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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풍전 (李春風傳) ◈
해설   본문  
1
이춘풍전 (李春風傳)
 
 
2
숙종대왕 즉위 초에 인화세풍하고, 국태민안이라. 우순풍조하고 가급인족하여 산무도적하고 도불습유하니 요지일월이요 순지건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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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서울 다락골에 한 사람이 있으되 성은 이요, 명은 춘풍이라. 형세가장 요부하여 장안의 거부로서 다만 혈육이 춘풍뿐이라. 부모 매양 사랑하여 교동으로 길러 내니 인물이 옥골이요 헌헌장부라, 타인과 달라 못 할 것이 전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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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듯 지내다가 양친이 일시에 구몰하니 춘풍이 망극하여 삼상을 마친 후, 강근친척이 없어 춘풍을 경계할 이 없으매, 춘풍이 외입하여 하는 일마다 방탕하고 세전지물 누만금을 남용하여 없이할 제 남북촌 외입쟁이와 한가지로 휩쓸려 다니며 호강하여 주야로 노닐 적에, 모화관 활쏘기와 장악원 풍류하기, 산영에 바둑 두기, 장기 골패 쌍륙 투전, 육자배기 사시랑이 동동이 엿방망이 하기와, 아이 보면 돈주기, 어른 보면 술대접하고 고운 양자 맑은 소리, 맛좋은 일년주며 벙거짓골 열구지탕 너비할미 갈비찜에 일일장취 노닐 적에, 청루미색 달려들어 수천 금을 시각에 없이하니 천하 부자 석숭인들 그 무엇이 남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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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같이 없어지고 진토같이 다 마른다. 전에 놀던 청루미색 나를 보면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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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이 하릴없이 제 집에 돌아와 제 처더러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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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빈에 사현처라, 옛글에 일렀건만 애고 이제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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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하다 춘풍 아내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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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소, 내 말 듣소. 대장부 되어 나서 문무간에 힘을 써서 춘당대 알성과에 문무 참례하여 계수화를 숙여 꽂고 청라삼 떨쳐입고 부모전에 영화뵈고 후세에 이름 내어 장부의 사업을 하면 패가를 할지라도 무엄치나 아니 할꼬. 그렇지 못하면 치산을 그리 말고 농업에 힘써서 처자를 굶기지 말고 의식이나 호강으로 지내다가 말년에이르러 자식에게 전장하고 내외가 종신토록 환력평생하게 되면, 그도 아니 좋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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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공명 마다하고 이녁이 어찌 굴어 부모의 세전지물 일조일석 다 없애고 수다한 노비전답 뉘게 다 전장하고 처자를 돌아보지 않고 주지탐색 수투전 주야로 방탕하여 저렇듯이 되었으니 어이하여 사잔 말고. 마오마오 그리 마오, 주색잡기 좋아 마오. 자고로 외입한 사람 뉘 아니 탕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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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말 잠깐 들어 보소. 미나리골 이패두는 청루미색 즐기다가 나중에 신세 글러지고 동문 밖의 오청두도 투전잡기 즐기다가 말년에 걸인되고, 남산 골목 화전이도 소년의 부자로서 주색잡기 즐기다가 늙어서 그릇 죽고, 모시전 김부자도 술 잘 먹고 허랑하기 장안에 유명터니 수만 금을 다 없애고 기름 장사 다니네. 일로 두고 볼지라고 주색잡기 다시 마오."
 
12
이렇듯 만류하니 춘풍이 대답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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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내 말 들어 보소. 사환 대실이는 술 한잔 못 먹어도 돈 한푼을 못 모으고, 이각동이는 오십이 되도록 주색을 몰랐어도 남의 집 사환을 못 면하고, 탑골 복동이는 투전 골패 몰랐어도 수천 금을 다 없애고 굶어 죽었으니, 일로 볼작시면 주색잡기 하다가도 못 사는 이 별로 없데. 자네 차차 내 말 잠깐 들어 보소. 술 잘 먹는 이태백은 앵무배로 백년 삼만 육천 일 , 하루 삼백 배로 매일 장취하였어도 한림학사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하였어도 나중에 잘 되어서 일품 벼슬하였으니, 일로 볼지라도 주색잡기 좋아하기 남아의 상사로다. 나도 이리 노닐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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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허랑하고 조석을 이룰 수 없이 탕진한지라, 춘풍이 할 일 없어 그제야 회과자책 절로 나서 아내에게 사과하고 지성으로 비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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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부디 노여 마오. 자네 부디 설워 마소. 내 마음 생각하니 각금시이작비로세. 이왕지사 고사하고 가난하여 못 살겠네. 어찌하면 좋단 말고. 오늘부터 가중범사를 자네에게 맡길 것이니 자네 임의로 제가하여 의식이나 줄이지 말게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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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의 처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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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조업 누만금을 주색을 다 없애고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후에 혹시 침재 길쌈 방직하여 돈푼을 모을지라도 그 무엇을 아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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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이 대답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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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말이 내 행세를 믿지 못하니, 이후 주색잡기 않기로 수기를 써 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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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필을 내어 수기를 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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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모월 모일 기위전수기라. 우수기 단은 외입 방탕하기로 선세조업 누만금을 청루잡기로 진산하고, 각금시이작비하고서 회개에 막급이라. 차일 후로 가중지사를 진부어실 김씨 하거온. 김씨 치산 후로는 누만금지 재라도 진시 김씨지재요, 가부 이춘풍은 일푼전 일두속을 불부 담당지지로 여시 수기하오니, 일후에 약유 잡기지패 여든지차수기하고 관변정사라. 증필에 가부 이춘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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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하여 주니, 춘풍 아내 거동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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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말씀이 지차수기하고 관변정사라 하였으나, 가장 걸어 송사할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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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이 이 말 듣고 수기를 고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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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여중 김씨전수기라. 종금이후로 약유잡담이거든 가위 비부지자라, 지차문기 빙고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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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주니, 김씨 받아 함롱에 넣어두고 이 날부터 치가한다.
 
