져기 평디 열녀시니  모옥을 짓고 져근 돌문을 내여시니 문 우희 곡유거(潛谷幽居) 네  삭이고 안흐로 슈졀(守節) 두  삭여시니 문을 비록 베퍼시나 지 아니믈 니미라 곡은 뉘 별횐지 모너라
375
암의 잠간 여  샹부 발고 나 슈 길이 편믈 여광녕셩로 말아마 니 인가와 져 못 번열 동남은 셩고 셔븍은 쇼더라
376
셩 남편 여 문으로 조차 올 지나 곳의  십뤼 잇고 븍편으로  뤼 뵈되 그져 지낫더니 죵 드 곳 녕원니셩냥(李成樑)의 루라 니 못보고 지낸 쥴이 너라
377
황혼의 니니 햐쳐 고직이 초롱을 가지고 마조 나왓더라
378
이 날 팔십여 리 니녀양역의셔 바로 오면 십 니러라 슈 짐이  지기 젼의 바로 지낫다 더라
 
379
왕가(王哥)의 집의셔 슉소다
 
380
이십칠일
381
돗기의 발여즁안보의 즁화고 날 븍으로 라보의무려산봉만이 검프러 빗 고  쥬 슈목이 업니압녹강을 다 너모로브터 관지 산 모양이라 갈트니 대개 뫼와 들이 그  셩미 라 지라 이즈음 히 다 검고 헤식은 고로 뫼 검고 들이 프른 거시라 일 보 아국 뫼히 모 흔 뫼 희고 돌이  구드니 이 필연 니러라쇼흑산(小黑山)의 니러한가(韓哥)의 집의 슉소니라
 
382
이십팔일
383
발여 니도졍(二道井)의 니러 즁화 다엿 되 각각 동개 가지고 드러오 길셔 보던 젼(前陪) 모양이라 궁시 갓다가 보니 그 살은 아국 미젼(尾箭) 치 글고 살촉은 혹 넙쥭여도 박고 혹 의 굼글 려 살촉 우 워 노닐게 여 면 소나게 여시니 니바 명젹니젹의  거시오 활이 젼혀 셰지 아냐 아국 습샤 활 더라
384
식후의 십여리 □()□(여) 사을 만나니  거시 아국 교 치 라시 안  좌의교(坐椅轎)와 치고 압뒤 큰 노 메오고 남빗 댱(帳)을 첫지라 마두 블너 무니 둉쟤(從者ㅣ) 오 각호공 대인이 쳑신의 쳐분 됴셔 반포라심양갓다가 야흐로 도라간다 더라
385
긔보(白旗堡)의 니러쟝가(張哥)의 집의 슉소다 쥬인이 거상을 닙은 모양이여 뉘 복이뇨 무니 졔 아비 복이라 더라
386
대포(大布)로 두건 모양 치 여 시 그 길의 자 남게 여 졉어 시며  포로 로 치 그라 니마 동혀시니 그  거시 알 잇게엿더라
387
인여 이곳 부모의 거상 닙 것과 친쳑의 복 닙 법을 무니 그 사이 오 부모와 슉 부모 치 삼년상을 닙고 조부모와 형과 형슈 다 일 복을 닙고 당슉 부모와 죵형 죵형은 다 이십칠일을 닙고 쳐부모와 쳐조모도  일을 복을 닙으 안해게의 복 닙 일이 업고 아오와 식도 위여 복 닙 일이 업고 손우흔 다 복이 잇고 손아 다 복이 업니 이 즉금 한인의 복졔오 만 사은 한인의 삼년상을 일복이 되고 한인의 일복은 이십칠일복이 되고 한인의 이십칠일복은 닙지 아닛다 니 져의 비록 변방의 무식 (類ㅣ)나 일노라도 풍쇽을 짐쟉지라 진실노 금슈와 다로미 머지 아니터라 오날 지난바 길이 본 즌 곳이라 이번은 봄의 비오지 아닌 고로 비록 간신믈 면나 히 져함(低陷)여 슈 편치 못더라
 
