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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록 (壬辰錄) ◈
◇ 권지일(卷之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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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록 (壬辰錄)
2
권지일(卷之一)
 
 
 

1. 평수길(平秀吉)의 야망(野望)

 
4
각설, 동남해(東南海)에 한 나라가 있으니 국호는 일본(日本)이라, 동서는 육십일 정이요 남북은 팔십이 정이요 팔도가 육십일 주니 삼십오 군이 일 주 되었더라.
 
5
조선국 경상도 동래(東萊) 부산포(釜山浦)로부터 수로(水路)로 일본을 가나니 대마도(對馬島) 상거가 삼백육십 리요 집마도 상거는 사백구십 리요 일기도(壹岐島) 상거는 육백사십 리요 철마도 상거는 오백사십 리요 말유관 상거는 칠백오십 리요 표화관 상거는 육백 팔십 리요 병교관 상거는 삼백리요 지우관은 사백이십 리요 오산은 삼백오십 리요 오산은 곧 일본이라, 합하여 사천육백육십 리러라. 혹 이르되 진시황(秦始皇) 시절에 서불(西巿) 등이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데리고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러 삼신산(三神山)을 찾아가 얻지 못하고 인하여 그 섬에서 살았는 고로 이제 이르되 서불의 자손이라 하더라. 그 후로 인물이 번성하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예라 하더니 그 후 고쳐 왜(倭)라 하더라.
 
6
신라 혜공왕(惠恭王)이 처음으로 왜란(倭亂)을 보고 또 자비왕(慈悲王)에 이르러 명장 석우(石尤)가 왜란에 죽고 고려왕이 왜로 더불어 결혼하더니 아조(我朝)에 이르러 호남(湖南)을 자주 침노하니 조선이 연하여 왜란에 곤하여 편치 못하더라.
 
 
7
각설, 대명 세종황제(世宗皇帝) 가정(嘉靖)년간에 중국 침주 땅에 한 사람이 있으니 성은 박(朴)이요 명은 세평(世平)이니 기선은 박국진이라, 왜인이 자주 강남을 침범하다가 마침내 항주에 이르러 평이 왜인에게 죽고 그 처 진씨(陣氏)는 해내(海內)의 유명한 절색(絶色)이라, 왜인에게 잡힌 바 되어 인하여 살마도 땅에 있는 평신(平伸)이라 하는 사람의 아내 되니 진씨 박세평에게 있을 제 잉태 삼 삭이더니 평신에게 온지 십 삭 만에 한 아들을 낳으니 합하여 십삼 삭이라. 진씨 임산하기에 이르러 한 꿈을 얻으니 황룡(黃龍)이 공중에서 내려와 진씨 품으로 달려들거늘 놀라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그 후로 몸이 불평하더니 홀연 향내 방중에 진동하고 붉은 기운이 사면에 자욱하였다. 이윽고 일개 남아(男兒)를 생하니 용모(容貌)가 비상하여 용의 머리에 범의 눈이요 잔나비 팔이며 제비턱이니 짐짓 영웅의 기상일러라. 평신이 대희하여 이름을 수길(秀吉)이라 하고 자를 평운산이라 하니 길(吉)이 삼 세(三歲)에 이르러는 음성이 용의 소리 같고 기이한 일이 많더라. 오 세에 이르매 문장을 능통하니 보는 자 아니 칭찬할 이 없더라.
 
8
수길이 점점 자라 나이 칠 세에 이르러는 기골(氣骨)이 장대하고 지략(智略)이 과인하여 범인으로 더불어 크게 다르러라. 일일은 수길이 스스로 생각하되,
 
9
‘내 마땅히 일본 육십육 주를 두루 구경하리라.’
 
10
하고 인하여 집을 떠나 원근 산천을 편답하더니 집마도 땅에 다다라는 날이 심히 덥고 몸이 곤하거늘 섬에 앉아 쉬더니 관원이 마침 풍경을 완상(玩賞)하고 돌아오다가 수길의 상모(相貌)가 기이함을 보고 심중에 생각하되,
 
11
‘이 아이 타일 귀함을 측량치 못하리니 가히 버리지 못하리로다.’
 
12
하고 즉시 수길을 불러 문왈,
 
13
“그대는 어느 곳에 있으며 이름은 뉘라 하느뇨.”
 
14
수길이 대왈,
 
15
“나는 살마도 땅에 사는 평신이로소이다.”
 
16
그 관원이 달래며 이르되,
 
17
“나는 살마도주 관백(關白)이라 하거니와 일찍 한낱 골육(骨肉)이 없는 고로 정히 후사(後嗣)를 근심하더니 이제 우연히 그대를 만나매 사랑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는지라. 청컨대 나의 아들이 되어 후사를 잇게 하면 내 벼슬을 대신하여 일국 병권(兵權)을 총독하면 이는 장부(丈夫)의 쾌사라. 그대 뜻이 어떠하뇨.”
 
18
수길이 이 말을 듣고 땅에 내려 절하고 왈,
 
19
“미천한 사람의 자식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이렇듯 무애(撫愛)하시니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 감히 듣지 아니리이까.”
 
20
관백이 대희하여 즉시 수길을 데리고 궁중에 들어와 좋은 의복을 입히고 주찬(酒饌)을 먹이며 시사(視事)를 의논하니 대답이 여류(如流)하여 모를 일이 없는지라, 관백이 대희하여 드디어 수길로 지의장군을 명하니 수길이 스스로 그 지략을 헤아리며 주대(周代)의 여상(呂尙)과 한 대(漢代) 제갈량(諸葛亮)으로 더불어 병구할 것이요 겸하여 용력(勇力)이 절륜하니 당시 그 재주를 비할 이 없는지라. 이러므로 팔도 영웅이 망중(望重)하여 돌아오니 이로부터 일본국 육십육 주를 통령(統領)하여 위명(威名)이 크게 떨치니 해중의 모든 소국(小國)이 항복하는 자가 많은지라. 수길이 비로소 큰 뜻이 원대하고 우익(羽翼)이 많음을 인하여 드디어 황제를 폐하여 신성군을 삼고 제호를 칭하며 원을 고쳐 문득이라 하니, 차시는 아국 조선 선묘(宣廟)적 시절이라. 이백 년 승평(昇平)함을 인하여 상하인민이 재물을 탐하고 병기를 다스리지 아니하니 시사의 해이함이 이에 극하더라.
 
21
이때는 대명 신종황제(神宗皇帝) 만력(萬曆) 육 년 무인 춘삼월이라, 아조 관상감(觀象監)이 계사(啓事)하되,
 
22
“장성(長星)이 동남을 가로선 지 수월이로소이다.”
 
23
하니 상이 근심하시니 백관(百官)이 조회에 여짜오되,
 
24
“중국이 무사하고, 황제 아국을 극히 대접하시니 무슨 환란이 있으리이까.”
 
25
상이 반신반의(半信半疑)하시더니 기묘년에 이르러는 태백성(太白星)이 자주 뵈고 백홍(白虹)이 자주 해를 꿰니 지식 있는 자 가장 근심하더니, 경진년에 이르러는 경상도 단성 고을에 있는 해음강이 절로 마르고 동해서 나는 고기 서해로 모이고 연평 바다에서 나던 청어가 요동서 잡힌다 하여 소설(騷說)이 자자하더니 임오년에 다다라 범이 평양성(平壤城) 중에 들어와 사람을 무수히 살상하고 대동강(大洞江)이 혹 마르며 혹 핏빛 같아 칠 일을 두고 서로 돌며 두 빛이 되고 성중에 또 검은 기운이 충천하기를 또 칠 일을 하고 무자년에 이르러 황해도 물이 핏빛이 되어 삼 일을 끓으니 어족이 죽어 물 위에 무수히 뜨고 남해물이 자주 창일(漲溢)하니 사람마다 황황하여 의논이 분분하더니 전교수 벼슬하던 조헌(趙憲)이란 사람이 국중에 자주 재변(災變)이 있음을 보고 상소하여 가로되,
 
26
“신이 비록 지식이 없사오나 요사이 천문을 보니 태백(太白)이 동으로조차 북으로 지고 재변이 연하여 일어나고 세도인심(世道人心)이 지극히 강악하여 부모형제 서로 인륜대의(人倫大義)를 모르오니 조만간에 반드시 변이 있을 것이니 바라옵건대 성상은 각 도에 지휘하사 빨리 병기를 신칙(申飭)하소서.”
 
27
하였더라.
 
 
28
상이 그 상소를 보시고 의혹하여 결치 못하시더니 형조판서(刑曹判書) 유홍(兪弘)이 상전에 나아가 주왈,
 
29
“이 같은 태평시에 조헌이 요망한 말을 내어 민심을 소요케 하니 그 죄 중하온지라, 원컨대 성상은 빨리 조헌을 찬출(竄黜)하사 민심을 진정케 하소서.”
 
30
상이 옳이 여겨 즉시 의윤(依允)하시고 조헌을 함경도 갑산(甲山)에 정배(定配)하시다.
 
 
31
각설, 평수길이 황제위에 오르고 제조(諸朝)를 항복받으며 뜻이 교만하여 스스로 이르되,
 
32
‘내 어찌 조그만 나라를 지켜 제후왕(諸侯王)과 같이 하리오.’
 
33
하고 드디어 문무중관(文武重官)으로 더불어 의논 왈,
 
34
“내 이제 백만웅병(百萬雄兵)을 거느려 북으로 조선을 치고 인하여 대명(大明)을 엄습하고 천하를 도모코자 하나니 계교 장차 어디 있나뇨. 제신은 품은 바를 이르라.”
 
35
언미필(言未畢)에 한 사람이 이르되,
 
36
“조선을 치고 대명을 통합코자 하실진대 반드시 조선을 무사히 지난 후에야 바야흐로 중원에 들어가오리니, 조선은 본디 예의지방(禮義之邦)이라, 현인군자 많으니 가볍게 도모치 못할지라. 조선을 치고자 할진대 마땅히 지용이 겸비한 사람을 가려 먼저 조선에 가 강약의 형세를 탐지하며 산천의 험세(險勢)를 살핀 후 동병(動兵)함이 늦지 아닐까 하나이다.”
 
37
하고 제신을 돌아보아,
 
38
“뉘 능히 나를 위하여 먼저 조선에 나아가 허실을 탐지하여 올꼬.”
 
39
말이 마치지 못하여서 팔장(八將)이 일시에 뛰어나와 이르되,
 
40
“소장 등이 원컨대 이 소임을 당하리이다.”
 
41
하거늘 돌아보니 제일은 평조익(平調益)이요 제이는 평조신(平調信)이요 제삼은 평조강이요 제사는 안국사(安國史)요 제오는 선강정(善江丁)이요 제육은 평의지(平義智)요 제칠은 경감로(景監老)요 제팔은 송인현소라. 평수길이 대희 왈,
 
42
“경 등이 힘써 일을 이루면 반드시 중상이 있으리라.”
 
43
하고 각각 은자 삼천 냥씩 주어 반전(盤纏)을 보태게 하니 팔장이 즉시 하직하고 행장(行裝)을 수습하여 배를 타고 아국으로 향하더니 벌써 부산지계(釜山地界)에 이르러 배를 물가에 닿이고 각각 의복을 고칠새 혹 중[僧]되 되며 혹 거사(居士)도 되며 혹 장사도 되어 서로 길을 나누어 행할새 다시 기약하되,
 
44
“우리 등이 각각 한 도씩을 맡아 허실을 탐지하되 삼 년을 한하여 도로 부산으로 모이자.”
 
45
하고 각기 각 도로 들어오니라.
 
46
차시에 아국이 운수가 불행한 중 일본이 동병하려 하는 줄 전혀 모르고 일체 군무(軍務)를 준비함이 없으니 어찌 가석치 아니하리요. 이때에 태평원 뒤에 큰 돌이 절로 일어서고 만수산(萬壽山) 아래에 봉선(奉禪)이 있어 날마다 웨여 이르기를 십여 일을 하는지라. 일로 인하여 인심이 소요하고 지식 있는 자 심산궁곡(深山窮谷)에 들어가 은거함이 많더라.
 