27
침재 길쌈 능란하다. 오푼 받고 새버선 짓기, 서푼 받고 새김 볼 박기, 두푼 받고 한삼 짓기, 서푼 받고 헌옷 깁기, 네돈 받고 장옷 짓기, 닷돈 받고 도포하기, 엿돈 받고 천익 짓기, 일곱돈 받고 금침하기, 한냥 받고 돌찌누비, 두냥 받고 바지누비, 세냥 받고 긴옷 누비, 넉냥 받고 관복지며, 겨울이면 무명나이, 여름이면 삼베 길쌈, 가을이면 염색하기, 이렇게 사시장철 주야로 쉴새없이 사오 년을 모은 돈을 장변이며 월수 놓아 수천금을 모았고나. 의식이 넉넉하고 가세가 풍족하여 그릴 것이 바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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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춘풍이 아내 덕에 의복관망 치레하고 고량진미 함포고복하여 제 집 술로 매일 장취하는구나. 가래침 고두 받고 곤자소니 기름지니 마음이 교만하여 이전 행실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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떵떵거리고 내달아서 호조 돈 이천 냥을 대돈변으로 얻어 내어 방물군자인 체하고 평양으로 장사가려 하니,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이 말 듣고 대경하여 춘풍더러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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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 서방님, 내 말 잠깐 들어 보소. 이십 전에 부모조업 탕진하고 그 사이 오 년을 격단하고 앉았다가 물정도 소리한 데 평양장사 가지마오. 평양 물정 내 들었소. 번화 사치하고 분벽사창 청루미색 단순호치 반개하고 청가일곡으로 교태하여 돈 많고 허랑한 자는 제 세워두고 벗긴다는데 평양 물정 이렇다니 부디 장사 가지 마오."
 
31
지성으로 만류하니 춘풍이 하는 말이,
 
32
"나도 또한 사람이지 이십 전 패가하고 원통하기 골수에 박혔으니 천금진산 환부래라 하였으니 낸들 매양 패가할까 속속이 다녀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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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 아내 이른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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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치패하여 일푼전 일두속을 참견 아니 할 뜻으로 비부지재라 수기 써서 내 함롱에 넣었거든 그 사이 잊었는가. 의식을 내게 믿고, 편안히 앉아 먹고 부디부디 가지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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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이 이 말 듣고 대노하여 어질고 착한 아내 머리채를 선전시전 비단 감듯 휘휘 칭칭 감아쥐고, 이리 치고 저리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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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원정 장삿길에 요망한 계집년이 잔말을 이리 하니, 이런 변 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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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내 욱지르고 집안 재물 다 털어서 말에 싣고 떠날 적에 불쌍하다, 춘풍 아내 아무리 여러 말로 말리어도 막무가내일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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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춘풍이 이천오백 냥 삯말 내어 실어놓고 발행할 제 좋은 말 반부담에 갖추 차려 호피돋움 높이하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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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양양 내려갈 때 연소문 얼른 지나서 무학재 얼른 지나 평양길 내려갈 제 청석골 다다르니, 정신이 쇄락하여 좌우 산천 바라보니, 이 때는 춘삼월 호시절이라. 고을 고을에 꽃은 날려 청파에 던지고 수양은 천만사에 황앵이 날아들고 온갖 산수 구경한다. 황성천도 벽사월에 창오원 중 늙은 고목, 주유낙일 절벽간에 임을 그려 상사나무, 옥조중랑 축분춘아 이월중난 계수나무, 층암절벽에 펑퍼진 반송나무, 늘어진 양류는 춘풍에 흥을 겨워 우쭐우쭐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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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을 바라보니, 무슨 짐승 노닐더냐. 춘알 새랑 창경새는 피는 꽃을 따려 하고 포곡조는 최춘종을 취풍은 가는 말을 재촉하고 옥동도화 만수춘은 가지가지 봄빛이라. 피는 꽃 푸른잎은 산책을 가리우고 나는 나비와우는 새는 봄철을 희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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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령을 바삐 넘어 황주 병영 구경하고, 중화로 평양을 바라보고 형제교를 얼른 지나 십리장림을 지나 대동강에 다다라서 모란봉 쳐다보니 그 아래 부벽루 둘러있고 물색도 좋을씨고. 대동문 연광정 제일강산이 여기로다. 기자 단군 이천 년의 보통문 유전일다. 정자도 좋거니와 영명사 극히 좋다. 성내에 들어서니 인가도 번성하고 물색도 번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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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픙의 거동 보소. 최성루 돌아들어 좌우 산천 구경하고 또 한편 바라보니 옛 마음이 절로 난다. 이런 변이 또 있는가. 청루 앞을 썩 지나서 객사 동편 주인하고, 열두 바리 실어온 돈 차례로 들여놓고 삼사 일 유숙하며 물정을 살피더니, 하루는 난간에 의지하여 한 집을 바라보니 집치레도 좋거니와 저 집 주인 거동 보소. 일색 추월이라. 얼굴도 일색이요, 노래도 명창이요, 연광은 십오 세라. 성중의 호걸손과 팔도의 소년 한량 한번 보면 수 삼백 석 쓰기를 물같이 쓰는구나.
 
43
이 때 서울 부상대고 이춘풍이 수천 냥 싣고 와서 뒷집에 주인 했다는 말을 듣고, 추월이 넌짓 춘풍을 홀리려고 벽계수 청류상에 사창을 반개하고 표연한 교태로 녹의홍상 다시입고 천연히 앉은 모양 춘풍이 얼른 보니얼굴 태도 청천명월 같고, 모란화 아침 이슬에 반쯤 핀 형상이요, 그 절묘한 맵시는 해당화가 그늘 속의 그림이요, 월궁의 항아로다.
 