388
이십칠일
389
신민둔(新民屯)의 즁화고  십오 리 여  고오도하(五渡河) 건너 오륙 니  믈을 세 번 건너되 믈이 다  의 닷터라쥬류하(周流河)의 다니 믈빗치 검고 흐리며 어쟝이 믈의 닙히엿더라
390
슈 짐이 마 긔 니러시 건널 길이 업셔 임의 반 일이 기우  슈도 건너지 못고 짐을 부리워 사댱(沙場)의 하시며 이 다 굴머 만일 밤을 믈의셔 지내면 만히 샹리라 더라
391
미시(未時)량의 삼 이 다 건너 샹 바로 참(站)으로 나아가고 나와 부 모 우 을 노코 일이 다 건너기 기리  젹고 인(人馬ㅣ) 만흐니 졸연(猝然)이 다 건널가 시브지 아니코  졋 놈이  피여 도망지라 날이 어둡도록 다 건너이지 못니 사이 다 두려 곤핍고  지 칩기 심더라
392
이 믈이 요해(遼河ㅣ)라 니 너븨 아국 노돌만  믈결이 셰여 본 험타 니니 바 곳 이 블면  업더지기 다 고 사공이  완악(頑惡)여 즐겨 사을 건너지 아닌지라 일건륭황뎨듯고 명여 사공 아홉을 죽이고  동하줄을 믈의 건녀 느고 이편 져편으로 큰 쇠말독을 박고 동하쥴을 그 우희 여  쥴을 인연여 지나게 니 일노브터 비록 대풍이라도 함몰(陷沒) 념녀 업다더라
393
이경(二更)량은 여 마두로 여금  촉롱을 들녀 인도고 십오 리 여 고가(孤家子)의 니러도가(趙哥)의 집의 슉소다 슈 짐이 밤이 도록 건너지 못고 장 슈일을 믈의셔 지리라 니 반시 여러 날을 문(柵門)셔 믁을지라 가히 민망터라
 
394
삼십일
395
대방신(大方身)의셔 즁화고 영안교(永安橋)의 니러 이 다리심양셔교의 큰 다리라 야흐로 눈 녹은 믈이 두 허여지고 길이 즐어 인을 통치 못다 거 븍편 을 가온대로 조차 여  무덤 알프로 지낼 두어 되 슈 알 니러 오 뫼 알프로 어이 지낫뇨 고 하인과 토니 져희 구긔(拘忌) 배 잇가 시브더라
396
팔구 리 지나 즌 흙이 홀연 바다히 되여 슈 박이고 이 것구러져 움길 슈 업니 간신이 을 쳐 나오면 이 다리 옴겨 노흘 젹마다 다리 러 진졍치 못니 슈의 안져 보 대단이 위지라 드여 려 거러 여  푸의 안니 극히 누츄더라
397
이 이윽 후 슈 니럿거 다시 고 여 원당(願堂) 근쳐의 니 다 슈 알플 지나  집흐로 동혀시니 먼니셔 오 모양이라 마뒤 므니 슈 모 쟤 오산관의  관원이뇨동사이러니 그 션산(先山)의 심으기 위여 시러보낸다 더라
 
398
심양셩의 드니 날이 임의 어두엇지라 길의 사이 심히 희소더라 풍가(馮哥)의 집의 슉소니 올  드럿 집이라
 
399
삼월 초일일
400
새벽의 군노 나흘 믄져 문으로 보내니 옛지 무이 온 쇼식을 통며 가국(家國) 태평 긔별을 니 엇고져 미라 가셔(家書)  맛긔니라 평명(平明)의 발여혼하(渾河)의 니러 져근  둘을 결션여 건너고탑보(白塔堡)의 니러 즁화 부방(副房)의 은져 일흔지라 마뒤 울며 좃다 더니 홀연 어덧다 지라 그 연유 무니 이곳  사이 쥬방 드럿던 근쳐의셔 어더 가지고 잇다가  거동을 보고 형샹과 대쇼 셔히 무 후 쥬더라 니 인심이 긔특다 니너라
401
이 날은 쳥명이라 길 분묘의 묘마다 우희 가화(假花) 자시 그 모양이 모진 등 고 혹 졔 지내 곳이 이시니 남녜 다 니러시 남 음식을 진셜고 녀 겻 안자실 이오 지젼이 곳곳이 나븟기더라
402
날이 낫은여 온 바람이 흘 극치고  모 사을 치며 길이 즐고 험니  극히 시름 되더라
403
십니하보(十里河堡)의 니러어가의 집의 슉소다
 
404
초이일
405
일 니러나 밤의 눈이 만이 오고 오히려 개지 아녀더라 평명의 발여 삼십칠 니 지나 난니보(爛泥堡)의셔 즁화고 즉시 나니 눈이 져기 그치더라
406
[영]슈(迎水寺)의 니러 슉소니라
407
뇨동큰 길은 곳심양셔편으로광녕과산관요충지디[더]라대명 셩보(城堡) 깁히 고 병갑을 교련며 다 곳의 녈 댱슈 두어  오랑 방비니 이쳔여 리 다 젼댱이라 노라치 신뇨동(新遼東)의 셩을 하  스로 보젼엿더니 이졔 여 년 무여 셩디(城池) 만히 퇴여시 다리지 아니니 그 븍으로 도라보 근심이 업셔명(明)젹과 지 아니미러라
 
