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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문자전(廣文者傳) ◈
해설   본문  
1754년경 (영조 30)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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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자전(廣文者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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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廣文)이란 사람은 거지였다. 일찍이 종루(鐘樓) 거리 시전(市廛)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 먹었는데, 나중에 여러 거지아이들이 그를 패두(牌頭)로 추대하여 그들의 소굴을 지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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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날씨가 춥고 진눈깨비가 내리는데 모든 거지들이 구걸을 나가고 한 아이만이 병이 나서 따라 나가지 못했다. 잠시 후 거지아이는 추위로 아픔이 심해지니, 그 신음소리가 매우 비참했다. 광문은 그것을 불쌍히 여기고 구걸을 나가 음식을 얻어왔다. 그가 병든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려 했으나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윽고 여러 거지아이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광문이 그 아이를 죽이지 않았나 의심해서 광문을 뭇매질하고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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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은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마을 안의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의 개가 놀라서 짖는 바람에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서 묶었다. 광문이 큰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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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해치려는 자들을 피해서 온 것이지, 감히 도둑질을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영감님께서 믿지 않으신다면 내일 아침에 시전에 나가 밝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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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매우 순박해서 집주인은 마음속으로 광문이 도적이 아님을 깨닫고 새벽녘에 풀어 주었다. 광문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거적때기를 하나 얻어서 집을 떠났다. 하지만 집주인은 끝내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따라갔다. 그는 여러 거지들이 시체 하나를 끌고 가 수표교(水標橋) 다리 아래로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광문은 다리 아래 숨어 있다가 시체를 거적때기에 싸 짊어지고 몰래 떠나더니 서쪽 교외의 무덤 사이에 그것을 묻고 울면서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이때 주인이 광문을 붙들어 사연을 물으니, 광문은 전의 일부터 어젯밤의 상황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주인은 광문이 의로운 자라고 여겨 그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 입히고 그를 후하게 대우해 주었다. 그리고 그를 약방을 하는 부자에게 추천해서 고용살이를 하게끔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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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 지난 어느 날 약방 부자가 문 밖으로 나가다가 자꾸만 돌아보며 다시 방에 들어와서 자물쇠를 살피고 문을 나서는데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매우 놀란 표정으로 광문을 노려보더니 무언가 말하려다가 안색이 변해서 그만두는 것이었다. 광문은 진실로 아는 바가 없는지라 매일 묵묵히 지낼 뿐 감히 이유를 묻고 떠나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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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지 며칠 후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부자에게 돌려주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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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돈이 필요해서 아저씨께 빌리러 왔는데, 마침 안 계시기에 방에 들어가서 가지고 갔습니다. 아마 아저씨께서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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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광문에게 매우 부끄러워하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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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인(小人)일세. 장자(長者)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내 장차 무슨 면목으로 자네를 대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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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부자와 큰 상인들에게도 두루두루 ‘광문은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여러 종실(宗室)의 손님들과 공경(公卿)의 문하(門下)들에게도 광문을 칭찬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래서 공경의 문하와 종실의 손님들이 모두 이것을 이야깃거리로 삼아서 침석에서조차 이 이야기를 했다. 몇 달 동안 사대부들은 옛 성현들의 이야기를 듣듯 광문에 대하여 듣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때 한양성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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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을 전에 후히 대접했던 어느 집 주인이야말로 현인(賢人)이야. 능히 사람을 알아보았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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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덧붙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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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방의 부자야말로 점잖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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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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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돈놀이꾼이 많았는데 그들은 수식품(首飾品)이나 구슬, 비취 또는 의건(衣件), 기물(器物)과 궁실(宮室)의 땅과 노비문서 등의 밑천을 계산해서 저당을 잡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광문은 누가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면 저당물을 보지도 않고 천 냥이라도 보증을 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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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의 인물을 보면 생김새가 매우 추하고 그 말투는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며, 그 입은 특히 넓어서 두 주먹이 들어갈 정도였다. 그는 또 만석(曼碩)놀이를 좋아하고 철괴(鐵拐)춤을 잘 추었다. 당시 나라 안의 아이들이 서로 욕할 때 ‘네 형은 달문(達文)이다’라고 했는데 달문은 광문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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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은 다니다가 다투는 사람을 만나면 자기도 옷을 벗고 싸움에 가담해서 무어라 중얼거리며 땅에 줄을 그으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척했다. 그러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웃어 버리니, 싸우던 사람들도 웃고는 화해하고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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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은 나이가 사십이 넘도록 머리를 땋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부인을 얻으라고 권하면 사양하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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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아름다운 여인이란 모든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일 테니, 나같이 누추한 사람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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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다. 또 집을 마련하라고 하면 사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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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형제나 처자식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집을 마련한단 말입니까? 또한 나는 아침에 노래를 부르며 시장에 들어갔다가 저녁이 되면 어느 부귀한 집의 처마 밑에서 자니, 한양성에는 팔만 호(戶)가 있어 내가 매일 거처를 바꾼다 해도 수명이 끝날 때까지 다 돌아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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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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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이름 있는 기생들은 모두 얌전하며 아름다웠으나, 그들은 광문이 소리를 함께 맞춰주지 않으면 한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우림아(羽林兒)와 각 전(殿)의 별감(別監)들과 부마도위(駙馬都尉) 등이 시종을 거느리고 소매를 나란히 하여 이름난 기녀인 운심(雲心)이를 찾았다. 마루 위에 술을 차리고 북과 거문고를 연주하며 운심이의 춤을 감상하려고 했다. 하지만 운심은 굳이 시간을 끌며 춤을 추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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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이 밤에 이곳에 와서 마루 아래를 배회하다가 대뜸 들어와서 상석(上席)에 털썩 앉았다. 광문은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있어 행동거지가 전에 없는 것이었으나 그 뜻에는 기개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해괴하여 눈꼬리가 짓물러 눈곱이 끼여 있고 취한 척 트림을 해대며 양의 털 같은 머리에다 뒤통수에 상투를 틀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서로 눈짓을 하며 광문을 쫓아내려고 했으나, 광문은 한층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치며 가락을 뽑아 콧노래로 고저(高低)를 맞추었다. 그러자 운심이가 즉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광문을 위하여 칼춤을 추니, 사람들은 크게 즐거워했다. 그들은 다시 광문과 벗이 되기를 청하고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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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외집․방경각외전―
【원문】광문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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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朴趾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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