44
천새긴 태도는 앵도화가 무르녹고 아미산 반륜월이 맑은 강에 비침 같고 서시가 부생이요 양귀비 다시 온듯, 청루상에 홀로 앉아 오동복판 거문고를 무릎 위에 얹어놓고, 탁문군을 꾀어 내던 사마상여 봉황곡을 둥흥동동지동당 타는 소리에 춘풍의 심신이 황홀하여 미친 마음 절로 난다. 제가 본디 계집이라 하면 화약 한 섬을 지고 모닥불에 보금자리치고 괴발에 덕석이라. 일신의 정신 있는 대로 모다 그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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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의 거동 보소. 좋은 의복 금사전의에 혼반 찾듯, 자미시에 걸승 찾듯,삼국풍진 오란할 제 한종실 유황숙이 와룡선생 찾아가듯, 서왕모 요지연에 주목왕 찾아가듯, 꾀꼬리 양류목을 찾아가듯, 봉접이 꽃밭을 찾아가듯, 맹상군의 갈짓자 걸음으로 중문 안에 들어서니 추월의 거동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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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이 오는 양을 얼른 보고 옥안을 번듯 들어 계하에 내려서서 춘풍의 나삼을 휘어잡고 난간에 올라서서 좌우를 살펴보니 집치레도 황홀하다. 사면팔자 입구 자로 육간 대청 전후 퇴에 이층 난간 맵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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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을 살펴보니 각장 장판 소란 반자 국화 새긴 완자창과 산수병의 미인도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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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화로 죽엽 쳐서 벽창문에 붙여 두고 원앙금침 잣베개를 지리장에 개어 놓고, 분벽주련 둘러보니 동중서의 책문이며 제갈량의 출사표며, 적벽부 양양가를 귀귀마다 붙였구나.놋촛대 광명두리 여기저기 놓여 있고 요강과 재떨이며, 청동화로 수박화로 삼층들이 화류장은 드문듬성 벌여 놓고, 벼루상의 양무머 리장목비며 용담 백담 화문석에 계자다리 옷걸이, 좋은 의상 내려 두고 추월의 거동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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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를 반만 들어 영접하여 앉은 모양 아리땁고,고운 태도 팔자청산 두 눈썹에 반분대를 다스리고, 삼단 같은 머리채를 휘휘슬슬 흘려 빗겨 금봉채로 단장하고 의복 치레 볼작시면 백방사 수화주로 장바지, 무명 주단 단속곳, 세백 수화주 너른바지, 통명주 깨끼적삼, 남대단 홋단치마 잔살 잡아 떨쳐 입고, 노리갠들 범연할까. 이궁전 인물향과 밀화 불수 금도끼를 줄룩줄룩 얽어 차고 백주 화주 겹버선에 도리불숙꽃 당혜를 날출 자로 제법신고,단순호치 반개하여 웃는 양은 춘풍도리 화개시에 반만 핀 홍련이다.
 
50
섬섬옥수로 전라도 진안초에 평안도 삼등초를 설설 펴서 얼른 담아 청동화로 백탄 숯불 불붙여서 춘풍전에 드릴 적에 향내가 진동하니 춘풍이 받아들고 하는 말이,
 
51
"나도 경성에 생장하여 청루미색 결연하다가 여기를 나려 와서 객회가 적막키로 가련금야 숙창가요, 창가소부 불수빈하라 동작의 생황진을 네 들을소냐."
 
52
하니,추월이 잠깐 웃고 여쭈오되,
 
53
원로 경성에서 평안히 오시니까 뒷집에 사처하여 사오 일 유숙하되 어이 그리 더디던고."
 
54
이말 저말 다 버리고 추월이 분부하되 주찬을 차려올 제 국화 새긴 통영반에 주전자 들이놓고, 조로록 엮은 홍합 생선찜 오화당 사탕 귤병 당대추며, 반달 같은 계피떡과 먹기 좋은 꿀합떡과 보기 좋은 화전에 산승웃기로 고여 놓고, 꺽꺽 우는 생치 들여 정월 맏배 영계찜을 곁들이고, 대모 양각 큰 접시에 현초초 전복을 갖추어 곁들이고, 어히 겨자 초장 생청을 틈에 끼워 놓고 청실례 홍실례 벗긴 생율접은 준시 은행 대추 청포도 흑포도며, 머루 다래 유자 석류 감자 능금 참외 수박을 갖추어 왔구나.
 
55
병 치레를 볼작시면 벽해상의 거북병과 목 옴츠라진 자라병과 만경창파 오리병, 왜화병, 당화병, 일출병월 출병을 갖추어 벌여 놓고, 술 치레를 볼작시면 이태백의 포도주며, 도연명의 국화주며, 안기생의 과하주며, 석달 열흘 백일주며, 소주 황소주 일년주, 계당주, 감홍로, 향기로운 연엽주, 산종처사 송엽주를 갖추갖추 놓았는데, 노자작 앵무배에 섬섬옥수로 졸졸 퐁퐁 가득 부어 춘풍에게 드리거늘, 춘풍이 하는 말이,
 
56
"평양이 소강남으로 들었으니 권주가나 들어 보세."
 
57
추월이 단순을 반개하여 청가일곡으로 권주가를 부를 적에,
 
58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백년 삼만 육천 일 살아서도 우락중분 미백년이니 권할 적에 잡으시오. 일생 백년 못살 인생 아니 놀고 어이할까. 이술은 술이 아니라 한무제의 승로반에 이슬받은 것이오니, 쓰나 다나 잡으시오. 역려의 건곤에 초로같은 우리 인생 한 번 돌아가면 뉘라 한 번 먹자오리. 살았을 제 먹사이다."
 
59
춘풍이 받아 먹고 흥에 겨워 노는구나.
 
60
"추월 춘풍 연분 맺어 한가지로 놀아 볼까."
 
61
추월이 대답하되,
 
62
"이백도홍 유록시에 춘풍도 좋거니와 노백풍청 황국시에 추월이 밝았으니, 춘풍이 좋을씨고. 진실로 그럴 양이면 추월 춘풍 연분 맺어 놀아 볼까."
 
63
춘풍이 추월 두고 차운하였으되,
 
64
"아미산 반륜월, 도기영문 양추월, 북당야야 인사월, 동정월, 관산월,황산릉명월, 오주에 여견월, 이월 삼월뿐이로다. 월백풍청 여차양야에 나는 춘풍 너는 추월 우리들이 배필 되면 천지가 변하기로 풍월이야 변할소냐."
 
65
추월이 대답하되,
 
66
"서방님은 월자운을 달았으니 나는 풍자운을 달아 볼까. 수수산에 서북풍, 낙양성에 견추풍, 만국병전 초목풍, 무협장취 만리풍, 양류수사 만강풍, 취적강산 낙원풍, 삼월에 화신풍, 동지섣달 설한풍, 이제 풍자 풍자 다 버리고 추월 춘풍 배필되어 대동강이 마르도록 추월이야 변할손가. 좋을씨고 청풍명월 야삼경에 양인심사 양인지라. 화류봉접 좋은 연분 어이 인제 만났는고."
 