408
초삼일
409
아의 영슈(迎水寺)의 니발(離發)여태하(太子河)의 니러  건너고 압길이 즐기 심여 슈 나올 길이 업다 거뇨동셩밧그로 조차 여 븍문을 지날 셩안이 황낙(荒落)여 인개(人家ㅣ) 심히 희소지라 큰 거리 녀염(閭閻)과 시(市肆ㅣ)  번열(繁列)더라
410
셩 셔남편의 졀이 잇고 일홈은 광우(廣祐寺ㅣ)라 졀 가온대 탑(白塔)이 이시니 여 모히오 열세 층이니 놉기 셜흔 여 길이오 에움이 열닐급 난이 될지라 탐층 이의 구리로 근 비 세워 긔특 배 이다 더라
411
아 층의 다 돌부쳐 워시니 여 모희 여 부쳬오 여 모 다 쳠하 그라시니  모 셜흔 다 셧가 거럿고 셧가마다 풍경을 라시니 열세 층이 다  모양이라 풍경이 합여 삼아흔이라 바람이  번 건듯 블면 쳥낭 소 구 밧긔 못다 더라
412
셰샹이 이 탑으로뎡녕위(丁令威)화표쥬(華表柱)라 나 아니라 이 당나라 쟝슈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세온 배오 진짓 화표쥬 다 업셔지고 셕 남아 일 셩 안  셩의 집의 잇더니 이졔  일헛다 더라
413
뎡녕위 녯 신션의 셩명이라 일  학이 화표쥬의 안졋거 쇼년들이 모히 활을 드러 고져 니 학이 이에 라 공즁의 회며 글을 외와 니
 
414
유됴유됴뎡녕위(有鳥有鳥丁令威) [주:새 이시며 새 이시 뎡녕위라]
415
니가쳔년금시귀(離家千年今始歸) [주:집 난지 텬년만의 이졔 비로소 도라오도다]
416
셩곽여고인민비(城郭如古人民非) [주:셩곽은 녜 고 인민은 달나시니]
417
하블션총누누(何不學仙塚) [주:어이 신션을 호지 아니고 무덤이 누누엿노]
 
418
이제 도뇨동의 여러 뎡개(丁哥ㅣ) 이시니 뎐여 니 그 션셰의 신션된 쟤 잇다 나 그 일홈은 뎐치 못다 더라
 
419
[석]문령(石門嶺)을 지나니 쳡쳡 쳥산이 둘너 잇고 구븨구븨 댱텬(長川)이 지라 디셰(地勢) 독연(頓然)이 다고 안계 새오나 가국의 각이 일 더더니 졍참(冷井站)이 라보이며 됴션복 사이 마조 오 의복이 조츨니 이번 즁 하인이 아닐시 젹실(的實)고 마뒤 눈을 셔 다시금 보며 알외되의쥬찬믈 닌가 시부다 더니 밋 갓가이 오 두 손의 십여 봉 셔신을 가지고 길의 뵈오 찬믈 니 현신(現身)이라 니 가국의 태평 소식을 급히 믈을 거시 음신(音信)을 날노 옹망(顒望)다가 밋 고국 사을 만나 심신이 못 진졍커[키] 어려워 반향이나 말이 나지 아니니 녯 사이 니른바 싀골이 갓가오 이 다시 겁여 감히 오 사려 뭇지 못단 말이 가히 이 심 그렷다 니너라
420
편지 바드며 나라히 태평시냐 무니 태평시다 거 졔 입을 인연여 반년 막힌 회포 어드니 이 깃브며 경오미 진실노 평의 쳐음 어든 희(喜事ㅣ)오 가셔(家書)의 비봉을 평셔(平書)라 여시니 조차 큰 다이라 로군관역관과 각방 하인지 다 니 만나 편지 손의 쥐 얼골 빗치 변며 슈각망난(手脚忙亂) 며 넉 일흘 모양들이라 인졍이 엇지 이지 아니리오 슈 니 모라 참의 려 편지 혀 냥친 슈필을 밧오 조비(祖妣) 졍월 초칠일 진시의 상 나신지라 경황통박(驚惶痛迫)여 아모리  쥴을 모고 다만 졀노 소 노하 통지라역관이 알외 이역(異域)의셔 곡 거시 녜 구긔(拘忌) 잇다 여 구지 말니나 졍의 낫 바의 지 못여 동향여 일댱 호통니 만니 왕환(往還)여 가국이 오히려 텬리 밧긔 머럿거 이런 화변을 당니 사의 참아 견지 못 배라 뉴관(留館) 젹브터 몽(夢兆ㅣ) 믄득 조치 못여 양 겻 사려 니로 믄득 오 각을 인연여 이 되니 엇디 념녀리요 나 나 진실노 의 노히지 못니 대개 이 허령여 스로 믄져 징죄(徵兆ㅣ) 이시미다 계유 진졍여 여러 쟝 편지 다 보니 셰젼으로브터 괴이 뉸증(輪症)이 치(大熾)여 사이 아니 병든 쟤 업며 병 곳 들면 구치 못 쟤 만흐니 셔울 오부 안희 구치 못  칠만여 인이라 세 신이며 네 도이며 경(卿宰) 이하로 셔울 됴관이 외방 슈령의 니지 못 쟤 가히 혜지 못니 대개 류 악긔 혹독히 그 역학믈 브려 이 큰 긥[겁]운(劫運)을 일우미라역관과 삼 쇼쇽의 혹 친상을 만나며 혹 쳐의 상보 듯고 이밧긔 년쇼대공 복졔(服制) 못 만나지 아니 사이 업니 그 친상을 만난 사은군관역관과 하인일지 믈논고 아직 다 쇽여 니지 못니 예셔브터 분곡면 보젼치 못기 반듯 일이미라 소견이 극히 참졀더라
421
이러므로 일가 즁이 무 쟈 믄득 셔로 경하여  요의 사이라 며 완젼 복녁이라 니 이런 괴이 일은 대개 녯 (史冊)의 드믄 일이러라
422
여러 장 셔간 보기 위여 반일 못 지내고 날이 기운 후 다시 젼진여 큰 믈을 셰 번 건너니 믈이  의 지내 지라 이 니론삼슈하라 믈 가온대 당여 믈결이 급여  발을 음[옴]기 쥴을 모니 믈의 가 더라
423
낭산(狼子山)의 니러오가(吳哥)의 집의 슉소니  졀여 을 잘 니지 못니라
 