47
차시 왜장 팔 인이 아국 팔도에 흩어져 사적을 탐지할 뿐 아니라 도성(都城)에 들어와 궁중 대소사를 낱낱이 살핀 후에 부산으로 모여 다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들어가 수길을 보고 조선지도(朝鮮地圖)를 올리며 사정을 일일이 고한대 수길이 대희하여 중상(重賞)하고 즉시 사신을 청하여 국서(國書)를 아국에 보내니 그 글에 하였으되,
 
 
48
조선이 일본으로 더불어 접계(接界)하였으나 일찍 서로 통신함이 없으니 그 일이 가장 그르고 또 우리로 하여금 중국을 통치 못하게 하니 더욱 미안한지라. 작금 이후로 양국이 화친하고 일본 사신으로 하여금 중국을 통케 하라. 그렇지 않으면 먼저 조선에 대화 미칠지라.
 
49
또 하였으되,
 
50
천하 형세 다 내 장악(掌握)중에 있나니 뉘 감히 거역하리요.
 
51
하였더라.
 
 
52
상이 그 글을 보시고 크게 근심하사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모으시고 그 일을 의논하라 하신대 백관이 여짜오되,
 
53
“가히 사신을 일본에 보내어 화친(和親)을 통하고 겸하여 왜인의 사정을 탐지함이 상책인가 하나이다.”
 
54
상이 즉시 김성일(金誠一), 황윤길(黃允吉)로 상부사를 삼아 일본으로 보내시니 이 인이 명을 받아 궐하에 하직하고 행하여 일본에 들어가 평수길을 보고 국서(國書)를 전하니 수길이 보기를 마치매 문득 크게 노하여 왈,
 
55
“조선왕이 만일 친히 이르러 조회하고 일본 사신으로 하여금 중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주면 말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조선이 먼저 대화(大禍)를 만나리라.”
 
56
하고 아국 사신을 박주(薄酒) 수배(數盃)로 대접하고 회환시(回還時)에 은자 사백 냥을 상사(賞賜)하고 답서하여 주되 사기(詞氣) 더욱 패만하더라.
 
57
신묘년에 이르러 수길이 평의지로 하여금 부산 동헌관에 보내어 배를 타고 웨여 왈,
 
58
“조선이 아국 사신을 인하여 대명(大明)으로 들어가게 하면 피차 좋으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너희 인민이 많이 상하리라. 이에 머물어 회답을 알고 가려 하노라.”
 
59
한 대 조선이 마침 한 말 대답함이 없으니 평의지 대로하여 배를 돌이켜 본국으로 돌아가 수길을 보고 회보하니, 차시 수길이 벌써 뜻을 결하여 제장으로 더불어 출병하기를 의논하더니 대장 청백세 이르되,
 
60
“이제 만일 조선을 치고자 할진대 날랜 장수 넷을 뽑아 네 길로 나아가되 북해를 건너 부산지경에 이르러 두 장수는 수로로 행하여 조선국 삼남(三南)을 엄습하면 조선왕이 반드시 평안도(平安道)로 달아날 것이니 우리 군사를 거느려 그 도성을 웅거하고 일지병을 보내어 평안도를 엄습하고, 또 두 장수는 수로로 행하여 서해에 둔병(屯兵)하고 또 일지병을 보내어 압록강(鴨綠江)으로 나아가 북로를 막으면 조선이 비록 중국에 구원병(救援兵)을 얻고자 하나 어찌 능히 통하리요. 이리 한 후에 우리 능히 대병을 몰아 두 편으로 협공하면 조선왕(朝鮮王)을 능히 사로잡을 것이니 조선을 얻은 후 즉시 군사를 옮겨 평양에 둔하고 조선 군사로써 요동(遼東)을 치게 하고 우리 군사로 하여금 중원(中原)을 엄습하면 천하를 가히 도모하리라.”
 
61
한대 수길이 대희하여 일변으로 국중병을 다 일으키고 일변으로 해중병을 일으키며 해중제국에 격서(檄書)를 전하여 각각 군마를 거느려 싸움을 돕게 하고 대장 청정(淸正)으로 하여금 평행장(平行長)으로 더불어 일군을 거느려 육로로 나아가 조선 삼남(三南)을 치게 하고, 또 마다시 심안둔 이 장을 각각 일지병을 거느려 수로로 가 육로 군사를 접응하라하고 스스로 제장과 대군을 거느려 뒤를 따라 접응하려 하더라.
 
62
차시는 임진(壬辰) 사월이라. 정발(鄭撥)이 포졸을 데리고 칠섬가에 산행(山行)하더니 홀연 보니 오리 갈매기 까막까치 무리 지어 오거늘 발(撥)이 가장 고이히 여겨 양구히 보더니 얼마 후에 물 위로 조차 들리는 소리 가까우니 발이 심중에 의혹하더니 이윽고 왜선 수백여 척이 내려오되 정기(旌旗) 바다를 덮었으며 창검(槍劍)이 일색(日色)을 가리우며 포성이 물결을 뒤치는 듯하는지라, 발이 대경하여 황망히 부산으로 돌아올새 미처 성주에 드지 못하여 왜전의 선봉(先鋒)이 벌써 성중에 돌입하여 군마(軍馬)와 관속(官屬)을 무수히 죽이고 후군(後軍)이 산야에 미만(未滿)하여 나아오니 부산이 인하여 함몰하고 다다개 지경에 이르러 첨사 윤홍신이 갑주를 갖추고 포졸 백여 명을 거느려 힘써 싸우다가 마침내 왜장의 죽인 바 되나 수하군사 하나도 남지 아니하나 다다개 또한 함몰하니라, 왜적이 동래로 향할새 함성(喊聲)이 백 리에 진동하니 형세 태산 같더라. 아국이 싸우지 아니하여 각각 명을 도망하는지라. 적이 승승장구(乘勝長驅)하여 나아가 동래성(東萊城)을 싸니 좌수 백홍한이 이 기별을 듣고 대경하여 즉시 수성을 버리고 감영(監營)으로 달아나고 좌병사 이제는 겨우 노약군 수백을 거느려 동래로 가다가 무수한 왜적이 동래를 철통같이 싼지라,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드디어 소산봉(蘇山峯)에 진치고 승패를 관망하더니, 이때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왜병의 급함을 보고 즉시 성문을 닫고 군민을 조발하여 성을 굳이 지키더니 적이 화포 화전(火箭)을 일시에 놓으며 성 치기를 급히 하니 성 지킨 군사 무수히 죽고 남은 군사 각각 명을 도망하는지라, 왜적 선봉이 먼저 성을 넘어 들어와 성문을 깨치고 대군을 맞아들이니 왜병이 물밀 듯 들어와 군인을 죽이니 곡성(哭聲)이 천지 진동하는지라. 상현이 능히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군관 김상관과 노자 영남으로 더불어 급히 아중에 들어와 조복(朝服)을 갖추고 북향사배(北向四拜)하고 크게 통곡 왈,
 
63
“신이 무상하와 변방(邊方)을 방비치 못하고 국가 또한 불행하여 왜적이 성내를 함몰하되 신이 본디 지용(智勇)이 없어 능히 도적을 제어(制御)치 못하고 마침내 국은을 갚삽지 못하고 오늘날 죽으니 구천지하(九泉地下)에 가오나 눈을 감지 못하리로소이다.”
 
64
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일수시(一首詩)를 쓰니 하였으되,
 
 
65
아중고성월훈(我衆孤城月暈)
66
대진불구(大陳不救)
67
사인사군의충(使人事君宜忠)
68
부자은경(父子恩輕)
 
69
외론 성이 달 두른 듯함이여 큰 진을 구치 못하도다. 임군을 섬기며 마땅히 충하도다. 부자 은혜 가배얍도다.
 
 
70
상현이 쓰기를 마치매 노자 영남을 주어 이르되,
 
71
“너는 이 글을 가지고 빨리 집에 돌아가 난을 피하라.”
 
72
하니 영남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거늘 상현이 재촉하여 보내고 손에 칼을 짚고 호상(胡牀)에 앉았더니 적이 돌입하여 상현을 범코자 하거늘 상현이 분력(奮力)하여 왜적 수삼 인을 죽이더니 적이 무수히 들어와 어지러이 치니 상현이 마침내 난군(亂軍) 중에서 죽으니라. 왜병이 동래를 함몰하고 군사를 나누어 울산(蔚山)과 밀양(密陽)을 칠새 울산부사 힘써 싸우다가 수하군사 각각 명을 도망하는지라. 부사 허함이 적에 사로잡힌 바 되고 밀양부사 박진(朴晉)은 필마(匹馬)로 달아나니라.
 
 
 
 

2. 이일(李鎰)과 신립(申砬)

 
74
차시 청정이 평행장(平行長)으로 더불어 동래 밀양 울산 등처를 함몰하고 경상도에 횡행하여 짓쳐 나아오니 군민의 주검이 뫼같이 쌓이고 피흘러 내[川]가 되었더라. 경상도 순찰사 김수(金晬)가 적세 호대함을 보고 급히 각 읍에 신령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멀리 난을 피하라 하니 이로 인하여 각처에서 오던 군사가 병사의 전령을 듣고 흩어지니라. 김해 부사 서예원(徐禮元)과 초계군수(草溪郡守) 이유검(李唯儉)이 망풍(望風)하여 달아나니 이로 인하여 적이 무인지경같이 횡행하여 전라도를 또 엄습하니 상이 또한 대경하사 백관을 모시고 의논하여 가라사대,
 
75
“사세(事勢) 이미 여차하니 경 등은 각각 지용의 장수를 천거하여 발마(撥馬)로 삼남에 내려 보내어 도적을 막게 하라.”
 
76
하신대 모든 대신이 주하되,
 
77
“대장 이일(李鎰)과 신립(申砬) 등이 지용이 겸비하오니 이 소임을 담당할까 하나이다.”
 
78
상이 그 말을 좇으사 즉시 이일로 경상도 순변사(巡邊使)를 하이시고 승지 김성일이 또 장략이 있다 하사 경상도 좌병사를 하이사 호서 군사를 거느려 이일을 접응(接應)하라 하신대 삼 인이 즉시 하직하고 망야(罔夜)하여 내려갈새 이일이 먼저 격서를 보내어 도내 수령을 지휘하여 각각 군사를 거느려 대구(大邱)로 모두리라 하였더니 불행하여 약간 모였던 군사들이 밤으로 도망한 자가 많은지라, 모든 수령이 서로 의논하되,
 
79
“순변사가 만일 이르면 우리 등이 어찌 죽기를 면하리요.”
 
80
하고 흩어지니라.
 
81
이때 이일이 주야로 달려가더니 충청도 지경에 다다라는 백성들이 늙은이를 붙들고 어린이를 이끌고 심산궁곡(深山窮谷)으로 피난할새 곡성(哭聲)이 산야에 진동하는지라, 이일이 탄식하고 말을 재촉하여 경상도 지경에 이르러는 여염(閭閻)이 전혀 비었고 인적이 없으니 앞 길을 물을 곳이 없고 기갈(飢渴)을 참아 문경(聞慶) 고을에 이르러는 또한 사람이 없거늘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내어 밥을 지어 종자로 더불어 요기를 하고 대구 고을에 들어가니 또한 일공(一空)이라 하릴없이 하중을 재촉하여 상주(尙州) 고을에 들어가 장관 원길을 잡아 내어 기약 어김을 이르고 버히려 하니 원길이 애걸 왈,
 
82
“군사를 이제 모으리라.”
 
83
하거늘, 이일이 사하고 급히 취군(聚軍)하라 하고 일변으로 창고를 열어 군사를 초모(招募)할새 양식(糧食)을 얻으러 오는 자가 가장 많더라. 드디어 수백 인을 얻어 군총(軍摠)에 충수(充數)하고 산곡중에 혹 양반과 노약자(老弱者)많으나 하나도 싸울 자 없더라. 이일이 다 거두어 항오(行伍)에 채우고 상주에서 십여 리를 떠나 장천(長川)들에 진을 치고 판관 권길(權吉)과 종자 녹점 등으로 더불어 의논 왈,
 
84
“마땅히 적세(敵勢)를 탐지하리라.”
 