67
춘풍이 대희하여 생증장액 수고란 호취개렴 접쌍연이라.허랑한 이춘풍이 장사에 뜻이 없고 이날부터 이천오백 냥을 마음대로 쓰는구나. 장취불성 맑은 소리로 일삼으며 주야로 노닐거늘 추월이는 수천 냥을 홀리려고 교태하여 이른 말이,
 
68
"통한단 쌍문초, 도리불수 능라단, 초록 저고리감만 날 사 주오. 은죽적 금봉채 가진 노리개 날 해 주오. 두리소반 주전자 화로 양푼 대야 날 사 주오. 동래반상, 안성유기 구첩반상 실굽다리 날 사 주오. 요강 타구 새옹 냄비 청동화로 날 사 주게. 백통대 은대 금대 수복 담뱃대 날 사 주오. 문어 전복 편포 안주하게 날 사 주오. 연안배천 상상미로 밥쌀하게 팔아 주오. 동래을산 장곽해의 날 사 주오."
 
69
온가지로 헤어 내니 허랑한 이춘풍이 일호나 사양할까. 수천여 냥 돈을 비일비재 내어주니 청산유수 아니어든 오랠손가. 일 년이 못 다가서 낭탁이 비었구나.
 
70
추월의 거동 보소. 춘풍의 재물을 빼앗고 괄시하여 내쫓으니 춘풍의 슬픈 거동 가련하다.
 
71
"내 눈에 보기싫다."
 
72
석경 면경 홱 던지고 생증 내어 구박할 제, 성외성내 한량에게 의논하되 즐경막의 장작인가, 전당집의 은촛댄가, 썩은 나무 박힌 뿌리런가. 이러할 줄 몰랐던가.
 
73
"어디로 갈랴시오. 노자가 부족하면 한 때나 보태지요."
 
74
돈 한돈 내어주며 바삐 나가라 재촉하니, 춘풍의 거동 보소. 분한 마음 폭발하여 추월더러 하는 말이,
 
75
"우리둘이 갓 만나서 원앙금침 마주 누워, 불원상리 굳은 언약 태산같이 언약하여, 대동깅이 마르도록 떠나가지 말자더니, 이렇듯 깊은 맹세 농담인가 진정인가. 이제 이 말 웬말인가."
 
76
추월이 이 말 듣고 변색하여 하는 말이,
 
77
"이 사람아, 내 말 좀 들어 보소. 청루물정 몰랐던가. 장난부 이낭청도 동가식 서가숙하고,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평양기생 추월 성식 몰랐던가. 자네가 가져온 돈냥 혼자 먹던가."
 
78
이같이 구박하여 등 밀치며 어서 바삐 가라 하니, 춘풍이 분한 중에 탄식하며 전면 기둥 비켜서서 이리저리 생각하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79
집으로 가자 하니 무면 도강동이요,처자도 부끄럽고, 또한 막중 호조 돈 이천 냥을 내어다가 한푼 없이 돌아가면, 금부옥에 가두고 주장대로 지르면 속절없이 죽겠으니 서울로도 못 가겠고, 불원천리 가자 하되 노자 한 푼 없으니 그도 또한 못 하겠다. 이를 장차 어찌하리. 이럴 줄 몰랐던가. 후회막급 창연하다. 대동강 깊은 물에 풍덩 빠져 죽자 하니, 그도 차마 못하겠고, 석자 세치 지자수건 목을 매어 죽자 하니 이도 차마 못 하겠네. 답답한 이내 일을 어찌하면 옳단 말고.
 
80
평양성 내 걸인 되어 이집 저집 빌자 하니,노소인민 아동주족 이놈 저놈 꾸짖으니 걸시고 못하리라. 어디로 가잔 말가.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추월 앞에 나가 앉아 잔생이 비는 말이,
 
81
"추월아 추월아. 내 말 잠깐 들어 봐라. 우리 조선이 인정지국이어든 어찌 그리 박절한가. 날 살리게 날 살리게. 내가 자네 집에 도로 있어 물이나 긷고 불 사환이나 하고 있으면 어떠할꼬."
 
82
추월이 거동 보소. 눈을 흘겨보면서,
 
83
"여보소, 이 사람아. 자네가 전 행실을 못 고치고 '하게' 소리하려면 내집 다시 오지 마소."
 
84
이렇듯이 구박하니 춘풍이 하릴 없이 '아가씨' 말이 저로 나고 존대가 절로 난다.
 
85
춘풍이 이날부터 추월의 집 사환하는 일, 생불여사라 가련하다.
 
86
누더기 차림으로 이리저리 다닐 적에 거동 볼작시면 종로의 상거지라. 조석 먹는 거동 보면, 이 빠진 헌 사발에 누른밥에 토장덩이 제격이라. 수저도 없이 뜰 아래나 부엌에서 먹는 거동, 제 신세 스스로 생각하니 목이 메어 못 먹겠네.
 
87
주야로 한량들은 청산에 구름 모이듯 수륙재에 노승 되듯, 개성부에 장사 모이듯, 추월의 집으로 모여와서 온갖 희롱 다 하면서, 좋은 술별 안주에 배반이 낭자하며 청가일곡 화답하여 한창 이리 노닐 적에 이 때 춘풍의 거동 보소. 뜰 아래서 방 안을 엿보니 눈에는 풍년이요, 입에는 흉년이라. 제 신세를 생각하고 노래하되,
 
88
"세상사 가소롭다. 나도 경성 장부로 왈자벗님 취담하여 청루미색 가무중에 수만 금을 허비하고, 또 왜시골 내려와서 주인을 작첩하여 불원상리 하잤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니 세상사 가소롭다."
 
89
이 때는 엄동이라 일락서산하고 바람은 솔솔하고 월색은 조용한데,
 
90
"울고 가는 저 기러기야, 내 전정을 들어 보고 내 고향에 전하여라. 우리 처자 그리워라. 나를 그려 죽었는가 말았는가. 이리저리 생각하니 대장부 일촌간장 봄눈 슬 듯 하는구나. 그런 정 저런 정 다 버리고 전에 하던 가사나 하여 보세."
 
91
매화타령을 한다.
 
92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피엄즉도 하다마는 백설이 분분하니 필지 말지, 어화 세상사 가소롭다."
 
93
이 때 추월의 방에 놀던 한량들이 노래를 듣고 의심하니 추월이 무색하여 하는 말이,
 
94
"내 집의 사환하는 놈이, 서울 이춘풍이라 하는 놈이 소리를 하니 신청치 마소서."
 