424
초일
425
낭산슉소의셔 인여 됴반고 나다 이 날 쳠슈참의 즁화고연산관(連山關)의 슉소려 엿더니 인(人馬ㅣ) 다 짓쳣지라 만일 두 녕을 너므면 일 길을 나지 못리라 여 드여 의논여 참을 니라
426
쇼셩녕(小石嶺)을 너머쳥셩녕(靑石嶺)의 니니 길이 임의 험고 진흙이  믯기러워 슈 박회 박이고 이 업더지 지라 장 놉흔 곳의 니러 슐위 려 을 고 나 은 사은 다 거러 가니라 녕 우관졔묘(關帝廟)의 두 글귀 시니와룡으로 스승을 삼고룡으로 벗니 뇽 스승이오 뇽 벗이오현덕으로 형을 삼고익덕으로 아을 삼으니 덕된 형이며 덕된 아이라 여시니 말이  신더라
427
졍(冷井)으로브터 동븍편의   길이 이시니 디명은호랑곡(虎狼谷)이라 녕을 너므니 예셔 십니 도라연산관으로 내다  길이 심이 평탄고 산 명윤며 지난바의오산(五臺山)이 이시니 산이 믈읫 다 봉이라 소상여 보암즉 더라
428
길이 비록 져기 도나 이 협 거 리고 평탄 로 조차 가면 즌흙과 놉흔 녕을 면너라
429
쳠슈참의 니로러합가의 집의 슉소니합개하인들노 더브러 슈작 아국 풍쇽을 니 말이 그른 거시 업니 문 갓가이 이실 이 아니라회령(會寧)강계(江界)로 니며 가마니 을 캐 가 시브더라
430
밤 든 후의 합개하쳐 군관이 방젼(房錢)을 아니 쥰다 여 요란이 굴거 곡졀을 무니 햐쳐군관이합가려 문 와셔 방젼을 바드라 다 고 혼다 니 대개 햐쳐군관이심양니던 날노브터 방젼이 진(盡)타 고의쥬관(關子)여 블우비은(不虞備銀)을 드려 오기 알외거 내 엄히 분부여 믈이첫더니 졔 피인으로 츙동여 짐즛 방젼이 업믈 알게 여 이치  의라 그 계 통악거군관을 나입여 결곤니라
 