85
드디어 군관 곽모(郭某)를 보내어 도적의 동정을 보라 할새 곽모가 말을 달려 예교들을 지나더니 왜적이 좌우수(左右手)를 속에 매복하였다가 일시에 고함치며 내닫거늘 곽모가 말을 돌려 달아나더니 문득 방포 소리 나며 곽모가 말에서 떨어지니 적이 달라들어 곽모의 머리를 버히고 일시에 짓쳐 오는지라. 이일이 호령하여 대적하라 한 대 군사 본디 오합지졸(烏合之卒)로 겁이 먼저 나고 또한 활에 익지 못한지라, 어찌 잘 싸우리요. 살이 중간에 떨어지고 하나도 적군을 맞히는 자 없는지라. 왜적이 더욱 승승하여 일시에 조총(鳥銃)을 놓으니 한 철환(撤還)에 삼사 인씩 죽는지라. 도적이 기를 두르며 북을 울리고 사면으로 짓쳐 오는지라. 이일이 군사를 반나마 죽이고 약간 남은 자는 각각 그 명을 도망하는지라. 이일이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죽도록 싸우다가 길을 앗아 달아나더니 탄 말이 주검에 거쳐 엎드리거늘 이일이 말과 갑주를 버리고 다만 한 창을 들고 내달으니 빠르기 제비 같은지라. 왜장 소섭(蘇攝)이 소리질러 왈,
 
86
“이는 반드시 날개 있는 장수라, 가히 따르지 못하리라.”
 
87
하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니 이로 인하여 죽기를 벗어나 급히 산중으로 들어가더니 절벽 아래 한 암자(庵子)있거늘 들어가 보니 이 는 빈 절이라. 기갈이 심하되 하릴없이 몸이 가장 곤뇌한지라. 절 문에 다리를 걸고 잠깐 누웠더니 홀연 발을 당기는 것이 있거늘 급히 돌아보니 이는 범이라. 발로 한 번 차니 그 범이 한 소리를 지르고 거꾸러져 죽으니 이 같은 장사는 세상에 드물더라. 이일이 그날 밤을 절에서 머물고 이튿날 충주의 신립의 진으로 오니라.
 
88
 
89
각설, 충청도 순찰사 신립(申砬)이 망야하여 충주로 내려가니 백성들이 다 피난하고 없는지라, 겨우 백성 수천을 얻어 오산(烏山)을 지키고자 하더니 홀연 체탐군이 보하되,
 
90
“경상도 순변사 이일이 대패하여 사생을 알지 못한다.”
 
91
하거늘 신립이 대경하여 진치거늘 제장(諸將)이 왈,
 
92
“이곳이 진칠 곳이 아니라, 적이 만일 이르면 진실로 두용에 든 파리 같은지라.”
 
93
한대 신립이 왈,
 
94
“옛적 한신(韓信)이 조(趙)를 칠 제 배수진(背水陣)으로 크게 이겼으니 우리 군사 본디 전장에 익지 못하고 또한 겁이 많아 도망할 마음만 두었으니 반드시 죽을 땅에 둔 후에야 힘써 싸우리라.”
 
95
한대 제장이 이르되,
 
96
“한신은 적군의 허실(虛實)을 알아 어린 아희 보듯하므로 요행히 이겼거니와 장군이 이제 조그만 군사로써 능히 무수한 적을 당하리요. 만일 이기면 좋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한 사람도 살지 못하리니 어찌 두렵지 아니하리요.”
 
97
신립이 대로하여 간하는 자를 버히고자 하더니 홀연 보하되,
 
98
“동편에서 한 장수가 창을 메고 우리 진을 행하여 온다.”
 
99
하거늘 신립이 대희하여 급히 진문 밖에 나가보니 이는 곧 이일이라 신립이 대희하여 맞아 들어가 서로 전일을 이르더니 군사가 급히 보하되,
 
100
“왜적의 선봉이 벌써 조령(鳥嶺)을 넘어 풍우같이 오나이다.”
 
101
하거늘 이일이 함께 나아가 오는 양을 보니 말을 내어 만산편야(滿山遍野)하여 오는 것이 다 왜병이라, 아군이 한 번 보고 상혼낙담(喪魂落膽)하여 감히 싸울 마음이 없는지라. 신립이 군사를 호령하여 일시에 궁노(弓弩)를 발하며 이일로 더불어 각각 창을 두르고 말을 놓아 바로 적진에 달아들어 좌충우돌(左衝右突)하더니 왜적이 물밀 듯이 이르러 사면으로 싸고 어지러이 짓치니 신립이 비록 용맹하나 어찌 능히 수다웅병(數多雄兵)을 대적하리요. 정히 한모(翰毛)를 헤치고 달아나더니 적의 철환을 맞아 물에 빠져 죽으니 적이 승승하여 일진을 혼살하니 아군이 왜적의 조총과 창검에 상하며 물에 빠져 죽는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라. 이일이 세(勢) 이롭지 않음을 보고 필마단창으로 통영을 바라고 달아나더니 중로에 매복(埋伏)하였던 왜병이 내달아가는 길을 막거늘 이일이 평생 기력을 다하여 왜적 수십인을 죽이고 길을 앗아 달아나니 도적이 보고 감히 따르지 못하더라. 이일이 드디어 부여 고을에 들어가 패군한 장문(狀聞)을 올리고 다시 군사를 초모하여 도적을 막으려 하더라.
 
102
이때 조정이 신립, 이일 등의 사생을 아지 못하여 정히 민망하더니 사 월 이십팔 일에 한 군사가 전립(戰笠)을 쓰고 동대문으로 바삐 들어오거늘 길가의 모든 백성들이 문왈,
 
103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무슨 일로 급히 오느냐.”
 
104
그 군사 대답하되,
 
105
“나는 충청도 순변사의 가인(家人)이러니 순변사 작일에 왜적으로 싸우다가 전장에 함몰하여 순변사 죽고 왜적이 시방 경성(京城)을 향하나이다. 내 이제 와 가속(家屬)을 데리고 피난코자 하노라.”
 
106
한대 그 말이 일시에 전파하여 만성인민이 물끓듯하여 피난하는 사람이 무수하고 원근에 곡성이 진동하는지라. 조정이 이 소식을 듣고 또한 경황(驚惶)하더니 이 날 초경(初更)은 하여 이일의 패군 장문이 드니 상이 황망히 만조백관을 모으사 장계(狀啓)를 보시니 하였으되,
 
 
107
패장군 이일은 사죄(死罪)를 무릅쓰고 아뢰나이다. 신의 충성이 부족하고 지략이 없사와 마침내 전군이 패몰하오니 부월(斧鉞) 아래 주하옴을 도망하리이까. 당초에 신이 발마(撥馬)로 내려가 경상감사에게 전령하여 각 읍 군마를 대구로 모으라 하고 망야하여 내려가오니 군사는 새로이 수명 없삽는지라. 신이 홀로 어찌하리이까. 급히 산중에 피난하는 군민을 초모하오나 이 곧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 어찌 능히 무수한 왜병을 당하리요. 한 번 싸우매 전군이 패몰하여 신이 겨우 잔명(殘命)을 보전하여 충청도 신립의 진으로 들어오니 신립의 군사 또한 오합지졸이라. 한가지로 탄금대(彈琴臺)아래서 왜적과 싸우다가 전군이 함몰하고 신립이 전망하며 신이 아직 부여 고을에 은신하와 다시 군민을 초모하여 도적을 막고자 하오나 적세 호대하오니 신이 또 사생을 예탁(豫度)치 못하옵고 다만 사죄를 기다리나이다.
 
 
108
하였더라.
 
 
 
 

3. 왕가(王駕)의 몽진(蒙塵)

 
110
상이 남필(覽畢)에 대경하사 제신다려 계교를 물으신대 백관이 황황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더니 홀연 체탐군이 보하되,
 
111
“왜적이 벌써 용인(龍仁)지경에 이르렀다.”
 
112
하거늘 영부사 김대영과 판부사 허적과 체찰사 유성룡(柳成龍)과 도승지 이항복(李恒福)과 판의금 이덕형(李德馨) 등이 주하되,
 
113
“적세 이미 위급하였으니 청컨대 어가(御駕) 잠깐 평양으로 나아가 그 봉예(鋒銳)를 피하소서.”
 
114
상이 영부사 김대영다려 이르되,
 
115
“나의 박덕함으로 인하여 의외지변(意外之變)을 만나 종사(宗社)를 하직하고 골육이 분찬하기에 미치니 이 정을 어찌 참으리요, 본디 경의 충성을 아나니 내 아희를 데리고 함경도로 피난케 하라. 만일 창천(蒼天)의 도움이 계시면 다시 보리라.”
 
116
김대영이 복지 주왈,
 
117
“시운(時運)이 불행하여 이 지경에 미쳤사오니 신이 죽기로써 대군을 뫼셔 보호하리이다.”
 
118
인하여 하직하고 사대군(四大君)을 뫼셔 창황히 나올 새 앞이 어두워 길을 능히 분변치 못하더라. 상이 또한 내구(內廐) 말을 재촉하여 타시고 내전(內殿)을 거느려 궐문을 나실새 이양원(李陽元)으로 수성대장(守成大將)을 하이샤 이전(李戩)과 변언수(邊彦琇)로 더불어 한가지로 지키라 하시고 김명원(金命元)으로 한강(漢江)을 지키게 하고 신석으로 부원수를 삼아 이양원을 좇아 도성을 진수하게 하시고 급히 서문으로 나시니 성중 백성이 늙은이를 붙들고 어린이를 이끌어 길가에 메여 어전(御前)에 이르러 여짜오되,
 
119
“우리 주상(主上)이 이제 신민을 버리시고 어디로 가려 하옵시나이까.”
 
120
하고 일시에 곡성이 천지 진동하니 그 경상이 참불인견(慘不忍見)이러라.
 
121
벽제관(碧蹄館)에 이르러는 하늘에 운무사색(雲霧四塞)하고 큰 비 붓듯이 오는지라, 백관이며 호종군졸이 비를 맞고 황황히 행하더니 마산역을 지나 임진(臨陣)을 건너 동파역(東坡驛)에 다달으니 장단부사(長湍府使) 구유현이 약간 음식을 장만하여 가지고 대가(大駕)를 기다리더니 배종군민(陪從軍民)이 여러 날 굶었는지라, 음식을 보고 어찌 체면과 인사를 생각하리요. 다투어 앗아 먹으니 능히 금치 못하여 상께 드릴 차담(茶啖)이 없는지라. 구유현이 가장 무료하여 가만히 도망하니라.
 
122
오 월 초일 일에 개성부(開城府)를 지나 금천(金川) 숙소하시고 초이 일에 평산(平山)을 지나 무산역에 쉬오시고 초삼 일에 황주(黃州)에 이르시니 황해감사 조인득이 본주 병사와 두어 수령(守令)으로 더불어 군사 수백을 거느려 대가를 영접할새 차담을 성비(盛備)하여 군신 상하가 비로소 기갈을 면하고 초사 일 중화(中和)에 숙소하시고 초오 일에 바야흐로 평양(平壤)에 이르시니 감사 송언신이 대가를 맞은 후에 군사를 조발하여 수성(守城)하기를 준비하더라.
 
123
차시 왜적이 이미 충주(忠州)를 함몰하매 군사를 네 길로 나누어 나아올새 왜장 평수정이 대군을 거느려 강을 건너 바로 경성(京城)에 다다르니 수성장 양원(陽元)이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더니 체탐군이 보하되,
 
124
“적장 평행장(平行長)이 또 대군을 거느려 이르렀다.”
 
125
하거늘 부원수 신각(申恪)이 이르되,
 
126
“적병의 형세 이렇듯 성하거늘 우리 사소한 군사로 외로운 성을 지키다가 만일 양식이 진하고 날이 오래면 능히 보전치 못하리니 일찍 성을 버리고 함경도로 들어가 군사를 초모하여 회복함을 도모함만 같지 못하다.”
 
127
한대 양원이 즐겨 듣지 아니하거늘 신각이,
 
128
“스스로 성을 버리고 달아나되 죄 비록 중하나 마땅히 다른 공을 세워 죄를 속하리라.”
 
129
하고 밤에 가만히 동문(東門)을 열고 함경도로 달아나니라.
 