95
한량들이 이 말 듣고 하는 말이,
 
96
"서울 산다 하니 불쌍하다."
 
97
하고 술 한 잔 잔 가득 부어 주니, 춘풍이 갈지우갈하여 받아먹으니 가련하더라.
 
 
98
각설 이 때 춘풍의 처, 가장을 이별하고 백 가지로 생각하며 주야로 탄식하는 말이,
 
99
"멀고 멀은 큰 장사에 소망 얻어 평안히 돌아오기 천만 축수 기다리오."
 
100
하되 춘풍이 아니 오고 풍편에 오는 말이 서울 사는 이춘풍이 평양 장사 내려가서 추월을 작첩하여 호강으로 노닐다가, 수천 금 재물 다 없애고서 추월에게 구박맞아 사환한단 말을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는 말이,
 
101
"애고 애고 이 말이 웬말인고. 슬프다, 가장 나와 같이 만났건만, 어이 그리 허랑한고. 청루미색에 한번 치패도 어렵거든 천리타향에 막중국전을 대돈변으로 내어 가지고, 또 낭패하단 말가. 애고 답답스런지고, 뉘를 바라고 산단 말가. 전생에 무슨 죄로 여자가 되어 나서 가장 한번 잘 못 만나 평생 고생하는구나. 이내 팔자 이렇도록 되었는가.
102
어찌하여 사잔 말가. 박명한 이내 팔자 도망하기 어렵도다. 종남산 다다라서 물명주 질긴 수건 한 끝은 나무에 매고 한 끝은 목에 매어 죽고지고. 여자가 되어 나서 이런 팔자 또 있는가. 염마국 십전대왕 아귀사자 빨리 보내어 내 목숨을 잡아가오."
 
103
이를 갈며 하는 말이,
 
104
"평양을 찾아가서 추월의 집 찾아 불문곡직 달려들어 추월의 머리채를 감아쥐고, 춘풍에게 달려들어 허리띠에목을 매어 죽으리라."
 
105
악을 내어 울다가 도로 고쳐 생각하되,
 
106
"이리도 못 하리라. 어이하여 사잔 말가. 내 가장을 경성으로 데려다가 살리재도 어찌하리요. 아무리 생각하여도 할 수가 전혀 없다. 소년에 패가하여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야로 품을 팔아 전곡 빚을 갚은 후에 의식 걱정 아니 하고 우리 양주 백년화락하겠더니, 원수로다, 평양 장사 원수로다."
 
107
이렇듯이 지내는데 뒷집의 참판 댁이 있어, 노대감은 돌아가고 맏자제 문장으로 소년급제하여 갖은 청환 다 지내고 참판으로 근년에 평양감사 부망으로 불구에 평양 감사 한단 말 듣고 춘풍의 처 계교를 생각터니, 그 댁이 빈한하여 국록을 타서 수다식구 사는 중에, 그 대부인 있단 말을 듣고 침재품을 얻으려고 그 댁에 들어가니, 후원 별당 깊은 곳에 참판의 대부인이 평상에 누워 행세 가난키로 식사도 부실하고 초췌하다.
 
108
춘풍 아내 생각하되 이 댁에 부치어서 가장을 살려 내고 추월을 설치하여 보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침재품을 힘써 팔아 얻은 돈냥 다 들여서 참판 댁 대부인 조석 진지 차려 가니, 부인이 이외에 때마다 받아먹고 감지덕지하여 생각하되,
 
109
'이 깊은 은혜를 어찌할꼬.'
 
110
주야로 근심하더니, 하루는 춘풍의 처더러 이른 말이,
 
111
"네가 형세도 어렵고 침재품으로 살아간다 하는데, 날마다 차담상을 지어오니 먹기는 좋다마는 도리어 불안하다."
 
112
춘풍 아내 여쭈오되,
 
113
"소녀집에 음식 있어 혼자 먹기 어렵삽기로, 마무랏님 잡수실까 하와 드린 것이옵나니 황송하여이다."
 
114
대부인이 이 말 듣고 매일 사랑하고 기특히 여겨, 못내 생각하시더라.
 
 
115
하루는 참판 영감 문안하고 여쭈오되,
 
116
"요사이 무슨 좋은 이리 계신지 화기 만안하시닛까?"
 
117
대부인 말씀하되,
 
118
"앞집의 춘풍의 처가 좋은 음식 차담상을 연일 차려오니 내 기운 절로 나고, 그 계집의 정성 감격하다."
 
119
참판이 이 말 듣고, 춘풍의 처를 청하여 보고 치사하니 더욱 기특히 보고 매일 사랑하더라.
 
120
천만의외의 참판 영감이 평양 감사를 하였구나. 희희낙락 즐길 적에, 춘풍의 처 대부인께 온공히 여짜오되,
 
121
"이번에 천은으로 평양 감사하셨으니 이런 경사 없사이다."
 
122
대부인이 말씀하되,
 
123
"나 평양가려 하니, 너도 함께 내려가서 춘풍이도 찾아 보고 구경이나 하는 것이 어떠하뇨?"
 
124
춘풍의 처 여쭈오되,
 
125
"소녀는 고사하고 오래비 있사오니, 비장 한 몫 주십시오."
 
126
대부인 이 발 듣고,
 
127
"네 청이야 아니 들을소냐?"
 
128
하고 감사께 통기하니, 감사 허락하고,
 
129
"제가 비장할 양이면 바삐 거행하라."
 
130
하니, 춘풍의 처, 없는 오래비 있다 하고, 제가 손수 가려고 여자 의상 벗어 놓고 남자 의복 치장한다.
 
131
외올 망건 대모관자 당줄 놀라 질끈 쓰고, 깨알 같은 제주탕건, 삼백쉰돌임 계양태 제모립에 엿돈 오푼짜리 은귀 영자 산호격자 두 귀 밑에 달아놓고 통해전의 삼승 버선, 쌍코신에 쥐눈징을 다문다문 그어서 맵시있게 지어 신고, 양색단 웃저고리 자개묘초 양등거리, 양피두루마기 희천주 겹 창의에 갑사쾌자 장패띠로 융랑을 눌러 띠고 서피 돈피만 선두리 두 귀 담쑥 눌러쓰고 대모장도 내외고름 비껴 차고, 소상반죽 왜금선을 이궁전선 초달과 한삼소매 늘어지게 쥐고 흐늘흐늘 걸어가는 거동 황홀한 귀남자라.
 