431
초오일
432
일 을 여 문을 여니 밤의 져기 비 왓더라
433
잔 구이 비로소 거드며 산긔(山氣) 상연(爽然)니 졍신이 져기 연더라
434
슉참의셔 됴반고 시량의 발 이 임의 피곤여  큰 령을 넘지 못리라 여 호마(胡馬) 셰 쥬어 슈 메오다회령녕의 다니 풍셜이 대쟉고  비 오지라 산곡 이의 어이 오히려 둣텁기 이 지나니 슈 것구로며 이 짓치여 나오기 극히 간신더라
435
눈비 잠간 엿다가 잠간 다시 오니 녕을 지날 이의 오륙  이치 다가 오후 쾌히 니 뫼의 안개 니이며 날빗치 이니 경치 그림 속 더라
436
녕산관(連山關)의 니니  젼의 드럿던 집이러라
437
대명셩화 십뉵년의 아국 신 왕 길을 고쳐지라 니 이녀진이란 오랑 길을 막아 작난미라 이병부의 리와 의논니직방낭즁(職方郎中)뉴대(劉大夏ㅣ)오됴션왕 길이아골관(阿骨關)으로브터뇨양(遼陽)으로 말암아광녕(廣寧)을 지나고 젼둔위(田屯衛) 지난 후의산산을 드러 세네 관(關阨)을 오하[활]게 미 이 조종의 을 둔 배라 만일압녹강으로브터 젼둔위와산관큰 길을 조차 나오게 면 두리건대 다른 날 근심 츨가 이다 여거 드여 길을 고치지 못니아골관을 곳년산관이라 니 대져압녹강을 건너뇨동심양을 지나지 아니코 쳡경이 이셔 오륙 니 즈레 낼 거시 그 쳥여 엇지 못니 애더라
438
의쥬 믈이 다 이곳의 니러시니 기즁 침(沈菜) 비위 열니이더라
439
즁역관의 집 편지  이곳의 만히 니지라역관 사이 졔 부형이 여러 형뎨오 졔  시하(侍下)라 미쳐 제 집 편지 못보고 졔 촌의 편지예 제 다 슉모의 상보 긔별여시니 졔 부형의 항녈 례로 셋라 다 겁결의 못보고 통망극여 경상이 참연더니 겻 사이 그 편지 셰히 보고 그러치 아니믈 분명이 니 후 망건과 갓슬 도로 다 니 대개 셔울 소문만 듯고 편지 못 보앗다가 의 망급여 이치 젼도 일이 이시니 졔 비록 블민나 이 사의 넉 일흔 거동을 가히 샹샹리다
 
440
초뉵일
441
평명의 발여 이 날 지난 바 곳 마다 신 도라 갈  즐기 유명 라 이러므로 초하구(草河口) 즁화고 통원보(通遠堡)의 슉소니 합여 오십오 리라초하구의 니러 부와  캉의셔 됴반니 캉 밧긔 풍긔 잇더라
442
셕우(石隅)의 니로러심양셔 믄져 보낸 군뇌 도라와 슈 아 현신니 이월 회일(晦日) 편지 보 가국이 태평 회보오 칙 초이일셔울들고 진향(進香使) 초삼일 나다 엿더라
443
통원보의 니니  이젼 드럿던 집이라 쥬인 발쟝(撥長)니개(李哥ㅣ)캉 밧긔 나와 마 반기 비치 잇더라
444
캉 밧 문으로부터 캉 안 문의 나모로 테 도게 여 문을 열며 다 믄득 소 나니 밤의 가히 도젹을 방비너라
445
초하구와답동(畓洞)은 즐기 바다튼 곳일너라  오날 그도록 간신치 아니 니역관이 오 이 번 치 길이 죠키 젼의 지내지 못 일이라 니 대개 봄비 오지 안닌 연괴러라
 
446
초칠일
447
발여팔도하(八渡河) 지나니 다리로 건너 곳이 네히오 믈노 건너 곳이  네히오 굽의 기 곳은 그 슈 모너라
448
황가장의 즁화 른 사들이 겻 캉의 드럿더니 그 캉의 졈은 겨집이 이시 나히 이십여 셰라 얼골이 못 단묘나 념연(恬然)히 사을 피치 아니니뉴군(柳君)이 대락(大樂)여 공연히  쥼치 열고 담 혀 믄져 캉 알 잇 남 화쥬고 버거 그 겨집을 쥬니  양치 아니지라 얼골이 져기 니그 압흐로 오라여 겨집의 슈식(首飾)을 구경노라 고 의  골희며 귀옛 골을 어져 머리 쓰다드마 손을 잡고 친압히 구나 겨집이 븟그리 빗치 업며 그 어미  겻셔 조히 너기더라 니 우읍더라
449
심판부(沈判府事ㅣ)일즉 솔참의셔 상 낫지라 샹 구긔여 알프로 나오지 아니코 이 참의 인여 슉소거 나 부방과 가지로 솔참의 니러댱가(張哥)의 집의 슉소니라
450
졍(冷井)을 지나므로브터 길이 쳡쳡산즁이라 이날 들블이 치셩고 묏내 윽여 잇다감 블치 길의 미니 대개 산즁 셩이 화뎐을 위미라뇨동슈쳔리 들 왕왕이 논을 글며 누만셕 곡식을 어들 거시로 이 아니코 니인 언덕의 슈고이 흙을 일워 이치 힘을 허비니 크게 공교로은 풍쇽이 믄득 크게 졸미 잇지라 가(可笑ㅣ)러라
 