130
평행장의 대군이 바로 한강에 이르니 도원수 김명원이 군사를 거느려 강변을 지키다가 왜병이 한강을 건너 바로 경성에 이르러 성을 급히 치니 이양원이 왜병의 형세를 보고 창황실조(蒼黃失措)하여 성을 버리고 달아나니 왜장 평행장 청정 등이 대군을 몰아 경성에 웅거하고 다시 청병함을 청하니 평수길이 첩서(捷書)를 보고 대희하여 즉시 대장 안국사 평정성을 불러 분부하되,
 
131
“이제 평행장 청정 등이 이미 호서(湖西)를 앗으며 조선왕(朝鮮王)이 평안도로 달아났다 하니 너희 양인이 각각 일지병을 거느려 나아가 청정 등을 접응하여 한가지로 평양을 엄습하라.”
 
132
양장이 청령(聽令)하고 각각 군사를 거느려 부산에 이르러 주야로 행하여 경성 가까이 이르러 둔병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성중에 들여보내어 청정 등에게 소식을 통하고 후에 군사를 나누어 혹 십 리씩 혹 이십 리씩 영채를 세우고 목책(木柵)을 많이 벌이고 각 관 창고를 열고 곡식을 수운(輸運)하여 군량(軍糧)을 삼으며 낮이면 금고(金鼓)를 울려 서로 응하고 밤이면 횃불과 등촉(燈燭)을 높이 달아 서로 비추며 도성민가(都城民家)와 각 마을에 불지르고 정․선릉(靖․宣陵)을 파니 참혹함을 뉘 능히 기록하리요.
 
133
차시 평수길이 종묘(宗廟)에 웅거하고 청정은 평행장으로 더불어 경복궁(景福宮)에 웅거하니 종묘와 사직에서 밤마다 신령(神靈)이 일어나 적병을 꾸짖어 보채니 능히 견디지 못하는지라. 평수정이 대로하여 종사를 불지르고 남별궁(南別宮)으로 옮아 머무르니 청정이 평행장에게 이르되,
 
134
“조선왕이 이미 평안도로 달아났으니 그대 일지병을 거느려 급히 나아가 평양을 치면 조선왕이 반드시 의주로 달아나리니 그대 모름지기 평양에 웅거하고 일체 따르지 말라. 오래지 아니하여 마다시 심안둔이 각각 군을 거느려 서해로 압록강에 이르러 마주 짓쳐 오리니 만일 이같이 하면 조선왕이 갈 곳이 없어 반드시 함경도로 달아날 것이니 내 또한 일지군을 거느려 함경도로 들어 각처 액구(隘口)를 매복하고 형세를 보아 가며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통하리니 그대는 쉬 움직이지 말고 다만 접응하기를 기다리라.”
 
135
평수정 평의지 두 장수를 불러 이르되,
 
136
“그대 등은 각각 일천 군씩 거느려 강원도로 들어가 험한 곳을 가리어 두었다가 나의 기별이 있거든 즉시 접응하라.”
 
137
하고 드디어 평조영 평조신으로 하여금 도성을 지키게 하고 평행장으로 더불어 각각 일천 군씩 거느려 발행할새 경복궁을 불지르고 서북으로 길을 나누어 나아가니라.
 
138
이때에 평의지 강원도로 나아갈새 제장(諸將)을 불러 이르되,
 
139
“강원도 삼척(三陟) 땅에 있는 이지함(李之菡)은 가장 신기한 사람이니 만일 겁칙하려 하다가는 우리에게 해가 미칠 것이다. 삼척 근처에는 군사를 놓치 말라.”
 
140
하더라. 원래 이 사람은 토정(土亭)선생이라. 당초에 평의지가 조선을 탐지하러 왔을 적에 강원도를 편답하고 삼척 땅에 이르러 토정을 만나매 토정이 왜인인 줄 알고 죽이고자 하거늘 평의지 복지하여 이르되,
 
141
“이는 천수(天數)라. 비록 나를 죽이나 무엇이 유익하리요, 전두(前頭)에 삼척은 침노치 아니하리라.”
 
142
하였는 고로 인하여 삼척은 병화(兵禍)를 만나지 아니하니라.
 
143
차시 좌의정 윤두수(尹斗壽)와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이 주왈,
 
144
“적장 청정과 평행장 등이 대군을 거느려 장구(長驅)하여 나아오니 그 뜻이 평양성을 겁측코자 함이라. 원컨대 전하는 미리 방비하소서.”
 
145
상이 즉시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을 허체(許遞)하시고 금의 대장 신길(申硈)로 대장을 하시고 유극양(劉克良)으로 부원수를 하시고 첩지 중추부사 한응인(韓應寅)으로 후응사를 삼으사 각각 일군을 거느려 임진강을 지켜 도적을 건너지 못하게 하니라. 삼 장이 명을 받자와 즉일 군사를 거느려 임진을 향하여 나아가니라. 우의정 유홍(兪弘)이 주왈,
 
146
“부원수 신각이 도성을 지키었다가 이양원의 명을 듣지 아니하고 도망하여 경성이 함몰케 하오니 그 죄 불용(不容)이라, 원컨대 선전관을 보내어 그 머리를 베어 다른 사람을 징계하소서.”
 
147
상이 그말을 좇으사 선전관을 보내어 신각을 버히라 하시니라.
 
148
 
149
재설, 부원수 신각이 경성을 떠나 함경도로 들어가 안변(安邊) 등처 군사를 거두워 도로 도송으로 향하더니 강원도 지경에 이르러 왜적 이유를 만나 힘써 싸워 도적의 수급(首級) 육십여 수를 버히고 어지러이 짓치니 이유가 대패하여 달아나거늘 신각이 뒤를 따라 편전(片箭)으로 이유를 쏘아 죽이니 남은 군사 사면으로 흩어지거늘 각이 승전하여 나아가는 표문(表文)을 닦아 평양으로 보내고 군사를 재촉하여 도성을 향하더니 중도에서 선전관을 만나매 성지(聖旨)를 전하고 각을 베어 돌아가니 일군이 통곡하고 각각 흩어지니라. 적기 아국에 들어옴으로부터 한 번 패함이 없더니 신각이 비로소 이기매 인심이 대열하더니 홀연 각의 죽음을 듣고 아끼지 아닐 이 없더라.
 
150
이때에 신각의 승전한 표문이 평양에 이르니 상이 대희하사 즉시 신각의 죄를 사하시고 사람을 보내어 주야 행케 하였더니 사자가 중도에서 선전관을 만나매 벌써 신각을 죽이고 돌아오는지라, 하릴없이 평양에 이르러 그 일을 상달하니 상이 차탄하시고 유홍을 대책(大責)하시니라.
 
151
차시 도원수 신길이 유극양으로 더불어 임진(臨陣)을 지키더니 김명원이 한강에서 도망하여 평양으로 돌아오다가 인하여 임진에 머물러 신길로 더불어 한가지로 군무를 의논하더니 홀연 보하되 왜적이 이르렀다 하거늘 신길이 군사를 벌여 진치고 선척(船隻)을 서편 언덕에 매고 지키기를 엄히 하는지라. 왜장 평행장이 먼저 이르러 물을 건너고자 하되 선척이 다 서편 언덕에 있는지라, 다만 물을 격하여 조총을 발하거늘 부원수 유극양이 방패를 끼고 편전으로 적병을 무수히 죽이니 적이 놀라 두어 리(里)를 물러 진치고 정히 조심하더니 문득 한 계교(計巧)를 생각하고 즉시 편녕하여 일시에 군막을 헐고 삼십리를 물러 진치고 제장으로 더불어 의논 왈,
 
152
“삼십 리 물러 퇴병하는 형상을 지어 적군을 유인하고 그대 등은 각각 일지군을 거느려 좌우 산곡(山谷)에 매복하였다가 적군이 승세하여 물을 건너 또 오거든 일시에 내달아 그 뒤를 끊고 내 문득 정면으로 치면 가히 전승함을 얻으리라.”
 
153
한대 제장이 그 말을 좇아 각각 준비하더라.
 
154
이때 신길이 김명원으로 더불어 의논 왈,
 
155
“적이 오래 상거하매 군량이 진하여 물러갔으니 만일 밤을 타 가만히 물을 건너 그 뒤를 엄습하면 반드시 공을 이루리라.”
 
156
한대 유극양이 이르되,
 
157
“왜적이 본디 간사한 꾀 많은지라. 이제 따르면 행여 간계를 가질까 두리나니 모름지기 굳게 지킴이 양책(良策)일까 하노라.”
 
158
신길이 꾸짖어 왈,
 
159
“네 어찌 어지러운 말을 내어 군심을 태만케 하느뇨, 만일 다시 영을 어기는 자 있으면 당장 버히리라.”
 
160
하니 유극양이 감히 다시 이르지 못하고 다만 궁노(弓弩)를 수습하여 신길의 뒤를 따라 물을 건너니라.
 
161
이때에 신길이 김명원 한웅인을 머물러 본진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일군을 거느려 차야에 가만히 물을 건너가니 적병이 간데없는지라. 마음에 가장 기뻐 군사를 거느려 삼십 리를 가더니 홀연 방포 소리 나며 화광(火光)이 충천한 가운데 청정이 평행장으로 더불어 각각 일지군을 거느려 짓쳐 내달아 일진을 엄살(掩殺)하니 신길이 크게 놀라 급히 군사를 돌이켜 임진 물가에 이르니 원래 평행장이 거짓 군사를 물리는체하고 가만히 일군을 거느려 뒤에 매복하였다가 아군이 물러 멀리 감을 보고 급히 군사를 몰아 강변에 이르러 신길의 건너온 배를 앗아 타고 물 건너 신길의 진을 엄습하니, 김명원이 한웅인으로 더불어 죽도록 싸우다가 군사를 다 죽이고 겨우 목숨을 도망하여 평양으로 돌아가니라.
 
162
차시 신길이 강변에 이르러 선척(船隻)이 없는지라. 경황(驚惶)하더니 적의 복병이 상하 강변으로 좇아 이르러 어지러이 짓치고 청정 평행장 등의 대군이 함께 협공하니 아군이 왜인의 창에도 상하며 서로 짓밟아 죽으며 물에도 빠져 죽는 자가 무수하더라. 신길이 평생용력을 다하여 좌충우돌하여 적군을 헤치다가 마침내 도적의 철환을 맞아 죽으니라, 부원수 유극양이 뒤를 좇아 힘세 싸우더니 신길이 죽고, 적군이 함몰함을 보고 앙천탄왈(仰天歎曰),
 
163
“주장(主將)이 일찍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이렇듯 패몰(敗沒)하니 누를 한하리요.”
 
164
하고 드디어 말을 버리고 한 언덕을 의지하여 활로 왜적을 쏘아 죽이더니 살이 진하고 도적이 물밀 듯 짓쳐오니 극양이 탄왈,
 
165
“내 어찌 차마 도적의 욕을 보리요.”
 
166
하고 스스러 목찔러 죽으니라, 평행장 등이 또한 임진을 건너 동파(東坡)를 지나 한성역에 이르러 군사를 나누어 두 길로 나아갈새 청정은 일군을 거느려 북도로 향하고 평행장은 평양(平壤)으로 향할새 함성과 고각(鼓角)이 산을 움직이고 기치창검(旗幟槍劍)은 폐일(蔽日)하였더라. 평행장 등이 행하여 송도․금천․평산․서흥․봉산․황주를 지나 중화(中和) 고을에 이르러는 평양이 멀지 아니한지라. 체찰사 유성룡이 백단 만호 임도정을 하여금 대동강에 있는 배를 다 잡아 언덕에 매고 군사를 조발하여 성을 지키게 할새 왜적이 만일 물가에 이르면 중군이 일시에 쏘니 적이 감히 나아오지 못하더라.
 
167
 
168
재설, 청정이 대군을 휘동하여 함경도로 향할새 동파역에 다다르니 산곡 중으로서 두어 사람이 나오다가 왜병을 보고 황망히 달아나거늘 청정이 군사로 하여금 그 사람을 잡아다가 달래어 왈,
 
169
“네 만일 바다로 가는 길을 가리키면 마땅히 중상하리라.”
 