132
감사 댁에 들어가서 하인을 단속하고, 황혼을 기다려서 차담상 별로 차려 대부인께 드릴 적에 복지하여 여쭈오되,
 
133
"춘풍의 처 문안드리나이다."
 
134
부인이 경악하여 말하되,
 
135
"춘풍의 처면 남복은 무슨 일인고."
 
136
비장이 여쭈오되,
 
137
"소녀 지아비 방탕하여 청루에 외입하여 두세 번 패가하고, 호조돈 이천냥을 대돈변으로 얻어 내어 평양 장사 가서 추월을 작첩하여 주야로 즐기다가, 이천오백 냥 돈을 달리 한푼 아니 쓰고, 추월에게 다 없애고 추월의 집 사환 되었다 하옵기로 소녀의 마음이 매양 절통하옵더니, 천행에 사또 덕택으로 비장이 되어 내려가서 추월도 설치하고 호조돈 수쇄하고 지아비 다려다가 백년동거하게 되면 마누랏님 덕택이니 의심없이 하옵소서."
 
138
대부인 청필에 크게 웃어 말하기를,
 
139
"네 말이 그러하니 불쌍하고 가련하다. 소원대로 하여 주마."
 
140
이 때 마침 감사 안에 들어오다가 이 거동 보고, 대노하여 호령하되,
 
141
"이 놈이 어떤 놈이관대 임의로 대청에 출입하니, 저 놈을 바삐 결박하라."
 
142
천둥같이 분부하니, 대부인이 웃으며 감사더러 춘풍의 처 소관사를 자세히 이르시니, 감사 대소하고 당장에 불러들여 기특하다 칭찬하고 좌우를 불러 구외불출하라 하고, 삼일 잔치 연후에 현신하니 감사 하나밖에 다 초면이라. 수군수군하는 말이,
 
143
"회계 비장 잘도 났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흠이로다."
 
144
뉘 아니 칭찬하리요.
 
145
명일 발행하여 떠날 적에 기구도 찬란하고 위엄도 엄숙하다. 빛좋은 백마등에 쌍교 독교 사인교며, 좌우청장 호강 있게 내려갈 제, 전배비장 후배비장 책방까지 치레하고, 호피 돋움 높이 타고 금선의 이군전은 일광을 가리우고 평양을 내려갈 제, 호사도 장할씨고. 이방 호방 예방 수배 인배 통인 관노역마부며 각청 방자 군노 나장이 좌우에 늘어서서 홍제원을 바라보고, 구파발 막 숫돌고개 얼른 넘어 파주읍에 숙소하고 임진강 다다라서 전후창병 둘러보니 보던 바 제일이라.
 
146
임술지추 칠월기망에 소자첨 놀던 적벽강산 수한경 여기저기 구경하고, 동파역 얼른 지나 장단읍에 중화하고 취석교 건너가서 소파 가서 숙소하고, 청석골 다다라서 좌우 산천 구경하니 벽제 소리 권마성에 산천이 다 울린다.
 
147
금천읍에 중화하고 도저울 지나서서 웃고개 엄어서니 평산 땅이라. 앞고개 넘어서서 태백산성 바라보고 남청역에 말을 먹여 총수관에 숙소하고, 홍주원 다다라서 병풍바위 말을 몰아 구월산에 다다르니 산세도 기묘하다.
 
148
봉산읍에 중화하고 동선령 넘어서서 정방산성 바라보니 좌우산성 경개 좋다. 수목이 우거지고 비금은 날아들고 취타 소리 더욱 좋다. 황주병영 숙소하고ㅓ 진동에 말을 몰아 중화읍에 숙소하고 형제교를 다다르니, 영본부 관수들이 읍정에 지대하여 도임차로 들어간다.
 
149
작대 대소관 현신하고 전배비장 후배비장 전후로 뫼시는데 천총 파총이 장대하여 군문에 늘어서서 좌청룡 우백호에 동서남북 청홍흑백 어즈러이 늘어섰고, 길나장군 악대 새면치는 소리 산천을 진동하고 육각 풍류 취타 소리 더욱 좋다.
 
150
아름다운 미색들은 녹의홍상으로 좌우에 늘어섰고, 전배 후배 비장들은 좋은 말에 높이 앉아 법제 있게 들어갈 제 장임을 다 지나서 대동강변 다다르니 녹수청파 두교산은 적병강 큰 싸움에 방사원의 연환계로 육지같이 모았는데, 대동문 들어갈 제 전후 좌우 구경꾼은 성지 위가 무너질 듯 초성루를 지나 객사에 현알하고, 문에 들어가서 선화당에 좌기하고 방포삼성 후에, 백여 명 기생들이 낱낱이 현신한다. 사또 분부하되,
 
151
"비장 책방 다 현신하라."
 
152
하더라.
 
153
하루는 사또께서 회계 비장더러 농담으로 조롱하되,
 
154
"각처 비장 책방까지 수청을 두었으되, 자네는 어이하여 평양 같은 물색에 독수공방한다 하니 그 말이 참말인가?"
 
155
회계 비장 여짜오되,
 
156
"소인은 소첩으로 사오 년을 단방하와 색에 뜻이 없나이다."
 
157
회계 비장 숨은 회포 사또밖에 뉘 알손가. 기특히 여기더라. 백사 더욱 진실하고 사또 날로 사랑하여 일마다 미루어 맡기어 수삼 삭에 수만 냥을 상급하니 뉘 아니 칭찬하리.
 
158
이 때 회계 비장이 춘풍․추월의 일을 염탐하여 자세히 듣고, 하루는 비장이 추월의 집을 찾아갈 제 사또께 귓속하고, 그 년의 집 찾아가서 중문에 들어가니, 물통 진 춘풍 저 놈 형용도 참혹하고 모양도 가련하다. 봉두난발 헙수룩한 놈 낯조차 못 씻던가, 추잡하기 그지없다.
 