451
초팔일
452
날 풍한이 엄동과 고 눈이 니며 개엿다가 도와 날이 도록 그치지 아니니 이 슈졀(愁切)더라
453
이젼 드럿던 대(四臺子) 집의셔 즁화니 샹 미조차 니럿더라
454
나 슈 길이 간관(間關)므로 샹부방 믄져 나가니 대로브터 문이 오십 니봉셩을 지나지 아니코 바로 남으로 향여 삼십니의셔 지나지 못며 지나 곳의이을산(二乙山)과곡(沙谷)과구문(舊柵門)구란 디명이 잇더라
455
구문의 니러 젼방의 잠간 여 샹부방  기리더니통관김운의 아이 그 아와 족하 리고와 보니 인믈이 휴휴여 계문의 뎐형이 만터라 졔 집이 젼방 남편의 이시니 슈목이 총울고 가 즐비지라 져희 형뎨 문을 호지 아니코  집의 거쳐니 식귀 일십여 인이라 니 이 디 아닌 일이러라
456
제 비봉황산(鳳凰山)밋 살고 그 한아비셔종(徐宗孟)의 묘 그 집 뒤의 이시니 곡쟝(曲墻)과 셕믈(石物)이 졔되(制度ㅣ) 장 치대더라
457
신시말은 여 문의 니러악가(鄂哥)의 집의 햐쳐다의쥬형니와 셔(書者)와 즁군(中軍)과 집(執事)며 통인(通引)과 군뇌(軍牢) 다 니러 령고 교(轎馬ㅣ)  드러와시니 이 삼방의 홀노 이러고 샹부방은 강을 건넌 후 비로소 을 톄파(替擺)더라
 
458
초구일
459
문 머므다 슈 짐이 어 다니 쥴 아지 못너라
460
샹(私商)을 마조 보내여 촉다 광영(廣寧)니럿던 날 샹방의 셔역관 윤갑종(尹甲宗)과 박을 별노 뎡여 짐을 거리고 오라엿더니 묘연이 소식이 업니 혹 니러 녕 길이 임의 극히 험고 즐기 심히 졈졈 더니 쟝 열흘을 나마 지운 후의 비로소 짐이 다 오고 문을 나리라 니 민망코 답답여 견지 못 낫과 밤 든 후니시관(李時觀)이의쥬로 드러왓지라 셔울셰 소식을 뭇고 밤즁이 지난 후 이에 을 일우다
 
461
초십일
462
문 머므다 농 마두 은알외 문 사드리 니 칙 문을 나 거의압녹강의 니른 후  사이 황뎨 됴셔 내여 즁의 닑어 들니니 곳 칙 뒤흘 발마 안(按覈)미라 일이 다 황공여 아모리  쥴 모고통관 사이   필을 넘겨 가려 다가 그 발간(發奸) 배 되엿지라 믄극 머리 두리고 죽기 쳥다 며 인여 니 신황샹(新皇上)이 명찰기 이고 너희 나라흘 진념미 이다 더라 고더라
 
463
십일일
464
문 머므다 진향 방믈이 임의 문 밧긔 니니 원(差使員) 위원군슈 박광진(朴光進)이 댱막을 베플고 직흰다 더라
465
슈역(首譯) 김뉸세의 쥬로브터 드러오다
 
466
십이일
467
문 머무다 쥬인악가(鄂哥)삼형뎨 다 갑군이라 년젼쇼금쳔(小金川)도젹을 칠 예악개맛당이 츌젼지라 졔 형뎨 가지 토더라 니 대개 츌졍 군의 집은 녜 마다 삼십냥 은 쥬고 홈을 이긔면 복호 쥬고 손이 로 쳔호 벼을 니어 다 니 이쳥나라뎡 법이라 일노 사이 이기 즐겨여 죽을  기 달니시 다 더라
468
갑군이 황셩(皇城)과 밋심양과산관의 직희여 잇 쟈 그 집의 마다 석냥 은을 쥰다 더라
 
469
십삼일
470
문 머므다 윤갑종박이 드러와 알외 슈 짐 다엿 일 일 드러오고 여라믄 슈  명일 드러오되 냥녕(兩嶺)의 힌 눈이 자이 지나고 어이 밋그러오 흙이 즈러 슈 나오기  오일을 허비리라 지라 샹 그 녕거(領去)여 오지 아니코 믄져 오므로 캉의 나안고 두역관을 각 결곤(決棍) 삼 도식고 여금 즉시 도로 나가라 니라
471
진향 일이 신후(申後)의 문의 드니 부 김(金) 참판 니익(履翼)과 셔장관 됴(曺) 교리 셕즁(錫中)이 햐쳐의 니러 거 져녁 식후의 내 회샤(回謝)니라
 