170
한대 그 사람이 겁하여 길을 인도하거늘 청정이 대군을 몰아 산곡 속으로 토산을 지나 오릿고개를 넘어 안변 덕원으로 향할새 낮이면 사람을 문득 만나 해하거늘 고을의 수령들이 망풍하여 도망하는지라. 청정이 드디어 함흥을 향하더니 북병사 안국양(韓克誠?)이 청정의 대군이 이름을 보고 황망히 경흥 경원 회령 종성 온성 부평 육진(六鎭) 군사를 조발하여 해정창으로 나아가더니 정히 청정의 대군을 만나 양군이 대진하매 안국양이 먼저 보군으로 하여금 각각 방패를 끼고 왜병을 향하여 일시에 쏘니 적병이 능히 대적지 못하여 뒤로 잠깐 물러가거늘 국양이 마군(馬軍)을 놓아 짓치니 북도 마병이 본디 말에 익숙할 뿐 아니라 또한 용맹한지라, 일시에 말을 달려 적진을 충돌하여 왜병을 무수히 죽이니 청정이 대패하여 군사를 태반이나 죽이고 달아나거늘 국양이 군사를 몰아 뒤를 따르더니 청정이 달아나다가 산곡 중에 들어가 진치고 굳이 지키거늘 국양이 산세(山勢) 험준함을 보고 군사를 물려 너른 들에 영채를 세우고 군사를 쉬게 하더니, 차시 왜장 경감로가 일지병을 거느려 북도에 들어가 길주 명천 등처를 함몰하고 장차 함흥으로 나아가더니 청정의 위태함을 듣고 군사를 몰아 청정을 접응하여 전후로 협공합을 언약하니 청정이 대희하여 이날 밤에 군사를 내어 아군의 앞진을 치고 경감로도 그 뒤를 엄습하니 북군이 비록 용맹하나 전후로 대적치 못하여 각각 명을 도망하는지라. 안국양이 패잔군(敗殘軍)을 거느려 철령(鐵嶺)에 올라 잠깐 쉬더니 차야에 적이 가만히 영상(嶺上)에 불을 놓고 짓쳐 올라오니 북군이 창령싸움에 이미 곤하였는지라. 국양이 나와 불을 무릅쓰고 힘써 싸우더니 남녘에 홀로 불이 없거늘 그곳을 향하여 들어가니 적이 뒤를 따라 크게 엄습하니 아군의 죽는 수를 알지 못하더라. 국양이 군사를 다 죽이고 필마로 함흥으로 달아나거늘 청정이 군사를 몰아 남병영에 이르니 병사 이욱이 대경하여 갑산(甲山)으로 달아나거늘 청정이 드디어 군사를 나누어 여러 고을을 웅거하여 근본을 삼으니 형세 태산 같더라.
 
171
차시에 세자(世子) 대군(大君)이 함흥 계시더니 경성장교 국경인(鞠景仁)이라 하는 놈이 불측무도(不測無道)하여 몹쓸 흉계를 품고 저와 의합한 동료 십여 인으로 더불어 가만히 의논하여 왈,
 
172
“이제 조선이 거의 왜국이 되어 회복할 세(勢) 없이 이미 국수(國壽)가 진하였는지라. 어찌 서산의 낙일(落日)을 기다리리요. 동령(東嶺) 새달을 좇으면 사랑치 아니하리요. 우리 등이 이제 대군과 안국양을 사로잡아 왜진에 투항하면 반드시 중상이 있으리라.”
 
173
하고 세자 대군 사처에 들어가 거짓 창황한 빛으로 여짜오되,
 
174
“적장 청정의 대군이 벌써 성하(城下)에 이르렀사오니 급히 산중으로 들어가 피난하소서.”
 
175
세자 대군이 대경하여 즉시 중신 김대영(金貴榮) 황정욱(黃廷彧) 등과 감사 유영립 등으로 더불어 일시에 성문을 내달아 황망히 달아날새, 이때 날이 어두웠는지라. 국경인이 길을 짐짓 인도하여 못 가운데 빠지게 하니 매복하였던 동류가 일시에 내달아 결박하여 말게 싣고 북영으로 들어가 청정에게 드리니 청정이 대희하여 국경인에게 벼슬을 주고 그 남은 이는 각각 중상하니라.
 
176
 
177
재설, 남병사 이은이 갑산 고을에 있더니 갑산좌수 주이남이 국경인의 벼슬하였음을 듣고 스스로 생각하되,
 
178
“이런 시절에 굴기(崛起)하기를 도모치 아니하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리요.”
 
179
하고 밤들기를 기다려 칼을 감추고 이은의 하처에 들어가 보니 은의 종자(從者)가 다 잠이 깊이 들었거늘 칼을 뽑아 이은의 머리를 베어 북영에 들어가 청정에게 드리니 청정이 대희하여 즉시 이남으로 길주부사를 하이시고 인하여 문왈,
 
180
“국경인의 잡아온 사람 중에 너의 친한 사람이 있느냐.”
 
181
이남이 감사 유영립의 맨 것을 끄르며 왈,
 
182
“차인이 전일 사지(死地)에 들었을 제 날을 살려낸 사람이니 구하여 은혜를 갚고자 하나이다.”
 
183
청정이 즉시 놓아 보내니 유영립이 목숨을 겨우 보전하여 평양으로 돌아오니라.
 
184
 
185
재설, 경상도 순찰사 이일(李鎰)이 충청도로 좇아 강원도로 들어가니 성중이 비었고 각 읍을 두루 돌아 사람을 모으려 하되 한결같이 비었는지라. 인하여 북도로 들어가니 청정의 군사 함경 일도에 미만하여 빈 곳이 없어 영채를 세웠는지라. 진실로 접촉할 곳이 없으매 하릴없이 갑산으로 좇아 평안도로 넘어 양덕 명산을 지나 평명에 이르니 의복(衣服)이 남루하여 머리에 헤진 전립(戰笠)을 쓰고 발에는 초리(草履)를 신고 손에는 다만 한 자루 장검(長劍)을 쥐었는지라, 상이 인견하사 전후수말(前後首末)을 물으시고 차탄하시기를 마지아니시니 백관이 아니 측연(惻然)할 이 없더라.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이르되,
 
186
“그대 가히 수백 군을 거느려 나아가 영구대 아래 여흘[灘]을 굳게 지키라.”
 
187
한대 이일이 즉시 군사를 거느려 영구대를 찾아가더니 길을 잃고 강서(江西)로 향하다가 평양좌수 김윤을 만나 길을 물으니 만경대(萬景臺)를 가리키거늘 이일이 여흘 속을 찾아가니 왜장 평수맹이 군사를 거느려 여흘을 건너고자 하거늘 이일이 강변에 진치고 군사로 하여금 일시에 쏘라 하니 군사 겁내어 능히 쏘지 못하는지라. 이일이 또한 활을 잡아바라며 쏘니 시위를 응하여 왜병이 무수히 죽는지라. 평수맹이 능히 저항치 못하여 즉시 물러가거늘 이일이 인하여 그곳을 굳게 지키니라.
 
 
 
 

4. 중원(中原)에 원병(援兵) 요청

 
189
이때 평행장이 장림 어귀에 진치고 봉산 황주 정방산성(正方山城) 창곡을 주야로 운수하여 군량을 삼고 또 사람을 도성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는지라, 체탐군이 이 일을 알고 즉시 평양에 들어가 보한데 체찰사 유성룡이 상께 주왈,
 
190
“적장 평행장이 군사를 장림에 둔하고 또 사람을 경성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려 하오니 반드시 이 성을 겁측하려 함이라. 청컨대 이제 잠깐 의주(義州)로 들어가사 그 봉예(鋒銳)를 피하시고 사자(使者)를 중국에 보내어 황제(皇帝)께 주문하고 구병(救兵)을 청하여 왜적을 물리게 하소서.”
 
191
상이 그 말을 옳게 여기사 즉시 좌의정 윤두수와 김명원 이원익(李元翼)으로 하여금 평양성을 지키게 하고 말에 올라 보통문(普通門)을 나실새 판부사 노직(盧稷)이 내전(內殿)을 뫼셔 대가(大駕)를 따라가니 성중이 소요하며 백성들이 노직을 꾸짖어 왈,
 
192
“네 진력하여 나라를 도와 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제 우리를 버리고 임금을 뫼셔 어느 곳으로 가려 하느뇨.”
 
193
하고 막대로 어지러이 치니 노직이 말에서 떨어져 중상하되 종자 능히 금치 못하는지라. 평안감사 송인신이 군사를 호령하여 당장 괴수자(魁首者)를 잡아들이라 하니 모든 백성들이 비로소 흩어지는지라. 신 등이 드디어 노직을 구하여 데리고 급히 발행할새 어가(御駕)가 박천(博川) 지경에 이르러 청천강(淸川江)을 건너시더니 홀연 광풍(狂風)이 대작하며 큰비 붓듯이 오는지라. 길에 물이 가득하여 수세(水勢) 급한지라. 교량(橋梁)이 무너져 능히 건너지 못하니 호송군이 대가(大駕)를 뫼셔 물을 건너다가 군사 물에 빠져 죽는 자가 오륙십이나 되고 시신백관(侍臣百官)이 또한 물에 빠지는지라. 상이 정히 위급하여 계시더니 홀연 한 사람이 군사를 헤치고 급히 나와 물을 평지같이 들어와 상을 구하여 서편 언덕 위에 뫼시고 군복을 벗어 버리고 다리에 뛰어올라 한 옆에 사람 두셋 씩을 끼고 삼 간이나 무너진 다리를 건너다 놓으니 상이 용맹(勇猛)을 기특히 여기시고 그 사람을 불러 거주 성명을 물으신대 왈,
 
194
“소인은 본디 황해도 재령(載寧)에 있사온대 성명은 최운측이로소이다.”
 
195
상이 가장 기특히 여기사 박천군수를 제수하시고 그 후에 용천부사를 돋우시며 화순군을 봉하시니라. 상이 박천 고을에 드시어 잠깐 쉬시더니 홀연 함경감사 유영립이 이르러 조현(朝見)하기를 마치매 상이 함흥이 함몰함을 물으신대 영립이 읍주 왈,
 
196
“장교 국경인 등이 불측한 흉계를 내어 세자 대군과 좇아간 김대영 황정욱 등을 속여 이르되 ‘적이 위급하였으니 빨리 산중으로 피난하소서’하여 김대영 등이 황망히 세자 대군을 뫼셔 성문을 나가시더니 국경인 등의 복병(伏兵)이 내달아 세자 대군과 신 등을 결박하여 청정에게 드려 투항하오며 전혀 죽기를 기약하옵더니 갑산좌수 주이남이 또 남병사 이은의 머리를 베어 청정에게 바치고 공을 청하옵더니 신을 구하여 놓으며 도망하여 오옵다가 길에서 듣자오니 청정이 아장(亞將)으로 하여금 세자를 거느려 제나라로 가라 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까.”
 
197
상이 이 말을 들으시고 슬퍼함을 마지아니하더라. 이때 평행장이 진을 옮겨 대동강 남편에 일자진(一字陳)을 치거늘 좌의정 윤두수가 제장을 모으고 의논 왈,
 
198
“도적이 가까이 와 결전함은 위엄을 뵈려 함이니 각별 굳게 지키리라.”
 
199
하고 드디어 송인신으로 대동강 문을 지키고 자산부사 윤수홍으로 장경문을 지키고 병사 이윤덕으로 부벽루(浮碧樓) 아래 여흘을 지키고 이일로 보통문을 지키게 할새 각각 장창대극(長槍大戟)을 두르고 북을 울리며 방포하기를 자주 하니 왜적이 감히 가까이 나오지 못하고 멀리 사장(沙場)에 모여 조총을 끼고 언덕을 겸하고 방포를 놓아 혹 대동문(大同門)도 맞히며 혹 연광정(練光亭) 기둥도 맞히니 대개 그 재주를 자랑함이라. 왜적 두엇이 사장 위에서 군복을 벗고 볼기를 두드리며 대동문을 향하여 욕하거늘 감사 송인신 병사 혁이 방패를 끼고 대동문 기둥을 의지하여 편전으로 그 왜인의 볼기짝을 맞혀 거꾸러치니 왜적이 대로하여 이 후로 편전의 살이 무섭다 하고 임의로 다니지 못하더라.
 