159
삼 년이나 아니 빤 옷 주루룩이 누덕여서 얽어입고 앉은 것이 제 서방인 줄 알았으되, 춘풍이야 제 아내인 줄 어찌 알랴. 비장이 슬프고 분한 마음 서려 담고 추월의 방에 들어가서 간사한 추월이 회계 비장 또 흘리려고 교태하여 수작하다가 각별히 차담상을 만반진수로 차려 드리거늘, 비장이 약간 먹는 체하고 사환하는 걸인을 내어주며,
 
160
"불쌍하다. 네가 본디 걸인이냐? 네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느냐?"
 
161
춘풍이 엎드려 크게 말하기를,
 
162
"소인도 경성 사람으로 이리 온 사정이야 어찌 다 여짜오리까? 나으리 잡수시던 차담상을 소인 같은 천한 몸을 주시니 은혜 감사무지하여이다."
 
163
비장이 미소하고 처소에 돌아와서 수일 후에 사령을 불러 분부하되, 춘풍을 잡아들여 형틀에 올려 매고,
 
164
"이 놈 네 들으라. 네가 이춘풍이냐?"
 
165
춘풍이 대답하되,
 
166
"과연 그러하오이다."
 
167
"막중 호조돈 수천 냥을 가지고 사오 년이 되도록 일푼 상납 아니하니, 호조관자 내어 너를 잡아 죽이라 하였으니, 너는 그 돈을 다 어찌하였는가. 매우 치라."
 
168
분부하니, 사령놈이 매를 들고 심여 개를 중타하니 춘풍의 다리에 유혈이 낭자하거늘 비장이 보고 차마 더 치진 못하고,
 
169
"춘풍아, 네 그 돈을 어디다 없앴느냐? 바로 아뢰라."
 
170
춘풍이 대답하되,
 
171
"호조돈을 가지고 평양 와서 일 년을 추월과 놀고 나니 일푼도 남지 않고, 달리 한푼 쓴 일 없삽나이다."
 
172
비장이 이 말 듣고 이를 갈고 사령에게 분부하여 추월을 바삐 잡아들여 형틀에 올려 매고 별태장 골라 잡고,
 
173
"일분도 사정 없이 매우 치라."
 
174
호령하여 십여 장을 중치하고,
 
175
"이 년 바삐 다짐하라. 네 죄를 모르느냐?"
 
176
추월이 정신이 아득하여 겨우 여쭈오되,
 
177
"춘풍의 돈은 소녀에게 부당하여이다."
 
178
비장이 대노하여 분부하되,
 
179
"네 어찌 모르리요. 막중 호조돈을 영문에서 물어 주랴, 본부에서 물어주랴? 네 먹었는데 무슨 잔말 아뢰느냐? 너를 쳐서 죽이리라."
 
180
주장대로 지르면서,
 
181
"바삐 다짐하라."
 
182
50대를 중히 치며 서리같이 호령하니, 추월이 기가 막혀 질겁하여 죽기를 면하려고 아뢰되,
 
183
"국전이 지중하고 관령이 지엄하니, 영문 분부대로 춘풍의 돈을 다물어 바치리이다."
 
184
비장이 이르되,
 
185
"호조에 관자하여 너를 죽이라 하였으되, 네가 먼저 죄를 알고 돈을 무수히 바치마 하니 그런 고로 너를 살리나니 호조돈을 지체 말고 오천 냥을 바치라."
 
186
하니 추월이 여쭈오되,
 
187
"십일 말미만 주시면 오천 냥을 바치리다."
 
188
다짐 해써 올리니, 춘풍과 추월을 형틀에서 내려놓고 춘풍더러 이르되,
 
189
"십일 내에 오천 냥 받아가지고 서울로 올라오라. 내가 유고하여 먼저 올라가니 내 뒤를 미처 올라와 집을 찾아오라."
 
190
하니, 춘풍이 황황하여 아뢰되,
 
191
"나으리 덕택으로 호조돈을 다 수쇄하오니 은혜 백골난망이로소이다. 서울 가서 댁에 먼저 문안하오리다."
 
192
하고 여쭙더라.
 
193
비장이 사또께 여쭈오되,
 
194
"추월 설치하고 춘풍도 찾삽고 호조돈도 수쇄하오니, 은혜 감축무지하온 중 소인 몸이 외람되이 존중한 처소에 오래 있삽기 죄송하와 떠날 줄로 아뢰나이다."
 
195
감사 그러히 여겨 허락하니, 이튿날 감사께 하직하고 상급한 돈 오만 냥을 환전 부쳐놓고, 떠나서 여러 날 만에 집에 와 정돈 보고 환전도 찾은 후 남복은 벗어 놓고 춘풍 오기 기다리더라.
 
196
이 때 사또 평양 비장에게 회계 비장을 겸하고 분부하여 추월을 잡아들여 돈 오천 냥 바치라 하시니 뉘 영이라 거역할까? 성화같이 재촉하여 불일 내에 받아가니 춘풍이 비장덕에 돈받아 실어놓고 갓 망건 의복 치레하여 운안준마 놓이 타고 경성을 올라와서 제 집을 찾아가니, 이 때 춘풍의 처 문밖에 썩 나서서 춘풍의 소매 잡고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197
"어이 그리 더디던고. 장사에 소망 얻어 평안히오시닛까?"
 
198
춘풍이 반기면서,
 
199
"그 새 잘 있던가?"
 
200
춘풍이 이십 바리 돈을 여기저기 벌이고 장사에 남긴 듯이 의기양양하니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주찬을 소담히 차려 놓고,
 
201
"자시오."
 
202
하니 저 잡놈 거동 보소. 없던 교태 지어 내어 제 아내 꾸짖으되,
 
203
"안주도 좋지 않고 술맛도 무미하다. 평양서는 좋은 안주로 매일 장취하여 입맛이 높았으니, 평양으로 다시 가고 싶다. 아무래도 못 있겠다."
 
204
젓가락을 그릇에 던져박고 고기도 씹어 뱉어 버리며 하는 말이,
 
205
"평양 일색 추월이와 좋은 안주 호강으로 지냈더니 집에 오니 온갖 것이 다 어설프다. 호조돈이나 다집하고 약간 전량을 수쇄하여 전 주인에게 환전 부치고 평양으로 내려가서, 작은 집과 한가지로 음식을 먹으리라."
 
206
그 거동은 차마 못 볼러라. 춘풍 아내 거동 보소. 춘풍을 속이려고 상을 물려 놓고 황혼시에 밖에 나가 비장 복색 다시 하고, 오동수복 화간죽을 한발이나 빼쳐 물고 대문 안에 들어서서 기침하고,
 
207
"춘풍아, 왔느냐?"
 