472
십일
473
문 머므다 진향 능셩위구경[민]화(具敏和) 알프로 나아가고 부와 셔장은 방믈 슈 실니고 나려 여 밋쳐 슈 엇지 못 고로 낙후여 머므다
 
474
십오일
475
문 머므다 쥬인악개새벽의 캉의 드러와 벽 우흘 향고 향을 픠오며 세 번 고 세 번 고두(叩頭)니 졔 집 신쥬 벽 우희 감실을 글고 너흐미라 져녁의  드려와 새벽로 녜슈(禮數)더라
476
이 집 뒤흔 곳관뎨묘니 듓대의 긔 고 븍을 울리며 밤 드로록 긋디 아니터라 진향 부 삼방(副三房)이 이 날  나 가니라
 
477
십뉵일
478
문 머드다 이날 슈 짐이 년쇽히 드러와 삼경(三更)냥의 니니 샹 슈부역(首副譯)을 분부여봉셩(鳳城)의 니러 셩쟝(城將)을 쳥여 문을 열나니 밤즁의 나 가니라
 
479
십칠일
480
오시(午時)량의 봉셩쟝(鳳城將)이 니럿지라 여러 관원이 드러올  치 아문의 안고 믄져 짐리 낼 두어 을 프러 금믈(禁物)이 잇가 샹고 모양을 더라
481
삼이 례로 문을 나 샹부(上副使) 인여 은졍녕으로 젼진고셔쟝은문흥셩(門興城)을 검칙기로 문 밧긔 낙후여 머므니 구덩이 파 슛츨 픠오고 우희 댱막을 베퍼 올  한둔던 모양이라 문을 나 시훤 이 새 농속의 나옴 나 다만 반년 동이  니별을 일우니 샹하 일이 손을 잡고 눈믈을 먹음 이 만흐니 인졍이 고이치 아닌 일이러라
482
역관김명귀와니시풍과박홍뒤 낙후니라
483
내 슈삼 죵인으로 더브러 광박 들 가온대 셔로 직희여 이시니 겹겹 뫼 알 둘너 잇고 긴 대 베개 아 소니 의 심히 쇼연더라
484
븍경금믈이 여러 가지로 그 즁 흑각(黑角)과 이 군긔의 쇽다 여 더옥 엄히 금니 만일 잡히 일이 이시면 아국의  되지라 이러므로 아국이  엄금니 흑각은 혹 짐속의 초와 마니 내여오 오직 이 슘길 길이 업니 샹   슈밧긔 감히 내여 가지 못고 노와 나귀 금치 아니나 삼승 두어 필을 셰 밧으니 이러므로 그 슈 닷토와 극히 요란더라
485
의쥬 샹고 두 놈을 블너 금믈을 신칙고 흥셩을 촉니라
486
역관들이 비초긔(備抄記) 드러 셩졉니 비초긔라  말은 드러갈 젹의 은슈(銀數) 뎡고 샹(潛商)을 엄히 금 오히려 이 막지 못다 여 도라나오 각각 가져간 은슈 젹고 오 믈건을 느러 쓰고 다 갑 다라 가져간 은슈의 마초아 혹 은슈의 넘미 이시면 샹이라 잡아내지라 일노 인여 샹이 비록 난잡지 못나 만흔 믈건을 갑 리와 임의로 은슈 마초니 그 간계 죵시 막을 길 업고 혹 의 건량(乾糧) 짐과 의롱(衣籠) 짐을 빙쟈여 조고만 인봉(印封)을 어드면 비록 비포 밧기라도 감히 헤쳐 샹고치 못니 죵죵 공교 계교 이로 피지 못지라 이 번은 내 짐농지 인을 아니치고의쥬슈엄소(受檢所)의 다 프러보게 니라
 
487
십팔일
488
문의 머므다 이 날 칙 문을 든다 지라 새벽브터 셩쟝과 세관과 문어(門御使)와 여러 관원이 연후 위야 년쇽여 문을 나 동으로 나아가며 문 안밧긔 사이 분분이 츌입더니 오시 여 가졍(家丁)의 무리 아국 역마 고 믄져 오 마뷔(馬夫ㅣ) 다 을 으러지라 혹 곳비 노코 뒤 쳐지면 믄득 로 마부 리니 대개 아국 은 져의 과 달나 곳비 으지 아니면 길흘 바로 아니가니 일노 부 을니미러라 짐리 믈읫 오뉵십 태(駄)라 이 다 의복과 금침과 다 음식을 바다오 거시오 그 밧 녜믈과 은 다의쥬다가 맛져 관 편의 갓다가 쥬기 구다 니 대개 황뎨 칙지 이셔 녜믈을 밧지 말나 민가 시부더라
489
져기 오란 후 부칙(副勅)걸(恒傑)이 을 고 알셔니통관계문 태령보와 밋 가뎡과 연후 갓던 사을 합여 슈십인이 다 을 달녀 고 샹칙댱승훈(張承勳)은 태령챠 고 뒤 셔시니 죵쟤  슈십인이라  뭉치여 일시의 문을 들고 문을  즉시 닷더라
490
칙 문을 드러 바로봉셩으로 나아가되 예셔븍경지 열엿의 참여 월 초삼일 맛당이븍경을 들니라 더라
491
뉴관 머므러 드□()니녜부시랑늙보(勒保) 강여각 시기다 며 길의셔 드니 그의걸이 다 고댱승훈은  기리미 잇고걸은 들니  업더라
492
의쥬 비쟝 손셩험이 칙을 라 니러 댱막의 와 보니라
 