200
평행장이 감히 성을 치지 못하고 또 이십여 일을 견벽불출(堅壁不出)하며 제장으로 의논하며 가로되,
 
201
“선척이 없어 대동강을 건너기 어렵고 각처 액구(隘口)를 지키니 졸연히 파키 어려운지라, 가히 군사를 돌려 순안을 지나 양덕 매산으로부터 압록강(鴨綠江)에 이르러 마다시 심안둔의 기회를 잃지 않음이 상책이라.”
 
202
하더라.
 
203
차시 김명원이 한 계교를 생각하고 즉시 제장을 불러 이르되,
 
204
“이제 적병이 오래 이르지 아니함은 이 정히 구병(救兵)을 기다림이라. 만일 밤을 타 가만히 건너가 급히 치면 반드시 공을 이루리라.”
 
205
하고 드디어 중산첨사 고언백(高彦伯)과 백단만호 이성을 불러 적진을 엄습하라 한대 이인이 청령하고 군사를 점고하여 데리고 차야에 배를 타고 가만히 물을 건너가 적진 앞에 가 보니 각처 왜졸이 바야흐로 잠을 익히 들었거늘 언백 등이 중군을 지휘하여 일시에 고함하고 짓쳐 들어가니 적이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만나는지라, 어찌 능히 대적하리요. 황망히 사면으로 흩어져 달아나거늘 언백이 일진을 대살하고 전마(戰馬) 백여 필을 앗아 돌아오고자 하더니 홀연 후면으로 좇아 일성 포향(砲響)에 화광이 충천하며 이십여 둔병이 일시에 내달아 짓치니 아군이 대패하여 다만 목숨을 도망하여 달아나는지라. 언백과 이성 등이 평생 기력을 다하여 충돌하되 마침내 벗어나지 못하고 난중에 죽으니 여군(餘軍)이 다만 이십여 기(騎)라. 서로 다투어 황석탄 여흘로 건너오니 왜적이 그제야 황석탄 여흘이 얕은 줄 알고 기를 숙이고 북을 울려 대군을 몰아 여흘을 건너오는지라. 윤두수와 김명원 등이 막을 형세 없어 급히 보통문(普通門)을 열고 순안으로 달아나니라. 평행장이 군마를 재촉하여 개미떼같이 평양성에 들어와 웅거하고 백성을 함부로 해치더라.
 
206
중군 최원이 발마(撥馬)로 달려 박천에 이르러 평양성이 함몰함을 아뢴대 상이 들으시고 대경하사 즉시 박천을 떠나 가산(嘉山)에 이르시니 가산군수 임신겸이 나와 맞아 호송하며 여짜오되,
 
207
“본읍에 관청미(官廳米) 일백 석이 있사오니 대가 아직 이곳에 머무르심이 마땅하올까 하나이다.”
 
208
상이 잠깐 쉬고자 하시더니 체탐이 보하되,
 
209
“적이 박천을 지나 가산지경에 들었다.”
 
210
하거늘 상이 즉시 가산을 떠나 정주(定州)로 향하실 새 효절령에 올라 보시니 적의 선봉이 가산에 미만하였으니 임신겸이 죽도로 싸워 창곡을 다 잃고 목숨을 겨우 보전하여 도망하더라. 본군 아전 백학 등이 차담을 차려 드리거늘 상이 진어(進御)하시고 이튿날 선천(宣川)을 지나 의주에 들어 계시나 상이 날마다 통군정(統軍亭)에 오르사 경성을 향하여 통곡하시며 가로되,
 
211
“선왕의 이백 년 기업과 조선 팔도 삼백여 군을 다 왜놈의 손에 넣고 박덕한 외로운 몸이 어디로 가리오.”
 
212
하시고 통곡하시기를 마지아니시니 좌우 시신이 아니 울 이 없더라. 상이 백관으로 더불어 의논하시고 봉황성(鳳凰城)장에게 이문(吏文)하여 보내시니 그 글에 하였으되,
 
213
 
214
조선 국왕은 삼가 긴박한 글로써 족하(足下)에게 부치나니 과인의 국수(國壽)가 불행하여 남만(南蠻)의 화를 만나 허다 신민을 왜놈에게 죽이고 골육이 분찬하여 무덕한 몸이 외로운 변지(邊地)에 이르러 의주성에 의탁하였으니 또한 장구지책(長久之策)이 아니라. 다만 원컨대 남은 신민을 거느리고 상국(上國)에 들어가기를 원하나니 이 뜻을 감히 황상께 주달하심을 바라나이다.
 
215
 
216
하였더라. 봉황성장 번양성이 이 글을 보고 요동부(遼東府)에 보장(報狀)하니 부사 어합걸이 황성 병부상서(兵部尙書)에게 첨의(僉議)한대 병부상서가 이를 보고 즉시 천자(天子)께 계달하니라.
 
217
체찰사 유성룡과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이 주왈,
 
218
“봉황성에 이문하였삽거니와 바로 청병사를 보내어 구원을 청함이 옳을까 하나이다.”
 
219
상이 옳이 여기사 이조판서 신점을 정사로 병조판서 정탁(鄭琢)을 부사로 삼아 보내시니 이신이 하직하고 즉시 압록강을 건너 연경(燕京)을 지나 천조(天朝)에 들어가 예부상서 설변을 보고 청병서(請兵書)를 드린대 예부상서가 그 글을 보고 가지고 들어가 천자(天子)께 상달하온대, 황제 옥화관에 전좌하시고 조선 사신을 인견하사 적의 형세를 물으시니 신점 등이 전후 사연을 자세히 아뢰고 다만 구원을 청하니 보는 자 아니 비감히 여길 이 없더라.
 
220
황제 만조백관을 모으시고 조선을 구원코자 하실새 대장 한 사람을 못 얻어 하시니 병부상서 주왈,
 
221
“요동이 조선과 연계하였사오니 요동군마를 일으켜 조선을 구함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222
황제 그 말을 옳이 여기사 즉시 요동부에 조지(朝旨)하여 조선을 구하라 하시고 참정 곽몽징(郭夢徵)으로 하여금 보군(步軍) 삼천을 거느려 가고 대조변(戴朝弁)은 용병을 거느려 가고 유격장군 사유(史儒)로 창군(槍軍) 일만 오천을 거느려 한가지로 요동도독 조승훈(祖承訓)을 도와 왜적을 치라 하고, 또 예부상서 설번(薛藩)으로 촉단 오백 필과 은자 일만 냥을 주어 조선왕을 위로하라 하시더라.
 
223
 
224
차설, 이때는 임진 칠 월이러라. 사유 등이 요동에 이르러 조승훈을 보고 조명(朝命)을 전하니 승훈이 즉시 정병 오천을 조발하여 사유 등으로 더불어 한가지로 조선을 향할새 군율이 정제하고 기치(旗幟)가 선명하더라. 천병(天兵)이 나오는 패문이 의주에 이르니 체찰사 유성룡이 청주 곽산 등처에서 전전하여 군사를 모으며 군량(軍糧)을 준비하여 천병을 접대할새 선사개 첨사 장우성으로 대동강에 부교(浮橋)를 놓고 노량첨사 민교로 청천강에 부교를 놓아 천병을 건너게 하고 순찰사 이원익으로 하여금 병사 이빈을 거느려 순안을 지키게 하고 도원수 김명원으로 순천을 지키고 스스로 대장을 모아 안주를 지키게 하여 천병을 후대하더라.
 
225
이때 요동도독 조승훈과 참정 곽몽진과 유격 사유 등이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이르니 상이 시신(侍臣)을 거느리시고 강변에 나와 맞아 들어가 대접하고 군마를 호상하시고 명장 조승훈다려 가로되,
 
226
“대장군은 힘을 다하여 왜적을 파하고 대국 위엄을 나타내게 하소서.”
 
227
하니 조승훈이 응낙하고 의주를 떠나 정주를 지나 순안을 들어가 삼경에 호군(犒軍)하고 오경에 행군하여 바로 평양으로 들어오더니 불행하여 모진 바람과 큰 비 급하니 성문에 지키는 군사 없는지라. 승훈이 대희 왈,
 
228
“도적이 우리 오는 줄을 알고 대적할 형세 없어 싸울 의사를 아니하니 이제 급히 치면 가히 대사를 이루리라.”
 
229
하고 사유로 선봉을 삼고 일시에 대군을 몰아 나아가며 대연고를 놓아 칠성문을 파하고 바로 성에 들어가되 동정이 없더니 문득 방포 소리나며 좌우 전후로 복병이 일어나며 어지러이 고함치며 에워싸고 짓치니 방포 소리 산천이 움직이며 철환이 비오는듯하는지라. 천병이 불의에 변을 만난지라, 창황하여 서로 짓밟혀 죽으며 철환에 상한 자가 부지기수라. 승훈이 대경하여 급히 징(鉦)을 쳐 군사를 물리더니 사유 등이 철환을 맞아 죽은지라. 진중이 요란하여 패주할새 큰 비 연하여 삼일을 오니 천병의 의장(衣裝)이 다 젖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후군이 전군이 되어 창황히 달아나다가 진흙에 빠지며 철환도 맞아 크게 어지럽거늘 조승훈이 대패하여 멀리 퇴진하매 왜적이 천병이 패하여 물러감을 보고 성상(城上)에 홍기(홍旗) 백기(白旗)를 세우며 북을 울리며 기를 두르니 쟁북 소리 천지를 뒤흔들더라. 조승훈이 군사를 점고(點考)하니 팔만여 인이 죽고 장수 삼십여 인이 죽었더라, 승훈이 마음에 한하여 즉시 군사를 거두어 요동으로 돌아가니라.
 
 
 
 

5. 김응서(金應瑞)의 신술(神術)

 
231
이때에 상이 조승훈의 패문을 들으시고 실색하사 인하여 탐지하라 하시더니 조승훈이 패잔군을 거느려 요동으로 들어간다 하거늘 상이 악연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시더니 이원익으로 일천 군을 거느려 수안을 진주하게 하고 김익수로 수군 삼천을 거느려 대동강 하류를 지키우니라. 처음에 평안도를 함몰하매 윤두수 김명원은 수안으로 달아나고 이일은 용강(龍岡)을 지나 청천강을 건너 안악(安岳) 고을로 들어가니 읍중이 일공이라, 하릴없이 피난군 백여 명을 모아 내어 거느리고 영등정[寺]에 들어가니 중 오십여 인이 있거늘 칼을 빼어 호령 왈,
 
232
“너희 비록 중이나 이런 난세(亂世)를 당하여 어찌 평안히 이 산곡에 있으리요. 만일 내 영을 거역하면 즉시 버히리라.”
 
233
하고 몰아 내니 제승이 일시에 복종하거늘 승군 오십여 명을 데리고 한가지로 구월산성(九月山城)에 들어가 군기를 내어 가지고 나아가다 길에서 연박경을 만나니 한 사람을 천거하여 왈,
 
234
“이는 문의 있는 사람이니 성은 한이요 명은 명현이니 용맹이 과인하며 지략이 무적하여 일찍 왜선 수백 척이 결성에 이르렀으되 막을 장수 없더니 명현이 말하되 ‘원컨대 수백 군을 얻어 소노로 좇아 나아가 치면 반드시 적군을 파하리라’하며 즉시 백여 인을 준대 명현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과연 왜적을 파하고 적병 백여 명을 버혀 왔거늘 내 장천하여 마병장을 시키니 제 평안도로 가려 하거늘 머물러 장하(帳下)에 두었나니 가히 이 사람을 불러 대사를 의논하라.”
 
235
한대 이일이 즉시 명현을 불러 보고 대희하여 시절일을 의논하니 대답이 여수하고 의사가 훤찰하며 국량(局量)이 당할 자 없는지라. 이일이 대희하여 데리고 해주를 떠나 평양을 향하여 가더니 홍수원에 이르니 왜적 백여 명이 둔취하였거늘 이일이 군사를 잠깐 물려 산곡에 둔병하고 명현을 불러 왈,
 
236
“너는 마땅히 지용을 시험하여 도적을 치라.”
 