208
춘풍이 자세히 보니 평양서 돈 받아주던 회계 비장이라, 춘풍이 황겁하여 버선발로 뛰어 내달아 복지하여 여쭈오되,
 
209
"소인이 오늘 와서 날이 저물어 명일에 댁 문안코자 하옵더니, 나으리 먼저 행차하옵시니 황공만만하외다."
 
210
"내 마침 이리 지나가다가 너 왔단 말 듣고 네 집에 잠깐 들렀노라."
 
211
방 안 에 들어가니, 춘풍이 아무리 제 안방인들 어찌 들어올까? 문 밖에 섰노라니,
 
212
"춘풍아, 들어와서 말이나 하여라."
 
213
"나으리 좌정하신 데를 감히 들어가오리까?"
 
214
"잔말 말고 들어오라."
 
215
춘풍이 마지못하여 들어오니, 비장이 가로되,
 
216
"그 때 추월에게 돈을 진작 받았느냐?"
 
217
"나으리 덕택에 즉시 받았나이다. 못 받을 돈 오천 냥을 일조에 다 받았사오니, 그 덕택이 태산 같사이다."
 
218
"그 때 맞던 매가 아프더냐?"
 
219
"소인에게 그런 매는 상이로소이다. 어찌 아프다 하리이까?"
 
220
"네 집에 술이 있느냐?"
 
221
춘풍이 일어서서 주안을 들이거늘 비장이 꾸짖어 말하되,
 
222
"네 계집은 어디 가고 네게 일을 시키느냐? 네 계집 불러 술 준비 못 시킬까?"
 
223
춘풍이 황겁하여 아무리 찾은들 있을소냐? 들며나며 찾아도 무가내라 제 손수 거행하니 한두 잔 먹은 후에 취담으로 하는 말이,
 
224
"네 평양에서 추월의 집 사환할 제 형영도 참혹하고 걸인 중 상거지라, 추월의 하인 되어 봉두난발 헌 누더기 감발버선 어떻더냐?"
 
225
춘풍이 부끄러워 제 계집이 문 밖에서 엿듣는가 민망하건마는, 비장이 하는 말을 제가 어찌 막을손가. 좌불안석하는 꼴은 혼자 보기 아깝더라. 비장 말하되,
 
226
"남산 밑 박승지 댁에 갔다가 술이 대취하여 네 집에 왔더니 시장도 하거니와, 해갈이나 하게 갈분이나 한 그릇 하여 오너라."
 
227
춘풍이 황공하여 밖으로 내달아서 아무리 제 계집을 찾은들 어디간 줄 알리요. 주적주적하더라.
 
228
비장이 꾸짖어 말하기를,
 
229
"네 계집을 어디 숨기고 나를 아니 뵈는고?"
 
230
차왈피왈하니,
 
231
"너는 벌써 잊었느냐? 평양 일을 생각하여 보라. 네가 집에 왔다고 그리 체중한 체하느냐?"
 
232
춘풍이 갈분을 가지고 부엌에 내려가 죽쑤는 꼴은 차마 볼 수 없더라. 한참 꿈적여서 쑤어들이거늘, 비장이 조금 먹는 체하고 춘풍을 주며,
 
233
"먹으라. 추월의 집에서 깨어진 헌 사발에 누른밥 토장덩이에 이지러진 숟가락도 없이 먹던 생각하고 먹으라."
 
234
춘풍이 받아먹으며 제 아내가 밖에서 다 듣는가, 속으로 민망히 여기더라. 비장이 말하되,
 
235
"밤이 깊었으니 네 집에서 자고 가리가."
 
236
하고 의복 벗고 갓 망건을 벗으니, 춘풍이 감히 가란 말을 못 하고 속마음으로 해포 만에 그리던 아내 만나서 잘 잘까 하였더니, 비장이 잔다 하니 속으로 민망히 여기더라.
 
237
관망탕건 벗어 놓고 웃옷을 훨훨 벗은 후 일어서니 완연한 제 계집이라. 춘풍이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분명한 제 겨집이라. 춘풍이 어이없이 묵묵 무언 앉았으니 춘풍의 처 달려들며,
 
238
"여보소 아직도 나를 모르시오?"
 
239
춘풍이 그제야 아주 깨닫고 깜짝 놀라며, 두손을 마주잡고,
 
240
"이것이 웬일인가? 평양 회계 비장으로서 지금 내 아내 될 줄 어이 알리. 이것이 생신가 꿈인가, 태중인가, 귀신이 내 눈을 어리어 이러한가?"
 
241
하며 파경이 부합하여 원앙금침에 구정을 다시 이뤄 은근한 정이 비할 데 없더라. 춘풍 하는 말이,
 
242
"어떻게 평양 비장으로 내려왔으며, 또 내가 아무리 잘못하였기로 가장을 형틀에 올려매고 볼기를 친들 그다지 몹시 치니 그 때 자네 마음이 상쾌하던가?"
 
243
하니 춘풍 아내 말하기를,
 
244
"그 때 자청하여 일푼전 일두속을 불부착수할 뜻으로 맹세하고 수기를 써서 내 함롱에 넣어놓고, 무슨 미친 마음으로 호조돈 수천 냥을 내어가지고 평양 장사 갈 제 말린다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 가계도 한푼 없이 거지 꼴 되었으나, 그 후 저는 참판 댁과 친근하여 참판 댁 대부인께 침재품 판돈으로 차담상을 자주 차려 정성으로 대접하고 비장으로 내려갈 제는 임자를 보게 되면 반만 죽이려 하였더니 만나 보니 차마 불쌍하여 더 치지 못하고 용서하였거던, 사오 년 내 고생하던 생각하면 그 때 맞던 매가 깨소금이오."
 
245
하더라. 내외가 서로 웃고 전후사를 서로 타이르며 호조돈을 다 수보하고 춘풍이 개과하여 주색잡기 전폐하고, 치가를 일삼아 형세도 요부하고 유자생녀하고, 감사기 과만하여 올라온 후 안팎없이 다니며 평생 신을 끊지 않고 대대손손이 섬기더라. 이에 춘풍의 아내를 여중호걸이라 하더라.
【원문】이춘풍전 (李春風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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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풍전 (李春風傳)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3월 31일