493
십구일
494
문의 머므다 젼브터 문 샹고들이셔쟝이 길을 촉믈 아지라 진짓 믈건 갑 결단치 아니여 여러 날 쳔연니 이러므로 혹 과히 촉면 더옥 쳔고의쥬샹고의게 무 낭 되지라 일노 인연여  박졀이 촉지 못고 다만 여러 날을 믁을 을 보되 긴 날의 소일이 어렵고 이 날 밤브터 비와 날이 도록 그치지 아닛지라 인여김명귀와니시관을 블너 감토 셰 밧 일을 무니 감토  이 쳔닙히 되고  의 셰 밧 거시 십냥이라 모 쳔 이 면 셰가 만냥이 되지라 이속의셔 의 지공과 반젼이 의쥬부윤이  거시 이시니 이  죡히 당  마다 쳔 이 못되여 만여 칠 이 되 고로의쥬셔 쓰이 거시 점점 부족더니 근년의 별노 변통여 근근이 감당다 더라
495
져녁 의의쥬샹고의 믈화 다 시러드리고 피인의 감토 짐을 내니 일 길을 나기 뎡다
 
496
이십일
497
이 울며 발니 안개 옥여 먼 보지 못너라
 
498
은졍평의 니러 즁화고 총슈(葱秀)의 니니 곳 칙의 고 지난 곳이라  굴헝을 파고 댱막을 첫던 모양이 이시나 블을 노하 살나시니 이 져희 살온 거신지의쥬하인이 살온 거신지 우리 문 밧 둔 곳도 난 후  블을 놋다 니 어인 의 쥴 모너라
499
문 밧 길이 어졔 비의 즐기 심여 혹 이 져 헤여나지 못니 극히 민망더라
500
구련셩(九連城)의 니 라보니마산셩이 안젼의 둘니이고압녹강이 세 가지로 화 앏흐로 흘너시며의쥬셩 안희 외온 누각이 강을 님니 이 통군졍이라 이역의  지내고 고국 산쳔을 다시 만나니 반가온 이 비 업며 일 군산이 먼리 미망니 안계 새로와븍경의 장려 누각이 도혀 닛치 이지라 홀연 각건대니 졔독 여숑이 군 거리고 이곳의 니러됴션운산이 츌몰여 긔특믈 라보고 군 셰고 내믈 소소와 말이 심히 강개니 사의 긔운을 더을지라 야흐로애하(靉河) 건널 반년 지낸 바 각 일이 단원여 고국의 환미 진실노 왕뎡의 미 배라 내 이 말노 겻 사을 도라보와 니니 다 오 그러타 여 혹 깃브미 극여 눈믈을 머금 쟤 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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즁강(中江)의 니 갈규츨 이이 복셩화 튼 치 블근 빗과 프른 빗치 셔로 고오믈 토며 산허리의 두견홰 왕왕이 픠여 시믈(時物)의 슈히 변믈 감동고 마슈의 도라오믈 깃거여 압녹강을 건너 부윤이 강 댱막을 셜고 마니 이윽이 슈작다가 셔문으로 말암아 응향각의 햐쳐니 이후 젹은 별노 긔록 거시 업고 이십이일 나 삼십일 복명니의쥬의셔 난 날노부터 아흐렛만의셔울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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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 십월 십구일 셔울셔 발야 십일월 초팔일의쥬니고 십구일 도강여 십이월 십구일 븍경의 들고 긔미 이월 초팔일 븍경셔 회졍여 삼월 초팔일 문 니고 이십일 도강여 삼십일셔울드러오다 무오 십월 쇼 십일월 대 십이월 대 긔미 졍월 쇼 이월 대 삼월 대셔울셔 발야 십구일 만의의쥬니고의쥬의 십일일 믁고 도강지 삼십일일만의 븍경의 들고뉴관 오십일이오회졍지 삼십일일만의 문 니고 문셔 십일일 믁고 도강지 십일일만의셔울드니 합 일뉵십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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