237
한대 명현이 이르되,
 
238
“이는 서절구투(鼠竊狗偸)라, 어찌 족히 개의하리요. 원컨대 백 명 군사를 주시면 도적을 파하리이다.”
 
239
하거늘 이일이 즉시 일백 군을 주니 명현이 왈,
 
240
“장군은 다만 군사를 거느려 산곡에 둔병하여 밤에는 불을 들어 응하고 낮에는 쟁북을 울려 왜병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소서.”
 
241
하고 인하여 뇌자산에 들어가 군사를 데리고 홍수원에 돌아와 십 리를 물려 진치고 군사를 다 왜인(倭人)의 복색(服色)을 하고 호드기를 만들어 각각 하나씩 주어 가로되,
 
242
“오늘밤 삼경에 적진을 파하리니 너희 등은 오직 내 기(旗)를 보아 가며 적진에 돌입하여 짓치되 호드기 없는 군사는 다 죽이라.”
 
243
약속을 정하고 밤들기를 기다리더니 이때 왜병 백여 인이 또 남으로부터 홍수원에 들어와 합진(合陳)하거늘 이일이 급히 명현에게 기별하되,
 
244
‘도적이 침병하여 형세 더욱 크니 모름지기 대사를 상심하고 실수함이 없게 하라.’
 
245
한대 명현이 글로써 회답하되,
 
246
‘적병이 삼만이라도 족히 일컬을 바 없으니 장군은 근심치 말고 다만 내 하는 대로 뒤를 좇아 접응하소서.’
 
247
하고 차야에 군사를 다 하무(銜枚)를 물리고 바로 적진을 향하여 들어가니 적인이 바야흐로 잠을 익히 들었거늘 명현이 군사를 재촉하여 일시에 고함하고 어지러이 짓치니 왜병이 어두운 밤에 동서를 분별치 못하고 달아나거늘 명현의 군사 승세하여 일군을 함몰한지라. 평명에 이르니 명현으로 더불어 남은 적병을 파하고 대희하여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며 이원익 김응수로 더불어 적세를 살펴 파적(破敵)할 계교를 의논하더니 이때는 임진 추팔월이라 이원익이 제장으로 의논하되,
 
248
“내 적세를 보니 장수 다 교만하고 군사 방심하여 우리를 업수이 여겨 태만함이 심하니 이때 성을 급히 치면 도적이 패하여 내성으로 들어가리니 제장은 각각 군사를 모아 진심갈력(盡心竭力)하여 영(令)을 어기지 말라.”
 
249
하고 이원익으로 선봉을 삼고 고각(鼓角)을 울리며 성문을 향하여 나아가니 적장 평행장이 조선 군사가 성문 가까이에 옴을 보고 즉시 아장 종일을 불러 대적하라 한대, 종일이 갑주(甲冑)를 갖추고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일백 군을 거느려 내달으니 위풍이 늠름한지라. 이일로 더불어 싸울새 이십여 합에 다다르니 이일이 평생 기력을 다하나 팔이 무겁고 정신이 어찔하니 능히 그 적수 아님을 알고 말을 돌려 들어와 자송원에 진치니라. 종일이 따르다가 이일을 잃고 이원익을 급히 치니 원익이 군사를 다 죽이고 거의 잡히게 되었더니 문득 한 도사(道士)가 공중에 서서 소매에서 복성화채를 내어 적진을 향하여 뿌리니 적은 듯하여 왜병이 수족을 놀리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昏迷)하여 발이 땅에 붙고 떨어지지 아니하니 이로 인하여 군사를 죽이고 황겁하여 성에 들고 나지 아니하니 원익이 군사를 거두어 진에 돌아와 제장다려 왈,
 
250
“종일은 천하 명장이라, 조선에는 대적할 장수 없으니 부디 용맹한 사람을 얻어 종일을 죽여야 적군의 예기(銳氣)를 꺾으리라.”
 
251
하고 탄식하더니 한 군사 앞에 나와 고하되,
 
252
“소졸의 동리에 한 양반이 있으되 성명은 김응서(金應瑞)니 용맹이 과인하여 일일은 큰 범이 담을 넘어 돝[豚]을 물고 가거늘 그 양반이 몸을 공중에 소소와 한 손으로 그 범을 잡고 또한 손으로 그 발을 잡아 땅에 부딪쳐 죽이니 가히 호걸(豪傑)이라, 어찌 찾아 의논치 아니하시나이까.”
 
253
원익이 이 말을 듣고 기뻐 문왈,
 
254
“너는 어디 있느냐.”
 
255
그 군사 답왈,
 
256
“용강(龍岡) 있나이다.”
 
257
원익이 즉시 발마로 용강에 이르러 김응서를 찾아보고 종일의 장함을 이르고 없이 하기를 의논하며 바삐 가 도움을 청한대, 응서 가로되,
 
258
“사세(事勢) 비록 그러하나 즉금(卽今) 천상(天喪)을 만나 바야흐로 초상(初喪)이니 사정에 떠나기 민망하도소이다.”
 
259
원익 왈,
 
260
“비록 부상(父喪)이 중하나 나라가 위태하매 주상(主上)이 종사(宗社)를 버리시고 의주성(儀註城)에 몸을 감추워 주야로 통곡하시니 어찌 사정을 생각하며 일신을 돌아보리요. 당당히 나라를 받들고 도적을 물리쳐 큰 공을 세운 후 수상(隨喪)함이 방해롭지 아니하니라.”
 
261
다만 가기를 재촉하니 응서가 하릴없이 즉시 상복을 벗고 영구(靈柩)에 하직한 후 원익을 좇아 진중에 이르니 일군이 흥락하더라. 원익이 응서로 더불어 한가지로 밥먹으며 황육(黃肉) 닷 근과 황소주(黃燒酒) 한 말을 하루 사시로 먹이며 청룡검(靑龍劍)을 주어 일일 연습하여 십 일을 기약하더니, 응서 원익을 대하여 계교를 일러 왈,
 
262
“소장이 오늘 밤에 성을 넘어 들어가 종일을 버혀 오리니 장군은 모름지기 성밖에 있다가 혹 급함이 있거든 구하소서.”
 
263
하고 청포검을 짚고 성을 뛰어넘어 들어가니 성중이 고요하여 순라(巡邏)하는 군사 군막을 의지하여 자거늘 응서 자취 없이 군막을 지나 관문에 다다르니 수문(守門)하는 군사 큰 칼을 좌우에 세우고 다만 사 오인이 잠을 깊이 들었거늘 응서 청포검을 들어 일시에 다 버히고 문을 넘어 들어가니 이때는 정히 삼경이라, 관중(關中)에 등촉이 조요(照耀)하고 호위하였던 군사 다 물러 잠들고 인적이 고요하거늘 응서 칼을 들고 주저할 즈음에 마침 수청하던 기생(妓生)이 소피(所避)하러 나왔다가 응서를 보고 대경 왈,
 
264
“그대 어떤 사람이관대 이런 위태한 땅에 들어왔느뇨.”
 
265
응서 왈,
 
266
“나는 본디 원익의 부장이라, 이제 적장(敵將)을 죽이고 평양을 회복코자 하노니 네 또한 조선 사람이라, 날을 위하여 왜장의 동정을 자세히 이르라.”
 
267
기생 왈,
 
268
“왜장의 성명은 종일이오 관중에 거처하되 사면에 휘장을 드리워 그 귀마다 방울을 달고 방울이 조금 요동하면 소리 요란한지라, 이러므로 불의지변을 방비하고 하루에 두 말 밥과 두 말 술과 이십 근 고기를 능음하며 높은 배게에 상(相)을 돋우 놓고 누웠으니 삼경 전에 귀로 자고 눈으로 보며 삼경 후는 눈으로 자며 귀로 들으며 사경 후는 귀와 눈을 함께 자오니 장군은 모름지기 상심하여 대사를 그르게 마르소서. 만일 소루함이 있으면 대화(大禍)를 만나리니 첩(妾)이 먼저 들어가 저의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 탐지하고 인하여 방울 귀를 솜으로 막은 후 문을 열고 나오거든 장군이 즉시 들어와 하수(下手)하시고 저의 용력(勇力)이 절륜(絶倫)하니 몸을 급히 피하소서.”
 
269
하고 몸을 돌려 들어가더니 오래도록 나오지 아니하거늘 응서 칼을 짚고 주저할 즈음에 그 기생이 나와 이르되,
 
270
“급히 들어가 하수하라.”
 
271
하거늘 응서 칼을 빗기고 바로 당중에 들어가니 종일이 술이 취하여 장창(長槍)과 보검(寶劍)을 가로 쥐고 누워 코를 우레같이 골거늘 응서 급히 뛰어들어가 칼을 들어 종일의 머리를 한 번 힘써 버히고 몸을 날려 들보 위에 올라 앉으니 종일이 이미 머리 없으되 분기를 발하여 일어서며 청룡검으로 들보를 치니 응서 군복 자락이 맞아 찢어져 내려지며 종일의 머리와 몸이 상하(床下)에 거꾸러지며 피흘러 장중에 가득하거늘, 응서 급히 뛰어내려 종일의 머리를 손에 들고 장(帳)을 헤치고 나오려 하니 그 기생이 울며 고왈,
 
272
“장군이 어찌 소인을 사지(死地)에 두고 가시나이까.”
 
273
하며 따라 나오거늘 응서 잔잉히 여겨 차마 보지 못하여 한가지로 나오더니 장중이 자연 요란하므로 관중(關中)이 소동하여 사면에 순라하던 군사가 일시에 횃불을 밝히고 창검을 두르며 함성이 진동하거늘 응서 그 기생을 거두 잡고 한 손으로 청포검을 들어 전군을 짓쳐 좌우로 충돌하여 나오더니 성 밑에 다다라는 왜장 평행장이 칼을 두르고 눈을 부릅뜨고 꾸짖어 왈,
 
274
“네 간사한 꾀로 가만히 들어와 우리 장수를 죽이고 당돌히 달아나고자 하느냐, 네 죄를 스스로 생각하여 내 칼을 받으라.”
 
275
하고 달려들거늘 응서 평생 기력을 다하여 청포검을 휘두르며 죽기로써 짓쳐 나오니 그 봉예(鋒銳)를 뉘 능히 당하리요. 청포검 이르는 곳마다 왜장의 머리 추풍낙엽(秋風落葉) 같은지라. 홍혈(紅血)이 점점이 군복에 젖었더라. 한 문을 헤치고 성을 뛰어넘으려 하니 응서 비록 용맹이 유여하나 기생을 업고 홀로 만군 중을 헤쳐 나오니 기력이 진 하였는지라, 기생을 업고 성을 넘어 올 제 전대(纏帶)를 끌러 기생을 잡히고 성을 넘더니 적장 평수맹이 급히 달려들어 고함하고 칼을 들어 기생을 죽이고 바로 응서를 취하거늘 응서 크게 소리 지르며 잡은 칼을 흔들어 수명을 버히고 내달으니 원익의 비장 안일봉이 백여 군을 거느려 복병하였다가 응서를 만나 한가지로 돌아오니 원익이 대희하여 큰 공을 칭찬하며 대연(大宴)을 베풀어 서로 하례하고 종일의 머리를 높이 길에 달아 호령하고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니 제장과 군졸이 즐기는 소리 진동하여 적진 중에 들리는지라. 평행장이 군사로 하여금 웨여 왈,
 
276
“너희 등이 정도(正道)로 싸우지 아니하고 간사한 꾀로써 자취 없이 들어와 나의 수족 같은 장수를 해하니 이는 불의라. 내 당당히 조선 인민을 다 죽이고 또한 너희 등의 머리를 베어 우리 기대(旗臺)에 높이 달아 나의 분함을 풀리라.”
 
277
하고 무수히 질욕(叱辱)하거늘 원익이 대로하여 좌우를 돌아보아 왈,
 
278
“뉘 능히 저 도적을 잡아 이 한을 풀리요.”
 
279
선봉 이일이 수하 장수를 지휘하여 적진을 향하여 싸움을 돋울새 왜장이 아군의 세(勢) 큼을 보고 진문을 굳이 닫고 나지 아니커늘 이일이 대호 왈,
 
280
“빨리 와 내 칼을 받으라.”
 
281
하고 군사를 호령하여,
 
282
“일시에 왜진을 바라고 쏘라.”
 
283
하니 적병이 진문을 굳이 닫고 나지 아니하거늘 백광언 지세풍 두 장수 말을 달려 왕래하며 싸움을 돋우되 마침내 고요하더니 석양 때에 안국사 진문을 크게 열고 내달아 창검을 들어 백광언으로 싸워 두 합이 못하여 광언을 배여 마하에 내리치니 지세풍이 황겁하여 달아나다가 또한 안국사에게 버힌 바 되니 이일이 싸울 마음이 없어 군사를 거느려 돌아오니라.
 
284
 
285
각설, 총융사(摠戎使) 김성일(金誠一)이 갑병 천여 기(千餘旗)를 거느리고 경성으로 향하여 오다가 부평 땅에 이르러 왜적 위탁을 만나니 위탁의 신장이 팔 척이요 범의 허리에 잔나비 팔이며 철갑을 입고 머리에 금투구를 쓰고 장창을 두르며 말을 달려 달아드니 장졸이 한번 보고 경겁하여 사산분주(四散奔走)하거늘 김성일이 대호 왈,
 
286
“여 등(汝等)이 내 영을 좇지 아니코 도망하니 이는 도적보다 더한지라, 어찌 나라를 보존하리요.”
 
287
비장(裨將) 이송이 부끄러워 즉시 활을 잡아 도적을 쏘아 백여 인을 죽이고 성일이 또한 유엽전(柳葉箭)으로 백여 인을 죽이니 적이 대패하여 달아나니라.
 
 
 
 

6. 이순신(李舜臣)의 해전(海戰)

 
289
재설, 수군대장 이순신(李舜臣)이 자는 여해(汝諧)니 문무가 쌍전(雙全)하고 육도삼략(六韜三略)을 무불통지(無不通知)하며 지용(智勇)이 과인하매 사람들이 칭찬하여 이르되 당대의 호걸(豪傑)이라 하더라. 나이 십칠 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도임 후로부터 수군을 모아 연일 연습할새 일일 차등하여 상급을 중히 하니 제장과 군졸이 다투어 활쏘기 말달리기를 힘써 하니 순신이 왜적의 이름을 미리 알고 군기를 수정하며 전선(戰船) 사십여 척을 지으되 위에는 거북이 형상을 만들고 편철(片鐵)을 쳐 배 위에 입히고 구멍을 무수히 뚫어 벌의 집 모양으로 살과 철환을 통하여 도적을 쏘게 하였더라. 이름을 거북선이라 하고 날마다 장졸을 모아 수전을 연습하더니 이때에 마다시 심안둔 두 장수가 용병 팔십만을 거느려 전라 신도(身島)를 건너 우수영(右水營)을 범하니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원균(元均) 등이 황황 혼겁하여 아무리 할 줄 몰라 다만 전선을 타고 나아가니 순신이 또한 전선을 타고 나올새 왜장 마다시 이십만 수군을 거느리고 나오며 기를 두르고 북을 울리며 전선을 재촉하며 급히 쳐 오니 원균 등이 또한 고조납함(鼓譟吶喊)하니 피차의 기치검극(旗幟劍戟)이 일광을 가리우고 쟁북 소리 물결을 뒤치는 듯하더라. 순신이 한 계교를 생각하고 비장 이광연을 명하여 작은 배를 태워 원균에게 통하여 왈,
 
290
“이곳이 심히 협착(狹窄)하고 돌이 많아 파선하기 쉽고 수전할 곳이 아니니 대해로 나아가 다투면 우리에게 이할 것이니 모름지기 그대 등은 내 뒤를 따르고 그릇됨이 없게 하라.”
 
291
하고 순신이 적으로 더불어 두어 번 싸우다가 거짓 패하여 배를 몰아 대해로 향하여 달아나니 원균과 이억기 등이 왜적으로 더불어 싸우다가 또한 양패(佯敗)하여 순신을 좇아 물러가니 적이 선두에서 대소 왈,
 
292
“순신이 혼겁(魂怯)하여 도망한다.”
 
293
하고 일시에 고각을 울리며 전선을 재촉하여 따르거늘 순신이 배를 돌려 군사를 호령하여 일시에 쏘라 하니 이억기 전선은 우편으로 돌아들고 이순신 판옥선(板屋船) 사십여 척은 바로 왜진 가운데로 들어가니 삼노군이 상거 십여 보는 두고 일시에 접전할새 살과 철환은 빗발치듯 하고 서로 살벌하는 소리는 해중이 끓는 듯하더라. 순신의 배에 화포를 많이 실었는지라, 군사를 호령하여 적선을 바라고 일시에 화포를 놓으니 처처에 불이 일어나고 화염이 충천하니 적군이 무수히 죽고 또 대완포(大碗砲)를 놓아 적선을 많이 파하니 왜병이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만여 명이라. 왜장 마다시 대경하여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영채를 세우고 크게 호군하여 제장과 군사를 중상하더니, 차시 왜장 마다시 아오마 즉시 전선 이백여 척을 거느리고 본진을 지키었더니 제형의 죽음을 듣고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즉시 전선을 다 거느리고 이날 삼경에 순신의 진으로 오더라.
 
294
차시 순신이 적이 올 줄 알고 군중에 전령하되,
 
295
“금야에 적이 우리 진을 겁칙하리니 모두 자지 말고 대완포를 준비하라.”
 
296
하더니 마득시 전선을 재촉하여 들어오며 크게 고함하거늘 순신이 군사를 호령하여 대완포를 일시에 놓으니 적선이 편편이 깨어지고 군사 물에 빠져 죽는 수를 이루 헤아리지 못할지라. 마득시 대패하여 달아나거늘 순신 억기 원균 등이 한데 모아 진을 해중에 옮기고 크게 호군하더니 문득 동남풍이 불거늘 순신 왈,
 
297
“금야에 도적이 반드시 순풍을 좇아 들어와 불을 놓을 것이니 우리 준비하였다가 대적하리라.”
 
298
하고 아장을 명하여 전선 십여 척을 거느려 나아가되 초인(草人)을 무수히 만들어 한 배에 싣고 방패를 세우며 청룡아기(靑龍牙旗)를 꽂아 작일 진친 데 있으라 하고 이억기로 오십 척을 거느려 일러,
 
299
“오십 리만 가면 작은 섬이 있으니 수풀에 숨었다가 적선이 노량포(鷺梁浦)를 지나거든 내달아 엄습하라.”
 
300
하고 또 원균으로,
 
301
“수군 삼천을 거느려 동도(東島)섬에 가 수풀에 숨었다가 왜선이 지나거든 내달아 엄습하면 반드시 적선을 파하리니 제장은 범홀히 말로 급히 나아가 영을 어기지 말라.”
 
302
한대 각각 배를 저어가 매복하니라.
 
303
이때에 마득시 동남풍이 일어남을 보고 마음에 기뻐하여,
 
304
‘어제 패한 원수를 갚으리라.’
 
305
하고 제장을 분부왈,
 
306
“이제 동남풍이 일어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로운 증좌라. 마땅히 순풍을 좇아 들어가 적군을 파함이 여반장(如反掌)이라.”
 
307
하고 즉시 전선 십여 척에 섶[薪]을 많이 싣고 석유황(石硫黃) 화약 철환을 갖추되 배마다 청포장을 둘러치고 선두에 기를 꽂고 바람을 응하고 뒤에는 군사 실은 배 백여 척을 실어 순풍을 좇아 나는 듯이 들어오며 일시에 방포하며 어지러이 짓쳐 오되 조금도 요동함이 없거늘 심중에 의혹하여 가까이 와 보니 이는 초인(草人) 실은 배라. 마득시 대경하여 꾀에 속은 줄 알고 배를 돌이키더니 문득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웨여 왈,
 
308
“도적은 묘한 계교로 깨어지도다.”
 
309
하며 일시에 내달아 왜선을 둘러싸고 이르되,
 
310
“오늘은 하늘로 오르랴 땅으로 들랴, 어디를 가리요. 빨리 항복하여 죽기를 면하라.”
 
311
하며 화전(火箭)과 진천뢰(震天雷)를 놓고 유엽전(柳葉箭)과 편전(片箭)을 무수히 발하여 급히 치니 마득시 대적코자 하나 초인 실은 배를 만나 이미 살과 철환이 다 진하였는지라, 감히 대적지 못하고 군사를 다 죽이고 겨우 백여 명이 남았거늘 배를 재촉하여 남을 향하고 달아나더니, 문득 수상(水上)으로 좇아 소리 들리며 기러기 무리 떠오듯 무수한 적선이 내려오며 큰 기에 썼으되 ‘조선 대장 이순신(朝鮮大將李舜臣)’이라 하였더라. 마득시 대경하여 피코자 하나 어디로 가리오. 다만 배를 머무르고 죽기로써 싸우더니 순신이 대도(大刀)를 들고 뱃머리에 나서며 군사를 크게 호령하여 급히 전선을 몰아 일시에 짓치고 또 이억기와 원균 등이 이르러 좌우로 협공하니 왜병이 동서를 분변치 못하고 살[矢]도 맞아 죽으며 물에도 떨어져 남은 군사 아무리 할 줄 모르거늘 순신이 창을 들고 왜선에 뛰어올라 좌우로 충돌하여 왜적을 풀베듯 버히니 한 왜적이 가만히 활을 달여 순신의 어깨를 맞히니 순신이 왜적을 대적지 못하고 창을 끌고 본진으로 오니 몸에 피흘러 갑옷에 사무쳤더라. 제장이 대경하여 갑옷을 벗기고 보니 어깨에 철환(鐵丸)이 두엇이나 박혔거늘 모두 황겁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거늘 순신이 불변 안색하고 좋은 술을 가져오라 하며 취토록 먹고 제장으로 하여금 칼을 주어 철환을 파내라 하고 신색을 조금도 변치 아니하시며 제장으로 더불어 군무를 의논하니 보는 자 뉘 아니 실색하리요. 철환을 파내고 약을 발라 깁으로 동인 후 중인이 권하여 고요히 들어가 조리하라 한대, 순신이 비록 상처 심히 아프나 차시를 당하여 대장이 병들어 누웠으면 군중이 놀랄까 두려 눈을 부릅뜨고 꾸짖어 왈,
 
312
“난세를 당하여 조그만 상처를 가지고 조리할진대 군중이 소동할지라, 다시 이르지 말라.”
 
313
하고 한산도(閑山島)로 나아가 진치고 군사를 중상하고 상처를 조리할새 순신이 문득 곤하여 부채를 쥐고 북을 의지하여 잠깐 조으더니 한 노인이 앞에 나와 이르되,
 
314
“장군이 어찌 잠을 자느뇨. 도적이 들어오니 빨리 대적하라. 나는 이 물 지키는 신령[海神]이러니 급함을 고하노라.”
 
315
하고 크게 소리지르거늘 놀라 깨달으니 한 꿈이라. 순신이 눈을 들어 원근(遠近)을 살피니 수색(水色)은 하늘에 닿았고 월광(月光)은 벽수(碧水)에 희미하였거늘 순신이 처량한 회포를 이기지 못하여 서안(書案)을 의지하여 뱃전을 치며 한 소리를 읊으니 그 노래 웅건(雄建)한지라, 제장이 놀라 진중이 요란커늘 순신이 제장을 모으고 이르되,
 
316
“오늘 동남풍이 불지니 바삐 나아가 우리 승전하고 돌아와 방비하리라.”
 
317
하고 차야를 타 가만히 들어와 겁칙할새 순신이 군기를 다스려 대적하라 하니 제장이 보지 아니하나 오직 순신은 보고 화포와 기계를 준비하더니 과연 삼경에 미쳐서는 달이 서령(西嶺)에 비쳤는데 왜적이 가만히 월하(月下)에 배를 저어 들어오거늘 순신이 제장을 명하여 천하성을 불어 일시에 방포하고 고함하니 도적이 또한 방포하며 시석(矢石)을 어지러이 날리니 피차의 고각과 함성이 물결을 뒤치는 듯하며 태산이 무너지는 듯하더라.
【원문】권지일(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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